“그러고보니 어제 너, 나 깨우지도 않고 그냥 갔지.”
“으응... 그래도 너무 편하게 주무시길래요.”
“시끄러. 벌칙이야. 마셔.”
술을 따라주면서, 레이무가 심술궂게 말했다. 사나에는 울상이 되어 잔에 담긴 훌쩍 들이켰다. 술 맛이 썼는지 아니면 레이무의 심술에 섭섭한 것인지, 사나에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사나에는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몇 잔을 마셨는지도 이미 기억나지 않았다. 레이무는 잠시 시선을 돌려, 방안에 있는 사람들 말고도 신사의 마당에서 한창 즐겁게 연회를 즐기는 쪽을 바라보았다.
“흐에에, 써욧...”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알코올의 부자연스러운 느낌에, 사나에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레이무는 다시 시선을 돌려,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붉힌 채로 고양이가 하악질을 하듯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레이무의 뚱한 표정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으으... 왜 웃으세요...”
“아니, 아니. 그냥. 아하하...”
실없는 웃음소리마저 흘러나오는 하쿠레이 레이무의 표정은, 누구를 만난 것보다 더 밝은 표정이 되어있었다. 항의하는 사나에의 입을 틀어막고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그와중에 레이무는 웃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별 이유도 없이, 별의 별 사소한 것도 모두 즐거웠다.
이렇게 별생각 없이 마냥 웃음이 나는게 도대체 얼마만이지.
술을 홀짝이며, 하쿠레이 레이무는 자기 속에 들어찬 알코올의 자극과 머리를 몽롱하게 감싸오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푸근한 기분이었다. 여러 인요가 들어찬 신사 내의 후끈한 공기도, 코끝을 자극하는 음식들의 냄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직 이 자리의, 눈앞의 이 아이와 술을 마시는 것에만 정신이 집중되는 듯했다. 술기운이 올라오나. 레이무는 생각했다.
“레에에이이이무우우~!”
왈칵, 등 뒤에서 자신의 몸을 세차게 끌어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등에 닿는 몰캉몰캉한 감촉. 익숙한 목소리. 레이무는 뒤를 돌아보았다.
“많이 마셨어, 유카리?”
“으음~ 별로 안마셨어~”
말과는 달리 벌써 한껏 취기가 오른 듯, 야쿠모 유카리는 상기된 얼굴로 실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먼저 레이무를 끌어안은 그녀였지만 역시나 방 안의 공기에 더해 술기운까지 겹친 더위는 참을 수 없었던지,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팔을 풀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머, 오늘은 여고생 씨도 같이?”
“응. 상관없잖아? 딱히 있어도. 그전에, 여고생이라는건 뭐야?”
“음, 엄청 예쁘고 강한 여자?”
“그럼 딱 난데?”
레이무의 대답에 야쿠모 유카리는 쿡쿡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하얀 장갑에 압박된 그녀의 가녀린 팔은, 묘하게 매혹적인 구속의 마력 덕에 더욱 가녀려 보였다. 그녀는 레이무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며,
“여고생이 되기에 레이무는 아직 좀 어리지 않을까아?”
그러고는 남은 손으로 레이무의 몸에 다가가려 하는 것도 잠시.
“자, 잠깐만요!”
옆에서 지켜보던 사나에가 야쿠모 유카리의 손을 밀쳐내며 말했다.
“뭐, 뭐하시는 거예요, 유카리 씨!”
“뭐냐니...”
야쿠모 유카리는 어느새 자신의 팔을 뿌리친 사나에의 손등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웃었다.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였다.
“평범한 스킨십이잖니?”
“여자끼리 가슴을 그렇게 가볍게 만져대진 않거든요!”
사나에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강하게 항의했다. 묘하게 중독될 것 같은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면서. 코치야 사나에는 항상 생각했지만, 눈앞의 이 요괴는 알면 알수록 더 생각을 알 수 없는 여자였다. 유카리는 사나에의 눈빛을 보고, 태연하게 한쪽 눈을 찡그리며 윙크를 해보였다.
“둘 다 시끄러.”
둘 사이에 끼인 포지션이 된 레이무는 그녀들을 가로질러 탁자에서 술병을 가져오며 말했다. 그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유카리 너 잘 왔다. 너도 오늘 낮에 한 짓에 대한 벌칙을 잔뜩 안겨주겠어.”
마치 오니와도 같은 미소였다.
-
"응~ 이런 일도 있었지이이이~"
보라색의 꽉 조이는 드레스같은 옷을 입은 야쿠모 유카리가, 그 풍성한 가슴에 레이무의 얼굴을 묻고 비비며 말했다.
"...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은 부르지 말자고했지..."
가슴의 부피에 압도당한 레이무는 곤란하다는 한숨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유카리의 주변에는 여러 술병이 늘어져 있었고, 이미 충분히 이런저런 민폐를 끼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레이무는 내가 레이무가 어릴 때부터 찜해놨었거드은?"
유카리는 품에 안긴 레이무의 가슴을 조물거리더니 아쉬운듯 말했다.
"가슴은 어릴때랑 다를게 없지마-"
쾅.
레이무의 손이 유카리의 얼굴을 잡아채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아버렸다. 자신의 가슴이 희롱당하는 것보다, 그 크기로 희롱당하는 쪽이, 더 기분이 나빴던 것인지.
"시끄러!"
"흐... 흐응. 안 부럽거든요? 전혀?"
코치야 사나에가 손에 잡힌 술병을 입에물고 들이키더니, 빈 병임을 확인하자 내던지며 말했다.
"레이무 씨의 가슴은 나도... 나도... 만질 수...!"
쾅.
두 여자의 주사에 지친 레이무는 이내 둘을 때려눕히고는,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야아~ 레이무~ 여기와서 마셔~"
키리사메 마리사가 연회의 분위기에 한층 열이 올랐는지 신이 나서 레이무를 불렀다. 레이무는 잔을 들고 신사의 마당 쪽으로 걸어나갔다.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바보같은 녀석들밖에 꼬이지 않을까 한탄하면서.
“아, 레이무 씨, 가버렸네요.”
“우음... 그러게.”
단둘이 남겨진 사나에와 유카리가 말했다. 사나에는 잠시 움찔하더니, 허겁지겁 일어나며 유카리에게 말했다.
“저, 저 화장실 좀 갔다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사나에는 후다닥 뛰어가더니, 유카리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유카리는 그대로 누워 방바닥의 묘한 포근함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엎드려 있는 유카리 앞에, 야쿠모 란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나 참, 유카리님. 이런데서 주무시면 안돼요.”
아홉 개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는 유카리의 얼굴을 살펴보려 했다. 유카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후후, 아직 그정도로 많이 마시진 않았단다. 란. 난 잠시 화장실 좀 갔다올테니 걱정말고 즐기고 있으렴.”
“에...? 네, 네.”
생각외로 멀쩡한 유카리의 상태에 당황한 란은, 뭐라 말도 못하고 그대로 일어나는 자신의 주인을 일으켜줄 생각도 미처 못한채, 그대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앗,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
“어머, 괜찮단다. 너도 보다시피 별로 마시지도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려무나.”
“네에... 정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그렇게 대답하고 란은 총총걸음으로 물러났다. 그녀가 떠난 것을 확인한 후, 야쿠모 유카리는 완전히 어둠이 내린 신사의 뒤편을 향해 걸어갔다. 마을의 젊은 애들은 이런 밤에 밀회를 즐기고는 하지. 유카리가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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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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