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레이 레이무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야쿠모 유카리를 피해 신사의 창고에 있었다. 이부키 스이카와 함께 식기를 꺼내는 하쿠레이 레이무의 표정은 여전히 마음의 동요가 가시지 않은 듯 형언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자신의 감정도 제대로 정하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그녀의 머릿속은, 여러 물건들이 한데 엉켜 복잡하게 널브러져있는 창고의 광경 같았다.
“레이무, 쟁반 찾았어!”
“...”
“레이무?”
평소 이상으로 조용한 레이무를 본 스이카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무는 손에 무엇이 잡혀있는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기계적으로 물건 더미에서 하나를 집고 옮기고, 또 하나를 집고 옮기고를 반복했다. 그녀는 넋이라도 나간 듯, 어느덧 일어나 창고 밖의 밝은 하늘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응? 레이무? 나 혼자서 이거 다 못해애!”
스이카의 항의는 귓가에 다가갔으나 이내 닿지 못하는 듯했다. 복잡한 심정을 정리해보려고 신사 주변을 거닐면서도, 오직 자신을 바라보던 코치야 사나에의 얼굴만이 생각났다. 물론 당연한 일이었다. 최근 며칠동안, 그리고 몇 달에 걸쳐 가장 자주 얼굴을 봤던 것은 바로 그녀였다.
심란했다. 연회준비도 자신을 쫓아다니는 유카리를 떨쳐내기도 귀찮았다. 평소 의욕이라고는 없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더욱 더 만사가 귀찮았다. 요우무와 레이센은 어디서 뭘하는지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평소라면 이 아이들이 언제 오든, 레이무는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오늘은 이런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이 미치고, 조금씩 화가 울컥울컥 나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기분이었다.
“레이무우우우!”
자신을 두들겨 깨우는 듯한 스이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이부키 스이카를 마주보았다.
“레이무, 괜찮아? 왜그래 오늘따라.”
“아... 응. 그냥.”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스이카의 표정으로 보아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라는 표정이었다.
“그냥이 아니잖아. 감기 덜 나은거 아니야?”
“아냐, 아냐. 정말 괜찮아. 갑자기 나가서 미안.”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의 이부키 스이카에게, 레이무는 다시 한 번 괜찮다고 애써 말하면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며 태연스럽게 창고로 걸어갔다.
“어머. 안녕, 레이무?”
스이카 말고는 아무도 없었을 등 뒤에서, 별로 기대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쿠레이 레이무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 어, 왔어?”
“레이무도 참, 너무 쌀쌀맞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야쿠모 유카리는 하반신을 담고있는 그 괴이한 틈새에서 작은 통을 꺼내 열어보였다.
“으... 기분 나빠.”
스쿠나 신묘마루가 마치 통에 들어간 채 흔들어지기라도 한 듯, 어지로운 표정으로 작게 말했다.
“기분 나쁘다니. 내 스키마는 특등석이야.”
“애초에, 특등석이라는게 뭐야?
”아 참. 이건 바깥세계에서 쓰는 말이구나.“
둘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레이무는 신묘마루와 그 통을 받아들고는, 스이카에게 빨리 준비나 하자면서 발길을 돌렸다.
“정말, 레이무,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도 안해주는 거야?”
“인사는 방금 했잖아.”
“그런 것 말고... 조금 더, 있잖아, 왜.”
그렇게 말하며 유카리는 순간 사라지더니, 어느새 레이무의 앞에 틈새를 열고 다가와 있었다.
“바쁘니까 나중에 해, 할 일 많아.”
“아앙, 그래도-,”
그렇게 여전히 장난을 치는 유카리를 향해 손에 쥐고있던 신묘마루의 집을 집어던지자, 그제서야 유카리는 틈새 사이로 얼굴을 쏙 빼고는 조용해졌다.
심각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으며 레이무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아닌데. 하며 스이카를 데리고 가만히 창고에서 정리를 시작했다. 오늘따라 기분이 이렇게 더러운지 모르겠다.
해가 어느덧 떨어지고 저녁.
연회가 한참 무르익어갔지만 술잔을 손에 쥔 하쿠레이 레이무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도 없었다.
“아야야야, 레이무 씨. 오늘따라 왜 이렇게 우울해 보이세요?”
평소와 다른 레이무의 모습을 본 샤메이마루 아야는, 마치 박쥐처럼 잽싸게 레이무의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레이무와 같은 검은 머리를 한 샤메이마루 아야는, 얼핏 보기에 매우 정갈해보이는 텐구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표정은 그녀의 악명에 걸맞게 언제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었다.
“응, 그냥.”
“에에-, 레이무 씨 답지 않다구요.”
“그런가.”
무덤덤하게 대답하는 반응을 보고 재미없다는 듯, 텐구 기자는 툴툴거리며 잔을 내밀었다. 레이무는 말없이 자신의 잔을 그녀의 잔에 부딪치고는 잔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오늘따라 술맛은 별로였지만, 취기는 훨씬 빠르게 몸에 퍼지는 듯 했다. 아야는 완전히 자리에 깔고앉아, 레이무의 잔을 새로 따른 뒤 쥐고있는 술병을 레이무에게 건넸다. 레이무는 익숙하게 그 병을 받아들고는, 아야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그나저나 요즘은 평온해서 힘드네요~ 기삿거리가 없으면 기자는 너무 힘들다구요?”
한숨을 쉬며 그렇게 토로하는 아야에게, 레이무는 턱을 괴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네가 사고라도 쳐보지 그래.”
“오옷. 이건 이변을 일으키는데 무녀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되나요?”
“글쎄에... 만약 시끄러운 까마귀 한마리가 퇴치되면 그것도 좋은 기삿거리겠네. 그 트윈테일 한 히키코모리가 써주겠네.”
히메카이도 하타테의 이야기가 거론되자, 아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롱과 애정이 섞인, 꽤나 볼만한 표정이었다.
“흐흐응. 집구석에만 틀어박혀서 뒷북만 치는 신문기자에게는 과분한 특종이겠네요~.”
샤메이마루 아야는 조금 풀린 레이무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그래도 아직 죽기는 싫으니까 사양할게요. 그래도 조금 얼굴은 펴고 다니시는게 좋다구요? 그래야 참배객이 많이 오죠.”
“윽.”
정곡을 찌르고 후다닥 떠나버린 아야를 뒤로하고, 레이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홍마관의 꼬맹이부터 망령, 웬일로 영원정 밖까지 행차하신 공주님 등. 모두 연회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며 놀고 있었다. 즐거워 보이네, 마치 연회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렇게 한가로운 감상을 떠올리고 있을 때-,
“레이무 씨, 여기 계셨네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며 옆자리에 누군가 앉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봐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빨리도 찾아오네.”
“에헤헤. 모미지 씨랑 잠시 마시다가 왔어요.”
“그래서, 난 두 번째 옵션이고?”
레이무가 장난스럽게 놀렸다. 사나에는 금새 표정이 바뀌며 손을 내저으며,
“아, 아니에요! 그냥 전 모미지 씨가 부르셔서 다른 생각 없이...”
애써 부정하는 사나에의 얼굴을 잠시 흘끗 바라보고, 레이무는 말없이 손을 뻗어 술병을 잡고, 사나에의 잔에 술을 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잔에도.
“앗, 제가 따라드려도 되는데.”
“됐어.”
스윽.
레이무는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네가 지각했으니까 오늘은 빡세게 달릴거야.”
사나에의 얼굴이 기쁨으로 덮이는 것도 잠시.
“히히, 네에!”
잔을 부딪치며, 두 소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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