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있었다. 성덕태자, 토요사토미미노 미코. 총기로 가득하던 두 눈은 빛과 생기를 잃어버렸다. 자신감과 거만함이 사라질 날이 없었던 얼굴은 굴복감과 공포심으로 뒤덮혀 있었다.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조차 강탈당한 그녀는 말그대로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왔다. 철저한 능욕과 짓밟힘 아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기적이었으리라.
그러한 사정을 알지 못했던 홍백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는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를 보며 표정을 구길 수 밖에 없었다. 검은 로리타 고딕드레스와 흰색 카츄사. 장난으로 입혀볼만한 복장이지만 한때 왕이었던 인물에게 입힐 만한 옷은 아니다. 거기다가 얼굴을 제외한 온몸엔 상처와 흉터로 가득했으며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머리카락으로 덮힌 곳이었다. 분명 기형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귀가 있어야 할텐데…… 머리카락으로 뒤덮혀 있더라도 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어머, 손님이네요."
레이무는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인자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히지리 뱌쿠렌이 서있었다. 항상 보아왔던 미소지만 레이무는 그 미소에서 가식이 아닌 다른 것을 보았다. 무엇일까? 자문하던 레이무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히지리의 행색은 초라했다. 항상 입던 옷에 항상 띄우던 미소지만 그녀는 평상시와 달리 지쳐보였다. 단식이라도 했는지 얼굴이 해쓱졌으며 뺨은 홀쭉해졌다. 눈 아래로는 기미가 잔뜩 했으며 머리카락에 눈이 그늘져보이는 것 같았다. 생명이라도 빨린 듯한 모습이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아니야. 레이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히지리 뱌쿠렌, 저 여자는 분명 자신이 어떠한 상태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오랜간만이에요, 하쿠레이 레이무. 이 먼 곳까지 무슨 일이신가요?"
"아, 당신을 만나고 싶어서. 그리고 당신을 찾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설마 토지코 양은 아니겠죠?"
"알면서 묻지마. 귀찮으니까."
레이무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미코를 돌아보았다. 미코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히지리를, 그리고 레이무를. 마치 인간공포증이라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본 레이무는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연꽃과 불상이 새겨진 벽지와 천장만 아니라면 이 곳은 고문장이 따로 없었다. 사람이 구현해낼 수 있는 악랄함을 모조리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정체성을 개미처럼 짓밟아버릴 수 있을까.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는 그 실험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시죠?"
"찾고 있는 물건이 있는데 말이야."
"찾고 있는 물건이요? 사람이 아니라?"
"그래. 책."
"책?"
히지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레이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도 일단 맞아야 될 거 같은데. 맞다보면 기억나지 않을까?"
"……사양할게요. 그리고 무슨 책인지 설명은 해주셔야 될 거 아닌가요?"
"설명이 필요한가? 다시 말하지만 알면서 묻지마. 귀찮으니까."
히지리는 한숨을 쉬었다.
"아아,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토지코 양은 어디 계시죠?"
"……들어와."
레이무는 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한 망령과 한 선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망령, 소가노 토지코는 미소가 만연한 히지리 뱌쿠렌과 그와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에 짓눌린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를 보며 분노하고 격노했다. 당장이라도 낙뢰를 떨굴 것 같은 기세였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온 토지코는 다짜고짜 노발대발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없이 번갯불을 튀기며 뱌쿠렌을 노려볼 뿐이었다. 하지만 안이 어떨지 상상 밖에 하지 못했던 선인, 카쿠 세이가는 깜짝 놀라 입가를 가렸다. 미코의 처참한 꼴을 처음 본다면 보면 누구나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이가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충족되지 못했던 더러운 욕망이 그녀의 척수를 타고 올라왔다. 아아, 아름다워라.
세이가는 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아왔던 그녀는 미코가 옛날의 모습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무리 미코가 한때 성덕태자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자라고 하지만 이미 몸은 굴복과 치욕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타고난 머리도 그것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차라리 저거 나름대로 좋지 않을까? 세이가는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성불하지 않고 계셨을 줄은 몰랐네요, 토지코 양."
"태자님을 돌려받겠다."
토지코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말했다. 그러자 히지리는 토지코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 태자님이요? 당신의 태자님은 오래전에 죽었어요. 여기엔 당신의 태자님이 있지 않아요. 여기 있는 건, 제 발을 핥는 것을 쾌락으로 여기는 애완동물 밖에 없죠. 토요사토미미 미코라는 이름을 가진."
"……돌려줘."
"말했잖아요. 태자님은 없다고요. 이건 제 꺼에요. 제 것이라고요. 철저히 저에게 복속되고 귀속된 저만의 것이라고요. 태자? 그런 사람은 성불하신 다음 찾으시죠! 아아, 설마 당신이 찾는 태자님이라는 게 설마 제 애완동물을 말하는 건가요?"
레이무는 히지리의 발언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보기엔 히지리도 정상은 아니었다. 미코가 무너져있는만큼 히지리도 망가져있었다. 역시 그 책이 문제인가.
토지코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히지리의 발언은 신경쓰지도 않은 채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미코에게로 다가갔다. 비록 망령이라 다리가 없어 걸어가지는 못했지만, 망령이 그렇듯이 허공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토지코는 그 사실이 안타까웠다. 미코는 토지코를 보며 점점 겁에 질려갔다. 하지만 자리를 벗어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정신이 무너져내린 것이리라. 미코의 입이 힘들게 열렸다.
"자…… 잘못했어요!"
미코는 그렇게 말하럼 개처럼 조아렸다. 토지코는 마음이 아팠지만 최대한 버텨냈다. 토지코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을 진정시키며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지친 미소를 띄우며 미코에게 손을 뻗었다. 토지코가 자신에게 손을 뻗자 미코는 공포에 질려 더욱더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토지코의 손은 미코를 건드리지 않았다. 토지코가 말했다.
"태자님은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일어나세요. 일어나서 돌아갑시다. 돌아가서 후토에게 사과를 들으셔야죠, 태자님."
세이가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미코라도 이정도까지 무너져내렸으면 돌아올 가능성은 절망적이다. 차라리 이렇게 된이상…… 세이가는 레이무를 힐끔하고는 히지리를 쳐다보았다. 이게 더 나을지도? 히지리는 아무 말 없이 토지코의 촌극을 비웃었다.
"제 애완동물이라고요. 태자가 아니에요. 그런 말에 반응이라도 할 거 같아요? 그러니 어서 가세요. 제 애완동물이 무서워하고 있잖아요? 그건 민폐에요, 민……."
히지리는 뒷말을 흐렸다. 그와 동시에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럴 리가 없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토요사토미미 미코는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올려 토지코를 쳐다보았다. 미코는 토지코의 두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입이 열렸다. 아니, 열리려고 했다.
"그만둬!"
히지리의 일갈이 울려퍼졌다. 미코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몸을 움츠렸다. 토지코는 다시 분노한 표정으로 히지리를 노려보았다. 히지리는 가히 이성적으로 보기 힘든 얼굴로 말했다.
"그녀는 내 꺼야. 내 꺼라고. 나 말곤 그누구도 그녀와 대화할 수 없어. 만질 수 없어. 볼 수 없어. 나만의 것이야. 내가 그녀의 주인이고 그녀는 나의 것이라고! 그 더러운 손 치워, 당장!"
히지리는 말로만 하지 않았다. 그녀의 발이 바닥을 박차더니 순식간에 토지코의 코앞까지 닿았다. 아니, 닿을 뻔했다. 그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레이무가 움직였다. 그녀는 가벼운 동작으로 몸을 날려 토지코의 앞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불제봉을 휘둘렀다.
퍽!
히지리는 가까스로 팔을 교차시켜 불제봉을 막아냈다. 명치를 노렸던 불제봉은 팔을 치고 지나갔다. 한 발이라도 늦었으면 큰 피해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켜라, 하쿠레이 레이무! 내가 그녀한테 가는 길을 막지마! 내가 내 것한테 간다는 데 니가 무슨 상관이지? 너하곤 상관없잖아? 그러니 비켜, 비키라고!"
"무슨 상관이냐, 그런 질문이네?"
레이무는 피식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책 어딨어?"
말이 끝나자마자 레이무는 히지리에게 달려들었다. 히지리도 으르렁거리며 레이무를 향해 몸을 던졌다. 하쿠레이의 무녀와 묘렌사의 주지승은 서로를 죽일 기세로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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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태자님 조교씬 더 쓰고 싶지만 필력이 부족한 관계로 ㅠㅠ
하여튼 이거 완결 내고 복귀한다
추신. 레이무가 무슨 책 찾는 지 궁금하면 상편 읽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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