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이 끝나고 달빛도 쇠약해진 죽림의 밤. 검은 장발의 공주는 고이 접은 종이 한 장을 쥐고 숲을 배회하고 있었다.
“졸려...”
잠에서 깨다만듯 호라이산 카구야는 연거푸 하품을 한 뒤 얼빠진 표정으로 죽림의 달을 천천히 감상했다. 은은하게 잠든 초목은 달빛을 받아 더욱 아름다웠고, 무언가에 홀린 듯 올려다 본 달- 자신의 고향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달빛에 비친 새하얗고 가녀린 왼손에 들린 종이의 감촉을 다시금 환기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만사가 귀찮다는 태도가 느껴지는 그녀의 몸동작 하나하나는 품위가 있다 못해, 하늘하늘거리는 소맷자락 끝으로 흘러넘쳐나서, 너무나도 우아했다. 원래 영원정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그녀가 이 죽림까지 나오게 된 이유는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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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니임-”
“어머나, 무슨 일이니, 이나바?”
테위는 종이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공주님 애인이 전해달라고 했어요.”
“어머, 이나바는 농담도 잘하네.”
장난스러운 표정의 테위와는 반대로 카구야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였다. 테위는 그 반응이 재미없는 듯, 이제는 완전한 악동의 표정을 하며 카구야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응흥흥~ 편지 내용 보니까 꽤 찌~인하던데요 공주니임~”
“응, 그러니. 피곤할텐데 이나바랑 같이 목욕이라도 하고 쉬렴.”
“예에-”
재미없다는 듯 테위는 고개를 돌리고 총총 걸어나갔다. 테위의 뒷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공주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아, 맞다. 이나바.”
탓. 그녀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테위의 발걸음이 멈췄다.
“함부로 남의 편지를 읽어보니까 어땠니?”
그러고는 잠시, 소매를 들어 입가를 막으며,
“재밌었니?”
이나바 테위는 차마 고개를 돌려 보진 못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변하지 않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등 뒤로부터 들리는 낭랑한 목소리에는 테위의 척추를 싸늘하게 할만큼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덕분에 테위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이 들리지 않자. 공주는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후, 막 이래. 장난이야. 그만 가보렴. 이나바.”
어디서 또 이상한 말투를 주워들은건지, 요상한 말을 하며 카구야는 쿡쿡거렸다. 그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한 채, 테위는 빠른 발걸음으로 도망치듯 걸어갔다. 두 손은 어느새 꽉 쥐어져있고, 땀이라도 흘렸는지 축축한 느낌이었다. 손의 물기를 느끼면서 테위는, 웬만해선 저 여자 앞에서는 거짓말이나 장난을 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읽지도 않았는데 이게 뭐야...’
뻔뻔하게도, 속으로는 이렇게 항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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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카구야는 작은 토끼가 준 편지대로 죽림으로 나왔다. 물론, 나오기 전 자신을 놀리려 한 건방진 집주인에게 약간의 장난을 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나바도 참 재밌는 아이라니까.’
보는 이 하나 없는데도 우아하게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쿡쿡 웃으며 생각했다.
어리버리한 이나바와 장난스러운 이나바. 달의 이나바와 지상의 이나바. 한 쪽은 항상 다른 한쪽에게 골탕먹는게 일상이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두 아이 모두 별 다를바 없이 귀여운 아이들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두 토끼 모두에게 ‘이나바’라는 이름붙을 붙여준 까닭이 이런 까닭이라고 늘어놓자면, 너무 지나친 망상일까.
“모코땅도 차암 너무 딱딱하다앙~”
그녀답지 않은, 품위없는 소녀다운 말투였다. 그녀가 쥐고 있는 편지엔 짤막하게,
‘전에 봤던 장소에서.’
두서도 목적이나 시간도 적혀있지 않은, 편지로서 형편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짤막한 글귀만으로 모든걸 이해했다.
“그러고보니 며칠이나 지났지?”
그날 이후로, 며칠이 지났는지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어떤 날이든, 영원정에서 두문불출하는 것이 일상인 그녀로서는 어떤 날이든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단단한 바위도, 깊은 물도 먼지로 변하고 말라버리게 하는 기나긴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인 여인. 참으로, 그녀답다면 그녀다웠다.
“모-코-땅-”
꽤 큰, 그리고 청아한 목소리로 그녀는 후지와라의 소녀를 불렀다. 답은 오지 않았다. 오직 바람에 날리는 댓잎들만이 그녀를 보고있을 뿐. 카구야는 우아하게 춤추듯 몸을 한바퀴 돌리며, 듣는 이 없을 말을 이리저리 떠벌였다.
“하여튼 아버지를 닮아서 느리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길 잠시.
등 뒤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카구야는 무심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포옥 쓰러졌다.
“에?”
그리고 허리 위에 느껴지는 무게와, 동시에 대자로 펴진 자신의 손 위에 겹쳐진 손을, 풀내음을 맡으며 바라보았다.
“모코땅?”
최대한 고개를 돌려 자신을 깔고 올라탄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했다. 달빛을 가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발의 소녀. 후지와라노 모코우. 다만 예전과는 다른 싸늘한 눈빛과 함께였다.
“모...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모코우는 거칠게 카구야의 몸을 뒤집어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의 살기는, 마치 자신을 처음 만난 그 때의 눈과 같았다. 그러나 그때처럼 그녀를 해치거나 하진 않았다. 지금까지는.
둘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카구야도 그 살기어린 눈을 보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려들지 않았다. 단지, 그 눈과 얼굴을 응시하며, 잔뜩 달빛이 내린 그녀의 모습을 관찰하고만 있을 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역시, 안되겠다.”
모코우가 탁 풀린 듯 표정을 거두면서, 카구야를 짓눌렀던 힘을 쭉 빼며 말했다. 잠시동안 무언가 생각하던 그녀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카구야의 입에 밀어넣었다.
“읍?”
항상 평정을 잃지 않는 그녀의 표정이, 순간 당황하며 무너지는 모습은 꽤 희귀한 광경이었다. 아마 테위가 보면 평생 뇌리에 간직하지 않을까. 모코우의 손가락이 밀어넣는 그것의 달콤함을 느끼며, 이내 그녀의 입술은 조금씩 열려 입에 집어넣었다.
“...맛있네?”
입에 퍼지는 달콤함의 느낌은 꽤 기분좋았다. 카구야는 그제서야 웃는 표정을 하며, 자신을 관찰하고 있던 모코우에게 말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방금 전의 그 표정은 어디갔냐는 듯 평소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어딘가 슬픈 듯한 표정도 함께였지만.
“고작 이거 하나 주려고 거창하게 이나바까지 통한거야?”
“고작 이거 하나? 이 바보가! 만드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예상과는 다른 답변에 모코우는 짐짓 화를내며 소리쳤다. 확실히 포장이나 내용물은, 상품이라고 하기엔 조잡한 편이었다. 다만 꽤 귀여운 포장이 되어있어, 풋풋한 소녀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어머?”
카구야가 녹아내린 초콜릿을 꿀꺽 삼키며,
“네가 만든거였니? 어쩐지, 맛도 에이린이 해주는 것보다 맛이 없더라.”
“뭐? 그 아줌마가 이런것도 해... 에? 맛이 없어?”
푸른 달빛에 비치는데도 보일만큼 얼굴이 빨개지며, 모코우는 씩씩대며 말했다.
“이 바보구야가! 만든 사람 성의도 모르고...!”
“그러니까 이렇게 맛없는건...”
카구야는 바닥에 고이 내려놓은 초콜릿 한 알을 입가에 가져가 입술 주변에 비벼댔다.
“자, 빨리 먹으렴?”
“...에?”
입술 사이에 끼운 초콜릿에 침을 문지르며, 카구야는 한 쪽 손으로는 모코우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에, 라니? 내 침으로 더 맛있게 해주는 거야. 끈.적.끈.적. 하게.”
색기어린 카구야의 목소리와 표정에, 모코우는 잠시 멈칫했다. 여전한 색기를 풍기며 카구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재촉했다.
“빨리, 안 먹으면 다 녹아버린다?”
마치 화장이라도 한 듯 촉촉하게 반짝이는 입술가 주변을 문지르는 초콜릿의 모습은, 그것을 굴려대는 손가락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모코우는 거기에 홀리기라도 한양 조심스럽게 입술을 가져갔다.
“에잇~”
카구야는 손에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그대로 모코우의 입에 넣어주었다.
“...랄까.”
멍한 표정의 모코우를 보며 카구야는 피식 웃었다.
“아하하하, 모코땅, 혹시 방금 설렜던 거?”
“그...”
모코우는 입속에 퍼지는 단 맛도 채 느끼지 못한채, 멍하니 자신의 허벅지를 만지는 손의 감각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그럴 리가 없잖냐! 바보구야가!!!”
있는 힘껏 소리지르며, 모코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카구야는 그런 그녀를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입에 남은 단 맛을 음미했다.
“맛있네에. 근데 갑자기 웬 초콜릿?”
“어, 그게, 마을에 갔더니 사나에가...”
“사나에? 그 무녀 꼬마?”
자세히 본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들어 알고있는 이름을 듣고 카구야가 반문했다.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꼬... 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네, 가슴은 모코우보다 큰걸로 기억하니까.”
카구야가 꾸욱. 하며 모코우의 굴곡없는 가슴을 찌르며 웃었다.
“똑같은 절벽인 주제에 누굴 놀리냐!”
“응흥흥. 농.담. 자, 아-앙. 그래서, 그 꼬마애가 뭐래?”
“응? 어, 응. 사나에가 초콜릿을 들고가고 있는거야. 그래서 누구한테 주냐 물었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카구야는 모코우의 입에 초콜릿을 밀어넣었다. 완전히 카구야의 분위기에 말린 모코우는 화내던 것도 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어머, 어린 여자애 걸 뺏은거?”
물론, 듣고있던 카구야의 깐족거림 또한 계속 이어졌다.
“그건 아니... 좀 끝까지 들어!”
어느새 카구야를 타고있던 상태에서 내려와, 둘은 나란히 마주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둘의 거리는 가깝진 않지만, 멀지도 않았다. 그렇게 둘은 잠시동안 환상향에서 흔치 않은 바깥 세계의 달달함을 느끼며, 평화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 뭐 그래서 자기가 만들어서 주고싶은 사람한테 준다나. 그래서... 그... 난 딱히 돈이 많지도 않고 그래서...”
모코우가 고개를 푹 숙였다.
“별로 잘 만든건 아니지만...”
“흐응, 그럼 이건 모코땅이 직접 만든거?”
초콜릿 하나를 집어먹으며 카구야가 말했다. 모코우가 대답했다.
“뭐... 사나에가 좀 도와준 것도 있지만...”
“그래서 요즘 지상인들은 이렇게 매번 번거롭게 만들어서 주고 그런다니?”
요즘은 난제를 내지 않아도 스스로 난제를 만들어 가는구나, 하면서 그녀는, 이제는 어렴풋한 옛날을 생각하며 물었다.
“그건 아니고, 1년에 오늘 하루만, 여자가 남자에게 준다더라. 발...렌타인 데이라고 했나?”
“아, 어디서 본 것 같다.”
카구야가 말했다.
“그래서 모코땅은 줄 남자가 없어서 나한테 초콜릿을 준 거?”
예의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카구야가 웃었다. 평소의 꽤 무뚝뚝한 느낌의 미소가 아닌, 부드러운 표정의 미소였다.
“따, 딱히 남자 따위는... 음... 남자보다는... 엄...”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모코우와, 무언가를 들으려 하는 카구야 사이의 정적이 잠시.
“어, 어쨌든!”
“처음엔 그... 전에 네가 말했듯이 이렇게 된건 네 탓이기도 하고, 그래서 솔직히 이딴 거 줄 생각은 없었지만... 기왕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또...”
“날 죽이려고 했는데 날 보니 못 그러겠다던지?”
카구야가 여전히 장난스럽게, 그러나 핵심을 찌르며 말을 끊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 악의는 담겨있지 않는 듯했다. 모코우는 정곡을 찔린건지, 말없이 초콜릿만을 집어먹었다. 초콜릿은 어느덧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머리에 도는 당분 때문인지,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자 모코우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처음에 봤을땐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모코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언제부턴지, 널 죽이려고 널 만나는건지 널 만나려고 죽이는 건지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내뱉는 입에는 쓴맛이 느껴졌다. 입안의 초콜릿은 달았지만, 그녀가 느끼는 맛은 초콜릿의 당분보다 훨씬 썼다.
“바보같이 이딴 거나 만들어오고...”
카구야는 그런 그녀를 잠시동안 응시했다. 넘치는 웃음이 사라지고, 자기와 마주한 소녀와 같은 씁쓸한 표정이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모코땅도 참 바보구나아~”
푸른 달빛을 눈에 새기며 카구야는 숨을 모두 토해내듯이 말했다.
“어쨌든 선물을 받았으니까, 나도 되돌려주지 않으면 안되겠네.”
공주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손을 그녀의 손에 얹으며, 조용히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일순간의 정적. 초목도, 벌레도, 그녀들만의 시간을 위해서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카구야가 입을 떼고 잠시 후.
“뭐,”
모코우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더 빨개지며,
“뭐하는거야 이 바보구야가아아아! 우와아아아앙!”
반면에 흰 피부의 카구야는 당연한 것을 물어본다는 투로 대답했다.
“뭐하는거냐니, 초콜릿 먹으면서 키스하면 입술맛이 안 나잖니?”
“그걸 묻는게 아니잖아!”
“그럼 모코땅은 어떤 플레이가 좋아? 역시 거칠게 눌러놓고 처음부터 혀를 넣는 쪽?”
“이 바보가아아아!”
“쉬잇.”
카구야가 요염한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며 조용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녀는 모코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에 내가 말했지? 우리는 이 시간의 끝까지 함께 살아갈 거라고.”
모코우 앞에서는 한없이 늘 철없기만 했던 그녀의 표정에, 평온하고도 쓸쓸한 기색이 내렸다.
“네가 말한 그 꼬마 무녀도 사라지고, 마을의 반 백택도 사라지고, 어쩌면 이 죽림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 후에도 우리는 살아있을거야.”
차가운 진실을 듣는 모코우의 표정은 굳어져갔다. 알고 있었지만, 늘 되새기기 싫었던 것. 애써 부정하고 싶은 사실.
“그건 너한테는 너무 괴롭잖니?”
멍하니 앉은 모코우의 몸에 카구야의 체중이 전해져왔다. 형언할 수 없을정도로 상쾌한 향기가 모코우의 코를 사로잡았다. 강렬하게 느껴지는 짜릿함과 함께.
“그러니까... 이렇게 둘이 있을 때는 다른 건 다 잊으렴. 연습하는 셈 치고...”
잠시간의 포옹 뒤, 서로를 마주보며 모코우와 카구야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뒤엔.”
카구야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요염한 움직임에, 모코우는 잠시동안이지만 거기에 시선을 빼앗길 정도였다. 카구야의 가녀린 손이, 모코우의 턱끝을 우아하게 붙잡았다. 너무나 지독하게, 기분이 나쁘리만치 기분 좋은 감촉이었다.
“나만을 기억해 줘.”
카구야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으나, 그 말은 입 밖에 나오기도 전에 모코우에게 제지당했다. 어느샌가 모코우는 카구야의 얼굴은 쥐고 입술을 맞닿고 있었다. 그녀의 혀는 자기 앞의 소녀의 입안을 맛보려는 욕망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듯, 격렬하게 카구야의 입속을 휘저어왔다.
카구야의 손이 자신의 얼굴을 붙잡자 그녀는 팔을 내려 카구야의 연약한 허리에 감아 안았다. 카구야는 기쁜 듯이, 자신을 품에 안은 이 소녀를 놓지 않으려 더욱 격렬하게 혀를 얽었다. 조용한 죽림에, 두 소녀의 속삭임만이 소복이 쌓여갔다.
호라이산 카구야는 어떠한 날도 기억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붙잡고 있는 이 소녀의 모든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제 오늘을, 2월 중순의 이날을 영원히, 이 소녀와 함께 기억하리라.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채, 이 세상의 끝날이 다가와도 사랑을 나눌 것이다.
옭아맨 그녀의 입술에서, 은은한 단 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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