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척이라곤 인요들밖에 찾아볼 수 없는 미혹의 죽림. 후지와라노 모코우는 죽림의 풀숲에 누워 가만히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랗게 빛을 내리쬐는 달은, 그녀의 능력을 상징하기라도 하는 듯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 속에 자리잡아, 그녀를 즐겁게 했다. 요괴들의 요력의 근본인 그 달빛은 인간임을 자처하는 그녀에게도 영향을 주기라도 하는지, 그녀의 마음은 약간 들뜨는 느낌이었다.
"'월광욕'이라고 불러야... 하나."
듣는 이도 없이 중얼거리며 후지와라노 모코우는 손을 뻗어 달을 잡는 시늉을 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저 달을 보자, 달에서 왔다는 한 여자가 생각났다. 죽지 않는 정도의 몸을 얻기 전부터, 아니, 이런 몸을 가지게 된 것 역시 그녀의 탓이었다. 몇 백년동안 방황한 탓에, 어떤 행운에서인지 드디어 죽이고자 하던 그녀를 만난 후, 아이러니하게도 모코우는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유래없이 강한 욕구를 느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그녀에 대한 살해욕구. 그러나 이제와서 그녀를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만났을 때 느낀 축융의 불길과도 같은 살의가 아니었다. 죽지 않는 그녀의 목뼈를 몇 번이나 꺾고, 살을 뜯어 몸을 태워버리고, 모코우 자신도 그녀에게 살해당하는 일상이 반복되며, 모코우의 마음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마음 속의 살의의 불꽃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 불길이 그 기력을 쇠진하고 힘을 잃어가듯,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가고 있었다.
"모코땅~ 혹시 내 생각했어?"
월광에 취해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모코우는, 달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호라이산 카구야를 보자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카, 카카카, 카구야?!"
빠악.
모코우의 이마는 기세좋게 카구야의 이마와 부딪쳐, 두 사람 모두 풀밭에 구르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아프잖아! 갑자기 뭐야!"
"갑자기 나타난건 네 쪽이잖아, 바보구야! 방에 처박혀서 다도나 할것이지 왜 나온거야?"
이보다 심한 고통을 나누는게 일상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달빛에 비친 서로의 얼굴을 보자 화가 누그러졌기 때문인지, 서로를 탓하는 둘의 목소리에 악의는 담겨있지 않았다.
"아항? 그거? 할 일이 없어서 달이나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코땅이 생각이 났지뭐야! 그래서 찾아다녔어! 보통 이럴때 갑자기 생각나는 사람은 날 생각해주는 사람 아니겠니?"
카구야는 평소대로의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의 청명한 목소리는 시원하게 부는 죽림의 바람을 타고, 듣기좋게 흩어졌다.
"누가 네 생각을... 잠깐 너, 날 찾아다녔다고? 이 죽림에서?"
"응! 하는김에 같이 월광욕이나 할까 해서, 밤도 잠시 멈춰놨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백옥같은 얼굴과 목언저리에는 땀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평소에 낯빛 한 번 변하지 않고 땀도 흘리지 않으며 지내는 그녀가, 땀이 흐를 정도로 모코우를 찾아다닌 것이다.
"... 그 옷으로?"
"그럼 이 숲에서 어떻게 옷을 갈아입니?"
카구야는 바보같은 질문을 들은 듯 딱잘라 말했다.
"그래서, 모코땅은 내 생각 했어?"
"엉?"
"내 생각 했냐구, 달을 보면서."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한데?"
"로맨틱하잖아? 두 사람이 달을 보며 서로를 생각한다는거, 너무 시적인가?"
"우린 여자인데?"
"어머, 모코땅이 여자였었나?"
카구야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모코우의 평평한 가슴 언저리를 쿡 찔렀다.
"뭐-"
순간 컴플렉스를 찔린 모코우는 얼굴이 빨개지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정을 되찾는 것은 오래지 않았다.
"뭐하는거야, 바보구야! 죽여버린다!"
그러나 평소처럼 맹렬히 달려들지도 않는 모코우의 그 모습은, 친구에게 장난치는 소녀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카구야는 그런 모코우에게 달려들었다. 그 가녀린 몸의 체중은 그리 무겁지 않았지만, 무방비의 모코우를 넘어뜨리기엔 충분했다.
둘은 완전히 포개진 상태가 되어, 얼굴은 한층 가까이 맞닿아있었다.
"우린 불사라서 죽지 않는다니까 그러네?"
가볍게 모코우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요염하게 웃는 카구야의 얼굴에는 묘한 색기마저 어려있었다.
"...대신 엄청 아프겠지?"
할 말 없이 멋쩍어진 모코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자기를 누르고 있는 카구야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달빛에 비쳐 더욱 하얗게 도드라지는 피부, 매혹적인 속눈썹, 코와 뺨을 간질이는 윤기가 흐르는, 은은한 향기가 나는 머리카락.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잡고있는 두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미약하게 느껴지는 맥박은, 그녀와 자기 앞의 여자가 살아있음을 느끼게했다.
"내 얼굴이 그렇게 예뻐?"
장난스럽게 말하는 카구야의 말에 모코우는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렸다.
"어? 허, 흥, 그, 어, 좀... 조금?"
"그으래애?"
카구야는 더욱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더욱 더 모코우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에, 에?"
모코우는 지금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카구야는, 무엇을-
"이렇게 이마를 맞닿는게 더 기분좋지 않아?"
카구야는 자신의 이마를 모코우의 이마를 대며 말했다. 모코우는 안심한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싫다~"
카구야의 얼굴이 여전히 자신과 가까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아? 어, 미, 미안..."
카구야는 이런 모코우의 모습에 더욱 재미를 느낀듯 모코우의 뺨에 자신의 뺨을 닿고는 그대로 파묻었다.
"뭐, 뭐하는거야. 바보구야..."
"응, 추워서..."
그렇게 말하며 카구야는 힘을 빼고 모코우의 전신에 최대한 밀착했다. 그러길 수 분. 모코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카구야."
"응?"
카구야는 얼굴을 그대로 파묻은 상태로 말했다. 그탓에 호흡할 때마다 목덜미에 그 숨결이 느껴져왔다.
"넌 싫지 않아? 안 죽는... 못 죽는다는 거."
"모코땅은 날 원망해?"
카구야가 반문했다. 모코우는 움찔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카구야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왜 그 약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로 했는지 알고있어?"
모코우는 얼굴을 움직여 카구야의 얼굴을 보려했지만 한껏 자신에게 파고든 카구야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향기로운 머리카락만이 보일 뿐이었다. 때문에 모코우는 그녀가 무슨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난말이야, 귀한 보물이라면 다 갖고싶어. 그래서 난제들을 냈던거야. 하지만 사람은 나와 다르게 언젠가 죽기 마련이잖니?"
카구야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약이 있으면 나와 같이 영원 속에서 살 수 있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잊혀진 후에도, 나와 그사람은 같이 있게되겠지."
모코우는 순간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상상을 하며 움찔했다. 방랑하며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던, 예전의 자신에게는 없던 소중한 사람들과 마을이 사라져가는.
"이런 나를 비난해도 좋아. 난 월인이기때문에 오랜 시간을 사는 건 익숙하지만, 모코땅같은 지상의 인간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카구야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쓸쓸함이 묻어있었다.
"이야기가 새버렸네. 난 말이야. 죽지 않아서 기뻐. 모코땅이 죽지 않게 됐으니까."
"응?"
"분명 우리는 죽지 않고, 언젠가는 우리가 디딜 땅도 스러져서 공허함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모코우가 있다면 그런 건 상관없을 것 같아."
"...무슨 말을 하는거야...?"
"연인들이 흔히 맹세할 때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라고 하잖아? 하지만 우린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어. 그야말로 완전한 로맨스 아닐까?"
그렇게 말하며 카구야는 모코우를 잡고 있던 손을 더 꽉 쥐었다. 모코우는 그런 카구야의 머리카락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며, 눈부실 정도로 밝은 달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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