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사토미미 미코 - 中 (2)
해가 진 묘렌사의 묘지에 한 망령과 한 소녀가 찾아왔다. 밤하늘이 묘지를 으스스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로 만들어주었다. 거기다가 망령까지 찾아와주니 분위기는 더욱 으스스해졌다. 망령의 이름은 소가노 토지코. 그리고 소녀의 이름은 모노노베노 후토. 그들은 성덕태자, 토요사토미미노 미코의 두 신하였다.
후토는 언짢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쪽지를 다시 쳐다보았다.
'태자님을 뵙고 싶으시다면 오늘 밤 묘렌사의 묘지로 찾아오세요.'
명련사의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과의 결투 이후 미코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보다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지만. 히지리한테 처참하게 패해 혼절해버린 미코를 토지코와 후토는 신령묘로 데려온 것까지는 확실했다. 하지만 쉴 새도 없이 미코를 보살피던 그 둘이 잠시 하찮은 이유로 자리를 비웠을 때, 미코가 실종되었다. 후토와 토지코가 그때 느낀 감정은 경악 그자체였다.
그 둘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미코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묘렌사였다. 후토는 다짜고짜 히지리의 멱살을 잡아가며 미코에 대해서 물었지만 히지리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만약 그때 토지코가 말리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내기거리가 아닌 진짜 종교전쟁이 일어날 뻔 했다. 토지코는 히지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가며 묘렌사를 수색했다. 그러나 미코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후토와 토지코는 실망을 감추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요괴의 현자를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요괴의 현자도 아는 바가 없었다.
성덕태자의 두 신하는 잠도 자지 않고─물론 토지코가 망령이라 잠을 잘 필요없다는 건 신경끄자─ 오직 미코를 찾기 위해 하루 24시간을 모두 바쳤다. 그러던 어느날 거의 폐인에 가까워질 지경이 된 후토 앞에 쪽지가 날라왔다. 후토가 말하기를 어느 때처럼 태자님을 찾던 도중 자신의 앞에 쪽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뭔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토지코는 신경쓰지 않았다. 쪽지의 내용이 우선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쪽지에 바로 미코의 행방이 적혀있었다.
후토와 토지코는 오직 그 쪽지만을 믿고 묘렌사의 묘지를 찾아온 것이다.
"정말 태자님을 뵐 수 있는 것일까, 후토."
토지코는 혼잣말 하듯이 말했다.
"알 수 없소."
후토는 지친 말투로 대답했다. 토지코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것은 피곤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질적으로 망령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거의 모든 원한을 버렸지만 본디 원한에 사무친 존재라는 것이다. 그 원한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바로 태자님을 납치해간 범인을 향해서. 그녀의 주변에서 파지직하며 전가가 튀었다.
"……해치울 테다."
심장이 약한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으스스한 목소리가 토지코에게서 흘러나왔다.
"참으시게, 토지코. 우선 태자님을 찾는 게 먼저라네."
후토는 예전에 묘렌사에서 토지코가 자신을 말렸던 일을 떠올리며 토지코에게 말했다. 지칠대로 지친 그녀는 토지코와는 달리 분노할 힘도 없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하나, 태자님을 만나뵈는 것이었다.
그리고 묘렌사 방향에서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장신에 장발을 가진 인영이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 누군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묘하게 익숙해보였다. 그리고 그 인영 곁에는 마치 개와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후토와 토지코는 긴장하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실루엣은 걷혔다. 희미한 달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장신의 인영은 히지리 뱌쿠렌이었으며, 다른 하나 개의 실루엣을 가졌던 건, 다름 아닌 토요사토미미노 미코, 후토와 토지코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찾았던 그녀였다.
후토와 토지코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히지리 뱌쿠렌이 나타난 것은 둘째치고, 존경하지 마다 않는 그들의 왕이, 개처럼 네 발로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고딕 로리타 드레스 입고 있는 미코의 목엔 쇠사슬이 묶여져 있고, 헤드폰 대신 카츄사를 착용하고 있었다. 허리춤에 성덕태자의 상징이기도한 보검이 걸려있는 것은 크게 안심이 되지 않았다. 치욕스럽기 짝이 없는 광경에 토지코는 다짜고짜 으르렁거렸다.
"히지리……!"
순식간에 밤하늘을 번개가 꿈틀거리는 먹구름이 뒤덮었다. 토지코 주변에도 심상치 않은 전격이 튀기 시작했다. 후토는 충격 먹은 나머지 토지코를 저지할 길이 없었다. 아니, 저지할 생각도 없었다.
파지지지직!
토지코의 눈에서 전기불꽃이 튀기며 당장이라도 먹구름에서 벼락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히지리는 여유로운 태도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는 후토와 토지코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멍청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히지리는 여유만만하게 미코를 개처럼 끌고 걸어갈 수 있었다.
히지리와 미코는 약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멈춰섰다.
"감히 파계승 따위가!"
토지코는 히지리가 멈춰서자마자 일갈했다. 하지만 히지리는 귀찮다는 듯이 흘려들었다.
"아아, 시끄러워요. 그나저나 태자님을 데려가고 싶으시겠죠?"
"그 더러운 입으로 그 분을 부르지 마라!"
"……시끄럽다고요, 성불도 못한 망령 양."
히지리는 인상을 쓰며 품 안에서 독고저를 꺼냈다. 그리고 그 독고저를 사백안을 뜨고 있는 미코의 눈을 향해 가져다대었다. 미코의 얼굴이 순식간에 공포에 질리며 히지리한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순간 히지리는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협박할 셈인가……!"
토지코는 분하다는 듯이 화를 삭였다. 히지리가 말했다.
"태자님은 돌려드릴 게요. 진짜 주인에게 말이죠."
"진짜…… 주인……?"
토지코가 반문하자 히지리는 토지코의 옆에서 경악한 채 떨고만 있는 후토를 쳐다보았다.
"이제 거래는 끝났죠, 후토 양?"
"아니…… 본인은…… 그러니까……."
후토는 당황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렸다.
"왜 그래요? 당신이 원한거잖아요?"
"뭐…… 라고……?"
토지코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후토를 돌아보았다. 히지리는 키득키득 웃으며 토지코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태자님의 약점을 알려준 것, 그리고 태자님을 납치해준 것. 모두 당신이 한 일이잖아요? 모노노베노 후토, 성덕태자의 둘도 없는 신하여?"
"아니야, 본인은 단지!"
"정말이냐, 후토!"
"아니라네! 토지코! 날 믿어주게, 제발……."
토지코는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됬다. 어떻게 그들의 태자가 한낯 주지승에게 그렇게 처참하게 질 수 있는 지, 그리고 그들말고는 아무도 함부로 들락날락 할 수 없는 신령묘에 있는 태자를 납치해갈 수 있었는 지를. 모두 후토 때문이었다. 그녀가 어떤 이유로 태자를 배신했는 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그녀 탓이었다.
"후토,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다. 히지리 바쿠렌, 타락한 주지승이여. 원하는 게 뭐지?"
"원하는 거요? 그건 이미 얻었어요."
"……그렇다면 태자님을……."
"예. 돌려드리죠."
히지리는 그렇게 말하며 거리낌없이 쇠사슬을 놓았다. 철그럭하는 소리와 함께 쇠사슬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미코는 미심쩍다는 얼굴로, 하지만 여전히 공포에 질린 얼굴로 히지리를 올려다보았다.
"가세요, 토요사토미미 미코."
"……예."
미코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기어갔다. 네 발로 개처럼, 자존심도 존엄성도 모두 버린 채 말이다. 토지코는 당장이라도 히지리를 죽여버리고 싶을 지경이었지만 아직 히지리와 태자님의 거리는 가까웠다. 후토는 경악감과 죄책감에 뒤덮인 표정으로 아직도 이성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태자와 두 신하 사이에 거리는 가까워졌고, 보검이 땅에 부딪혀나는 거슬리는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그 소리가 토지코는 유난히 신경쓰였다.
어째서?
히지리는 왜 보검을 태자님에게 준 것이지?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주겠다는 건가? 아니면 마지막 자존심은 꺽을 필요도 없다는 건가?
토지코는 문뜩 히지리가 태자님을 '돌려준'다고 한 것을 떠올렸다. 만약 히지리가 정말 돌려줄 생각이었다면 굳이 태자님을 기어가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지독한 악취미일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건 분노와 복수만 사는 일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불필요한 행동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렇다면 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건가? 그리고 원하는 것은 이미 얻었다고? 거기까지 생각에 미친 순간 토지코는 황급히 다시 보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코는 후토와 토지코의 앞에 도달했다.
"후토……"
미코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토지코는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지만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태자님을 막아야 하나? 그녀에겐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누군가를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후토를 데리고 도망쳐야 하나?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할 뿐더러 육체가 없는 망령인 자신에겐 육체를 가진 자를 강제할 물리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히지리를 공격한다? 그건 매우 매혹적인 방법이었지만……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이었다. 토지코가 고민하는 사이 미코가 이어말했다.
"미안…… 합니다……."
샤악하는 소리와 함께 미코의 보검이 뽑혀져 나왔다. 여전히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보검이 빛의 궤적을 그렸다. 그리고 그 궤적은 후토의 허리를 지나갔다. 후토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미코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토지코는 분노했다.
촤아악!
미코의 보검이 멈추자 후토의 허리가 끊어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시해선의 피는 붉었다.
미코는 보검을 거두며 몸이 자제가 안되는지 부들부들 떨며 뒤를 돌아 히지리를 쳐다보았다.
"주인님……."
"잘했어요, 태자님!"
미코는 보검을 떨어뜨렸고 초점을 잃은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히지리는 만족스러웠다. 그때 토지코가 원한을 울부짖었다.
콰쾅
사방에서 벼락이 미친 듯이 떨어져내렸다. 죽은 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잊어버렸다. 그저 단지, 히지리를 죽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토지코가 히지리를 공격하기도 전에 히지리의 팔이 꿈틀거렸다.
샥!
히지리의 손에 들려있던 독고저가 쏜살같이 토지코를 지나갔다. 망령이기에 물리적인 수단으로 제압할 방법은 없지만, 그 독고저에 담긴 법력은 토지코의 힘을 봉인했다. 미친 듯이 떨어지던 벼락이 잠잠해졌다.
"자, 이제 돌아가죠. 태자님."
"히지리이이이이이이이이!"
토지코의 외침은 태자에게도, 히지리에게도 닿지 않았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채 죽어가고 있는 후토는 오직 미코만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엔 죄책감과 미안함만이 담겨있었다. 미코는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몸을 돌렸다. 그녀는 떨어진 보검을 줍지도 않고 다시 네 발로 기어서 히지리에게로 돌아갔다. 힘이 봉인된 토지코는 움직이도 못하고 히지리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소리지를 뿐 그저 그 모습을 지켜만 봐야했다.
그리고 히지리는 미코의 목에 묶인 쇠사슬을 잡고 묘렌사의 묘지를 벗어났다. 후토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태자님……."
하지만 성덕태자,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는 없었다. 묘지에 남아있는 건 죽어가는 시해선과, 봉인되어가고 있는 망령 뿐이었다.
* * * * *
"젠장할, 이미 늦은 모양이네."
홍백의 무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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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끝입니다. 점점 제 정신이 이상해지는 거 같아요. ㅇㄹㅌㅎ때문인가
다음화, 이변을 알아차린 하쿠레이의 무녀는 일의 원흉 마왕, 히지리 뱌쿠렌을 찾아가게 된다. '동방조교전'의 내용을 모두 습득한 히지리 뱌쿠렌이라도 깡패무녀, 귀무녀라는 비장의 수를 두고 있는 하쿠레이의 무녀를 상대로는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히지리 뱌쿠렌은 '동방조교전'의 힘으로 최악의 마수, 촉수괴물을 소환하고야 만다. 위기에 닥친 하쿠레이의 무녀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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