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환상광시곡 - 1. 신데렐라 케이지 (2)
청년, 아나타가 있는 방에서 나온 에이린은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는 한편 자신을 뒤따라오는 레이센을 불렀다.
"레이센."
"예?"
"요즘 할 일도 없어서 심심했지?"
레이센은 한숨을 쉬고 싶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까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식사 준비 하랴, 스승님의 연구를 도와주랴, 공주님의 탈을 쓴 백수의 수발을 들어주랴, 청소하랴 등 할 일은 차고도 넘쳤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에이린이 '뭐라고? 그 정도도 못하겠다는 거야? 정말 쓸모 없는 토끼네.'라고 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이센은 그것만은 극구 사양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응. 아나타를 감시해줘."
"아나타요? 아… 그 청년 말이죠?"
"그래. 너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을 거야."
에이린은 약간 진지한 투로 말했다. 레이센은 에이린이 자신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그래서 물어보았다. 에이린은 숨기지 않고 대답해주었다.
"아나타. 그는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어."
"숨기고 있다니요?"
"자신의 기억이든, 정체든, 뭐든."
레이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보기엔 아나타는 별 특별한 점 없는, 운 좋게 살아남은 청년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까지 다친 지는 충분히 의문스러웠지만…… 아나타 자체는 의문을 가질 만한 점이 없었다. 그나마 기억을 잃어버린 것 정도? 하지만 에이린의 생각은 레이센과 달랐다.
"기억상실이라고 스스로 그랬지? 자신에 대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그건 즉,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거나 다름 없어. 그런데 그런 침착함을 보이는 건 말이 안돼. '자신'을 잃어버리면 누구나 혼란스러워 하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아나타의 말은 거짓말이란 소리지."
레이센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나타이 있는 방과는 이미 꽤 거리가 벌어진 후였다. 에이린의 말 몇 마디에 그저 평범했던 청년이 수상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에이린의 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 누가 자신의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그리고 그걸 잃어버렸을 때 침착할 수 있을까?
레이센은 에이린의 말대로 아나타를 감시해보기로 결정했다.
*
약사와 조수가 방을 떠나자 청년, 아나타는 지체없이 침대에 몸을 맡겼다. 푹신한 감촉이 몸을 감싸안았다. 애써 아프지 않은 척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나타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다치고서 어떻게 살아있는 지 못 믿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여긴 어디인가……가 문제로군?"
아나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기억나는 것에 떠올려보았다. 기억의 파편이, 추억의 단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마치 안개 너머로 보는 것처럼 흐릿한 기억의 필름들. 하지만 아나타는 크게 상관없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말을 하는 법, 몸을 움직이는 법, 자기가 누워있는 게 침대라는 것도, 코로 마시고 있는 것이 공기라는 것도. 그리고 복수도.
그때 문이 열리며 토끼귀를 가진 보랏빛 장발의 소녀가 들어왔다. 토끼귀에 교복. 매력적인 조합이었다. 아나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세웠다.
"식사 가지고 왔어요. 굶은 지 꽤 되셨죠?"
"아마 그럴테죠.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예?"
아나타는 레이센이 의아해하며 반문하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레이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쟁반을 침대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레이센 우동게인 이나바라고 해요."
"독특한 이름이군요. 외국인…… 아니, 그 전에 사람이긴 한 건가요?"
아나타는 국어책 읽듯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그리고 살짝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며 쫑긋거리는 레이센의 토끼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신기하다는 눈치였다.
"음…… 인간이냐고요? 그럴리가요. 전 지상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 걸요."
"지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고요? 무슨 소리죠?"
레이센은 친절히 답해주었다.
"전 달에서 태어난 토끼에요. 인간이 아니라 달토끼."
아나타는 신기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대신 미심쩍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 옷은?"
"예? 옷이요?"
"레이센이 입고 있는 그 교복 같은 옷이요."
"아, 이건…… 군복이에요."
"군복?"
아나타는 멍하니 반문했다. 군복?
"에…… 그러니까…… 군인들이 입는 그옷이요? 그 짧은 치마가 군복이라고요?"
"예. 달의 도시에서 군인으로 복무중인 달토끼들은 모두 이 옷을 입고 있어요."
"……아주 바람직한 곳이군요. 달의 도시는."
레이센의 설명에 아나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말했다. 그리고 아나타가 달의 도시의 위대한 선진 문화(?)에 감동하는 것도 잠시 아나타는 레이센의 말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잠깐만요. 군복이란 소리는 레이센이 군인이라는 소리? 그러니까 달의 도시의 군인?"
"예. 자세히는 군인이었죠."
"그 말은 지금은 군인이 아니라는 소리네요? 전역이라도 하셨나요?"
"아니요. 그건……."
레이센은 망설였다. 자신의 치부에 관한 건 남에게 말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나타는 호기심 가득한 눈과 비슷한 눈과 국어책 읽는 듯한 말투로 계속해서 물어봤다,.
"사정이 있어요."
이러한 종류의 대답이 대부분 그렇지만 마법과 같은 대답이었다. 설명된 건 하나도 없는데 마치 모든 걸 설명한 것처럼 되어버린다. 하지만 아나타는 계속해서 캐물었다.
"헤에……? 그런데 전역한 것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고…… 탈영한 거 아니에요? 한 마디로 레이센은 탈영병…… 죄송합니다."
아나타는 레이센이 살며시 웃으면서 쟁반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는 급히 사과했다. 마치 자신에게 던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이센은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탈영병은 아니에요. 알았죠?"
"아, 예……."
아나타는 레이센이 그녀의 스승, 에이린과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토끼귀가 코스프레는 아니라는 소리라는 거네요."
"코스프레요?"
"뭐, 그런 게 있어요. 아니, 있나보죠.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만져보고 싶네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게 제 취미나 특기였나 봅니다."
"딱히 권장할 만한 취미는 아니었겠네요."
아나타는 레이센의 말에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레이센은 그 웃음이 매우 뻔뻔해보였다.
레이센이 말했다.
"아나타. 정말 기억을 잃은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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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름 너무 신경쓰이네. 신데렐라 케이지편 혹은 레병장님 수난기편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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