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달은 하늘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불새는 어두캄캄한 대나무 숲을 불빛과 함께 가로질렀다. 초라한 집 한 채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불새가 지나간 자리는 붉은 궤적이 남고, 불새가 날개짓을 한 자리에는 불씨가 휘날린다. 단조롭지만 아름다운 비행은 계속 되었다.
백발의 소녀는 툇마루에 앉아 잠도 자지 않고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 지는 그녀 만이 알 뿐이다. 잠도 자지 않았지만 전혀 피로하지 않는 두 눈으로 백발의 소녀는 불새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백발의 소녀는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볍게 몸을 풀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열려져 있는 문 사이로 케이네가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백발의 소녀는 케이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문을 닫고 어딘가로 걸아가기 시작했다. 백발의 소녀가 떠나고 케이네가 잠들어 있는 집을 불새가 혼자 남아 그 주위를 빙글 돌았다.
카미시라사와 케이네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해가 뜬지 별로 되지 않은 직후였다. 악몽이라도 꾼 듯 상체를 벌떡 일으킨 케이네는 거친 숨을 몰아내쉬며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고요함이 흐르는 좁은 집 안이었고 집 안의 모습이 언젠가 보았던 것처럼 익숙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지는 않았다. 이부자리 옆에 자신이 서당에서 항상 입는 푸른색 옷이 곱게 개어져 있었다. 그 위엔 석탑의 꼭대기와 형태가 비슷한 각진 모자가 놓여져 있었다. 케이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니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져 있었다.
케이네는 누군가를 찾으려는 마냥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작은 기척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기척은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기척이 아니었다. 집 밖을 순회하고 있는 불새의 타오르는 소리. 그제서야 케이네는 여기가 누구의 집인 지 기억해냈다. 전에 왔을 때는 이보다 훨씬 지저분했기 때문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케이네는 자신이 잠들기 전에 있었던 일을 깨달았다. 그리고 안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제 있었던 일은 공포가 되어 그녀의 머리를 엄습했다. 창고 안에 무성의하게 쌓여있는 시체의 조각들. 사방을 뒤덮은 선혈. 그리고 현실감을 잃어버린 듯 무표정하게 묻는 소녀.
'선생님은 요괴인거죠?'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입으로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케이네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가 아닌 지금. 그때는 소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케이네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몇 명의 사람들이 창고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 일부는 창고 안의 참상을 보고 혼절해버렸고, 혼절하지 않은 자들은 케이네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케이네가 사태를 파악하고 정리할 여유도 없이 그 일이 마을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케이네를 꺼려하고 있던 무리들은 당연히 범인으로 케이네를 의심했고, 케이네는 당연히 긍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아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자신에겐 알리바이도 있고,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증인도 있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케이네 스스로 그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케이네는 어제와 같이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력은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주저앉아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케이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툭하고 케이네가 덮고 있던 이불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쪽지 모양으로 접힌 종이였다.
케이네는 의아해하며 그 쪽지를 펴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은 길지 않았으며, 글씨체를 보아 누가 쓴지 쉽게 짐작이 갔다.
'먹을 거좀 가지러 다녀올게. 쉬고 있어.'
흔한 평서적인 문장이지만 케이네는 단 두 문장에서 안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조차 자신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그녀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 케이네는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마워…… 모코우."
불새는 자기 자신을 불태우며 날개를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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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진도가 안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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