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이상으로 호평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부리나케 두번째 글을 작성합니다.
실제로 내용이 좋다고 생각하셨다기보다는 다음 글을 재촉하는 의미로 추천해 주신 것이겠지요~!
사실 이번 글도 영양가로 따지면.... 정크 푸드나 마찬가지입니다만.
5. 역할 이론의 이론적 배경
역할 이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포케몬 배틀의 공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내용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자신의 포케몬이 상대 포케몬에 대하여,
壹. 상성상 우위에 있고 찌를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위력 기댓값이 가장 높은 기술로) 공격한다.
貳. 상성상 불리하고 찌를 수 있는 기술도 없지만,
엔트리 중에 개수대 또한 없다면, 그냥 공격(할 수밖에 없)한다.
參. 상성상 불리하고 찌를 수 있는 기술도 없지만,
엔트리 중에 막이 혹은 개수대가 있다면, 교체한다.
위의 공리를 통해, 우리는 '교대 전투' 개념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즉, 상대 포케몬에게 개수대 역할을 하는 포케몬으로 교체하면서 약간의 데미지를 입는다.
상대 또한 이쪽의 포케몬에게 개수대 역할을 하는 포케몬으로 교체하면서 교대로 데미지를 입는다.
이처럼 A-B-C-A-B-C... 식의 루프를 형성하게 됩니다.
간단한 샘플 배틀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플레이어 1 - 아쿠스타, 깨비드릴조 vs 플레이어 2 - 딱구리, 나시
1턴째. 아쿠스타(100%) vs 딱구리(100%) → 딱구리 교체. 아쿠스타의 하이드로펌프를 맞고 나시가 등장.
2턴째. 아쿠스타(100%) vs 나시(70%) → 아쿠스타 교체. 나시의 기가드레인을 맞고 깨비드릴조 등장.
3턴째. 깨비드릴조(85%) vs 나시(80%) → 나시 교체. 깨비드릴조의 회전부리를 맞고 딱구리 등장.
4턴째. 깨비드릴조(85%) vs 딱구리(90%) → 깨비드릴조 교체. 딱구리의 스톤샤워를 맞고 아쿠스타 등장.
5턴째. 아쿠스타(40%) vs 딱구리(90%) 까지.
해설 : 양 플레이어가 매 순간마다 공리에 입각한 판단을 거듭하여 전투가 진행되자 5턴째에서 1턴째와 동일한 대면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것은 포케몬의 면면뿐이고, 포케몬들의 HP상황에서는 확실히 플레이어 2가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같은 루프가 반복된다면 9턴째에 딱구리의 스톤샤워를 맞고 등장한 아쿠스타가 기절하고, 연달아 깨비드릴조도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플레이어 1에게 승산은 없는 것일까요?
1턴째에서 아쿠스타가 하이드로펌프 대신 냉동빔을 쓰면 어떨까요?
아쿠스타는 생각보다 특공이 높지 않기 떄문에 비자속 2배 정도로는 딱구리를 1타에 잡아낼 수 없습니다.
만약 1타로 잡지 못할 경우 딱구리의 강력한 자속 지진에 큰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하이드로펌프를 택했던 것입니다.
만약 지진이 급소에 맞는다면 아쿠스타가 한방에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얼핏 옳은 선택인 것처럼 보입니다.
1턴째. 아쿠스타(100%) vs 딱구리(100%) → 딱구리 교체. 아쿠스타의 냉동빔을 맞고 나시가 등장.
2턴째. 아쿠스타(100%) vs 나시(35%) → 아쿠스타의 냉동빔을 맞고 나시 기절.
3턴째. 아쿠스타(100%) vs 딱구리(100%) → 아쿠스타의 하이드로펌프를 맞고 딱구리 기절.
또는
1턴째. 아쿠스타(100%) vs 딱구리(100%) → 아쿠스타의 냉동빔, 딱구리의 지진.
2턴째. 아쿠스타(20%) vs 딱구리(30%) → 아쿠스타의 냉동빔으로 딱구리 기절.
3턴째. 아쿠스타(20%) vs 나시(100%) → 아쿠스타의 냉동빔, 나시의 기가드레인. 아쿠스타 기절.
4턴째. 깨비드릴조(100%) vs 나시(35%) → 깨비드릴조의 회전부리로 나시 기절.
아쿠스타가 사용 기술을 바꾸었을 뿐인데 딱구리가 교체를 하던 하지 않던 플레이어 1이 승리하게 됩니다.
흔히들 '조합 때문에 졌다' 라고들 많이 합니다만 실제로 경기를 분석해보면
순간적인 선택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다음으로는 엔트리 순서가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봅시다.
위의 예에서, 1턴째의 대면 포케몬이 바뀌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1턴째. 깨비드릴조(100%) vs 나시(100%) → 나시의 교체, 깨비드릴조의 회전부리를 맞으며 딱구리 등장.
2턴째. 깨비드릴조(100%) vs 딱구리(90%) → 깨비드릴조의 교체. 딱구리의 스톤샤워를 맞으며 아쿠스타 등장.
3턴째. 아쿠스타(40%) vs 딱구리(90%) → 딱구리의 교체. 아쿠스타의 하이드로펌프를 맞으며 나시 등장.
4턴째. 아쿠스타(40%) vs 나시(70%) 까지.
해설 : 플레이어 1이 교체로 깨비드릴조를 내밀던 나시에게 냉동빔을 쓰던 플레이어 2의 승리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이런 식으로 플레이하고 있겠지만 이를 의식적으로 해 봅시다.
상대의 수를 한발 빨리 읽을 수 있게 되고, 여기서부터 '심리전'이 시작되게 됩니다.
상대의 교체를 거의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경기 후반부에는 이러한 심리전에 의해 승패가 결정됩니다.
밑도끝도 없이 10만볼트를 날리고 보는 게 아니고, 갸라도스가 지금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했기 때문에 10만볼트를 날린다는 것입니다.
6. 역할 이론
앞서 역할 이론이란 하나의 포케몬에 하나의 역할을 맡기는 것이라고 소개드렸습니다.
MMORPG의 예를 자꾸 들게 되는데, 이들 게임에서는 '직업' 과는 별도로 '탱커' '딜러' '힐러' 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포케몬에게 '해야 할 과제'를 할당하는 것으로 파티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플레이어 1 : 윈디&핫삼 vs 플레이어 2 : 루카리오&나인테일 <장착아이템 없음>
1턴째. 윈디(100%) vs 루카리오(100%) → 윈디의 플레어드라이브. 루카리오 기절.
2턴째. 윈디(60%) vs 나인테일(100%) → 나인테일의 신통력, 윈디의 인파이트.
3턴째. 윈디(35%) vs 나인테일(50%) → 윈디의 신속, 나인테일의 신통력으로 윈디 기절.
4턴째. 핫삼(100%) vs 나인테일(20%) → 핫삼의 불릿펀치, 나인테일의 불대문자로 핫삼 기절.
해설 : 윈디는 루카리오와 나인테일 중 누구와 대면하더라도 둘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핫삼은 나인테일과 대면시 높은 확률로 패배하게 됩니다.
따라서, 플레이어 1의 승리를 위한 전제조건은 윈디로 나인테일을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윈디는 나인테일을 쓰러뜨린다는 '역할'을 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윈디로 나인테일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핫삼을 먼저 꺼내서 루카리오를 잡아내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HP를 많이 깎아놓아야 합니다.
루카리오의 HP가 깎인다면 플레어드라이브의 반동 데미지가 줄어들어,
윈디가 나인테일의 공격에 버티면서 역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의 포케몬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지만',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 역할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할은 파티를 만들면서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만,
상대와의 매칭시 그때그때 유연하게 수정되고 보완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역할 이론에 따라 개수대끼리의 일명 '데미지 레이스'를 하다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렇게 멍청하게 치고받고 할 게 아니라, 좀 더 스마트한 방법은 없을까?'
2세대 환경에서는 대부분의 포케몬들이 2공격/2보조기 구성을 선호했는데,
3세대 환경에서 3공격/1보조 또는 4공격기 식으로 구성이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4세대에서 브레이브버드, 인파이트 등 초고화력 기술들이 추가되면서 이러한 기조는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따라서 4세대까지의 배틀 판도나 유행 포케몬들은 거의 대부분 역할 이론에 입각해 만들어져 왔습니다.
팬텀 등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후딘, 아쿠스타, 프테라 등 2세대를 주름잡던 '초스피드' 포케몬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메타그로스, 보만다, 한카리아스, 밀로틱 등 뭔가 최소한의 내구력이 보장되는
브루져(딜탱) 스타일의 포케몬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 것이죠.
하지만, 5세대 들어 이러한 배틀 판도에 약간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현재 6세대에서는 심지어 역할 이론은 낡은 것이라는 주장까지 들려오고 있습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다음 글에서는 역할이론 그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ps) 본문 중에 등장하는 샘플 배틀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계산기 돌려보시고 결과와 5%정도씩 데미지가 다르다... 고 지적하셔도 별 수 없어요 ;;
(예를 들면, 핫삼과 나인테일의 예에서 태크니션 핫삼은 불릿펀치로 20% 정도 남은 나인테일을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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