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날의 꿈을 만든 안재훈, 한혜진 감독님이 2000년에 내놓은 '순수한 기쁨' 입니다.
지난 2월 10일 방영했습니다.
영화는 철도를 건너가려 하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김창수.
역명이 '남춘천역'으로 되어 있는데, 안재훈 감독님이 서울무비에서 근무했었고, 춘천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오래 해오셨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소중한 날의 꿈에도 춘천의 모습이 담겨 있지요.
제목.
"어릴 때 나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 쯤은 아주 쉬울 것 같았다. 그런 꿈 속의 대통령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그런 사람일 것 같았다. 하지만 좀 더 어른이 되면서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꿈을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그런 직업을 말이다."
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사무실.
작품 전체적으로 화면이 굉장히 밝습니다.
쇼파에 앉은 창수가 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창수의 습관인 듯 합니다.
그리는 대상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프로듀서로 보이는 양반.
창수가 들고 온 애니메이션 기획서(시나리오)를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뭐 괜찮은데요. 내용도 그런대로 좋고, 감동도 들어 있고, ??캐릭터도 인간적이고… 어디 보자… 제가 좀 더 보고 사장님한테 더 보여드릴게요."
평가를 듣고 감사하다면서 자리를 뜹니다.
창수가 떠나자마자 다른 직원에게 이야기합니다.
"에이그… 참 나, 맨날 그 내용이 그 내용이고. 뭐 똑같잖아? 거 있잖아?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액션물 같은 거 말이야."
제작사를 빠져 나온 창수는 절친한 친구이자 역시 창수처럼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이우석(이 사람은 합작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에게 전화를 걸고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합니다.
포장마차에서 이야기하는 창수와 우석.
소주를 들이키며 우석이 이야기합니다.
"야, 너 벌써 몇 년 째냐? 창작 일도 어지간 해야지. 우리 사무실 좀 도와 줄래? 응? 옛날처럼 일하고 싶다. 젊은 놈들이랑 참 일하기 힘들어. 요즘 애들은…"
"우린 정말… 밤낯 안 가리고 그렸잖냐?"
"이번 것도 먼저번 거랑 비슷하냐?"
"그렇지 뭐… 난 사람 냄새 나는 게 좋거든. 선한 사람들이 그냥 눈물 흘리고 돕고…. 너도 인제 지겹겠다 맨날 똑같은 얘기나 듣고…."
"맨날 생각만 한다. 내가 애니메이션으로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아, 사람들이 잘 안 봐도 좋은 영환 좋은 영화일거야. 어떻게 하냐면, 아,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영화를 보면 그럴 거 같애."
"난 미래가 두려워. 내가 아끼는 모든 것들이 변해 버릴 것만 같은 미래가 너무 두려워…."
"또 안 됐냐?"
"내 주인공은 멋이 없잖냐? 얘기도 그렇고…. 다음엔 좀 바꿔 보려고…."
얼마 뒤 창수는 또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찾아가 기획서를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소위 '대중적인' 물건을 써서 가져간 모양입니다. 평가를 잘해주네요.
하지만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다는 창수의 말에, 담당자가 감독은 젊은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창수는 좀 더 고쳐보겠다고 하고 기획서를 다시 가져갑니다.
창수는 또 우석을 만납니다.
창수는 우석에게 자기가 제출하려다가 말았던 애니메이션 기획서를 보여줍니다.
(클릭하면 재생됩니다.)
"야, 괜찮은데? 그림체도 틀리고, 여자 주인공이 너무 야한거 아냐? 왜 그래?"
"야 임마, 이게 내 목소리냐? 내가 바란 세상은 이런 게 아니야. 이건 요즘 애들이 뭔지도 모르고 동경하는 미래야. 그 두려움을 아무도 걱정하지 않아. 난 뭐 로봇이니 첨단이니 멸망이니 이런 거 아닌 좀 다른 미래를 보여 주고 싶어. 다가올 미래에 조금은 책임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자식, 내 앞에서 너무 그러지 마라 응? 합작 일을 하는 나는 할말없어 살겠냐? 나는 내 아내와 아이들이 좋다. 너처럼 세상에 주고 싶은 얘기는 별로 없어도 내 아내와 애들의 웃음이 좋아. 그게 나를 유지시켜 주는 작은 기쁨이거든? 그냥 잘하고 싶다. 창작 일이든 합작 일이든 다 그림 그리는 건데 뭘…. 힘내라. 그래도 너같은 놈이 있어야 천천히라도 좋은 작품 나오는 거 아니냐?"
"작은 기쁨?!"
우석과의 만남이 끝나고, 공원 벤치에 누워 있던 창수는 어떤 부자의 대화를 듣습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는 환경미화원 아버지의 꿈과, 아직 뭔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그냥 신나게 달려보고 싶다는 아들의 꿈…
"저는요 아직, 어떤 사람이 돼서 무엇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그냥 신나게 달려 보고 싶어요. 친구들과 공도 차고 학교나 시내에도 구경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도 가고 싶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도 꿔요."
그 대화를 들으면서 창수는 또 뭔가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뒤에도 창수는 자기의 애니메이션 기획안이 좌절되기도 하고, 외국 애니메이션의 작화감독 제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창수는 저번에 부자를 만났던 공원에서 부자간의 대화를 떠올리며 저번에 그려 주머니 속에 넣었던 종이를 꺼내 봅니다.
그것은 그날 아버지와 대화하던 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가 그린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창수는 무언가 좋은 계획이 떠오릅니다.
'순수한 기쁨' 이라고 하면서 우석에게 자기의 일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작업실에서 창수와 우석은 뭔가를 열심히 그립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얼마 뒤,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저녁의 공원.
창수와 우석은 TV를 들고 어디론가 갑니다.
그리곤 TV를 공원 한구석에 설치해놓고, 아직 켜지는 않은 채로 벤치에 앉습니다.
한쪽에서 휠체어 탄 소년과 아저씨가 나타나자 창수는 일어서서 그들을 멈춰세웁니다.
그리고 소년에게 TV의 리모컨을 쥐어 줍니다.
소년이 리모컨을 누르자 TV에서 나온 영상은…
바로 전에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던, 자신의 꿈에 대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달리고 싶고, 친구들과 공 차면서 놀고 싶고, 하늘도 날고 싶었던 장애인 소년의 꿈…
창수는 그 소년의 꿈을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이루어 준 것입니다.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보고 있었습니다.
감격하는 소년과 아버지, 그리고 사람들…
그 뒤로 창수와 우석은 기분 좋게 잠들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근무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작품 (사람들의 보통스러운 일상을 담은…)과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작품 사이에서 고뇌하는 애니메이션 연출자가 주인공입니다.
왠지 모르게 작품 제작 당시 감독님 자신이 했던 고민을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 관련 작업을 해 오면서 마치 회의감 비슷한 질문에 맞닥뜨린 것 같아보입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확 끌 만치 자극적이고 화려한, 소위 말하는 '대중적인' 작품을 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보통스러운 사람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을 할 것인가?
작중에 나오는, 장애인 소년을 위해 바쳐진 수 분 가량의 애니메이션은 전혀 화려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도 단지 소년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날아다닌다는 식으로 단순하고, 그닥 특기할만한 시각적 효과도 없습니다.
하지만 항상 휠체어 신세였던 소년에게, 일어서 달릴 수 있고 날아다닐 수 있고 다른 친구들과 행복하게 노는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비록 소박한 단편 애니메이션일망정 소년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년에게 전해진 감동은 소년의 가슴 속을 넘어 - 소년하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 그저 지나다니는 어중이떠중이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었습니다.
창수가, 아니,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은은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유일한 재주인 애니메이션이라는 방법으로 한 소년, 그리고 그를 넘어서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을 치유함으로서 고민에 대해 답을 했는데, 이는 단지 작품 속에서의 상황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훗날 안재훈, 한혜진 감독님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것에 대해 가졌던 의문에 대해 답하고, 자신들이 원했던 바를 실현시키고자 합니다.
바로 그것이 '소중한 날의 꿈'입니다.
아무튼 이게(순수한 기쁨) 전통적 방식으로 만들어진 셀 애니메이션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 이후에는 모두가 디지털 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군요.
지금의 디지털 셀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뭔가 독특한 맛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근데 이거 27분짜리라는데 왠지 모르게 SBS측에서 방송시간에 맞추려고 편집한 것 같아보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의 플짤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가수 김창완 씨가 주인공 김창수 역을 맡아서 목소리 연기를 했습니다.
거기에 사연이 하나 있습니다. 연필로 명상하기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입니다. 글투로 보아 안재훈 감독님이 직접 쓰신 글 같습니다.
< 순수한 기쁨 > 주인공 창수 목소리를 연기한 김창완 아저씨와의 인연
시간이 흘러서 아저씨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누군가를 아직도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소중한 날의 꿈>에 나오는 삼촌이 시작된 그 분. 바로 가수 김창완 아저씨이다.
<소중한 날의 꿈> 연출의도 중에 어른이 된 후 각색되거나 미화되어 버린 어린 날에서,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인 나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구절이 있다. 김창완 아저씨와의 인연은 감독의 미화된 청춘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밖에 없는 가난한 청춘들에게 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기에 이야기를 적는다. 그것은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바라고 그 바라는 것을 위해 온 힘을 다했을 때, 어른들 중에는 내미는 손을 잡아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김창완 아저씨가 가난한 애니메이터의 작품에 목소리 참여를 한 이야기의 시작은 고등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민이가 읽던 시의 내용처럼 서른 세 살을 예고하기도 하며 참 많이도 밖으로 돌았다. 주변이 주는 힘듦이 아닌 그림 한 장 그릴 줄 아는 아이가 갖는 평범함은 겉멋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땐 마음 속 깊이 아팠다. 공부도 평범, 집안도 평범. 멋지게 전국대회에서 수상도 못하는 그림도 평범. 그것들만 갖고 있을 미래의 내가 불안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때 고등학생인 나는 고민을 털어 놓는 것이 한없이 나약한 인간으로 보일 것 같아 겉으로 참 유쾌한 척 했다.
그러던 날 더 견딜 수 없어 가출하기 전날 라디오 DJ 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 그러나 진짜로 보낼 정도까지 용기는 없어 어딘가에 구겨 넣고 집을 떠나왔다. 유일한 위로였던 라디오 DJ 에게 그렇게 기대었었다.
그 때에 라디오 DJ가 김창완 아저씨였다.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으로 세상과 만날지 몰랐고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20대의 중반을 넘어서던 어느 날, 생소한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20년째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 수 년간을 창작작품을 할 줄을 몰랐다. 그저 그림이 좋아서 한 것이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책상에 앉아 끄적이던 글들은 분명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서울 하늘 아래 책상과 종이와 연필을 원 없이 쓸 수 있는 날부터 그림만 그렸다. 아무 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른 날의 이유 없는 두려움을 만회하듯 밤낮으로 쉼 없이 앉아 있었다.
특이한 구조인 OEM의 환경 속에서 작업하며 느낀 답답함이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을 때,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사람에게 있지 않고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해결하려는 환경이 마음속 저 안에서 스스로의 자책처럼 <순수한 기쁨> 이라는 진부한 작품으로 모양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가 그림만 그림으로 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미국의 큰 회사나 일본의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이 안에서 내 주변을 보고 우리 이웃을 보며 그것을 잘 들여다 보면서 이 직업이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그림이 영상으로 완성되었다.
첫 번째 단편 <히치콕의 어떤 하루>에는 목소리가 없었지만 <순수한 기쁨>에는 목소리가 있었다. OEM작업을 그리 많이 했지만 도무지 목소리 연기가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돈은 얼마가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포스트작업을 위해 비용을 남겨둘 치밀함 따위는 더더욱 부족한 상태였다.
스스로도 한심했다. 무엇이 OEM으로 얻은 노하우란 말인가? 풍문에 들리는 성우료는 감당할 수가 없는 비용이었다. 결국 모든 첫 번째 작품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많이들 그렇듯, 스스로 더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좁은 텔레시네 방에서 그림을 들여다 보았다. 나를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림은 누군가를 닮고 있었다. 어린 내가 기대고 싶었고 목소리만으로 위로를 주었던 그 분을 닮고 있었다. 손이 마음의 기억에 있던 큰 바위 얼굴을 찾아낸 것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주소를 수소문 하여 편지를 드렸다. 어린 날에 보내지 못한 편지를 쓴 그 아이가 지금 한 가지를 택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글이었다. 그리고 가수분께 드리는 목소리 연기에 대한 미안함에 덧붙혀서, 지금 당장 드릴 돈이 없지만 앞으로 더욱 열심히 그려 갚아 드릴 것이라는 것은 결국 지금 당장 드릴 비용이 없으니 앞의 사연으로 지금의 꿈만 봐달라는 염치 없는 글일 뿐이었다.
순수하게 적은 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젊은이의 얄팍함을 모르셨을 리가 없다. 그러나 어떤 어른은 그것을 얄팍함으로 보고 어떤 어른은 그것을 꿈을 위한 순수함으로 보는 것이다. 지금도 이 직업을 가지고 나는 어떤 어른일까를 고민하기에 이제는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성우 연습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무렵 연락이 왔다. 그리고 꿈만 같은 기적 같은 만남이 이루어 졌다. 양수리의 종합촬영소 입구에서였다. 전날까지 철야 작업으로 쉬시지도 못하고 직접 차를 모시고 서울에서 오신 것이었다. 철저히 준비해 오셔서 차분히 목소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 뒤로도 나의 목소리 연기자에 대한 기준은 그날 본 그분의 모습이 기준이 되었다. 준비하고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림에 들어 있는 영혼까지를 이해하려고 하시는 그 진지한 모습을! 그 만큼을 그려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정말 다시 작품을 하게 된다면 관객 이전에 함께 만드는 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누군가 <소중한 날의 꿈>을 보며 나에게 농담처럼 묻는다.
"뭘 그렇게 까지..."
"그래도 삶은 누리며 해야죠."
라고 나는 진담으로 말한다. 화면에서 나태한 연필선을 발견하는 순간. 함께한 이들 앞에서 부끄러워 죽고 싶은 것 보다 지금 힘든 것이 낫고 내가 만든 부족함으로 애니메이션을 보시게 된 분들에게 다음을 기약할 수 없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후배들에게 선망과 동경까지를 유산으로 이 직업을 남겨줄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로 인해 이 직업이 우스워지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드디어 더빙이 끝났다. 나는 다시 한번 말을 해야 했다. "나중에 벌어서 꼭 갚아 드리겠다고" 이 어려운 말이 나오기도 전에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시며 힘내서 좋은 작품들 만들라고 하셨다.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세상에 이야기하는 것이 진짜 힘든 일이다 라고 하셨다. 얼굴을 보니 그럴 수 있겠네라는 덕담까지 얹으시며 내가 더 난처할까 급히 자리를 뜨시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어른이 되면서 존경하는 분도 감동받는 일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20대 후반에 도저히 만날 수도 없는 분을 그렇게 만나고 이렇게 작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날로부터 <소중한 날의 꿈>이 시작되고 그 날로 삼촌이 모습을 갖추어 갔을 것이다. 모든 청춘은 꿈을 꾼다. 그 꿈이 순수한 기쁨을 향했으면 한다. 나도 꿈을 꾼다.
가수인 김창완 아저씨에게 목소리 연기를 부탁한 죄송함으로 언젠가 근사한 그림을 그렸을 때 '나 어떻게' 같은 '꼬마야' 같은 '아니 벌써'같은 음악을 부탁 드리는 꿈을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더한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의 마지막 Cell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촬영이 끝나는 날 셀에 사용되던 물감들이 트럭에 옮겨져 버려지면서 컴퓨터 촬영의 시대가 되었다. 우리 애니메이션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없기에 그저 그날 떠나던 몇몇 분들을 떠올리며 이런 일도 있었다며 끝말로 적는다.
출처: http://www.studio-mwp.com/renew/html/sub_6/index3.htm?ptype=view&idx=8648
그리고 작중에 보면 창수가,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아마 실제 안재훈 감독님 본인이 많이 하시는 일을 가지고 캐릭터의 습관으로 잡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12월 열렸던 소중한 날의 꿈 GV 현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작품의 GV가 있거나, 스튜디오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안재훈 감독님은 항상 대면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그립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사람들 얼굴을 그린다고 하셨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데생 연습 겸 해서 실제 우리 주변 사람들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들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무튼 저도 감독님이 그려 주신 제 얼굴 그림을 한 장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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