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루리웹에는 눈팅만 하다 처음으로 글을 올립니다. 몇 번이라도 공지를 읽긴 했는데 혹여라도 어긋난 게 있진 않는지 걱정되네요.
마마마 신극이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었던 탓에 그 정신적인 충격을 어떻게든 줄여보고자 하는 발악으로 쓴 글입니다. 자신의 멘탈이 곱게 빻아져 마치 북풍 부는 날의 밀가루처럼 허공에 흩날리는 것을 졸지에 밀가루 장수가 되어 벙찐 얼굴로 바라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은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네놈 우로부치.
블로그에 올렸던 것을 살짝 손 본 것이기 때문에 편의상 반말로 진행하겠습니다.
+살짝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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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A 종영 후 3년, 드디어 그 속편인 '반역의 이야기'가 극장판으로 개봉해 며칠 전에는 BD까지 발매되었다. 엄청난 정보량과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었던 만큼 이 작품을 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케미 호무라에 초점을 맞춰서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이 그녀의 성장과 그에 따른 승리를 그린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신극은 TVA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호무라의 캐릭터성을 부수고 다시 한 번 재정립하면서도 근본적인 부분은 무엇 하나 건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더 탄탄하게 다진다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그 놈의 "사랑이야." 가 워낙 충격적인 발언이었던 만큼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도 입 가진 사람마다 해석이 갈리는 듯 하나, 개인적으로는 그저 그녀가 지금까지의 마음가짐 ( 그녀를 지키겠다는 소원, 3주차 마도카와의 약속 ) 그대로 행동했을 뿐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큐베의 손에서 마도카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결의한 마음과 마도카를 무참히 찢어버린 마음은 결국 같은 마음이다. 소울젬이 오염됐던 탓에 약간 머리가 돌아버렸던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두철미하게 제정신이었을 것이다.
본래 아케미 호무라는 어떤 캐릭터인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이 점을 확실히 하고 넘어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TVA에서 그녀는 오로지 카나메 마도카를 구한다는 목적 하나를 위해 마미나 사야카 등의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도 전부 포기한 채 몇 번이고 같은 시간축을 반복해왔다. 단 한 명의 친구를 마법소녀의 잔혹한 운명에서 건져낼 수만 있다면 영원의 미로를 헤매게 되어도 상관없다. 헌신에 대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목적에 대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 강철과도 같은 마음가짐은 그녀가 어떤 사고방식의 인간인지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호무라는 '버리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녀라고 처음부터 그렇게 하드보일드한 아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TVA 10화에서 갑자기 양갈래 머리의 소심한 소녀가 툭 튀어나왔을 때의 그 황당한 기분을 기억하는가? 계약 초기의 호무라에게는 마도카와 함께 하고 싶다, 마도카를 독점하고 싶다는 마음 또한 '카나메 마도카의 구제' 못지 않게 중요한 소망이었을 것이며, 마도카를 위해 그 외를 내버릴 각오도 없었을 것이다. 이른바 현실에 대해 아직 어리광이 남아있었다고 할까. 그러나 3주차에서 마도카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된 것을 계기로 그녀는 철저히 마도카 일점으로 묶이기 시작하고 그 각오는 루프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견고해졌겠지. 물론 호무라도 사람인 이상 마도카에 대한 독점욕 등의 소망은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일부로 결코 근간은 아닐 터.
요컨대 TVA 10화는 그녀가 카나메 마도카만을 위한 다크 히어로로 제련되어 가는 과정의 축약판이었다. 루프를 거치는 동안 마도카를 구한다는 목적의 달성에 불필요한 많은 것을 버려오면서 아케미 호무라에게 단 하나 남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매우 심플한, 이제는 광기의 역에까지 다다른 '카나메 마도카의 구제'이며 그녀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성장은 TVA에서부터 본작의 중심 부분 중 하나였으며, 그 변화를 가장 알기 쉽게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시간 역행시의 연출이다. 아직 마도카를 위해 전부 버리겠다는 각오가 서 있지 않았을 1~2주차 때는 마치 '방패 ( 능력 ) 에 이끌려가듯이' 묘사된 반면, 마도카를 살해하고 사고 방식이 바뀌기 시작한 4주차부터는 '호무라 스스로의 의지로 돌아가는' 식으로 연출되는 것이 그녀의 마음가짐이 루프를 거치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단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극은 바로 그런 TVA 10화의 연장선상, 요컨대 그녀의 성장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TVA 엔딩에서의 호무라는 억지로라도 지금의 상황을 납득/혹은 포기하고 속으로 삭히는 것밖에 수가 없었다. 마도카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마도카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세계, 마도카가 희생한 것은 견딜 수 없지만 그 아이가 바란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필사적으로 자신을 납득시키려 하고 있던 판국에 설령 영원의 미로를 헤매서라도 구하고 싶고 지키고 싶었던 바로 그 본인에게서 '사실 나 그런 거 못해.' 라는 말을 들었으니 후회하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큐베의 실험 덕에 호무라는 원환의 이치에 간섭하는 방법까지 알아버렸다. 마도카의 진의 ( TVA 최종화에서의 각오를 잊은 상태긴 하지만 ) 와 그것을 이룰 방법. 여기까지 카드가 모였다면 그 다음은 '자신을 위해 애써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는 죄를 짊어질 각오' 를 결정할 뿐. 그녀의 행동을 과연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아케미 호무라다운 선택이었다는 거겠지.
"그것이 정말로 너의 본심이라면, 나는 얼마나 바보같은 착각을..."
물론, 사실 그것은 핑계로 그저 마도카와 함께 있고 싶었기에 원환을 거부하고 악마로 전락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악마 세계의 귀국자녀 마도카는 '호무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마도카'인 것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론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루프 세계에서 호무라는 번번히 마도카에게 오해받아왔고, 본인도 그것을 굉장히 괴롭게 여기고 있었다. 애시당초 그녀에게 있어서 인생 최고의 찬사였을 '나의 최고의 친구'부터가 마도카가 신이 되어 호무라의 모든 헌신을 알게 되었기에 비로소 나올 수 있는 말이었으며, 그 일이 없었다면 마도카에게 호무라는 영원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전학생에 불과했겠지. 입원 생활 중에서도 루프 세계에서도 마수 세계에서도 지긋지긋하게 고독에 시달려왔을 호무라에게 마도카미는 유일한 이해자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통감하고 있었을 터인 호무라가 마도카와 함께 있고 싶다는 이유로 간신히 이어졌던 둘 사이의 연결을 제 손으로 모조리 끊어버리면서까지 마도카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주객전도다. 정말 그런 이유로 반역했다면 차라리 얌전히 원환되는 쪽이 호무라에게는 더 이득이다. 그렇게 하면 말 그대로 '미래영겁' 마도카와 함께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토모에 마미는 행복한 사람이네...부러울 정도야."
"호무라짱은 왜 그렇게 차가워?"
"미안해, 영문을 모르겠지? 기분 나쁘지...? 너에게 있어서 나는, 만난지 한 달도 안된 전학생에 불과하지? 하지만 나는...나에게 있어 너는... 반복하면 할수록, 너와 내가 보낸 시간은 어그러져 가고. 마음도 어긋나서 말도 안 통하게 됐어..."
'만인의 마도카'가 아니라 '자신만의 마도카'를 원했기에 끌어내렸다는 말도 일리 있을지 모르지만, '호무라의 이상향'인 나이트메어 세계는 다섯 명 전원이 사이 좋은 세계였던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정말로 그랬다면 악마 세계가 좀 더 호무라에게 편한 세계로 작성되었겠지. 이왕 세계를 개변한 김에 자신을 사야카나 히토미의 포지션에 가져다 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또한 현재 호무라에게 있어서 1, 2를 다투는 불안 요소임과 동시에 마도카의 소꿉친구인 사야카를 현세에 내버려둘 이유도 없다. '마도카와의 관계에 대해 우위를 차지하고 싶었다'는 해석도 역시 나이트메어 세계에서의 호무라가 안경 시절의 그녀로 서포트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을 봤을 때 그리 신빙성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즉, 이번 호무라의 결단은 그 박력과 스케일이 어땠든 간에 결국 그녀가 자신의 본분 그대로 행동한 것에 불과하며, 기가 막힐 정도로 이기주의로 점철된 행동이긴 하나 오직 마도카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돌려온 인간이 고르는 것으로서는 타당하기 그지없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루프 세계에서 마도카를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마저 내던졌던 것처럼, 그리고 마도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마저 포기하고 죽음을 각오했던 것처럼 호무라는 '마도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계'를 갖고 싶었기에 자신의 오기와 이성을 전부 끌어모아 눈앞까지 다가온 구원을 모조리 박차고 이 결말을 택했다. TVA 6화에서 마도카에게 말했던 "마법소녀는 자신의 소원을 위해 그 외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어떤 죄를 짓더라도 자신의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 는 스스로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카나메 마도카만을 위한 다크 히어로'로서 해야 마땅할 행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단과 함께 호무라가 새롭게 손에 넣은 성장이자 완성형이 바로 '악마화'이다. 이 변화를 직설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그녀가 악마화를 위해 자신의 소울젬을 이로 깨물어 부수는 연출로, 신극의 모티브 중 하나였던 '호두까기 인형'이 두드러지는 부분이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엉뚱하게도 '데미안'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성장은 언제나 아픔을 동반하기 마련이라는 유명한 잠언, 소울젬이 마법소녀의 영혼 그 자체이며 마녀의 알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지 않은가?
본작에서 이 성장이 지니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 가능하다. 우선 그 첫 번째가 마도카와의 관계에 대한 일대격변이다. 이번에 호무라는 석산, 다른 이름으로는 황천길에 피는 유일한 꽃이라는 피안화와 함께 그려지는 일이 많았는데, 마도카의 마녀 크림힐트 그레트헨이 모든 생명을 강제적으로 자신의 천국 ( 피안 ) 으로 끌어올리는 마녀이며 마도카가 마법소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신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재치 있는 묘사였다. 더군다나 이 석산에는 '상사화'라는 이름도 있으니 자나 깨나 저승에 계신 임만을 애타게 그리는 호무라에게 딱 맞는 꽃이라고 할 수 있겠지. 개인적으론 호무릴리라는 조금 우스운 이름 또한 피안화Red Spider Lily에서 따온 게 아니냐는 가설이 신빙성 있게 느껴질 정도로, 심지어 「열정」, 「재회」, 「체념」, 「슬픈 추억」, 「그리는 것은 오직 당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라는 그 꽃말조차 전부 기막히게 들어맞는 것이 재미있다.
이렇게 호무라를 위해 붙여진 것은 아닐까 싶어질 지경인 피안화의 꽃말 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독립」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첫 번째는 '마법소녀 시스템에서의 독립'을 말한다. 소녀가 큐베와 계약을 나눴다는 증거인 소울젬이지만, 악마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호무라는 그것을 독단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파괴하면서 그 계약을 철저하게 부정한다. 그 결과 원환의 이치에 이끌려 사라질 터였던 그 영혼은 저주보다 끔찍한 사랑의 끝에 다크 오브로 변해 그녀는 마법소녀도 마녀도 아닌 새로운 존재로 변모했으며, 마법소녀 시스템의 창조자이자 지배자인 큐베조차 그녀에게 고삐를 맬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의미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의미가 '카나메 마도카에서의 독립'이다. 생각해보면 TVA까지의 호무라는 농담 좀 섞어 마도카가 던진 공 ( 3주차의 약속 ) 하나 물어오겠다고 미친 듯이 뺑뺑이를 도는 충견이었다. 가족의 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을 호무라에게 마도카는 부모 대신 길을 제시해주고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 말하자면 병아리의 각인 효과가 몇 배로 악화된 듯한 존재였을 터.
그런 면에서 호무라의 반역은 지금까지의 그녀에게선 볼 수 없었던 특별한 행위였다. 그녀는 지금껏 마도카의 말에 거역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아무리 3주차에서의 약속을 위해서라고 해도 처음으로 그 뜻을 거스른 데다 그 위에 설령 마도카와 적대하게 될지언정 자신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까지 세웠다. 물론 마도카가 평범한 인생을 지내게 해주겠다는 목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지만, 예전엔 그 이유가 '마도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지금은 '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각한 결과인 것이다. "그녀에게 지켜지는 내가 아니라 그녀를 지키는 내가 되고 싶다." 고 빌었던 1주차 이래 호무라는 처음으로 얌전히 마도카의 말을 따르기만 하던 착한 아이에서 벗어나 '나는 이러길 원하니까 이렇게 하고 싶어' 라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며 능동적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그것와 함께 아케미 호무라는 악마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시프트해 카나메 마도카=원환의 이치에서 벗어났으며, 자연히 마도카와의 관계도 종래의 신-천사라는 종속 관계에서 신-악마의 일 대 일 대응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클라라 돌즈가 마도카의 힘과 기억을 상지하는 분홍색 실패를 발로 차면서 "Fort!" 라고 외치는 연출도 호무라의 성장에 대한 의미였는지 모른다. 십중팔구 이 연출의 모티브일 프로이트의 Fort-Da 게임은 모친이 없을 때 어린아이가 "Fort ( 없다 ) !" 라고 외치며 실패를 멀리 던진 후 그 실을 다시 끌어당기면서 실패가 보이면 "Da ( 있다 ) !" 라고 외치는 방식의 놀이다. 실패로 모친을 대체하고 스스로 그 부재와 귀환을 연출하는 것인데, 아이는 이렇게 하면서 모친의 부재로 인한 자신의 불안을 상징, 컨트롤하는 법을 배운다. 요컨대 부모에게서의「독립」을 학습하는 한 과정이라고 할까, 뭐 호무라의 경우에는 그것이 부모의 배에 칼을 꽂아놓는 수준으로 과격한 것이긴 했지만 존속살해도 어쨌든 독립의 한 형태이긴 한 것이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이 변화는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성장에는 언제나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그림자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아케미 호무라에게 있어 성장과 전락은 동의미, 말하자면 그녀는 칭찬해주고 싶은 구석과 야단쳐야 할 구석이 표리일체로 구성되어 있는 캐릭터다. 마도카를 구하겠다는 강철같은 각오가 선 것은 좋았지만 아무도 믿지 않게 되면서 마도카 이외의 전부를 다 버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자각한 것은 분명 성장이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동료들을 배신했다. 호무라가 큐베에게 마도카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라고 단언할 때도 이제야 겨우 자신의 마음을 알아챘구나 하고 기특해 하면서도 이런 식으로밖에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마도포를 해보면 '다른 마법소녀들을 지키는 것이 마도카를 지키는 것 또한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노선을 선회한 호무라가 천신만고 끝에 마법소녀 전대를 만들어 발푸르기스의 밤을 퇴치하고 마도카를 지키는 데 성공하는 엔딩이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파생작의 스토리이기에 완전한 공식으로 여기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TVA와는 다른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에서는 중요하다. 호무라는 마도카를 지키겠다는 집념 덕에 루프를 헤쳐올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마도카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 한계에도 사로잡혀 버리고 말았다. 아이러니하지만 목표를 위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호무라는 큐베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마미하곤 싸우고, 사야카에겐 간파되고, 쿄코와의 협력관계는 깨지고, 심지어 마도카마저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는 신뢰할 수 없게 되어서 그 결과 끝의 끝까지 큐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 버린 것이다. 누구보다도 인큐베이터를 증오하던 호무라였지만 결국 최고이자 최악의 인큐베이터로서 마도카를 지옥에 몰아넣은 건 결국 그녀였다.
친구가 너무 올곧다면 그만큼 네가 비뚤어져 주면 된다고, 마도카의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사야카와의 관계에 대한 상담의 대답이었지만 이것은 호무라-마도카/쿄코-사야카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도카는 겉보기엔 우유부단해보여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실행하는 강한 아이, 그리고 그만큼 호무라는 무리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마도카가 비겁한 아이였다면 호무라도 훨씬 편했겠지만, 그랬다면 애초에 호무라가 그녀를 사랑하게 될 일도 없었겠지. 마도카가 빛이라면 호무라는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그림자인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본편의 엔딩에 납득했었다. 결국 호무라는 끝까지 마도카를 붙잡을 수 없었구나 싶어서 안타깝긴 했지만, 마도카가 올곧았던 만큼 호무라가 비뚤어져야 했다면 호무라가 지었던 죄만큼 그 원인이었던 마도카가 신이 되어 갚아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다. 신극 초반에서 호무라가 뇌까렸던 것처럼 그녀는 마도카를 구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아왔고, 옳지 못한 방법을 밀고 나간 대가로 자신이 가장 원하지 않았던 결과에 다다랐다. 호무라는 자신이 지은 죄를 갚을 필요가 있었으며, 신의 사도로서 몇백 년이고 이 세계를 지켜나가게 된 것이 그 정당한 응보라고 느꼈다.
거기에 더해 영원의 미로를 헤매는 호무라보다는 세계 그 자체가 되어버린 마도카를 지키는 호무라가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설령 마도카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더라도, 그녀가 신으로써 호무라가 자신에게 바친 모든 헌신의 전모를 알고 앞으로도 쭉 지켜봐줄 것이 약속된 한 둘의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어져 있었으니까. 이제 리본으로 이어진 둘의 마음은 두 번 다시 어긋나지 않을 것이고, 먼 미래 약속된 재회의 날에 꿈에도 못 잊을 사랑스러운 사람이 빛 속에서 마중 나오면 호무라는 이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만족스럽게 죽을 수 있기를 쭉 바랐다.
그리고 이 결말은 나의 그런 소망을 산산조각 내주었다. 맙소사, 부제의 '반역'이 설마 TVA의 결말에 대한 반역을 뜻하는 것일 줄이야! 사실 요 몇 주 내내 기분이 오락가락해서 도통 마음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 결말을 기뻐해야 하는 걸까 슬퍼해야 하는 걸까. 실수로 네타를 밟는 바람에 결말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보자 완전히 벙쪄버렸다. 물론 나도 오로지 마도카만을 위해 살아왔던 호무라가 마도카 없는 세계에서 다른 삶의 목적을 찾아내는 스토리 같은 걸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이쪽의 예상을 뛰어넘어도 한참 뛰어넘었다.
TVA 때부터 호무라는 착실하게 성장해 왔지만, 그것은 올곧은 방향으로의 성장은 아니었다. 잘 따져보면 신극부터가 아케미 호무라라는 한 인간의 단점이 처음부터 끝까지 꽉꽉 들어차있던 영화가 아니었던가. 냉정하고 완벽해 보이는 언동에 언뜻 속기 쉽지만 사실 본작의 주역 중에서 그녀만큼 단점으로 뒤덮인 인간도 없다. 일각에서는 나머지 주역 4인의 단점을 더욱 악화시켜 한꺼번에 우겨넣은 캐릭터가 그녀라는 고찰까지 있었으니 오죽하랴. "자기평가가 낮다"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허세로 가리고 있다" "뭐든지 혼자 껴안는 탓에 결국 고립한다" "상대를 멀리 해서 사이좋게 되지 못한다" . 물론 어디까지나 고찰이니 사람에 따라 찬반이 갈리긴 하겠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잠깐 말했듯이 호무라는 자기 자신을 굉장히 하찮게 여기며 모든 것을 마도카에게 바치는 헌신적인 면모와 한편으론 '마도카의 구제'라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시킨다는 극도의 이기주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이중성 중에서 전자의 묘사에 중점을 둔 것이 TVA, 후자의 묘사에 중점을 둔 것이 신극이라고 할까. TVA에선 미처 조명되지 않았던 호무라의 역겨운 부분을 들춰내듯이 신극은 "마도카의 희생을 연극으로 만드는 이 마녀를 용서할 수 없어." "누구보다 섬세한 주제에 강한 척 하는 그 사람이 불편했어." "너는 좀 더 서투른 아이였을 텐데." "마도카를 지배할 속셈이구나!" 등 그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발언이 우스울 정도로 많았는데, 그 과정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사야카와의 대조성이었다.
덧붙여 이 때의 장소는 TVA에서 호무라가 쿄코와 싸우려는 사야카를 기절시킨 뒷골목이었다. >
TVA를 돌이켜봤을 때, 마법소녀만의 관계로 한정한다면 그 때부터 아케미 호무라에게 있어 미키 사야카만큼 사사건건 악연으로 점철된 관계도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피튀기는 싸움으로 시작한 쿄코-사야카의 관계도 상당히 날이 서있었다만은, 중간부터 사야카가 어느 정도 쿄코의 사정을 이해하고 쿄코도 사야카에게 물들어가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 이 둘은 끝까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듯이 호무라와 사야카는 하나부터 열까지 대조되는 양상으로 짜여져 있는데, 평소 모습부터가 활발한 보이쉬 기믹과 쿨한 미스테리어스 걸이면서, 전투 방식은 정정당당한 기사와 뒤에서 푹 찌르는 어쌔신, 소원에 따라 지급된 무기는 칼과 방패였으며, 무엇보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명분과 실리로 양극단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나 맞물리는 게 하나도 없는 사이였으면서 한편으론 둘 다 매번 소중한 사람을 위해 헌신해도 결국 아무것도 보답받지 못한다는 공통점 또한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혼을 바쳐 구한 왕자님께 선택받지 못한 사야카와 마도카에게 있어 한 달 전에 전학온 클래스메이트 이상이 될 수 없는 호무라. 8화에서 호무라가 사야카를 죽이려 했던 것은 이러한 악연이 마침내 폭발한 장면이었다. 사야카가 마도카의 계약에 일조하는 원인인 것이 가장 컸겠지만 옥타비아를 볼 때마다 언젠가 너도 이런 추한 모습으로 몰락하리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을 테니까. 사야카가 호무라에 대해 지긋지긋하게 오해만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때만은 정확하게 그녀의 의중을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같은 족속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을 그렇게 싫어했던 것도 서로의 추한 점을 비추는 거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똑같은 비극 위를 걷는 동료이면서, 호무라의 냉정한 현실감각은 이상만 내세우는 사야카를 더더욱 우습게 만들고 비록 위선일지언정 사야카의 정의감은 호무라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지 훨씬 극명하게 드러냈으므로.
그리고 신극에서 이 둘은 기박하게도 TVA와는 완전히 뒤바뀐 역학 관계를 보이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호무라와 모든 진상을 알고 친구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사야카라는 대비는 TVA를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석으로, "나는 네가 알고 있는 너라구, 전 학 생 ?" 때의 연출을 보면 사야카도 호무라를 놀려먹는 게 꽤 재미있었던 듯 하다(...). 그 외에도 예전 호무라를 방해할 때 썼던 소화기로 이번엔 위기에서 구해주거나, 시간 정지 능력에 넋놓고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뒷골목에서 호무라의 버클러에 칼을 찔러 능력의 사용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말빨로 한 방 먹이기까지 하는 것도 둘 사이의 역전된 양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그것도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전 호무라에게 살해당할 뻔 했다는 점에서 그녀의 '죄'와 '이기적인 면모'를 대표하는 인물인 사야카에게 치부를 찔렸다는 게!
요컨대 쿄코-사야카가 동반자로서의 파트너라면 호무라-사야카는 대립각으로서의 파트너이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법소녀가 되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발버둥치다 무너져 내렸지만 그 도착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TVA에서 유일하게 마도카를 기억하는 인물로 남아 하얀 날개를 달고 신의 사도로서 싸우던 호무라는 반역자로 타락해 악마를 자처하고, TVA 내내 형편없이 깨지고 굴러떨어졌던 사야카는 마도카의 오른팔 역할을 맡아 믿음직스럽게 성장해서 나타났다.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이 두 사람은 타천사 루시퍼와 대천사 미카엘, 혹은 전형적인 마왕과 용사로서 대립하게 될 터. 서서히 기억을 되찾아 모든 진상을 아는 유일한 인간으로서 친구를 구하기 위해 강대한 적과 홀로 싸워야 하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사야카의 운명이 TVA-신극에서의 호무라와 완전히 겹치게 되는 것 또한 운명의 장난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여담이지만 루시퍼와 미카엘은 루시퍼 쪽이 좀 더 피부가 검을 뿐 서로 빼다박은 얼굴로 그려지기에 쌍둥이 형제였다는 설도 있는데, 아케미 호무라暁美ほむら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새벽녘의 불꽃'이 되어 루시퍼의 '빛을 내는 자', '새벽의 샛별'과 일맥상통하며 미카엘의 상징은 '칼집에서 나온 칼'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만은 절대 잊지 않아, 아케미 호무라, 네가 악마라는 것은...!"
"그래도 평소에는 사이좋게 지내자? 그렇지 않으면...그 아이한테도 미움받을 거야."
분명 이 둘이 함께 손 잡을 날 따윈 절대 오지 않겠지만 그런데도 서로가 서로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호무라의 사야카에 대한 이해도 물론이지만 사야카의 호무라에 대한 이해도 꽤나 심도 있지 않았나. "정말이야! 그럴 맘이 들면 아픔따윈 간단하게 사라져 버려!" 와 "마도카가 준 것이라면 아픔마저도 사랑스러워." 의 사이에서 무언가 기시감을 느껴버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호무라는 사야카를 서툰 아이라고 평했지만 솔직히 사야카로선 호무라한테만은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았겠지. TVA에서는 호무라의 장점과 사야카의 단점만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어 드러났다면 신극은 그 정반대 패턴, 세계가 두 번 바뀌고 나서야 간신히 이 짝패는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새삼 호무라의 행로가 얼마나 일그러진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TVA에서 미키 사야카의 역할은 본작의 마법소녀가 얼마나 비극적인 존재인지 가르쳐주는 시범용 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희망을 믿고 기적을 빌어 정의를 위해 싸우다 절망으로 굴러떨어졌던 그녀의 궤적은 유사 이래 있어왔던 모든 마법소녀의 운명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랬던 만큼 그녀의 올곧은 성장과 그와 더불어 TVA에선 그녀의 자학을 표현하던 연출이 신극에선 고스란히 그녀의 성장을 드러내는 장치로 재탄생하는 것엔 감개를 금치 못했다. 엘자 마리아의 그림자 세계에서 쿄코의 도움을 거절할 때 썼던 크라우칭 스타트로 마법소녀 모습의 자신에 전력으로 부딪쳤고 마녀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호무라가 진실에 충격받지 않도록 미리 완충재를 깔아주었다. 자신의 쇠락한 모습인 옥타비아를 스탠드마냥 자유자재로 부리며 싸웠으며 결국 아무것도 답해주지 못한 채 지상에 남겨두고 와버렸던 쿄코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과거 그녀가 "난 정말 바보야." 라고 뇌까리며 새까매진 소울젬에 떨어뜨렸던 눈물은 이번엔 전혀 다른 의미로 변주되어 쿄코의 창 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에 반해 호무라의 '성장'은 한껏 비뚤어져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전락이기까지 하다. '카나메 마도카만을 위한 다크 히어로' 로서 새롭게 완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작중에서 몇 번이나 지적받았던 자기완결성은 고쳐지기는 커녕 몇 배로 악화되지 않았나. "또 너만의 시간으로 도망치려는 거야?" 는 그것을 정곡으로 찌르는 일갈이었다. 늘 혼자서 모든 것을 떠맡으려 하고 오로지 마도카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 좁고 텅 빈 세계에 틀어박혀 나올 줄 모르는 고집불통, 자신의 절망에 잠겨버린 나머지 세계를 '슬픔과 증오만이 되풀이된다'고 말하며 일말의 의미조차 찾으려 하지 않는 그녀에게 아직 이 세계는 그대를 위해 기쁨을 숨겨놓고 있다고 노래하는 미스테리오소는 과분했다. 어느 의미 신극은 호무라가 도망칠 수 있는 공간이 우주 레벨로 확장된 것뿐인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데빌호무를 묘사할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손가락 끝이나 머리카락, 립글로즈를 강조하는 등 '소녀'보다는 '여자'를 드러내는 연출이 많았던 것에 그저 쓴웃음만 나온다. 절대로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자신의 테마곡 이름 그대로 '꿈꾸는 소녀'인 채 남아있을 녀석에게 그런 연출이라니 블랙 유머가 따로 없다. 말하자면 호무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을 끌어안고 어두운 골방에 틀어박혀 나올 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다. 나이트메어 세계의 삼거리에 우뚝 서 있던 창문 투성이 흉칙한 탑 ( 참고로 일본어로 '창문'을 마도まど라고 한다 ) 은 그녀의 그러한 면모를 있는 그대로 상징하는 조형물이었다. 카나메 마도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가람의 인간.
요컨대 신극은 그녀의 단점이 몇 배로 견고해지는 이야기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번에 그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이, 아케미 호무라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평범한 감성을 지닌 평범한 아이였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호무라의 악마화에 충격받았다는데 나는 오히려 호무라가 제대로 인간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에 훨씬 더 충격받았다. 솔직히 좀 더 피도 눈물도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베베를 심문하기 전의 독백을 보면 호무라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제대로 자각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 무게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토로하기까지 한다. 마도카를 구하기 위해 버거운 다른 것들을 잘라내면서 달려왔지만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는 거겠지. 신극에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이 녀석이 중학교 2학년이라는 걸 실감했다.
TVA까지의 호무라는 가혹한 운명에 너무 시달린 나머지 더 이상 단 것도 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 미각치 같은 이미지였다. 그러나 신극에서 새롭게 드러난 모습을 보니 그녀 또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단 것을 달다고 느끼고 쓴 것을 쓰다고 느끼지만 그저 내색하지 않고 꾹 참고 있을 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나이트메어 세계가 호무라의 망상이 구현된 공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이 녀석 의외로 안경 시절과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초 나이트메어 세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그녀가 안경호무였던 것도 푹신한 세계이기에 하드보일드한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인 게 아닐까. 나이트메어 세계는 그 주인인 호무라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도 꿈같이 달콤한 세계였고, 그건 즉 호무라가 제대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설정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돌고 또 돌다 보면 어딘가에 이런 시간축이 있지 않을까 하고 바랐던 거겠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후반에서 호무라가 말하는 '사랑'이 진심으로 소름 끼쳤다. 평온하고 인간적인 행복에 대한 갈망도 정상적인 도덕 감각도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 씀씀이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주제에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시키는 행동 방식에서 드러나는 메세지가 무서울 정도로 명확했다. 마도카 외에도 중요한 것은 물론 있지만, 그런데도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전부 상관없다는 것.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세계마저 고쳐쓰고 그 본인마저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
< 이 무지개빛 눈동자는 '미쳐버린' 느낌이 확 들었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형용할 수 없을 호무라의 심정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여담이지만 호무릴리의 결계도 무지개색이었는데, 재미있게도 무지개는 동성애자의 상징이다.
그 외에도 정성스럽게 손톱 손질하는 것 하며 레즈비언/파수꾼을 은유하는 왼쪽 피어스까지,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
의외로 사람답구나 싶어서 안심하는 것도 잠시, TVA 때와 똑같은 짓을 하는 것도 모자라 더욱 악화되기까지 하는 그 모습은 솔직히 허탈할 지경이었다. TVA 8화에서 호무라가 사야카를 죽이려 하는 냉혈한 모습과 마도카에게 매달려 우는 인간적인 면모를 이어서 보여주는 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정반대 패턴을 본 것 같다고 할까. 물론 나이트메어 세계에서의 카나메 마도카가 진짜이며, 모두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 또한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심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결말에 대해 '그럼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호무라는 마도카의 본심을 이뤄주려고 한 거니까 문제 없는 거 아닌가?' 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열심히 싸워준 동료들에 대한 배신은 둘째치고서라도, 뭇 마법소녀들을 구원하겠다는 마도카의 결의는 분명 허세가 아니었으니까. '이것이 마도카의 행복이다' 라고 순 제멋대로 결정해 버렸다는 점에서 호무라의 반역은 결국 이기적이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 점에 대해선 그 성우인 사이토 치와가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
사이토 치와「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서 자기 이상의 형태대로 가두어 둔다는 건 애정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죠. 그걸 '사랑'이라고 호소하다니...무섭다고 봤어요」
[반역 팜플렛 중 발췌]
[반역 팜플렛 중 발췌]
그녀는 이번 신극에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이기주의의 한 정점을 찍었다. 오로지 자신의 에고를 위해 자길 위해 싸워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고, 최고의 대접으로 마중 나와준 최고의 친구를 최악의 방법으로 배신해 자신이 멋대로 개편한 세계 안에 가두었다. 특히 호무라와 동병상련을 느껴 가장 열심히 노력했던 사야카에게 돌려주는 대접은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몇 번을 반추해도 vs호무릴리부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쭉 열심히 해줬던 거지? 이제부턴 언제까지나 함께야." 까지가 열혈 왕도 전개 그 자체라 그 뒤의 내용이 더욱 지독하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으러 가는 히로인을 모두의 힘으로 구해낸다니 무심코 코끝이 시큰해져버릴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건만, 설마 잠자는 공주님이 구하러 와준 왕자님을 지하 감옥에 가둬버리고 차기 마왕으로 등극할 거라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호무라의 그런 사랑에 대해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닮은꼴을 하나 찾자면, 그것은 단연 '일그러진 모성애'일 것이다. 맹목적인 부모들이 자식의 선택에 지나치게 참견하다 못해 끝내 그 인생을 통째로 망쳐놓는 수많은 상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상대의 인생을 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짓이며, 그에 걸맞게 신극에서 호무라의 '사랑'을 그려낸 연출은 역겹다는 단어도 부족할 그 무언가였다. 특히 호무라가 다크 오브를 꿀꺽 삼킬 때가 최고로 기분 나빴다.
실제로 마도카와 호무라가 함께 활을 쏘는 장면을 잘 보면 호무라의 활머리에 못보던 흑장미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꽃의 꽃말은 '당신은 언제까지나 나의 것'이다. 마도카에게 영원히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자유를 주지 않겠다는 호무라의 결심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연출로, 마도카의 활머리에 붙어있던 동백 ( 고결한 사랑 ) 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인 것이 이 때 두 사람의 동상이몽을 저릿할 정도로 짚어주고 있다. 당신이 나를 아무리 소름끼쳐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영원히 놓지 않겠다는 새까만 애욕. 보통 마법소녀물 장르에서 '마법소녀'는 소녀의 성장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TVA까지 포함해 본작은 '호무라가 기를 쓰고 마도카의 성장을 막는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보통 사랑으로 세계를 바꾼다니 동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로맨틱한 이야기지만 이건 역겨웠으면 역겨웠지 어떻게 봐도 그런 깨끗한 감정이 아니라는 게!
이처럼 호무라의 '성장'이라는 것은 성장은 커녕 그저 단순한 '전락', 혹은 '미치광이의 발작적인 광증'으로 취급할 여지가 충분하다. 그 갈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자신의 단점을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한껏 극대화시키는 것, 스스로 악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돌진하는 것을 전락이라 부르지 않으면 무엇이라 부르랴?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구태여 그것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긍정하는 것은 그녀에게 '각오'가 있기 때문이다. 아케미 호무라는 분명 구제불능인 인간이지만 자신이 구제불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구제불능의 길을 걷는 구제불능이다. 호무라라고 스스로가 구원받지 못할 인간이라는 것을 모르랴. 그러나 그렇게까지 비뚤어지 않으면 마도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이대로 가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착실하게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깎아내며, 그저 마도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철두철미하게 거기에 다할 뿐. 세계의 존망이나 자신의 불행따윈 그녀에게 아무래도 좋은 문제다. 마도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마녀인 채로 죽으려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무라는 마도카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그녀 자신조차도 용납할 수 없으니까.
보통 광인들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지만, 호무라의 경우 그녀는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며 자신이 하는 일은 죄라는 것을 냉정하게 인지하고 있다. "잊어버린 채로 있고 싶었어.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짓밟아 왔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이 마음은 나만의 것, 마도카만을 위한 것."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이제 악마라고 부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이러한 '상식인'이며 '보통 사람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아케미 호무라가 거기까지 도덕을 뛰어넘도록 만드는 요인이 바로 카나메 마도카이며, 호무라에게 있어 그녀는 이 세상의 어떠한 도덕 관념이나 가치 기준보다 현격히 상위에 위치하는, 말 그대로 '신'과도 같은 존재인 거겠지.
호무라의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마도카는 유일하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나, 그와 동시에 호무라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저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호무라는 마도카를 만나 행복했고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파멸할 일도 없었겠지만 그 인생에 의미가 생길 일도 없었다. 아케미 호무라는 카나메 마도카만을 위한 비뚤어진 성처녀이며 그 사랑은 그녀의 존재 의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카나메 마도카에게 사람으로서의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녀는 기꺼이 악마라도 된다. 누구보다 경애하는 하나님조차 그 손으로 배신할 수 있다. 물론 우주를 뒤덮는 그 사랑은 무섭도록 비뚤어져 있고 그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런데도 호무라는 그 사랑을 위해서라면 사무치게 기다려왔던 하느님의 구원도 필요 없고 자신의 영혼조차 깡그리 불타버려도 좋다고 각오한 것이다. 그 하얀 꽃밭에서 자신이 지금껏 마도카를 위해 바쳐왔던 모든 헌신을 나이트메어 세계의 기억 없는 그녀가 한 달간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것으로 모조리 정산했던 것처럼.
"그렇지만 알 수 있어, 너는 진짜 마도카야!
이렇게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주어서, 정말로 기뻐!
...고마워.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어."
흔히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하다고들 말한다. 지금의 호무라도 그러한 것일 거다. 메이지의 문예 후타바테이 시메이는 'I love you'를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 로 번역했다지만 그녀라면 "마도카가 준 것이라면 고통마저도 사랑스럽다." 고 번역하겠지. 그것은 바꿔 말하면 곧 마도카를 사랑하면서 받았던 것은 즐거움보다 상처가 더 많았다는 뜻이나 다름없지만, 호무라는 상처 입는 게 두려워 그 마음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온몸이 너덜너덜해지는 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했다. 사람인 이상 당연히 제 몸의 보전을 위해 본능적으로 고통보다 쾌감을 원하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마도카가 주는 것이라면 그 마땅히 피해야 할 고통조차 쾌감과 동가치가 된다는, 실로 무시무시한 애정결핍에 기반한 각오.
신극에서 호무라가 성취한 '성장'의 두 번째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어떤 괴로움도 견뎌낸다는 것은 예전의 호무라도 동일하나, 그 때의 그녀는 그것을 '고통' 자체로 느끼며 아파하고 있던 반면 지금의 호무라는 그것마저도 마도카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으로 달게 감내할 자세가 되어 있다. 비슷한 처지였던 사야카와 비교하면 알기 쉽다고 생각하는데, 사야카가 [쿄스케의 손을 고쳐주고 싶다↔쿄스케의 연인이 되고 싶다]로 고뇌하던 것처럼 호무라도 쭉 [마도카를 지키고 싶다↔마도카와 함께 하고 싶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야카가 TVA의 끝에서 '쿄스케의 바이올린을 한 번 더 듣고 싶었을 뿐'이란 초심을 떠올리고 성불하는 것처럼 호무라도 '마도카를 지킨다'는 사명을 선택하며, 그 단순한 초심회귀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까지 한다. 꽃밭 대화나 나이트메어 세계의 조형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껏 마도카를 위해 고독한 싸움을 계속하면서도 내심 남들에게 이해받길 원하고 평온한 생활을 누리길 원하던 그녀였지만 신극에선 그러한 괴로움도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애타게 바라는 단 한 가지만 이루어진다면 어떤 죄도 짊어질 수 있고 그 대가로 느껴지는 고통조차 소원이 이루어진 증거로서 기쁘게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그 마음가짐은 분명 각오이며 성장일 터. 말하자면 안경호무와 데빌호무의 차이는 '마도카를 구한다는 목적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망설임없이 버릴 수 있느냐'의 차이이며, 데빌호무는 TVA에서부터 그려져 왔던 호무라의 그 성장에 대한 완성형인 것이다. 우로부치도 신극은 호무라가 졸업하는 이야기라고 했으니까.
그녀의 인생 최고로 영광스런 순간에서 호무라가 외쳤던 '사랑'은 그러한 성장과 함께 그녀가 마침내 자각한 것이자 그녀를 여기까지 흔들림 없이 내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지만 한편으론 너무나도 순수하고 자길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감정. 보면 호무라가 지닌 사랑의 대부분은 마도카에 대한 독점욕이라는 해석이 중론인 듯 하며, 나도 그러한 집착이 전혀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데도 그 사랑의 근간은 병적으로 결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호무라는 복도에서 언젠가 마도카가 적이 될 거란 것을 예감했을 때조차 울면서 친구의 증표였던 리본을 돌려줬으면 돌려줬지 마도카의 의식을 개조하진 않았다. 그저 그녀는 온통 회색빛이었던 자신의 인생에 구원과 의미를 준 마도카를 정말 좋아하고, 그렇기에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 마도카도 부디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의지를 짓밟고 자기 자신마저 치워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호무라는 자신을 사랑해준 후미노리에게 그 생명을 전부 바쳐 이 별을 선물했던 사야처럼 자신을 사랑해준 마도카에게 ( 과연 그 본인이 원했는지는 둘째치더라도 ) 자신을 전부 태워 그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주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더 이상 친구의 괴로움에 울지 않아도 되는 세계,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말이다. 분명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것만큼 모독적인 일도 없겠지만, 그런데도 사랑 말고는 지칭할 단어도 없지 않을까. 호무라가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선언했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납득했다.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온갖 억정 중에서 하느님을 인간으로 끌어내릴 정도의 힘을 가지면서 이렇게나 이기적이며 동시에 헌신적이 될 수 있는 감정은 사랑 외엔 없으니까. 동성애, 동경, 집착, 우정, 친애, 망집, 욕망, 모성애, 그리고 심지어는 신앙까지 모조리 집약되어 있을, 마도카를 찢어낼 때 호무라의 소울젬이 띠던 것과 똑같은 빛깔의 '컬러풀'한 감정. 겨우 소녀 한 명의 머리에 우주를 한 번 뒤집어엎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
"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어." 라니, 본래대로라면 호무라 자신이 행복하게 원환되는 상황에서 감동에 차서 해야 할 대사일 텐데...
모두에게 평등하게 베푸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면, 당신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게 악마의 사랑이라는 것일까.
하느님이 손수 이끌어주는 영원한 천국이 눈 앞에 있었지만 악마가 선택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해서라도 관철하는 무거운 사랑의 지옥이었던 것이다.
사실 제 3자의 입장으로서는 이쯤 되면 차라리 그녀가 마도카에 대한 독점욕을 제멋대로 발산해주는 편이 더 마음 편히 느껴지기까지 한다. 만인을 위해 존재하는 구제의 하느님을 멋대로 끌어내려 자신의 애완새로 기르겠다는 이기심의 극치를 부렸는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자기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든가 영문을 모른다. 자신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모조리 버려가면서 실행했다는 점에서도 그 사랑이 정말 진저리 쳐지도록 무겁다. 악마 세계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인간 마도카는 자연스럽게 수십 년 후에 늙어죽을 텐데, 호무라는 겨우 그 수십 년 때문에 자신의 구원마저 걷어차고 하느님께 거슬렀다. 보나마나 마도카가 죽은 후에 자신의 영생을 어떻게 보낼지 따윈 생각조차 안 했겠지.
이렇게 신극은 아케미 호무라의 성인식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번의 성장은 그녀의 인생에서도 유달리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것을 계기로 이번에 그녀가 간신히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것.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신극이 호무라 혼자 온갖 패악에 깽판짓은 다 벌인 주제에 손해 보는 것도 저 혼자라는 별 호구같은(...) 결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마법소녀로서 극에 다다른 것이 마도카라면 마녀로서 극에 다다른 것이 호무라, 악마 세계에서 그녀의 사역마가 멀쩡하게 나다니는 걸 보면 알겠지만 그 세계는 우주 통째로 호무라의 마녀 결계나 다름없다. 그런데 마녀 결계가 어떤 곳이던가? 모든 것이 다 있지만, 마녀가 원하는 단 한 가지만은 없는 세계, 오프닝 '칼라풀'에서처럼 모두가 즐겁게 춤추지만 그 중 호무라만은 철두철미하게 소외되어 있는 세계가 아닌가?
각각 전반부와 후반부에서 수미쌍관 형식으로 대조되고 있는 나이트메어 세계와 악마 세계는 양쪽 다 호무라가 만든 '이상적인 세계'라는 면에서 동일하나, 그 주인인 호무라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해서만은 180도 다르다. 악마 세계가 호무라의 소꿉놀이였던 나이트메어 세계를 본따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소원을 이루는 대가로 무엇을 지불했는지가 한층 무겁게 다가온다. 마지막 보너스 영상에서 호무라는 반쪽 달이 뜬 언덕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시작/영원의 오프닝 '루미너스'에서 마도카와 함께 앉아 다정하게 볼을 부비던 그 의자며 풀밭이지만 예전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었던 그 자리에는 절벽만이 뻥 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뿐, 신인 카나메 마도카와는 마음이 통해 있었지만 지금의 인간인 카나메 마도카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뒤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에 무심코 마도카이길 기대하며 돌아다보고, 눈치없이 나타난 큐베를 화풀이로 두들겨패는 것이나 오른쪽 ( 마도카쪽. 참고로 나이트메어 세계에선 보름달이었다 ) 이 빠진 달을 배경으로 춤추다가 그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도 그런 공허감의 상징이었을 터.
하지만 나는 지금 호무라가 불행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지금에야말로 비로소 행복의 최절정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로부치는 인터뷰에서 호무라가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그녀의 인생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패배로만 점철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병약한 아이로 태어났던 것? 잠시의 치기로 덜컥 '마도카를 지키는 내가 되고 싶다' 고 계약해버린 것? 3주차에서 나를 구해달라는 마도카의 부탁을 받아들였던 것? 아니면 마도카가 신이 되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 세는 것조차 포기할 정도로 반복했으면서도 결국 호무라는 마도카를 붙잡을 수 없었다. 언제나 언제나 그녀는 마도카가 멀리 떠나가 버리는 뒷모습을 무력하게 손놓고 바라보기만 해야 했으며 급기야 마지막 루프에서는 그 존재마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무릴리가 등장했을 때 지나갔던 '되다 만, 만들어지다 만, 멍청한 모습. 너는 언제나 웃음거리'라는 마녀문자는 실로 정확한 자기평가였던 것이다. 지금껏 호무라는 심장병을 가진 반편이로 태어나 평범한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최약의 반편이 마법소녀로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심지어 괴물이 되어서도 껍질을 깨지 못한 채 부화한 반편이였으므로.
그리고 신극은 그런 그녀가 인생에서 최초로 손에 넣은 승리이다. "겨우 잡았다." "이제 두 번 다시 너를 놓지 않아." 그 때의 호무라는 소름 끼칠 정도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바로 그 친구 본인을 배신했을지언정 어쨌든 이제 이걸로 겨우 그녀와의 약속을 완수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 때 호무라의 목소리 톤이 안경호무였던 것도 분명 그것 때문이었을 터, 지금의 고독이 괴롭지 않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도 않겠지. 후회 따윌 할 정도의 어중간한 사랑이었다면 하느님을 인간으로 깎아내리고 우주를 통째로 뒤바꾸는 것이 가능했을 리 없다. 밝은 태양 아래에서 함께 춤추는 동료들과는 달리 반쪽짜리 언덕에서 외롭게 홀로 춤추면서도 마도카를 구속하게 해주는 힘의 결정인 다크 오브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이 녀석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에게는 발푸르기스의 밤을 쓰러뜨리면 이 거리를 떠난다는 정도의 각오도 있었으며, 나이트메어 세계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참해 보일 뿐 마도카가 죽는 것을 반복해서 지켜보아야 했던 루프 세계와 마도카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마수 세계보다는 백 배는 더 나은 상황이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보석이 눈 앞에서 산산히 깨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무력하게 몇십 번이고 그 잔해를 지켜봐야 하는 고통과 그 보석이 절대로 손에 들어오지 않는 고통 중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럽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에 호무라가 걸은 길은 처절했지만 그만큼 그 결실 또한 값졌다. 호무라는 자신에게 있어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를 배신하고 다시 한 번 고독을 자처하며 스스로 영혼을 깨부수는 아픔 속에서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했고, 그 결과 비뚤어진 방식일지라도 카나메 마도카를 구한다는 일생일대의 염원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예전 Fate/Zero의 후기에서 우로부치가 '이 세상은 차감제로의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해피 엔딩은 불가능하며, 만약 해피 엔딩을 내려고 한다면 흑을 백으로 바꿀 정도의 기적이 필요하다' 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호무라는 사랑의 힘으로 그것을 해낸 것이다. 본래 호무라가 여기까지 마도카의 구제에 집착하게 된 것도 바꿔 말하면 '여기까지 했는데도 마도카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마도카의 구원은 곧 호무라의 구원이기에 호무라의 인생이 시작하는 것에는 우선 '마도카의 행복'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도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한 걸음이겠지.
물론 위에서 사야카와 그녀를 서로 비교하며 '호무라의 성장은 일그러져 있다'고 비판하긴 하였으나, 평화로운 나라에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아이의 사고방식과 전쟁지대 소년병의 사고방식을 똑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그와 같이 원환 후에 천천히 자신을 돌아다볼 여유가 있었던 사야카와 마도카 이외의 소중한 모든 것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포함해 전부 버리지 않으면 도저히 버텨나갈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처해버린 데 이어 정인의 희생을 오직 자신만이 기억하고 있다는 형벌같은 삶을 살면서 쉴 틈도 없이 괴로워하던 호무라의 성장을 같은 선상에 놓고 이야기할 순 없다. 설령 사야카나 마도카처럼 바람직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사람이 어린 시절에 응당 경험해야 할 것을 모조리 생략해 버리고 후다닥 어른의 계단을 올라버린 듯한 식의 불완전한 것일지라도 호무라는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며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대가를 감내할 각오가 있고 그 점에서 그것은 분명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종류인 것이다.
TVA 완결 이후, 3년간 기다려왔던 만큼 확실히 보답받은 작품이었다. 솔직히 TVA가 너무 깔끔하게 결말이 났기 때문에 사족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지만 막상 보고 나니 뱀에게 발은 커녕 뿔과 날개까지 돋아나 거대한 드래곤이 되어서는 날 한 입에 꿀꺽 삼켜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우로부치도 인정했듯이 TVA와는 달리 스토리가 캐릭터에 끌려가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나기사의 활용 방식이나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두 번이나 세계 재편에 휘말려버린 꼴이 된 마미, 쿄코 등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압도적인 영상미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반전 덕에 솔직히 그 정도 단점은 아무래도 좋게 느껴질 정도다. 그 엔딩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니 중압감이 장난 아니었을 텐데 정말 멋진 작품을 만들어줬다. 팬 서비스와 감동과 반전 요소를 황금비로 성립시킨 것도 모자라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팬 서비스마저 전개상 의의가 있었다니.
특히 호무라 팬의 한 명을 자처하는 나에게는 최고급의 팬서비스나 다름 없었다. 그야 배경 설정상 호무라가 주인공 역할을 맡으리라는 것은 미리 예상했지만, 설마 주인공도 모자라 탐정에 흑막에 최종보스까지 저 혼자 다 해먹을 줄은! 심지어 신극의 모티브인 차이코프스키 3대 발레곡도 그 전부가 호무라에게 몰려있다시피 하지 않았나. 신극의 실질적인 주인공답게 이것저것 많이 갖고 있는데, 큐베의 실험 대상이 되어 잠들어 있던 현실의 호무라가 왕자님이 오셔서 깨워주기를 기다리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악마가 된 호무라가 그 까마귀같은 악마 복장을 보아할 때 <백조의 호수>의 흑조 오딜 ( 오데트 공주? ) ,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호무릴리가 <호두까기 인형>이겠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케미 호무라란 캐릭터의 묘사 방식이었다. 마마마가 막 방영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TVA 1화에서 교실로 걸어들어오는 호무라를 보자마자 '아, 이 장르에선 얘를 좋아해야겠다' 라고 결정했다. 이유는 별 것 없었다. 그저 무슨 수를 써서든 A가 B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만들고 거기서 피어나는 오만 광기를 그리는 우로부치의 장기를 생각했을 때 분명 이 녀석은 훌륭한 사랑의 전사이고 마법소녀물 장르 역사상 최흉최악의 ㅁㅁ 캐릭터가 될 거라는 직감을 느꼈다. 요컨대 나는 호무라가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아하려고 했고 또한 실제로 미쳤기 때문에 좋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신극은 완벽했다. 무언가의 팬으로서 기쁜 일 중 하나는 처음 그 대상에 반하게 만들었던 매력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게는 신극의 아케미 호무라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자학적이고 융통성 없고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무엇이든지 희생시키는 그 광기는 확실히 TVA에서 내가 홀딱 반했던 그녀 그 자체로, 선악에 관계없이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우로부치 주인공의 전형이었다. 누가 뭐래도 난 이번에 호무라는 어디까지 가도 어떤 모습이 되어도 여전히 내가 좋아한 호무라일 거라는 우주적인 보증과 그에 수반하는 무한한 안도감을 손에 넣었고 그것은 분명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엔딩에 긍부정을 말할 수는 있어도 '아케미 호무라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제 앞으로 호무라가 어떤 죄를 짓더라도 두렵지 않다. 그 죄의 무게가 고스란히 마도카에의 사랑임을 깨달은 이상 이제 어떤 호무라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모습으로 전락한다고 해도 분명 괜찮다. 호무라가 호무라인 채로만 있어준다면 어디까지 망가지더라도 내던지지 않겠다. 악마가 되어 우주까지 뒤집은 동기가 고작 '어디에도 가지 마' 에 지나지 않는다니, 이렇게나 요령 없는 아이가 그렇게나 열심히 생각해서 내놓은 대답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결말마저도 기특하게 느껴진다. 본래 순수한 아이인 만큼 한 번 미치니 쓸데없이 푹 썩은 다메닝겐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그 약함을 타인에게 보이며 어리광 부리려 하지 않는 프라이드가 사랑스럽다. 물론 그녀는 확실히 미쳤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이어서 차라리 죽어주는 편이 그 주변 사람들과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부류의 인간이지만 그런데도 나는 이 얼마나 순수하고 성실한 아이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느니 차라리 현실을 통째로 바꿔서라도 자신의 이상을 꿰뚫으려고 하는, 그 시기 소년소녀 특유의 결벽성 말이다. 솔직히 신극을 보면서 너무 행복했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미친 것처럼 혼자 실실 쪼개면서 나왔다.
다만, 역시 이걸로 호무라가 구원받을 미래가 완전히 증발해버린 것이 괴롭고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는 상실감이 쓰라린 것도 사실이다. 확실히 신극은 내게 최고의 팬서비스였지만 그와 동시에 최악의 폭거이기도 했으니까. 솔직히 호무라가 머리 이상하고 이기적인 녀석이라는 것 정돈 TVA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것마저 뛰어넘은 무언가로 레벨 업 해버린 것 같다. 몇 번을 되새겨도 미스테리오소의 연극 느낌이 너무 지독해서 호무라에게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가 거기까지 치달아 버리는 과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기에 더욱 복잡하다. 이 작품은 그녀의 심정에 대한 정리였다. 호무라는 마도카를 지키지 못했을 때마다 무능한 자신을 주먹으로 짓뭉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슬펐고 어느덧 그 감정은 쌓이고 쌓여 우주를 바꿀 정도가 되었다. 가족이 모두 모여 즐겁게 이삿짐을 푸는 카나메가를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마도카에게 인간적인 행복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던 호무라의 기분이 새삼 사무친다. 응당 그녀에게 주어져야 했을 인생, 행복하고 평범한 카나메 마도카, 호무라가 마도카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건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호무라는 자신의 죄를 대속하는 존재였던 마도카를 도로 끌어내렸다. 이제 그녀는 갈 곳을 잃은 자신의 업보를 고스란히 뒤집어쓸 것을 각오해야 할 테고 그 삶의 방식은 지금껏 짓밟아온 것이 너무 크기에 오로지 철두철미한 파멸로밖에 갚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녀 자신의 의지가 불러온 결과이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고통받는 원인의 거의 모든 것은 그녀 자신의 선택에 귀결하고 있는 것이다. 호무라는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오직 카나메 마도카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손을 내쳐버렸다. 이제 구원받을 여지도 또 그럴 마음도 없기 때문인가, 리본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때의 그녀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끝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호무라에게 있어서 진정한 '구제'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엔딩에서 자연 속에서 사는 마도카와 도시에서 어둠과 비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호무라가 손을 잡고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이 정말 가슴 아팠다. 두 사람은 마지막에 같은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그 앞에는 갈림길이 있겠지. 결국 호무라는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악마까지 되어 언제까지나 고독하다.
< 호무라의 자기 혐오, 혹은 단점의 형상화가 아닐까 싶은 가짜 거리의 아이들.
이 중 호무라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랑'의 그림 속 마녀 문자를 해석하면 '외톨이가 잘 어울린다'는 뜻이 된다. >
무엇보다도 슬픈 것은 이제야 간신히 마도카를 지키는 자신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무라가 자신을 좋아할 수 있게 될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가슴을 펴고 '난 마도카를 구했어!' 라고 자랑한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럴 뻔뻔함이 있다면 리본을 돌려주지도 않고 반쪽짜리 언덕에서 홀로 춤추지도 않겠지. 애초에 호무라 스스로 자신의 에고를 위해 마도카의 고귀한 소원을 더럽혔다는 자각이 있기에 그녀는 악마를 자칭하고 있는 거니까. 종반 가짜 거리의 아이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는 것도 마도카의 신상에 석류를 던지는 장면의 대비로, 마도카의 희생을 무위로 만드는 마녀는 용서할 수 없다고 잘난 듯이 떠들어 놓고선 정작 제 손으로 그녀의 각오를 꺾어버린 것에 대한 자학이 아닐까. 아케미 호무라는 소름 끼칠 정도로 이기적인 인간이며 그 사랑은 끔찍할 정도로 비뚤어져 있다는 것 정도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
신극의 호무라에 대해 우로부치는 '미혹을 버리고 히어로로 성장했다' 고 평했다. 그 미혹은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마도카 이외의 다른 소중한 존재', '더 이상 죄를 짓는 것에 대한 거부감' '이해받고 싶다는 갈망'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마도카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 이란 의미도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의 재개편 후 호무라는 각성하려는 마도카를 일촉즉발로 간신히 멈추면서 자신의 인생을 고귀하게 여기냐고 물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이번에는 질서와 욕망 중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다. 마치 매달리는 듯한 그 물음에 마도카는 멈칫거리면서도 룰을 멋대로 부수는 건 좋지 않다고 대답하고, 호무라는 괴로운 듯이 웃으며 예전 그녀에게 받았던 리본을 되돌려준다. "역시 이건 너에게 제일 잘 어울려." 라는 말과 함께.
아마, 그 물음은 호무라 나름대로의 어리광이었을 것이다. 사야카의 앞에선 난 이제 악마라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마도카가 이 세계를 받아들여주길 기대했던 거겠지. 비록 거짓되고 위태로울지언정 네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 환상을 인정해 달라고, 널 위해 여기까지 전락한 나를 긍정해 달라고, 이렇게나 추하게 비뚤어졌더라도 너에게 바치는 순정은 진심이라고.
그리고 마도카는 호무라가 만든 세계를 부정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의 세계는 악마가 만든 은의 정원이며, 아무리 마도카를 위한 행위였다 할지라도 결국 그녀의 각오를 짓밟은 것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호무라의 사랑은 분명 사랑이지만, 이기적인 사랑인 것이다. 호무라는 자신의 행동이 마도카의 결의를 짓뭉개는 것임을 알면서도 '내가 마도카가 사람으로서 행복하길 원한다' 라는 땡깡을 부린 결과로서 그녀를 되찾았으므로.
요컨대 호무라가 마도카에게 리본을 돌려준 것은 배신에 대한 사과 표시이며 그와 동시에 결별 통고였을 것이다. '최고의 친구'라는 찬사와 함께 재회를 약속하며 건네받았던 그것을 돌려주었다는 건, 나는 더 이상 너의 최고의 친구를 자처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겠지. 그 장면에서 이 악마 녀석 정말로 모든 것을 버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쩌면 악마 세계에서 마미, 쿄코와 절연했던 것도 그러한 맥락은 아니었을까. 3주차에서 이젠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이 둘이라면 분명 날 죽여줄 거야'라고 처음으로 동료를 신뢰한 호무라에 대해 '반드시 널 구해내겠어'라며 열심히 싸워준 동료들. 그 마음을 배신한 이상 이제 호무라에겐 그녀들과 차를 마실 자격도 무언가를 받을 권리도 없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단 하나에 매진하기 위해 찻잔을 깨 마미와 결별하고 사과를 거절해 쿄코와 결별하면서도 한편으론 마미에게 자신의 깃털을 들려주거나 쿄코에게 사과를 조르다가 주인님의 명령으로 받지 못한 가짜 거리의 아이들이 아까운 듯이 강물 위로 떠가는 사과를 쫓아가는 ( 까마귀 사역마들은 아예 탐욕스럽게 파먹기까지 했다 ) 걸 보면 호무라도 나름대로 이 둘이 소중했던 걸지도 모른다.
TVA가 한없이 해피 엔딩과 닮아 있는 배드 엔딩이었다면, 신극은 한없이 배드 엔딩에 가까운 해피 엔딩이었다. 하느님은 시련을 주시지만 그 끝에는 구원이 있고 악마는 쾌락을 주지만 그 결과는 파멸이라고 하던가. 씁쓸해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제 이걸로 된 거라고 만족할 수 있었던 TVA와는 달리 신극의 결말은 폭풍 전의 고요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예상치도 못한 칼날로 되돌아오는 세계관, 비록 지금은 평화롭게 보일지라도 그것들은 전부 유치한 어린애 눈속임일 뿐으로, 중요한 문제는 아직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아서 아주 작은 계기만으로도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위태로움을 느낀다. 세계를 바꾼 첫날부터 마도카는 신으로 돌아갈 뻔 했고, 사야카는 네가 악마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며, 호무라 또한 언젠가는 마도카는 물론 한 때의 동료들 전부와 적이 되리라고 예감하지 않았던가. 마도카를 위해 세계마저 고쳐썼는데도 루프 세계에서와 똑같은 딜레마에 시달리고 있는 호무라의 처지가 그저 우스울 뿐이다. 마도카를 지키기 위해 마도카 본인의 의지마저 짓밟아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어느 쪽이든 그녀의 본심이라니, 세상에 이렇게 지키기 힘든 사람이 또 있을까.
몇 번을 되새겨도 이렇게 일그러진 해피 엔딩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지 싶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원환의 이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마도카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든가, 샤를롯테가 사람이 되어 마미와 친해진다든가, 쿄사야의 동거나 큐베의 항복 선언 등 도대체 어디의 기회주의 2차 창작이냐고 묻고 싶어지는 '완벽한 세계Perpect World' 인데도 불구하고 불안감밖에 들지 않는다는 게 진짜 대단하다. 마도카의 인간적인 미련도 작중에서 제대로 드러냈고, 언뜻 보면 완전승리를 거둔 듯한 호무라도 사실은 하느님의 발끝만 간신히 땅바닥에 붙들어놓고 있을 뿐으로 자신의 행동에 죄의식을 갖고 있다는 밸런스가 절묘하다. 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위태로움이 실로 마마마답다고 생각한다.
마도카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언젠가 평범하게 죽을 때까지 호무라의 싸움은 계속 되겠지.
아마, 이 모형 정원이 얼마나 연약한지는 호무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신극의 모티브 중 하나인 '호두까기 인형'은 주인공 클라라의 꿈 속에서 생긴 일을 그린 책으로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문 뱀처럼 어디서부터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전형적인 환상문학이다. 영화 끝에 마녀 문자로 '이것은 누구의 꿈?'이란 문장이 나왔던 것도 이를 염두에 둔 연출로, 신극이 호무라 ( =클라라 ) 의 꿈으로 시작해 꿈으로 끝났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꿈은 덧없어서 언젠가는 깨는 법, 마도카가 언제까지나 자신의 손 안에 머물러주진 않을 거라는 것 정돈 이미 그녀도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을 터.
< 과자의 나라Country of sweets는 호두까기 인형이 쥐 여왕을 물리친 후 감사의 표시로 여주인공을 데리고 가는 환상 속의 나라이다.
이대로 행복한 꿈 속에 있겠느냐, 아니면 잠에서 깨겠느냐 하는 의미의 이정표. >
그렇기에 호무라는 온갖 나라의 문자로 불필요하게 '끝'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이 상처투성이 팔을 내밀어 주었던 창문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그 리본으로 꽁꽁 묶어버리고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정돈 잘 알고 있다, 내게 신의 구원따윈 필요없고 이 이야기는 여기서 완전히 끝났다고 필사적으로 발악이랄까 애원했던 게 아닐까. 속편이 나온다는 말은 겨우 만든 악마 세계가 무너진다는 말이니까. 본래 카나메 마도카가 마법소녀물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최종화에나 가서야 겨우 변신한 주제에 그 위상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끝없는 괴로움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계속 고민한 끝에 보여주었던 숭고한 '각오' 덕분으로, 그로 인해 생겨난 권능을 호무라가 멋대로 빼앗아 갔으니 이제 TVA 2기든 또 다른 극장판이든 이 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면 마도카가 빼앗긴 힘을 다시 돌려받게 되는 내용이 될 것은 필연이기에.
이제 과연 후속작이 나와서 호무라의 행복을 무참히 짓밟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막을 내리고 그 세계의 붕괴를 상상의 여지로 남겨둘 것인가, 신극은 어느 쪽으로 굴러도 괜찮은 결말로 끝났다. 그리고 이만한 돈줄을 이대로 끝낼 리가 없으니 후속작이 나오는 것은 아마 기정사실이겠지.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제 이것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팬으로서 계속 작품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아예 없진 않지만 너의 은의 정원을 들을 때마다 지금 호무라는 만족스럽구나, 이 녀석은 이제서야 무언가를 이뤄내고 행복을 손에 넣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가 간신히 달성한 낙원이 무너져 버리는 미래따윈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어디에도 가지 마' 라는 그 광기에 등골 오싹한 공포를 느끼면서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 버리는 마도카의 등을 몇 번이고 봐왔을 호무라의 심정을 상상하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가 치른 대가에 비해 이렇게나 무른 세계인데도 그것을 필사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이 가련하다. 호무라는 사랑받은 적이 없기에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몰라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사랑마저도 이렇게 요령 없고 투박한 형태로밖에 실현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결국 나와버린다면, 나는 아케미 호무라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서까지 관철한 '사랑'의 결말을 지켜보고 싶다. 결국 언제나 어디까지나 여전히 요령 없이 성실하고 자학적으로, 둔감하기는 커녕 오히려 신극에서 새롭게 밝혀진 면모를 보면 마미 못지 않게 섬세한 심성의 소유자인데도 불구하고 마도카를 위해서라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그녀가 결국 그 끝에 다다른 도착지가 어디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TVA에서의 행보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또다시 자신의 에고를 멋대로 밀고 나간 대가를 뒤집어쓰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그 장례식에 꽃이라도 뿌려주고 싶다. 이 사랑은 아케미 호무라가 쌓아온 모든 헌신과 죄가 집약되어 도달한 정점이며 나는 그에 수반하는 영광과 파멸 중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은 채 전부 긁어모아 오롯히 그녀에게 안겨 주고 싶은 것이다. 감히 행복을 빌어주기엔 너무 멀리 가버린 녀석이니 그것만이라도 해줄 수밖에.
어쨌든 이것이 호무라가 선택한 성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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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벽에 이런 공들인 글을 ㄷㄷ.... 사실 많은 분들이 정 떨어진다니 어떻게 배신하냐니 하시는것 같습니다만.... 그냥 엄청 단순히 생각하면 호무라는 '자신의 구원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걸 희생'한 거 아닌지 생각해보면 왜 호무라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악을 반정도 자처한 아이였습니다. 호무라는... 그리고 tva가 해피엔딩의 거죽을 뒤집어 쓴 배드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반역의 이야기는 배드엔딩인 척하는 해피엔딩 아닌가 생각해봅니다만 이건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ㅋㅋ 다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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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호무라는 욕을 먹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정신병이라고, 그 사랑을 위해 행복 불행에 관계없이 자신이 결정한 길을 살아갔던 사야카/쿄코/마미와 그 외 우주의 모든 것들의 자유의지를 짓밟았음은 확연하니까요...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 행복해질 거라고 단정짓고 서드 임팩트를 실행해버린 제레와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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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무라가 성장한 건 결단력 정도... 내면적인 성장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뭔가 어른스러워진 마도카나 사야카와는 달리 호무라는 끝까지 어린애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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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다! 논문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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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극장에서 봤으면 일어설수나 있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장에서 멘탈나간사람들 끌어내느라 힘들었을듯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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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극장에서 봤으면 일어설수나 있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극장에서 멘탈나간사람들 끌어내느라 힘들었을듯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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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무라가 성장한 건 결단력 정도... 내면적인 성장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뭔가 어른스러워진 마도카나 사야카와는 달리 호무라는 끝까지 어린애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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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호무라는 욕을 먹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정신병이라고, 그 사랑을 위해 행복 불행에 관계없이 자신이 결정한 길을 살아갔던 사야카/쿄코/마미와 그 외 우주의 모든 것들의 자유의지를 짓밟았음은 확연하니까요...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이 행복해질 거라고 단정짓고 서드 임팩트를 실행해버린 제레와 다를 바가 없어 보여요. | 14.04.05 07: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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