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아담은 이브와 결혼하기 전에, 또 한 명의 처가 있었다고 한다. 그 정체는 바로 ‘릴리스’로, 아담과 함께 흙으로 만든 여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릴리스는 성품이 굉장히 악한 편이었고, 때문에 두 사람의 결혼은 실패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리린’이라고 불리는 악마 자식이 태어났으니, ‘에반게리온’이라는 판타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아담과 릴리스, 그리고 ‘이브’의 이름을 가진 에바. 이브는 성경이 말하는 최초의 인간 여성으로,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이용해 만든 존재이다. 아담을 이용해 사람이 만든 에바, 그리고 이브의 자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어머니가 악마 릴리스였던 리린. 선악 구도에 대한 반전을 담은 작품인 만큼 작명에도 이렇게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작품의 제목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신세기’는 방영 당시 기준 21세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창세기’라는 뜻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또 ‘에반게리온’은 Eva(이브)와 Angel(사도)을 합친 단어이기도 하며, Evangel(복음)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동시에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에바(Eva)가 사도(Angel), 즉 생명의 시조와 융합하여 인류가 보완(Evangelium)에 이르게 된다는 서드 임팩트의 내용 자체로도 생각할 수 있으니, 네이밍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에반게리온 팬이라면 익숙할 물결 장면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안노 감독은 캐릭터 이름이나 에피소드 제목 등에서 언어의 중의적 속성을 활용한 의미 부여 효과를 자주 노린다. 나중에 언급할 레이의 이름도 그렇지만, 앞서 살폈던 타브리스의 이름인 ‘나기사’ 역시, 19편에서 설명한 대로 ‘사도’라는 의미를 내포한 동시에 발음 그대로 ‘물결이 밀려오는 곳’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사실 ‘해변 메타포’는 에반게리온 작품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캐릭터의 심리 묘사 중에 자주 등장하는, ‘해안의 물결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해와 소통’의 상징인데, 카지의 대사 중 ‘여자와 남자 사이엔 넓고 깊은 강이 있어.’라는 부분과 대응하는 동시에 엔드 오브 에바 마지막 장면에서 아스카와 신지가 (둘의 사이가 아닌)하나의 물가를 곁에 끼고 함께 누울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는 것이다. 카오루라는 캐릭터는 근본적으로 사도와 리린 사이의 이해와 소통을 맡은 만큼 이름 자체에 해당 메타포를 지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에피소드 제목에도 안노의 중의적 언어 사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선 TV판 26화의 제목을 보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인데, 표면적으로는 할란 엘리슨의 1969년 소설 제목을 딴 것이지만 의도적으로 ‘사랑’에 해당하는 글자를 한자가 아닌 가타가나 ‘아이’로 적은 덕분에, 해석에 따라 ‘세상의 중심에서 나(I)를 외친 짐승’이 될 수도 있다. 에반게리온의 중요한 주제 두 개가 결국 사랑과 자기 자신인 만큼 두 의미를 의도적으로 한 단어 안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극장판 ‘사도 신생’ 역시 비슷한 장난을 담고 있다. 영어 제목은 ‘Death and Rebirth(죽음과 신생)’였는데, ‘사도’는 일본어로 ‘시토’라고 읽히고 ‘죽음과’ 역시 ‘시토’라 읽기 때문에 두 제목은 같은 발음을 공유하고 있다. 신극장판의 네이밍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에반게리온 ‘Q’는 일본어 ‘급(갑작스러운)’과 영어 ‘Quickening(촉진, 태동)’, 그리고 글자 그대로 ‘의문’의 의미를 영리하게 한 곳에 담은 것이며, ‘신 에반게리온’의 ‘신’ 또한 의도적으로 한자 표기를 피하여 ‘새로운/진짜의’라는 의미와 영어 ‘Sin(죄)’의 의미를 교묘히 아우르고 있다.
참 무서운 아이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릴리스 얘기로 가자. 마녀의 성품을 가지고 아담을 찼던 악마의 부인 릴리스. 물론 전설과 애니메이션의 설정은 기본적으로 별개로 취급해야 하지만 기본 모티브를 동일하게 차용한 작품인 만큼 이해를 돕기 위한 선에서의 활용은 유효하다. 실제로 작품 안에서 레이라는 캐릭터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앞서 살핀 것과 같이 릴리스의 영혼 그 자체를 온전히 담고 있던 초대 레이는 2대 레이와는 다르게 전설 속의 릴리스에 좀 더 매치가 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오코가 어린 꼬마를 자신의 연적이라 착각할 정도로 초대 레이의 눈 안에는 질투를 넘은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릴리스라는 존재는 제레의 입장에서는 속죄를 통한 죽음과 부활 의식을 치르기 위하여, 또 겐도우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신을 만들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 릴리스의 까다로운 제어가 불가결했다. 용이한 관리를 위해 레이라는 그릇에 릴리스의 영혼을 따로 보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코 건과 같은 마찰이 생기자 겐도우는 릴리스의 영혼이 그렇게 다루기 쉬운 게 아님을 알았을 것이다. 인류 보완은 사도의 내습을 완전히 막은 뒤, 그러니까 아무리 빨라도 2015년은 되어야 실현할 수 있을 텐데(실제 서드 임팩트는 2016년에 발생한다.) 그 긴 시간 릴리스의 영혼을 인간이 컨트롤해야 한다는, 아주 중요하고 어려운 숙제가 생긴 것이다.
‘레이’라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이미지는 굉장히 많다. 우선 가장 유명한 것으로 카구야 히메 이야기. 어느 늙은 노인이 대나무 안에서 예쁜 여자 아기를 발견하고 곱게 키웠는데, 그 아이가 다 자라서 달로 가게 됐다는 내용의 일본 전래 동화이다. 달에서 온 릴리스와 겹치는 심상이 많은 데다 안노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던 ‘세일러 문’ 또한 카구야 히메를 모티브로 채용한 작품인 만큼 에반게리온과 실질적인 연계가 있을 법 하다. 또 일각에서는 레이라는 캐릭터를 현실계와 환상계의 접점에서 둘 사이의 소통을 돕는 ‘무당’의 이미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 에반게리온의 중요 소재 중 하나인 ‘인간과 사도(‘나’와 ‘남’)의 소통’에 있어 생명의 시조의 영혼을 담은 레이가 큰 역할을 하게 되므로 납득이 가는 발상이다. 또 하나는 제작 스태프가 밝혔던 ‘늑대 인간’ 모티브로, 달이 되면 본래 모습을 찾는 짐승을 역시 달에서 온 레이의 이미지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핏 우스운 연결 고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달의 주기’와 레이 사이에는 상당한 연관 관계가 있으니 곧 자세히 짚게 될 것이다. 아무튼 레이라는 캐릭터가 이렇게 커다란 인기를 끌며 세대와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시각의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녀 속에 녹아 있는 무수한 심상과 모티브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성격도 외모도 완전 반대
그녀의 프로토 타입 캐릭터, 평범하다.
사다모토의 인터뷰에 따르면, 레이라는 캐릭터는 ‘붕대를 감은 소녀’라는 노래를 듣고 영감을 받아 만든 캐릭터라고 한다. 해당 노래 가사 중에 ‘새하얀 붕대로 얼굴을 감싸고 방에서 나오는 일이 없다’는 부분이 있는데 가만 보면 레이 그 자체인 수준이다. 아무튼 안노가 목표로 했던 캐릭터 이미지는 ‘만질 수도, 정체를 알 수도 없지만 어쩐지 곁에 두고 싶은 소녀’였단다. 레이의 눈을 빨갛게 디자인한 것은 작품 속의 이유(카오루와 함께 인간과 다른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와는 별개로, 레이의 초기 디자인이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여자 아이 캐릭터였던 탓에 포인트를 필요로 했으며 또 기획 당시 에반게리온 게임 제작 담당 스태프들이 도트 캐릭터 구별을 위해 따로 요구를 했다는 모양. 그리고 에반게리온 캐릭터는 한 눈에 봤을 때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들였다고 한다. 사다모토는 그것을 위해 특별히 헤어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고 밝혔는데, 예를 들어 ‘음의 이미지’를 부여한 레이의 경우 몽롱한 느낌이 드는 엷은 블루에 포인트가 되는 붉은 눈동자를 가지게 됐으며 ‘양의 이미지’를 부여한 아스카의 경우 머리와 눈동자를 기준으로 레이와 완전한 색상 대비(붉은 머리와 푸른 눈)를 이루게 됐다. 다만 신지의 경우 수수한 흑발로 어느 쪽에나 동화할 수 있는 색상 설정이다.
수업 태도는 불량한 편?
안노의 말에 따르면, 아야나미 레이는 그녀가 죽어도 다른 누군가 자신을 대신할 수 있음을 아는 소녀이며, 때문에 그녀는 삶 자체에 그리 큰 가치를 두고 있지 않다. 에반게리온의 많은 캐릭터가 서로 ‘표면적인 관계’만을 유지하고 있다면, 레이는 존재 자체가 표면적인 선에서 그치는 소녀인 것이다. 애초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가능성 자체가 부여되지 않은 불운한 아이. 그녀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그것을 가질 수도, 가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 생활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학교에 와서도 대부분의 시간은 창문 밖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같은 반 토우지의 말에 따르면 레이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침울한 소녀. ‘무(無)’에 가까운 레이. 그녀는 어떤 아이일까?
만남 1
만남 2
레이의 첫 등장은 다들 기억하고 있겠지만 1화에서 미사토를 기다리던 신지가 우연히 시선을 둔 곳에 서 있던 교복을 입은 레이였다. 이 장면은 사실 그녀에 대한 미스테리 중에서도 중심에 놓여 있는데, 의견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시간을 거슬러 온 3대 레이’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나중에 더 자세히 얘기하는 걸로 하고, 신지가 ‘정식으로’ 레이를 처음 봤던 것은 네르프 안에서였다. 신지가 초호기 탑승을 거부하자 그를 대신하기 위해 몸에 붕대를 감은 채 헐떡이던 소녀. 결과적으로 아야나미 레이는 신지가 에반게리온에 타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셈이다. 당시 레이가 그렇게 큰 부상을 입었던 것은 가까운 과거의 영호기 탑승 실험 때문이었는데 그 때엔 레이의 신변을 그렇게 걱정하던 겐도우가, 여기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초호기에 태우겠다고 하는 건 아무래도 신지에게 자극을 주기 위한 노림수였던 모양이다. 참고로 사키엘과의 전투에서 초호기가 부상을 입었던 부분은 눈과 팔로, 당시 레이가 다쳐 붕대를 감고 있던 부위와 일치하여 재밌는 평행 사건을 만드는 부분이었다.
신지, 좀 많이 놀라는 것 같다.
긴장을 푸는 레이
그리고 겐도우의 안경
겐도우는 2대 레이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레이가 부상을 입었을 때 화상을 마다하지 않고 그녀를 구하려고 했던 겐도우의 모습은 네르프 안에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아들인 신지에겐 도통 사랑을 주지 않던 그가 레이에게 진득한 애정을 보였던 것은, 그녀가 유이의 클론인 만큼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대입했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 또한 겐도우 타입의 보완을 위한 작전이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리뷰 15편에서도 밝혔지만, 초대 레이의 까다로운 영혼을 보완에 용이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겐도우는 선행할 작업이 있었다. 레이는 겐도우와 그 안의 아담과 융합한 후, 초호기에 탑승한 신지와 최종적으로 합일하여 신이 될 소녀였으니, 그 과정이 자연스러운 경로를 따를 수 있도록 겐도우는 의도적으로 그녀의 인간 관계를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2대 레이가 겐도우의 안경을 중히 여기며 그에게 의지하게 된 것도. 이후 신지에게 서서히 접근하여 호감을 가지게 된 것도 결론적으로는 모두 겐도우의 시나리오였다는 소리가 된다. 후에 다시 영호기 기동 실험을 했던 날, 레이는 겐도우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겐도우의 안경을 지닌 채로 엔트리 플러그 안에 탑승한다. 실험이 무사히 끝나고, 레이는 목을 뒤로 젖히며 눈을 감는데, 그녀의 입 주변에서 조그만 공기 방울이 나온다. 레이가 그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음을 묘사하는 연출이었다. 그런 만큼 심리적 안정을 기하기 위해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하는 사람인 겐도우의 안경을 부적의 용도로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인연의 시작
신지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그러나 라미엘을 무찌르고 난 후, 그녀의 무사를 확인하고, 또 그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하며 눈물을 보였던 것은 겐도우가 아니라 신지였다. 그리고 레이도 그에게 진심으로 웃어 보였다. 이후 레이의 신지에 대한 마음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겐도우의 안경 하나만 소중히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의 인연은 조금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5화 中
레이 "너, 겐도우 사령관님의 아들이지? 아버지를 믿을 수 없니?"
신지 "당연하지! 그런 아버지 따위!"
고생이 많다, 신지.
15화 中
같은 사람
신지 "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야?"
레이 "몰라…그걸 물으려고 여태 날 보고 있었던 거니?"
15화에서 신지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레이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야? 레이는 그에게 모르겠어, 하고 답한 후, ‘그걸 묻고 싶어서 계속 날 보고 있었던 거야?’라고 물었다. 이 장면은, 5화에서 신지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자 감정 표현이 없던 레이가 돌연 변모해 인상을 쓰며 그의 뺨을 때렸던 상황과 유의미한 대비를 이룬다. 이제 레이의 마음 안에서는 겐도우가 아니라, 신지가 더 크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레이 "기다려요! 아직, 신지가…!"
레이는 절대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아이였고, 어떻게 보면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소녀였다. 그런데 그랬던 그녀가 명령을 어기기 시작한다. 최초의 사건은 16화의 레리엘 전 당시였다. 신지가 사도 속으로 흡수된 후, 미사토는 아스카와 레이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는데, 레이는 처음으로 작전 부장의 지시를 거부한다. “기다려요! 아직, 신지가!” 비슷한 말을 입에서 막 꺼내려던 아스카도 레이의 이 반응에 짐짓 놀란 눈치였고, 후에 신지에 대해 나쁜 말을 하며 그녀를 자극했던 것 또한 ‘멍청한 인형이라고 생각했던 레이의 변화’를 아스카 역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6화 中
보면 알겠지만 그냥 막 집어 던진다.
신지 "이제 그런 경험 하기 싫어."
레이 "그럼 자고 있어."
"자고 있으라니…?"
"초호기엔 내가 타."
16화 中
같은 사람
레이 "오늘은 자고 있어, 나머진 우리가 할 테니까."
신지 "그치만, 이제 괜찮아."
"그래, 다행이네."
세 여자(미사토, 레이, 아스카)의 걱정 속에서 무사히 귀환한 신지. 눈을 뜬 그의 앞에는 레이가 앉아 있었다. 15화에서 5화의 장면과 대비를 이루던 것과 같이, 16화에선 6화의 장면과 또한 의미 있는 대비를 이루고 있다. 당시에도 꼭 지금과 같이 누운 신지 앞엔 레이가 있었고, 그녀는 건조한 목소리로 작전 내용을 읊었다. 신지는 에바에 타기 싫다고 했고, 그녀는 그렇다면 타지 말라 했다. 신지를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이 대신 타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이는 신지를 정말로 걱정하고 있었다. 신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레이는 신지에게 말했다. “오늘은 자도 돼. 나머진 우리가 대신 할게.” 예상치 않은 전개에 당황하며 괜찮다고 말하는 신지. 그런 그에게 "그래, 다행이야." 하며 그녀, 웃었다.
신지 "미안해! 쓰레기 말곤 만진 거 없어."
레이 "고, 고마워…!"
"고마워…, 감사의 말…처음으로 했던 말…."
"그 사람에게도 한 적 없는데…."
그 날을 기점으로 둘 사이의 관계는 빠른 속도로 진전한다. 17화에서 토우지의 부탁으로 레이의 집에 함께 들르게 된 신지는 레이의 더러운 방을 직접 정리해 주었고, 그런 신지에게 레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맙다’고 말했다. 신지와 토우지가 돌아간 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생각에 잠긴 레이. 지금 그녀는, 겐도우에게도 한 적 없는 감사 표현을 신지에게 했다며, ‘자신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는, ‘순수한 10대 소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어 18화에서는 3호기의 파일럿이 된 토우지가 레이에게 그녀의 마음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 나왔다.
토우지 "신지를 찾는 거라면 여기 없어. 니가 다른 사람을 걱정하다니, 별 일이네?"
레이 "잘 모르겠어."
"니가 걱정하는 건 신지야."
"그래? 그럴 수도…있겠다."
"…맞대도."
후에 바르디엘이 된 에바 3호기를 공격해야 할 시점에서, 그녀는 또 한 번 명령에 상관하지 않고 공격을 망설인다. “타고 있어, 그 애가.” 3호기 안에 타고 있는 것이 토우지이며, 따라서 그를 공격하는 것이 신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 것이란 사실을 레이도 알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아는 것도, 관심도 없던 그녀가 이렇게 많이 변한 것이다.
미사토 "레이! 기체를 버리고 탈출해!"
레이 "아니, 내가 없으면 AT 필드도 사라지고 말아. 그러니까, 안 돼…."
레이의 ‘자신이 되기 위한 반항’은 2대 레이의 최후를 그렸던 23화에서 절정에 달한다. 여기서 레이는 작전 명령 자체를 어기고, 영호기와 함께 자폭을 택한다. 이유는 하나였다. 신지를 구하기 위해서. 명령에만 집착하던 레이라는 소녀가, 연을 맺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한 소년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 이는 결국 ‘너’와의 관계를 통해 진짜 ‘나’를 찾게 된 소녀의 이야기이며 에반게리온의 가장 중요한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미사토의 말을 거역한 채 모드 D로 옮겨 죽음 바로 앞에 선 2대 레이는 엄밀히 말하면 레이가 아니게 된 것이다. 영혼의 그릇도, 무(無)에 가까운 존재도 아닌, 그저 사람의 마음을 가진 14살의 소녀가 영호기 안에 타고 있었다.
[에반게리온] 27. 레이 ② 피를 흘리지 않는 여자/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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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늦은 밤에 오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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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시대를 초월하는 슈퍼히로인의 장으로 넘어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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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대단한 캐릭터죠.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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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착햤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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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습니다. 이것만 읽어도 왜 에반게리온이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인지 심히 공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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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고 원하는 대로 느끼면 되는 그냥 애니 맞습니다. ㅎㅎ | 13.01.23 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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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는 착햤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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