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찾아온 민족 대명절 설.
손주 손녀들의 재롱과 아양 떠는 것에 가족들이 하하 호호 웃어간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들을 먹어가면서,
오랜만에 만난 식구들과 담소를 나눈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 누르스름하니 맛있어 보이는 전을 하나 집어먹었다.
적당히 기름진 전은 감칠맛이 도는 것이 참 맛있었다.
하지만 내 뇌리에 이상한 위화감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전은 언젠가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며늘아, 전맛이 평소랑은 다르구나."
"아버님, 그전은 동서가 만든 거예요."
아아, 그런가 그래서 저번 설과는 다른 맛이었던건가.
나는 어쩐지 씁쓸해졌다.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건가보다.
전의 맛 하나마저 변하고 마는 것이다.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다 오마."
나는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선 밖으로 나갔다.
밖은 충분히 어두워져 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씁쓸한 마음에 우두커니 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변하지 않는 건 없는 걸까.
젊은 날에는 무언가가 변하기를 절실히 바랐건만, 지금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게 참 아이러니할 뿐이다.
내 자식들도 내 손으로 키울 때만 하더라도 그저 어린 애일 뿐이었건만,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되어 제자식을 낳음으로써 내게 손주를 안기고.
젊은날에 팽팽히 허리를 치켜들고서 길을 걸었건만은,
늙은 지금, 굽은 허리로 구부정하니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다.
나는 변해가는 현실이 무서워졌다.
변하지 않는 건 대체 무엇인가.
막막함에 그저 고개를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올려다보니 평소와 같은 자리에서 빛나는 달이 보인다.
저 달만큼은 내가 세상 뜨더라도 계속 저자리에 떠있을 테지, 영원히.
내게도 그런 영원한 것이 있는 걸까?
어느새 담배가 다 태워져있다.
"슬슬 돌아가 볼까."
나는 문을 열고 모두가 있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에서 웃고 있는 식구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가족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제서야 나는 씁쓸함을 잊고 은은하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왠지 평소보다 막걸리가 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