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두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해살은 내 단잠을 깨우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법한 밝기였다.
평소와 같았으면 커튼을 치고서는 단잠을 더욱 느끼겠다면서 누웠을 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도 창가 자리에 앉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내 방에서 잠을 깨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내가 일어난 잠자리는 조금은 딱딱한 기차좌석이었다.
흔들리는 차량의 느낌을 다시금 느끼면서 내 자신이 작은 배낭만을 메고선 집을 나섰다는 현실을 다시금 실감하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독립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가출이었다.
집에서 느껴지던 자유로움이 그리웠지만 한편으로는 내 꿈을 쫒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출발지를 그리고 있는 내 상상력이었다.
시계를 살펴 본 나는 도착역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가방에 들어있던 작은 책을 꺼내어서는 읽기 시작했다. 뭐, 책이라고 해봤자 요리에 관한 책이었지만 말이다.
이제부터 독립 혹은 가출을 해서 혼자 살게 된 내가 아사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 준 누님의 센스였을 것이다.
나는 책의 제목을 읽으면서 옅은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자취생도 하는 평범한 요리법.”
책을 손에 쥔 나는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기차의 천장을 올려다만 볼 뿐이었다.
갈색의 천장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나무로 이루어진 내 방의 천장은 조금은 곰팡이도 폈고 낡아서 구멍도 난 그러한 방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러한 방에서 잠에서 깨어난 나는 문득 낡은 책상에 앉아서 고민에 잠겨보았다.
고등학생으로서 이제 1년을 보냈던 나로서는 성공의 갈림길과 내 꿈을 쫒고 싶다는 두 가지의 길에서 사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들을 간혹 이러한 말씀을 하셨다. 성공하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성공의 잣대로 내 꿈을 결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생각이 목표지점에 닿는 순간 아버지에게 달려가 말씀을 드렸다.
“소설가를 하고 싶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으로 불쌍한 연기를 하는 나였지만 태어난 직후부터 이어지던 무뚝뚝한 표정은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릴 뿐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시지도 않으시고 그저 tv에 나오는 바둑 프로그램을 보시다가 한 말씀하셨다.
“소설가로 성공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이더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솔직히 없었다. 그저 글쓰기 좋아서 도전하는 중이었고 여러 번 공모전에도 낙선한 상태였다. 물론 아버지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셨다.
나는 애써 고개를 회피하며 땀구멍에서 나오는 긴장감의 땀이 흐르는 것을 어설픈 연기로 닦아낸다.
“뭐... 그거야...”
“장담을 못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건 꿈이라고 할 수가 없다.”
바둑이 놓아지는 소리가 울린다.
“꿈이라는 건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단다. 꿈을 쫒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건 바보 같은 말이지. 너도 그런 바보가 되겠다는 것이더냐?”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있던 나는 울분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18년 이라는 삶 속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도전이나 반기를 든 적이 없었기에 칫 이라는 작은 투정을 부려보았다. 이것이 내 인생의 첫 반항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내 행동에 눈썹을 움직이시며 불쾌한 심정을 보이셨지만 어떠한 말씀을 하시기보다는 바둑에 다시 집중하시고 말씀하신다.
“인생은 바둑과 같은 것이란다. 첫 자리를 잘못두면 모든 게 엉켜버리지. 그러니 네가 하고자 하는 일에 첫 수를 잘못 두었으면 좋겠구나.”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지나치신다.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나는 새장 속의 새처럼 아름다운 하늘을 자유로이 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
“응? 뭐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게냐?”
“전,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게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아버지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고 그렇게 자리를 떠나실 뿐이었다.
저녁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서 누님과 아버지가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생 시절에 돌아가셨다.
“하아,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건가요?”
올해 대학생이 된 누님은 침울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밥상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나와 아버지를 훑어보고 서는 나에게 손짓을 한다. 아마도 방으로 나중에 따로 보자는 내용일 것이다.
“크흠.”
아버지께서는 헛기침을 하시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화만 날 뿐이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화나신 건 오랜만인데.”
“뭐...”
나는 누님의 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나 때문이라고 할까.”
“너 때문이라는 건 알고 있어. 내가 원하는 건 이유야 이유.”
이유라면 간단했다. 꿈을 쫒는다고 말하는 바보 같은 아들에게 성공하는 길을 인도하시고자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바보 같은 아들 때문에 아버지가 속상해 하신다는 것이다.
“작은 갈등일 뿐이야.”
“작은 갈등의 원인이 뭐냐고...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말아줘.”
누님도 한계에 도달하셨는지 아버지와 같은 한계치에 임박했다는 제스처로서 눈썹을 꿈틀거리고 계셨다.
“후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을 뿐이야.”
“소설? 네가?”
“응.”
누님은 그 즉시 내가 쓰고 있었던 소설을 읽으시고서는 작은 감탄도 없이 바로 무언가를 준비해주셨다.
“자, 여기 기차표하고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자취를 했던 맨션이야.”
“응? 어째서 이런 걸 나한테 주는 건데?”
“뭐, 간단한 가출이나 혹은 독립이라고 할까. 어차피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하고도 가까우니까 걱정할 건 없어.”
누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기차 안에서 옛 기억을 하고 있던 나는 어느새 책을 가방에 넣고서는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을 들으면서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기차는 곧이어 정차하기 시작했는지 서서히 속도를 줄이다가 이내 멈춘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몇몇 사람들이 기차에서 내리며 새로운 발을 내디딘다.
“후우, 더워...”
나를 처음으로 만끽해주는 것은 뜨거운 여름철의 날씨였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 속에서 내가 있던 시골보다도 발전한 빌딩 숲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도시에 나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였지만 그래도 몇 번 와봤던 길이었기에 누님이 그려 준 초등학생 수준의 지도를 보고도 도착지점에 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여긴가.”
땀을 닦아낸 나의 두 눈에 보이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언덕이었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것은 커다란 귀찮음이었다.
골목길 어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와 장을 보러 나오신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기를 어느 정도가 흘러서야 도착한 곳은 낡은 이층 건물의 맨션이었다.
맨션의 입구에는 이곳의 관리인이신 노년의 신사분이 주위를 정돈하시는 중이셨다.
“아아, 오늘 온다고 했던 젊은이가 자네로구먼.”
관리인께서는 나에게 사용할 방 열쇠를 비롯해서 이곳에서 지켜야만 하는 몇 가지 규칙들을 알려주신다.
“감사합니다.”
나는 인사를 들린 직후에서야 내가 살게 될 이층의 방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낡은 맨션답게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싸늘한 바람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입구에는 누님께서 미리 보내신 택배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택배 상자들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살피고서는 작은 방 안을 꾸미기 시작했다.
책장에는 책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고, 간단한 식료품들이 주방의 서랍을 점령했다.
옷가지들을 넣을 수 있는 붙박이식 옷장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작은 테라스의 창을 열고서는 주변 마을 풍경을 보면서 나름 만족스러운 풍경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짓고서는 방 안의 정리를 마무리 짓는다.
어둑해진 하늘 사이로 별 빛이 반짝거리는 독립 혹은 가출의 하루가 그렇게 끝이 난다.
누님께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을 드렸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지만 말이다.
책장에 있는 책을 한 권 꺼내어서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풍경 속에서 전등불을 끈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눕는다.
“흠, 내가 창을 열었던가.”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을 다시금 확인한 나는 다시금 자리에 누워서 두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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