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떠올랐는데도 한 영지는 아직 아침인 듯 거리가 밝았다. 이 영지는 하비덴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 누구도 눈독 들이지 않을, 굳이 힘써가며 가질 필요성을 못 느끼는 교통의 오지였다. 우선 세 방향이 험준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남은 한 방향은 바다였다. 애매한 남서쪽 부근에 위치하고 있어 무역의 중심지도 아니었고, 배는 한 달에 한번, 외부에 특산물을 수출하려 뜨는 배가 정기적으로 뜨는 유일한 배였다. 그래도 다른 영지와 다른 점이 조금은 있었다. 영지 내에 산에는 열매와 벌집이 이상할 만큼 많았고, 이 영지에서 나오는 꿀은 달지만 깔끔한 뒷맛으로 꽤 유명했다.
평소라면 잠들거나 가족끼리 집에서 대화를 나눌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기 무섭게 등불을 켜서 대문 앞에 걸어놨고, 등불을 잃은 집들은 어두컴컴해졌다. 마을 광장은 이미 바드, 음유시인, 광대 등이 자리를 잡고 사람들의 눈과 귀를 홀리고 있었다. 그동안 숨겨왔던 연심을 내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의 손을 잡고 춤추거나 같이 앉아 노래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술에 힘을 빌려서 서로에게 그간 쌓인 불만들을 털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단순하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더 많았지만. 그런 시끌벅적한 축제 속에서 눈매가 약간 처졌지만 입술 끝은 약간 올라간 사내가 여관 1층에 있는 술집에 앉아서 주인장과 조용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이 차이는 많아 보였지만 아마 오래된 친구 사이인 듯 사내가 대화하던 중 일어서서 다른 일을 해도 주인장은 그런 사내를 뭐라 하지 않았다. 사내는 미드를 홀짝이며 입술이 마르지 않게 유지했고, 술집에 사람들이 꽤 모이자 술집 중앙에 놓인 이질적일만큼 편해 보이는 의자에 몸을 맡겼다.
“안녕, 취남 취녀 여러분? 항상 여기 있었던 음유시인입니다.”
한껏 멋들어진 목소리로 하는 인사에 아무도 반응이 없자 사내는 멋쩍은 듯 웃었다.
“1년 만에 만월제를 다시 맞으니 기분이 들뜨는 걸요? 여러분은 어때요?”
“원래 1년에 한번 하기로 정했으니까 1년 만에 돌아오지, 멍청아!”
술집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음유시인이라 자칭하는 사내에게 야유를 보냈다. 하지만 음유시인은 얼굴하나 구기지 않고 웃으며 그 말들을 흘려들었다. 마치 매일 있었던 일인 것처럼. 사실 정말 매일 있던 일이었다. 이 사내는 가업을 거부하고 음유시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을어른들의 눈에 좋게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 오늘은 특별한 날이기도 해서, 제가 특별히 1년간 묵혀뒀던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려고 합니다.”
“그거 좋지! 형님, 이 게으름쟁이한테 좋은 놈으로 한잔!”
“됐어요, 전 미드면 충분해요.”
“그래, 그럼 나도 좋지! 이 게으름쟁이한테 미드 한잔!”
음유시인은 미드를 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1년하고도 이틀 전부터 시작하는데...”
“어이, 여기 한잔 더 받아라.”
“한잔 더 쏘시는 겁니까?”
“아니, 저기 저 사람이 이야기 값이라면서 주는 거다.”
대장장이 잭의 손을 따라가자 비싸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쓴 낯선 사람이 있었다. 분명 유동인구가 적은 하비덴에선 낯선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만월제 시기 만큼은 다른 지역의 사람이 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음유시인은 고맙다는 의미로 웃으며 미드를 들어보였다.
“뭐, 다시 시작하죠.
작년부터 나라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라미에라는 이름의 미녀가 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독이 든 음식을 먹인다는 겁니다. 한 영지에 한명이 먹을 때도 있고, 많으면 5명이 먹고 죽었다는 말도 있었죠. 뭐, 일단 이야기의 배경이 이렇다는 겁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긴데? 작년에 분명...”
“나 참. 이야기는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생기기도 한다고요. 아무튼 시작할게요.
작년 11월 27일이었습니다. 어느 사내가 나무 위에 올라가 열매를 따며 투덜거렸습니다.
-젠장, 뭐가 꿀이 흐르는 자연의 수도, 하비덴이야? 꿈이 흐르는 지루함의 수도, 하비덴이지. 어떻게 여긴 행사라고 말할만한 행사가 하나밖에 없어?
사내는 반이라는 사내로 가업인 건축업을 동생에게 떠넘기고 집에서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내였습니다. 사내는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해결사라는 직업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 아는 사람들이라 문제가 일어나면 서로 해결하거나 영주님을 찾아가지 아무도 반을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어이 반, 언제부터 여기서 이러고 있었냐?
반이 얹혀사는 가게의 주인아저씨는 인중에 대충 뜯은 귤껍질 같은 수염이 나있는데 본인은 그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저씨, 나 그냥 해결사 접고 집에 돌아갈까?
-그래? 그것 참 아쉽게 됐네. 오늘 너를 찾는 편지가 왔는데 말이야. 그것도 영.주.님이 말이야. 너는 해결사를 그만뒀다고 편지를 보내야 겠구만, 영.주.님한테.
-그만두는 건 약간만 미뤄둘까?
반은 따던 열매들을 아저씨에게 집어던지고 나무에서 뛰어내려왔습니다.
-사실 나랑 같이 불렀지만...야. 이놈아! 잠깐만!
아저씨는 사정없이 날아오는 열매에 두들겨 맞으며 쓰러졌고, 반은 착지를 잘못해 발목을 삐어 발목을 잡고 누웠어요. 두 남자는 한동안 풀밭에서 그렇게 누워있었습니다.”
음유시인은 미드로 목을 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젠장 늦어버렸네. 아저씨, 설마 영주님이 속 좁게 약속 시간에 좀 늦었다고 의뢰를 취소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누가 3시간을 좀으로 생각할지는 모르겠는걸.
아저씨는 따뜻한 물이 든 유리병을 얼굴에 문지르며 반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약간 음흉한 미소도 지으며 말이죠.
-사실 영주님이 그렇게 큰 그릇은 아니지. 전에 머리카락을 이상하게 자른 미용사를 영지에서 쫓아냈지 아마?
-에이, 그런 속 좁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을 리가 없어.
-그래, 저녁에 누가 쫓아오는 것 같거든 빨리 내 가게로 돌아와라. 짐은 다 싸놓으마. 마구간에 좋은 녀석으로 준비시켜 놓으마. 잡히지는 않을 거야.
풀썩하고 반이 넘어졌습니다. 뭐, 하비덴은 길을 돌로 포장했으니까 길 가던 사람들이 돌 사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것 정도는 부지기수죠.
-괜찮냐? 역시 이래서 돌길은 안 좋다니까. 차라리 흙바닥이 나았어.
아저씨는 반을 일으켜 세우며 영주의 성으로 끌고 갔습니다. 반은 도착할 때 까지 정신을 못 차렸죠. 역시 돌길은 위험하다니까요.
-멈춰라.
영주의 성문 앞에 근엄하게 서있던 경비병이 창으로 길을 막았습니다.
-그대들은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이곳에 왔는가.”
음유시인이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하자 경비병 아서가 테이블을 치며 웃었다.
“지금 그거 내 성대모사야? 트하하하하! 완전 똑같았다! 대단한데!”
음유시인이 자랑스러워하며 미드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반과 아저씨는 다 아는 사이면서 매번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경비대가 힘들겠다는 생각과 그런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 아서를 보고 약간의 존경심을 품었습니다.
-영주님의 부름을 받고 ‘달콤한 일각수’에서 양조사 푸룸과 반이 왔습죠.
-오기로 한 시간보다 많이 늦었군.
-이놈이 잠이 많아 들판에서 잠든 걸 어렵사리 끌고 왔습니다요.
-들어가도 좋다.
경비병은 하품을 하며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오늘은 미드라도 마셔야겠는걸. 먼저 가서 마시고 있을게.
-셋째 단지는 마시지마. 아직 하비덴 벌 독이 덜 빠진 단지니까.
아저씨는 걸어가면서도 뒤돌아서 잊지 말라며 계속 손가락을 세 개 들어보였습니다. 경비병의 일이 끝나자마자 대우가 바뀌는 아저씨를 보고 반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영주성에 들어가 ‘왜 시간에 맞춰서 안와서 나를 지금까지 일하게 하는 거지.’라는 눈으로 쳐다보는 하인을 따라 들어간 귀빈실은 꽤나 작았습니다.
중앙에는 작고 둥근 탁자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3명이 앉으면 가득 찰것 같은 소파 두 개와 술이 몇 병 들어있는 찬장이 전부였으니까요. 반과 아저씨가 귀빈실에 들어오고 한 1분정도가 지나자 영주가 우당탕거리며 꽤나 인상적이게 들어왔습니다. 침소에 들려고 옷을 갈아입던 중이었는지 위에는 영주가 아끼는 금수 놓아진 양모 옷이었지만 아래쪽은 타이즈만 입은 모습으로 들어온 영주의 모습은 웃길 만 했습니다만 반과 아저씨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습니다.
-반이 여기 있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늦으려고 의도하고 한 행동은 아니지만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제 몸이 먼저 움직이는 바람에...
영주는 딱딱하게 굳어서 자기 변호중인 반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죠.
-제기랄, 왜 이제야 오는겐가! 안 오는 줄 알고 걱정하다 죽는 줄 알았다네!
-예?
영주는 뭔가 걱정이 해결된 것처럼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반도 분위기상 영주가 벌을 안줄 것 같아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어요.
-영주님, 왜 이 미련한 것들을 보자고 하셨는지요?
아저씨의 물음에 영주는 중요했던 뭔가를 기억해낸 듯이 손뼉을 쳤습니다.
-아, 그래. 지금부터 이야기해 주겠네.
영주는 찬장에 술을 꺼내 술을 따르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래, 무슨 술이었냐?”
양조사 하디가 물었다. 눈을 크게 뜨며 ‘영주는 무슨 술을 마실까.’하고 생각하는 듯 했다.
“어...앤디 스트리트였던가?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해요!”
음유시인은 대충 얼버무리고는 하디를 타박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둘째언덕 검은 통나무집 아들은 하는 일이 잘 되는가?
-아이구, 영주님의 보은아래 해결사 일이 잘 되고 있습죠. 이 영지를 통틀어서 유일한 해결사가 바로 저 아닙니까.
반은 뒷머리를 긁으며 영주가 권하는 술을 마셨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잘 계신가?
-아유, 전쟁 이후에 다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는데도 영주님의 보은아래 아주 건강해 지셔서 다시 집을 짓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요.
-내가 뭘 했다고 그러나. 나는 힘없고 이름 없는 영주인 것을.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록 영주님이 사람 좋게 세금도 적게 거두시고 저희가 부탁하는 걸 많이 해주시지만 저흰 영주님이 호구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아저씨가 옆에서 반의 옆구리를 꼬집어 비틀었습니다. 아아악!”
관객 모두 음유시인의 옆구리를 꼬집어 비틀고 있는 아서를 쳐다봤습니다.
“왜? 현실감 있는 비명소리는 좋았잖아?”
아서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쓰읍, 하려면 살살하지 멍든 것 같네...크흠!
-그래...차라리 그냥 호구처럼 가만히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영주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네들 ‘꿀이 흐르는 자연의 수도, 하비덴.’이라는 글귀를 본적이 있나?
-저희 마을에서 저번 달부터 밀고 있는 홍보문구 아닙니까?
-그래, 저번 달부터 모든 물품에 그 문구를 새겼지.
아저씨는 술을 더 마시려는 반의 손등을 때리며 물었죠.
-근데 그 문구가 뭔가 잘못됐습니까? 혹시 수도라는 문구가 문제랍니까?
-아니, 잘못된 건 날세.
영주는 고갤 푹 숙였어요. 몸을 벌처럼 미세하게 떨었는데 우는 것 같았습니다.
-라미에가 그 문구를 보고 이곳에 찾아오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네...
아저씨의 표정이 굳었어요. 뭐, 반은 그러거나 말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죠.
-그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이틀 뒤에 와서 자기 음식을 먹어줬으면 한다는군.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이틀 뒤라...
-이툴 뒤?
반은 얼굴을 붉히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입으로 헛바람을 내쉬었어요.
-그럼 이 미련한 것들이 뭘 하면 될는지요?
영주가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어요.
-자네가...그날 내 대역을 서주면 하네.”
“이거 완전 쓰레기 새끼네!”
아서가 술에 취해서 일어났다.
“야! 그 새 흐끅 어딨어! 내가 흐끅!”
“거 술도 못하는 사람이 왜 자꾸 마시나, 마시기는. 밖에 보내!”
영주를 잡겠다며 아서가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술집에서 한바탕 난리가 벌여졌다. 결국 여러 사람에게 멍을 남기며 아서는 밖에 앉아서 아저씨가 불쌍하다며 울고 있었다.
“아무튼 영주가 대역을 서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역을요? 혹시 다른 방법은 없는 겁니까? 근데 왜 저놈까지 같이 부르셨습니까?
-자네가 거절하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하지 않겠는...
-마눨제눼요!
반이 갑자기 일어나며 박수를 쳤습니다.
-이줘버리고 이썼네, 이틀 디가 마눨쩨였어! 거리마다 꾸운 파이 향기가 달코마게 퍼지게쬬? 그날만큼은 취한 주정배이들이 노래하는 걸 말뤼는 사람도 읍고 모두 다 노래하면서 행복하게 보내다가 저녁 느께 머리맡에 뜬 가득 찬 다를 보면서 또! 노래 부르다 내이리 데겠죠!
반은 생각만 해도 흥겨운지 벌써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음유시인은 목을 풀고 노랠 불렀다.
“저 푸른 밤길을 혼자 걷고 있는 아주 어린 소녀야.
혹시 이 비틀거리는 주정뱅이를 도와주지 않으련?
혹시 그 찰랑이는 머리를 가까이해 주겠니?
너의 그 가는 팔로 이 주정뱅이를 세워주지 않으련?
오! 안되지, 안돼!
그 아저씨는 안돼!
아아, 마을마다 소문난 주정뱅이 아저씨.
술 취하면 어린 소녀를 어른으로 본다네!
너의 그 풍성한 머리털은 주정뱅이를 울게 하겠지.
너의 그 가는 손가락을 주정뱅이는 담밴 줄 알겠지.
아아, 마을마다 소문난 주정뱅이 아저씨.
술 취하면 어린 소녀를 어른으로 본다네!
아저씬 너에게 사탕을 줄 거야.
사탕을 먹으면 썩는다는 걸 알잖니?
착한 아가야 집으로 돌아가렴!”
하비덴 사람들은 이 음유시인의 노래를 좋아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이마를 긁고 있었고, 영주는 한숨을 쉬었어요.
-말로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군요. 아마 파이는 꿀에 절여진 열매로 만들겠죠?
낯선 사람이 문을 열며 들어왔습니다. 갈비뼈가 약간 보일정도로 마른 여자였지만, 불쌍하단 느낌은 들지 않았고, 얼굴에는 적당한 살이 있어 인상이 날카롭지도 않았어요. 으스스하기보단 봄날 아침에 들판에 서있으면 어울릴 분위기였죠. 신기하게도 말입니다. 근데 어떻게 갈비뼈가 약간 보이는 걸까요? 네, 그렇습니다! 여성은 상의를 가슴만 덮을 정도로 짧은 옷을 입고, 그 위에 긴 코트를 입고 있었던 겁...크흠, 흠.
-오? 멍가 아는 아가씐데? 마저, 그러케 하면 마시껬지. 근데 여기숸 꾸레 저린 열매로 퐈이를 만들지 아나.
-왜죠? 하비덴 꿀은 달아도 맛이 끈적하게 남지 않아서 재료로 쓰기엔 딱일텐데.
-그뤄니꽈.
반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일어나서 아가씨의 양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어요.
-퐈이에 단마시 쉽꽤 사롸지면 아쉽자나? 그뤈 단마슨 수레나 어울리지. 그리고 하비덴 버른 약간 도오?
-아니 그보다 아가씨는 누구요?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을 앉혔어요. 그러자 아가씨가 품위 있는 몸짓으로 인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제 편지를 보낸 라미에라고 합니다.”
라미에가 웃으며 고개를 살짝 들었습니다.
-너무 기대돼서 이틀 뒤에 오려다 오늘 바로 배를 타고 와버렸습니다. 그래도 음식은 이틀 뒤에 축제날 저녁에 해드릴 생각입니다. 전부터 이곳 영주님은 영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상상 이상이내요.
손을 잡고 만져보며 라미에는 말을 이었습니다.
-이 손...분명 팬만 잡고 서류만 건드리는 귀족들은 가지지 못할 손이겠죠. 손 구석구석에 박힌 굳은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굳은살은 팬만 잡는다고 박히는 게 아니죠.”
이윽고 눈물이 고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맑은 눈으로 응시했어요.
-이번에는 잘 찾아온 것 같습니다. 드디어 제 음식을 드시고 일어서실 분을 만난 것 같네요. 이름을 알려 주시겠습니까?”
-부와안! 이라고 합니다. 저는!”
음유시인은 미드를 일부러 오래 머금고는 알코올 냄새가 잔뜩 풍기는 입으로 관객들의 얼굴을 훑으며 말했다.
“아씨! 쓸데없이 현실적이네! 이따위 현실성은 언제 어디서든 사양 받을 거다!”
“쩝, 비장의 수단이었는데. 뭐, 계속 할게요.
반은 라미에가 인사했던 것처럼 인사하려 했지만 술에 취해 넘어지고 말았어요.
-바닥에서 주무시는 건가요? 역시 젊은 영주님은 몸을 불사르며 영지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시는 군요! 그럼 이 라미에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라미에는 싱긋 웃어 보였어요. 그리고는 머리카락이 날리게 강하게 뒤돌아 걸어 나갔습니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저씨는 술을 병째로 들어서 입으로 옮기면서 뭔가 골똘하게 생각했어요. 아저씨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결국 아침은 밝았습니다. 그리고 숙취가 덜 가신 반은 더 어지러운 말을 아저씨에게 들었고요.
-그래서...제가 그 사람이 하는 음식을 대신 먹어라?
-이놈이 어제 다 한 말인데 하나도 모르네? 너는 도대체 언제부터 취하셨어요?
-미쳤어요, 아저씨? 먹으면 바로 황천길인데 누가 그런 의뢰를 들어줘요?
반은 영주의 침대에서 이불을 박차며 일어났어요.
-그런 사람이 바로 너라니까.
아저씨는 옷을 입는 반을 돌려 세우고 말했어요.
-내가 어제 계속 생각해 봤는데. 굳이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잖아.
-그럼 그냥 먹기 싫다고 할까요?
-미쳤냐? 너 죽으면 어떻게 될지 갑자기 궁금해서 못 견디겠지?
아저씨는 문을 열고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나직하게 말했어요.
-요리를 못하게 하면...음식을 안 먹어도 되겠지?
반은 그 말을 듣고 단추를 잠그다 손을 멈췄어요.
-그렇게 되면 살아남고, 돈도 받고?
-이제야 뭘 좀 알아듣네.
반과 아저씨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자 라미에가 보였어요. 라미에는 추운지 두꺼운 코트를 입고, 말 두필을 끌고 밖에 나와 있었어요.
-아저씨, 라미엔가 뭔가 하는 사람 밖에 나가요?
-응, 너랑 같이. 참 좋은 기회지? 산에 가서 벌침 한방만 놔줘. 얼마간 움직이기 힘들게.
라미에는 밖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반을 쳐다봤어요. 그리고 웃어보였죠. 반은 얼굴이 붉어졌답니다. 반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매일 여기서 살던 반은 그렇게 춥지 않았는지 약간 가벼운 복장으로 나갔습니다.
-영주님, 저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식재료를 구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식재료를 구하러 가고 있죠.
-근데 왜 산길로 들어가는 거죠? 시장에 가면...
-시장은! 안갑니다.
반은 크게 소리쳤어요.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아저씨가 해준 당부를 기억했죠.
‘절대 마을로 가지 마라. 마을 사람들 모두 널 알고 있는데 라미에가 너보고 ‘영주님, 영주님!’하면 어떻게 되겠어. 이 짓거리 들키면 너 죽고 나 죽고 영주님 죽고 다 죽고 끝나는 거야. 알겠어?’
그래요, 졸지에 반에게는 이 영지 주민들의 목숨이 달려있었던 겁니다.
-시장에 안 가는 이유라도 있나요? 혹시 제게 숨기는 비밀이 있다거나...
-어, 어제 제가 불렀던 노래 기억하십니까!
-아, 그 주정뱅이 아저씨가 나오는 노래요?
-네, 사실 그 이야기가...이 영지에서 있었던 실화랍니다.”
“뭔 개소리여?”
팀이 치고 들어왔다.
“그럼 시방 그 주정뱅이가 진짜 있었다는 것이여?”
“아, 아저씨! 이야기 중이잖아요!”
음유시인은 미드를 마시며 팀을 타박하고 앉혔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선 그걸 노래로 바꿔서 사건을 이야기인 것처럼 숨기고 아이들에게 경고하고 있었던 겁니다. 숨기려고 했지만...어쩔 수 없군요.
반은 자기의 대처에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계속 말을 몰았습니다. 라미에는 부르르 떨며 말을 빨리 몰아 반의 옆으로 갔습니다.
-으으, 무섭네요. 이 영지, 자연의 수도라면서 꽤나 잔인한 일이 있었네요...
-아니, 뭐 노래니까 약간 과장되기도 했죠.
-그럼 저도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라미에가 생각하듯이 하늘을 쳐다봤어요.
-옛날에 한 소녀가 요리가 취미인 부모님을 따라 꿀이 유명한 영지로 여행 갔어요. 그 영지는 아주 예쁘고 푸른 곳이었죠. 근데 불행하게도 그 지역 벌들은 독이 있었어요. 성인을 죽이지는 못하는 독이었지만 마비시키기는 충분했죠. 소녀의 부모님이 그 독을 푼 음식을 먹고 마비된 사이에 소녀는 한 양봉업자에게 겁탈 당할 뻔 했습니다. 소녀는 도망치다 넘어져 돌에 머리를 박았고, 소녀가 죽은 줄 알고 벌에 쏘인 것처럼 하기위해 벌침을 놨습니다. 그럼에도 소녀는 살아났고, 그 양봉업자는 사형 당했습니다만...소녀는 몇 년간 기억을 잃고 괴로워 하다가 몇 년 전 기억을 되찾고 그 양봉업자와 관련된 사람들을 독살하고 다녔답니다.
-끝인가요?
-훌륭하죠?”
“개 새 기지, 개흐끅끼! 그 양봉업잔가 하는 새끼 어딨어! 내가 흐끅!”
아서는 또 참지 못하고 들어와 난장판을 벌였다.
“제바알! 아서, 취했으면 곱게 자라고!”
마을 사람들은 아서를 의자에 묶어버렸고, 입도 막아버렸다.
“계속해.”
“옙.
반은 라미에가 그 이야기를 안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 영지에서 있었던 일이거든요.
-근데 아쉽네요.
-뭐가 말씀입니까?
라미에는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눈으로 반을 쳐다봤어요.
-어제 들었던 파이가 먹고 싶었는데...못 먹겠네요.
-파이라...그 정도는 제가 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가까운 곳에 숲지기의 오두막이 있으니 거기로 가죠. 지금은 숲지기도 마을에 가서 놀고 있을 겁니다.
-와! 그거 좋네요. 근데 참 잘 알고 계시네요. 뭔가 자주 와보신 듯한...
-등산은 건강에 좋죠!
반은 말을 얼버무리며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오두막은 약간 경사진 언덕 위에 평탄한 곳에 있었고, 그 옆에는 벌집이 달린 나무가 즐비했어요. 오두막에 도착하자 라미에는 자기가 벌꿀을 따보고 싶다며 사다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근데 말입니다. 아까 하신 이야기 어떻게 끝납니까?
라미에는 언덕 끝자락 근처에 있는 나무 옆에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던 중이었고, 반은 오두막 입구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어요.
-결말이라면...
-그 불쌍한 소녀의 결말 말입니다.
라고 말하며 반은 소녀를 눈물을 흘리며 쳐다봤습니다...”
“야, 어이?”
음유시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흘렸다. 역시 감성적인 사람이 음유시인을 하는 것이다.
“아, 네? 제가 어디까지 했죠?”
“반이 결말 묻는 장면까지 말하다 갑자기 멈췄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뭐, 라미에가 그 소녀였고, 나무에 올라가 언덕 밑으로 투신해서 죽었습니다. 벌의 독으론 죽을 수 없다는 걸 소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근데 왜 거기까지 갔는데?”
“그 산이 그 양봉업자가 있던 산이었어요.”
관객들이 허탈한 듯이 한숨을 쉬거나, 야유를 했다.
“야, 1년 묵힌 것 치고는 결말이 엉성하네.”
“그렇죠? 괜히 1년을 묵힌 게 아니라고요. 결말이 엉성해서 그냥 놔둔 거였죠.”
사람들은 그래도 앞은 괜찮았다며 음유시인을 칭찬했다.
하지만. 뒷이야기는 음유시인이 말한 것과는 달랐다.
반은 라미에를 눈물을 흘리며 쳐다봤다. 그러자 라미에가 웃으며 말했다.
-모두 죽이고 이제 관련된 사람은 저 혼자만 남았어요. 혹시 반님은 벌에게 한번 쏘인 사람이 다시 같은 종류에 벌에게 쏘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라미에가 벌집으로 손을 뻗자 반이 급하게 뛰어가 사다리를 옆으로 쳐냈다. 라미에의 손이 벌집을 건드려서, 벌들이 튀어나왔지만 라미에는 이미 사다리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반이 떨어지는 라미에를 붙잡았지만 반은 한쪽 발목이 끊기는 통증을 느끼며 옆으로 쓰러졌고, 경사진 언덕 밑까지 굴러 떨어졌다. 한참을 구르다 나무와 하이파이브 하고서야 멈출 수 있었고, 하이파이브를 한 사람은 반이었다.
-끄윽, 라미에님,..괜찮습니까? 두꺼운 옷을 입고 오셨으니까 멍이 든 정도로 끝나면 좋겠네요.
반이 꽤 잘 보호했는지 라미에는 얕은 상처만 있었지만, 반의 몸에는 훈제 햄처럼 굵거나 가는 선들이 잔뜩 생겨있었다.
-말하지 마세요! 제가 영주의 하인들에게 말해 저희가 출발하고 천천히 따라오라고 했으니 곧 사람들이 올 겁니다. 곧 치료받을 수 있을 거예요.
-영주의...하인이요? 처음부터 알고 계셨네...아, 그냥 먹기 싫다고 할 걸 그랬나...
-고...마워요...미안해요, 미워해요...
라미에는 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따뜻했고, 포근하지는 않았다.
-네? 뭐한...다고요? 미워해요?
-이제...저 혼자만 남았는데...왜...
-그때 기억 잃었던 걸로, 그걸로 죽었다고 합시다...근데 영주님은 왜 노린 겁니까?
-모든 걸 알 필요는 없어요...아니, 모르는 편이 더 좋아요.
-어...그러죠, 뭐. 나중에 다시 만나면 술이나 한잔...
반은 굴러 떨어질 때부터 껴안고 있던 라미에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손을 멈췄다. 라미에는 반의 손을 때어내고 앉아서, 빠르게 붉어지는 반의 옆구리를 강하게 누르며 울고 있었다. 남녀는 한동안 풀밭에서 그렇게 있었다. 뭐, 이런 결말이었다.
낯선 손님은 음유시인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 미드 한잔 주세요.”
술집 주인은 어느새 밖에 나가 아서와 부둥켜안고 같이 울고 있었다. 낯선 손님은 한숨을 쉬고 돈을 올려두고는 술을 가지러 갔다.
“세 번째 단지는 아직 독이 덜 빠졌어요. 그 옆 단지 술을 마시세요.”
음유시인이 낯선 손님에게 말했다.
“아, 이야기도 다 했는데 이제 다시 노래나 부를까요? 흐크흠, 흠.
이 외로운 밤에 누가 나를 안아주나.
염소를 치는 저 자유로운 목동일까?
옆집에 사는 농부의 아내일까?
술을 따르는 저 야한 마담일까?
말을 타는 저 귀여운 귀족 영애일까?
오는 건 막지 않아, 가리지 않아.
뒷일은 책임 못 지지, 누구에게 칼을 맞아 나뒹굴든.
어찌 됐던 욕망은 채웠으니 웃으며 누울 수 있어.
누구든지 어른이라면 나를 위로해줬으면.
이 욕망에 충실한 나를 노예로 삼아줬으면.”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톰이 소리쳤다.
“야! 딴 노래로 뽑아봐라! 좀 더 그런 거 없냐!”
“그럴까요?”
음유신은은 관객들의 반응을 즐기다 이윽고 목을 가다듬으며 발로 리듬을 맞추기 시작했다.
“예쁜 아가씨 독을 품고 있는, 오, 예쁜 아가씨!
뭘 보러 여기까지 왔을까, 오, 예쁜 아가씨!
아가씨는 말을 타며 노래를 부르네.
아가씨의 노랫소리 남자를 부르지.
오, 저리가요 당신은 아닌 걸요.
그녀가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이 냄새가 달콤한 꽃인지
끈끈이 주걱인지 뭐가 중요해?
이 냄새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지.
오, 당신에게 줄 꿀은 없어요!
오, 당신에게 줄 꿀은 없어요!
거부한데도 말릴 수 있을까.
벌이 단 걸 원하는데 그럼 가는 거지!
이게 독일 수도 있어요!
당신 죽을 수도 있어요!
꿀이건 독이건 상관없어.
뭐든 많이 먹으면 죽는데, 뭐!
아가씨는 울면서 소리치네.
낯선 손님이 후드를 벗으며 음유시인과 같이 외쳤다.
“좋아해요, 미안해요, 미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