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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에 의한 인명피해는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보고되는데, 주로 북아프리카의 철도공사 현장에서 많이 발생했다. 북아프리카에 집중된 이유는 이 지역에서 서구 열강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들이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사자에 의한 피해는 꾸준히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1896년 케냐의 차보(Tsavo)에 위치한 철도공사장 캠프에 두 마리의 식인 사자 '고스트'와 '다크니스'가 출몰해 135명이나 되는 인부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다. 귀신처럼 나타나 인부들이 자고 있는 텐트를 습격해서 단숨에 인간을 찢어발기고 도망가 버리자 공사가 지연되어 버린다.
지능도 높아서 행동이 교묘한지라 잡기도 힘든 상황에서 사망자가 세자리수에 육박하자 인부들은 사자를 악마라 부르며 도망쳐 버렸고 공사가 중단될 것을 우려한 공사 감독관 페터슨 중령은 사냥 전문가 레밍턴과 함께 사자를 사냥할 것을 결심한다.
실제 실화의 주인공인 패터슨 중령이 직접 쓴 소설 '차보의 식인 괴물들(The Man Eaters Of Tsavo)'을 바탕으로 영화도 두차례나 만들어진다.
식인사자로 이름이 높았던 고스트와 다크니스는 콤비를 이루며 인간을 습격했는데,1896년 사살되기 전까지 135명을 잡아먹었다.
저 사자들의 박제도 아직 남아있다. 시카고의 Field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전시중. 박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숫사자지만 갈기가 없다. 차보의 사자는 세렌게티의 사자와는 달리 숫사자도 갈기가 없다고 한다. 차드와 중앙아프리카에서 서로 자국 중요 자료라고 하여 반환을 서로 요청한 적도 있다.
사실 사자들은 공사장의 시끄러운 소음 때문에 앓던 치통(물소나 다른 먹이를 사냥하다가 다친 상처로 추정)이 심해져서 완전 스트레스 과잉 상태였다고 한다.
영화에선 실화와 다른 게 여러가지가 있는데, 영화에선 인도인들을 미끼로 쓰긴 하지만 총을 소지한 상태였기에 그들이 놀라서 사자를 빗나가게 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론 그냥 인도인 노동자들을 강제로 우리에 미끼로 묶어둬서 써먹었고 이 일로 인도인 다른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영국인들에 대하여 저항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영악한 사자들은 이런 미끼를 노리지 않고 미끼 주변에 있는 다른 먹이(?)를 노렸는데 C.H. 라이얼이라는 애송이 영국 장교는 미끼를 노릴 사자를 기다리다가 그만 더워서 창문을 열고 잠이 들었고 사자는 그 장교로 배를 채웠다.
미끼인 인도인들을 무사하고 되려 대기하던 영국장교가 당한 걸 알고 패터슨 일행이 수색에 나섰으나 살점 일부와 찢겨진 옷과 장화만이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결국 1년여동안 135명이 사자에게 죽은 끝에 드디어 사자 한마리를 사살했고 그로부터 3주 뒤에 또다른 사자도 총으로 쏴 부상을 입혔다. 이 사자는 중상을 입어 피를 잔뜩 흘렸기에 피를 보고 패터슨이 추격했는데 부상당한 몸으로도 재빠르게 역습을 가했고 패터슨이 준비한 엽총 2개의 총알을 바닥나도록 쐈으나 사자는 기어코 그에게 덤볐다. 같이 따라온 조수들은 겁에 질려 나무에 올라간 통에 패터슨은 전력으로 달려가서 그들이 던진 총을 겨우 받아 아슬아슬하게 가슴과 머리에 명중시켜 사살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패터슨도 사자의 공격으로 옆구리와 다리와 왼팔에 꽤 큰 부상을 입었다...
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냥시에 불리한 숫사자 치곤 적은 갈기들(숫사자의 갈기는 위장막 역할을 한다)과 부러진 어금니로 인해 야생동물을 사냥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로 인해 쉬운 먹잇감인 인간을 공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당시 패터슨은 "그 어느 동물도 이 악마들만큼 사람을 죽이지 못할 겁니다." 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긔요미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인도에서 이 2마리의 식인사자가 죽인 사람의 3배가 넘는 사람을 죽인 참빠왓 식인 호랑이가 나타나고 만다
인류 역사 기록으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맹수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인도 참빠왓 지역에선 나타난 호랑이는 사람을 마음껏 마구 잡아먹었다. 영국군 장교이던 짐 코벳(1875~1955)이 이 호랑이를 잡고자 그리도 노력했지만 이 호랑이는 자신을 비웃듯이 유유히 사라져 사람을 사냥했고 코벳은 '오냐 누가 이기냐 보자' 1년 넘게 추격을 벌여 마침내 놈을 사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온 그의 책인《명포수 짐 코벳과 쿠마온의 식인 호랑이》를 보면 엄청 빠르고 게다가 머리도 영악해서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잠적한 곳은 얼씬거리지도 않았단다. 그래서 코벳은 냄새에서부터 흔적을 없애고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이 호랑이가 잡아먹은 사람은 모두 436명이나 되었다. 호랑이 배를 갈라보니 사람 살점이 가득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호랑이 이빨을 조사한 결과 이미 누군가가 총으로 쏴 이빨들이 상처를 입어 사냥을 할 수 없어서 잡기 쉬운 사람을 공격하여 사람고기 맛에 빠진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총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일절 얼씬도 안하는 치밀한 조심성까지 보였다.
이게 그 전설적인 식인 호랑이 사진...100년이 지난 사진이다. 참고로 코벳은 사람을 50명 이상 잡아먹은 인도의 식인 호랑이들을 11마리나 잡아 죽여 이 공로로 훈장에 대령까지 진급한 바 있다. 그것도 나이 63살 때까지도 식인 호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20c에 들어서 호랑이의 서식지가 줄어들어 인간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두 종족이 만나는 곳에서는 호랑이에 의한 인명피해가 제법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도의 순다르반스. 매년 수십 명의 사람이 죽는다. 1981년에도 사람을 100명 이상 잡아먹은 식인 호랑이가 2마리나 나타났다가 이번에는 인도 호랑이 연구의 권위자인 랄지 무파니야트 싱 박사가 두 달에 걸친 추격 끝에 2마리 다 사살했다. 하지만 싱 박사는 호랑이 보호에 기여한 인물이었고, 그가 식인 호랑이를 추격한 것도 이 호랑이 때문에 다른 호랑이까지 마구잡이로 사살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역은 불법으로 공원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꽤 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의 호랑이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데 바다를 헤엄쳐와 배에 타고 있던 경비원을 물어간 일도 있다. 불법 채집꾼은 물론이고 공원 수비대까지 공격한다. 한번 인간을 먹은 경험이 있는 호랑이는 높은 확률로 식인 호랑이가 되는데, 이는 인간이 잡기도 쉽고 먹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빨이나 턱을 다쳐 강하게 물어서 큰 사냥감을 잡지 못하는 호랑이들은 사람고기를 노리게 된다고 한다.
참고로 호랑이는 총으로도 잡기 쉬운 동물이 아니다. 순다르반스 감시원의 말에 따르면 호랑이가 달리기 시작하면 총알을 몇발을 쏘건 소용없다고 하는데, 이는 고양이과 동물들의 신체구조와 관련이 있다. 정면을 향했을 경우 피탄면적이 놀랍도록 줄어들고 부풀린 털 때문에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 따라서 급소인 미간을 정확히 노리고 사격했을 때 열에 아홉은 이마의 털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호랑이를 사냥할 때는 측면에서 배나 옆구리를 노리는 것이 정석인데 그래도 한방에 죽는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 호랑이를 사냥하던 엽사들이나 밀렵꾼들이 가장 많이 사망했던 원인도 총상을 입힌 후 역공을 당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호랑이도 죽지만 그 전에 달려와서 완빤치를 날리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 그러니 위에 식인 호랑이를 11마리나 잡은 짐 코벳이 전설적인 명포수로 추앙받는 거다.
인류가 총을 무기로 가지고 나서야 겨우 대적할 수 있게 된 맹수 중의 맹수다. 괜히 호환 마마 전쟁을 동급으로 치는 게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호랑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일본군은 독립군이 아니라 호랑이를 상대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김왕석이 쓴 맹수와 명포수를 보면 1930년대 항일 러시아인을 잡으러 간 일본군 소대 8명이 호랑이를 만나 1명만 피투성이로 겨우 살아서 달아나고 다들 호랑이에게 끔살당한 실화가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열뻗친 일본군이 100명 가까이 데리고 와서 호랑이를 잡으려고 했는데 산속에서 불을 켜면 나타나지 않고 불끄고 어둠에서 있으면 그야말로 귀신같이 나타나 공격하니 20명이 넘는 일본군이 죽고 결국 철수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류의 재해로는 소만악어에 의해 일본군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낸 사건. 기네스 북에도 올랐다. 동물에 의한 가장 큰 재앙(The Greatest Disaster Suffered from Animals)이라는 항목이다.
현존 최강, 최대의 파충류. 최대 길이는 6m, 무게는 1톤까지 나간다고 한다
1945년 1월 26일, 산키 작전을 수행 중이던 영국 해병대는 체두바 섬에 상륙했다. 체두바는 람리 남쪽의 섬으로 아직 일본군 수중에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람리에서 일본군 수비대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제4, 26, 71 인도여단이 영국 왕립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받으며 람리에 상륙했다. 해병대가 일본군 거점을 포위하자 900여 명의 수비병력이 진지를 버리고 섬 건너에 있는 보다 큰 규모의 일본군 병력에 합류하기 위해 행군했다.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16킬로미터가량의 악취나는 맹그로브 늪을 건너야 했는데, 일본군이 늪지에서 헤매고 있을 때 영국군은 늪지대를 포위하였다. 진창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일본군은 열병 등으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맹그로브 늪 때문에 행군속도가 느린데다가 안개까지 심하게 낀 상태였고 한밤중 영국군의 추격과 공격으로 일본군은 최악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영국군은 일본군에게 수차례 항복을 권하였으나 묵살되었고 일본군은 곧바로 "텐노 헤이까 반자이!!!"를 외치며 반자이 어택을 시전했고 영국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필이면 이곳이 수백 마리에 달하는 악어의 서식지였는데 그것도 여타 그지깽깽이 악어들이 아니라 악어중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소만악어(바다악어)의 서식지였던 것이다.
2월 19일, 일본군은 장장 16km의 지옥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브루스 라이트 등 일부 사람들은 악어들이 수많은 일본군을 공격하여 잡아먹었다고 주장하였다. 소만악어떼가 연합군으로 참전
"그날(1945년 2월 19일) 밤은 해병대 보트에 타고 있던 그 어느 대원도 경험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검은 늪지에서 소총의 발사광은 악어의 턱에 분쇄되는 부상병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중단되곤 했다. 악어들이 움직이면서 내는 흐릿하면서도 살벌한 소리는 지상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지옥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새벽녁 독수리들이 악어들이 먹다남은 것들을 처리하기 위해 도착했다. ... 람리 늪에 들어간 약 1,000명의 일본군들 중 겨우 20여 명만이 살아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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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가 연합군으로 참전하다니 이 무슨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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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너 이새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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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 읭? 나 영웅된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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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악어떼가 연합군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참전했던건 옜날에 "아니 세상에 이런일이?"라는 책자에서 본듯 그게 아마 1권이라 사진도 많이 없고 텍스트로 내용을 거의 때운거였는데, 악어가 잘못들어온 일본군들 잡아 먹는게 꽤 충격적이라서 아직도 기억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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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떼~~~ 악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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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너 이새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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