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잖아."
눈 앞에 누가 등불을 들이밀었다.
그 남자였다.
"들킨건가? 박사한테 이를거야?"
"아뇨."
"그럼?"
"아실텐데.
애초에 혼자서는 무리에요."
"돕는다고?"
"저라도 괜찮다면."
"난 분명 실패할거야."
"괜찮아요. 돕고 싶습니다"
"후회 안 할거지?"
"물론."
"이유를 모르겠어."
"모두에게 신세를 졌으니까요."
"...더 모르겠지만, 뭐."
장치의 문이 열렸다.
"싱크로 몬스터를 뺏으려면 누구부터 노려야 할까?"
"노약자?"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악당 같잖아."
"저 사람들 입장에선 악당이죠."
둘 다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일단 어린애들부터 노릴게. 그냥 달라고 해도 주는 녀석 분명 있을걸."
길거리를 지나는데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아주 옛날에도 들은 것 같은데 무슨 노래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몇 몇 보인다.
밤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
"응?"
"쿠키 좋아해요?"
꼬마 숙녀가 바구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생강쿠키인데. 오늘 만들었어요."
"...어, 그, 그래?"
"하나 가져가요."
"나 지금 돈이 없어서..."
"공짜인데요."
"그, 그게..."
"쿠키 싫어요?"
"혹시 2개 줄 수 있니?"
"2개?
아~ 아저씨 여자친구 있어요?"
"그런건 아니고."
"신랑 각시 해요?"
"아니라니까!"
"여기 2개."
"...고, 고마워.
저기 근데 혹시. 너...
싱크로 카드 있니?"
"싱크로?"
아이가 고걔를 갸웃거렸다.
"애들한테 물어볼게요."
그러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잘 됐네. 마침 배고팠던 참인데.
단 것도 엄청 오랜만에 먹어보네."
"저기, 아저씨."
"응?"
"모아왔어."
"...뭘?"
"싱크로 카드."
"뭐?"
쿠키가 담겨있던 바구니에 하얀 카드가 가득했다.
"어떻게...?"
"친구들한테, 싱크로 카드가 많이 필요한 아저씨가 있다고 그랬는데 모아줬어."
"이렇게 늦은 밤에 다녀도 부모님이 걱정 안 하시니?"
"부모님?"
아이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나랑 친구들이랑은 모두 엄마 아빠 없는걸.
저어기 성당에서 청소하고 노래부르면서 살아."
"있지. 이건 그냥...
너희들 돌려줄게."
"왜?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건 그냥...잊어줘."
"필요한 건 필요한 사람한테 줘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랬는걸."
"어이."
"왜요?"
"...나 잠깐 혼자 있고 싶으니까.
얘 데려다주고 잠깐 산책 좀 갖다올래?"
"아. 네."
성당에 아이를 데려다 놓고 나니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생각났다.
그 창고 쪽 골목길로 갔다.
망가진 가로등 너머.
금 간 보도블럭을 걸어가고.
겨울이니 꽃이 필 리가 없다.
창문엔 커튼이 걷혀 있었다.
불도 밝았다.
무심코 바라봤는데,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줄곧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헐레벌떡 방 너머로 사라졌다.
쿵쾅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문이 열렸다.
그러고는 눈길을 맨발로 뛰어왔다.
품 속이 따뜻해졌다.
"...모두가..."
그 애가 울면서 날 껴안고 말했다.
"...모두 너가 죽었다고 그랬는데.
난 안 믿었어...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올 거라고.
그래서 계속..."
"계속 기다려줬구나."
"응."
"얼굴이 반쪽이 됐어."
"...너도 그래."
이유없이 서로 한 번 웃고는, 줄곧 눈을 맞으며 그렇게 서있었다.
"계속 같이 있고 싶어."
"나도."
"그치만 떠나야 하는거지?"
"어....응."
"왜 가야 하는거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긴데."
"약속했잖아. 너랑.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보고 와야 해.
그러기 전 까진..."
"아직은 못 봤구나?"
"응."
"하지만 조만간 보게 될거지?"
"물론.
믿으니까."
"그렇다면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아."
우린 둘다 울다가 또 미소 짓고 있었다.
"조심해!"
"그정도는 보여."
"넌 늘 칠칠맞지 못하니깐 그러지."
"업어주는 건 처음이잖아."
익숙한 철문 앞에 또 다다랐다.
"...5분만."
그 애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5분만 기다려줘. 알았지?"
다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그 애의 손에는 보라색 목도리가 얹혀있었다.
조심스럽게 그걸 내 목에 감아주었다.
"직접 뜬 거야?"
"어떻게 알았어?"
"아는 방법이 있지."
둘이서 또 함께 웃었다.
"그럼..."
"그래."
"가야 하는거지?"
"안타깝지만 그래."
"저녁이라도..."
"응?"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않을래?"
"..미안.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빨리 돌아가야 해서."
"그래.
안녕."
"안녕."
"안녕..."
돌아서자마자 그 애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걸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애써 걸음을 뗐다.
그 애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걸었다.
그러고는 말해야 함을 깨달았다.
"안녕.
영원히."
이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울음을 참고 뛰기 시작했다.
"아저씨."
꼬마 숙녀는 제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젠장할."
"아저씨. 울지 마."
"젠장할, 젠장하아알."
"사탕이랑 생강 쿠키랑 카드랑 다 줄게.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일어나요."
남자는 머리를 나무 기둥에 박고 있었다.
"나는...
나는 왜 이렇게 물러 터진거야?"
"이제 돌아가요."
"왜 하필 오늘이 빌어먹을 크리스마스인거야?"
"괜찮습니다.
이제 돌아가면 되요.
아무도 눈치 못 챌 테니까 괜찮아요."
남자는 한참 후에 다시 일어났다.
몸이 많이 힘든건지 나무 기둥을 짚고는 말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성당의 종소리가 울렸다.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나였다면 가능했을까?"
"뭐야?"
백발의 남자가 말을 걸었다.
"뭘 하고 왔길래 이 새벽에 혼자 울고 있어?"
"잃어버렸어요."
"어떤 걸?"
"사랑하던 사람도.
날 사랑해주던 사람도.
사랑 그 자체도."
"「절망」이군.
이 땅에 남은 유일한 마음이지.
슬슬 익숙해져야 한다고,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