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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슌이 밖으로 박차고 나왔을 때, 유우야는 벤치에 앉아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없는 걸 확인한 슌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사라진 사람을 찾아 돌아다녔다.
사라진 사람은 방금 앉아있던 사람일수도 있고, 친우일수도 있다.
*
목적이었던 엔터테이너를 찾았으니, 이제는 여기를 벗어날 차례다. 마술사 소년이 사라지니 웅성웅성 몰려있던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일행 밖에 남지 않았다.
바닥에 떨이진 장미를 유우야가 주워들었다. 장미는 잎 몇 장이 떨어져나가 있었고 먼지도 묻어있었다. 유우야는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서 유즈에게 건넸다. 유즈는 고맙다고 말하며 장미를 받아들었다. 옆에서 미에루가 ‘미에루도 달링에게 장미꽃 받고 싶어’라고 볼을 부풀이며 칭얼거렸다.
소문의 ‘엔터메 듀얼리스트’를 만나다는 목적을 이뤘으니, 이제 어쩔 거냐는 말이 나왔다. 유즈가 후토시의 시합을 보러간다고 답했다. 그런데 ‘엔터메 듀얼리스트’를 찾느라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소모했다. 후토시의 시합을 보러 대회장에 갈려면 시간이 촉박할 듯하다. 일행들은 공원을 신속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커다란 검은 형체의 새가 점점 높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
“형누나들 여기야!”
일행이 LDS 센터 코트 건물로 들어오니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즈가 먼저 ‘아빠! 애들아!’하고 뛰어나갔다. 그 뒤로 남은 일행들이 따라갔다.
“유우야, 이 녀석! 쓰러졌다더니 멀쩡하구만!”
유즈가 아빠라고 부른 사람이 유우야에게 헤드록을 걸었다. 끙끙대며 빠져나오려하지만, 움직일수록 더해지는 힘에 유우야는 포기했다. 다들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슈조가 일행 중 미에루가 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아, 얘는 호츈 미에루에요.”
호츈? 호츈 미에루...? 슈조는 그 이름을 곱씹다가 생각난 듯 손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전에 유우야랑 듀얼했던 애로구나! 애들에게 얘기는 들었다. 슈조는 유우야가 신세를 졌다며 미에루와 악수했다.
후토시가 아유의 원수를 갚고 오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슈조는 우리 학원의 힘을 똑똑히 보여주라며 등을 떠밀었다. 다른 사람들도 응원의 말을 건넸다. 후토시는 주먹을 쥐고 힘내겠다고 외쳤다.
“상대는 융합을 쓰는 듀얼리스트야. 조심해!”
“오, 걱정 말라고 유즈 누나!”
“방심하지 말라는 거다.”
“외부인은 빠져!”
“뭐야!”
외부인이라니, 괘씸하다! 곤겐자카가 외쳤다. 곤겐자카의 반응에 아이들이 웃었다. 웃음바다 속에서 유우야가 후토시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후토시가 유우야에게 ‘왜?’라고 물었다. 유우야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얼버무렸다.
“유우야 형, 걱정하지 마! 나도 오늘을 대비해서 특훈 많이 했다고! 융합이든 뭐든 간에 다 이기고 올게!”
내 듀얼로 모두를 찌릿찌릿하게 만들 거야. 그러면 숨어있는 소라도 샘이 나서 나올 거야! 다들 잘 보고 있어! 나중에 보자! 후토시는 먼저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뒷모습이 사라지고 난 후 남은 사람들이 관중석으로 움직였다.
“후토시 말대로 후토시가 이기면 소라도 나오겠지...,?”
힘없이 말하는 타츠야의 말에 아유와 유즈는 당연히 소라는 나타날 거라며 이야기했다. 미에루는 소라가 누구냐고 물었다. 유즈는 그에 같은 유쇼학원 출신의 친구로 어제 주니어 유스 시합에서 쿠로사키 슌이라는 사람과 싸우면서 다쳐 병원에 입원했는데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미에루는 이야기를 듣고 어제 그 듀얼을 본 것 같다며 부상을 심하게 입은 것 같던데 괜찮냐고 물었다. 다들 생각난 것인지 모두의 분위기가 침울해진다. 조용해진 가운데 문득 아유가 유즈 손에 있는 장미와 유우야 손목에 있는 인형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런데 유즈 언니, 유우야 오빠. 그 장미랑 인형은 뭐야?”
아유의 말에 타츠야도 그게 뭐냐고 물었다. 유즈는 손에 들고 있던 장미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등 뒤로 감췄다. 아니, 이건 그게.
“설, 설마 유즈를 채갈 도둑놈이!”
“아니에요. 아빠!”
제길, 어떤 놈이냐! 슈조는 혼자 화륵 불타서 앞서나갔다. 유즈는 하리센을 꺼내 진정하라고 후두부를 공격하였다. 슈조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이들이 그런 원장을 한심하게 봤다.
“인형은 미에루가 달링에게 만들어 준 거야.”
“장미는?”
“그, 공원에서 공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걸 받고 공연을 도와주기로 했었어.”
“유, 유즈... 그 사람 성별은?”
쓰러져있던 슈조가 벌떡 일어나 울먹이며 그 사람의 성별을 물었지만, 유즈는 말하지 않았다. 슈조가 휙 고개를 돌려 같이 있었을 세 명에게 무언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 세 명도 합죽이가 되었다. 슈조는 울부짖었다. ‘안 돼애애애애애!’ 다시 하리센이 날아들었다.
“멋대로 어디까지 가는 거예요!”
꽃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초면이고 그냥 도와주고 끝났다는 걸 강조하면서 슈조를 진정시켰다. 슈조가 ‘정말?’이라고 물으니, 유즈가 진짜라고 확신시켜 주고 나서야 안심했다.
“좋았어, 가자고!”
청춘이여 불타라! 슈조의 기분이 상승세가 되었다. 덕분에 침울해있던 분위기는 어느새 풀려있었다. 관중석으로 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즐거워보였다.
*
후토시의 시합이 끝났다. 패배였다. 아유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후토시는 시무룩해져 있었다.
“거기서 싱크로를 쓰다니 너무 예상외여서 짜릿했어...”
괜찮아, 최선을 다했어! 각자 저마다의 말로 후토시를 위로했다.
"하지만... 유우야 형도 정신차렸는데,“
나도 무언가 해야 하는데, 이겼으면 소라가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후토시가 울먹거렸다. 시합 전에 본인이 외친 말 때문이었을까, 후토시는 그것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고개가 점점 숙여진다. 땅으로 꺼질 기세다.
“후토시, 졌다면 내일 이기면 돼!”
내일의 승리를 믿고, 한 걸음 나아가는 거야! 아유가 후토시의 한쪽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유 말이 맞아, 타츠야도 남은 한쪽 손을 들면서 거들었다. 둘은 어느새 주저앉아있던 후토시를 일으켜 세웠다.
후토시의 표정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후토시는 다음 대회 때 갚아줄 것이라며 활활 불태웠다. 그리고 척, 타츠야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타츠야, 네가 지기 전까지 유쇼 학원이 진 게 아냐! 아유와 내 몫까지 복수해 줘!”
“응, 열심히 할게!”
열정이 전염됐는지 아이들이 불탄다. 옆에서 슈조가 ‘열혈이다! 불타라!’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아이들과 달려 나갔다. 가면서 특훈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앞서 달려가는 이들을 따라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도 뛰어나간다.
*
텐션이 올라가 먼저 앞서나간 사람들은 후발주자들의 눈앞에 사라지고 없었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제 기분대로 달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에서 유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호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더 속도를 높였고, 거기서 갈렸다. 그래서 다시 4명이 남았다. 유즈는 먼저 가버린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지 머릴 짚었다. 유즈 뒤를 이어따라오던 두 사람이 유즈가 속도를 늦추자, 따라서 속도를 줄였다.
“그래도 원장인데 애들이랑 똑같이 달아오르면 어쩌자는 거야, 정말.”
유즈가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하다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돌연 뒤를 돌아봤다. 두 사람? 나까지 합치면 셋. 한 명이 모자란데? 유우야가 없었다. 유즈가 그 둘에게 유우야의 행방을 물었다. 곤겐자카는 잘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다고 말하고, 미에루는 아까 유우야를 봤을 때 인형을 보면서 오던데, 그래서 뒤쳐진 게 아닐까라고 답했다.
...사실은 자기가 준 인형을 보고 있는 거라서 내버려뒀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유우야는 여기 토박이니까 두고 가더라도 잘 찾아오겠지만, 유즈가 말끝을 흐렸다. 세 명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오늘은 이상했어. 유우야인데 유우야답지 않은 느낌. 곤겐자카가 오늘 있었던 이상한 일을 말했다.
“오늘 처음 유우야를 만난 건 너희들도 알다시피 공원에서였다.”
“응, 내가 미에루랑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을 때였지.”
“미에루는 달링이랑 가고 싶었는데.”
미에루가 볼을 부풀리며 작게 불만을 토로했다.
“길 한가운데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해서 다가갔다.”
“그래서.”
“유우야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군. 눈을 마주친 것 같아서 부르려고 했더니 다시 앞을 봤다.”
그래서 직접 가서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잡았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손을 내쳤다고 말했다. 유즈는 확실히 이상한 일이라고 곤겐자카의 말에 동의했다. 그 밖에 무슨 일 더 없었어? 유즈가 물었다.
“쿠로사키 슌이 나타났었다.”
바로 나에게 손부터 날리더군. 수련하고 있는 몸이 아니었으면 당했을 거다. 쿠로사키 슌? 유즈가 반문했다. 소라와 관련 있는 일일까? 우선 그 남자는 유우야에게 볼 일이 있던 것 같았다. 둘이 남겨놓기는 위험할 것 같아 막았지만. 그 둘의 말을 듣고 있던 미에루가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아침의 예언이 이것인가? 두 사람의 팔을 붙잡았다.
“그럼 달링이 위험한 거 아냐? 그 쿠로사키 슌이란 남자, 주먹부터 휘둘렀다면서.”
달링은 혼자 있잖아! 오늘의 이상한 일을 곱씹던 둘이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곤겐자카가 우선 혼자 유우야를 찾아볼 테니 다른 사람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아니, 그 전에.
“유우야에게 전화해봐야겠어.”
유즈가 발을 동동 구르며 듀얼디스크의 화면을 바라봤다. 받아라, 받아. 간절하게 바라보지만 전화는 끊겼고, 연달아서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미에루가 LDS에 전화해보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 사람 LDS 소속이잖아.
“소용없어.”
“어째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최근에 LDS 사람들이 연속으로 습격당한 거 알아?”
“그게 달링 일이랑 무슨 상관인데!”
“쿠로사키는 그 연속 습격 사건의 범인이야.”
LDS 소속인데, 같은 학원생들을 습격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우선 곤겐자카가 먼저 찾으러 나서겠다고 말했다. 미에루가 나가는 팔을 잡았다.
“미에루가 달링의 위치를 점쳐볼게.”
라면서 손에 들고 있던 수정 사과를 내보였다. 설마 이걸로?
“미에루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이 수정 구슬로 볼 수 있어.”
수정 사과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보다가 사과를 잡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 응시하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까닥이고, ‘이쪽이야!’하면서 뛰어갔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미에루의 뒤를 쫓으며 나아갔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식으로 순조롭게 따라가다가, 갑자기 미에루가 모퉁이에서 돌았다. 아까 가던 길은 아니었다. ‘이쪽이 지름길이야.’ 굽이치는 길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떠올랐는지 유즈가 미에루에게 외쳤다. 잠시만!
“미에루, 유우야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뛰면서 말하는 게 숨이 찬지 잠시 켁켁 거렸다.
“지금 유우야의 상황도 볼 수 있어?”
미에루는 답이 없었다. 대신에 뛰던 것을 멈췄다. 둘은 기다렸다. 미에루의 입이 열리기를. ‘없어. 보이지 않아.’ 그녀가 뒤돌았다. 눈에 물방울을 단 채.
“미에루가 말했잖아. 아침에 달링을 봤었다고.”
‘...달링이 사라졌어.’ 유즈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곤겐자카는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유즈가 아침에 미에루가 찾아왔었다고 설명했다.
“별안간 달링이 사라지니까 미에루는 무서웠어.”
다시 점쳐볼 필요도 없이 미에루의 점은 백발백중이니까. 달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걱정돼서 달링의 위치를 찾았어. 달링을 보려고 하면 새까매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어서 안심했어. 직접 가서 달링이 괜찮은지 확인해보자.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믿으며.
괜찮은 것 같아서 정말 기뻤는데. 미에루는 눈물을 흘렀다. 소매로 눈 주변을 한 번 훑었다. 아직 다가온 일이 아니라면 막을 수 있겠다 싶어서, 가지고 있던 인형을 줬고, 혹시 큰 일이 닥칠 수 있으니 따라가자. 내가 지켜주자.
아까도 유우야의 위치를 점치기 전에, 상황을 먼저 보려고 했지만 똑같이 검은 것만 보였다고 말했다. 아침에 갔던, 그때도 이미 늦었던 거구나 직감했다고.
“사실 이미 달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미에루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곁에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그런 미에루의 말을 듣고 있던 유즈가,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미에루도, 그녀를 달래주던 곤겐자카도 동시에 유즈를 바라봤다. 씩씩거리며 숨을 마시고, 내셨다. 유즈는 팔로 자신의 눈가를 슥 비볐다. 기다려줘도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 그게 당연한 거잖아?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주는 게 대단하다는 거야. 유즈가 미에루에게 다가가 품에 안았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곤겐자카는 그 둘의 곁을 지켰다.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
다시 유우야를 찾으러 갔다. 한참을 돌고 돌아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유우야를 발견했다. 찾았다! 세 명 모두 유우야의 이름을 외쳤다. 자신의 이름에 뒤늦게 움찔. 유우야는 자신을 부른 셋을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 표정에 세 사람이 여기 올 줄 몰랐다는 게 드러난다. 유우야에게 다가온 셋이 유우야를 와락 껴안았다.
...역광이 비춰 유우야의 눈이 검은색으로 보이는 듯도 했다.
곤겐자카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우야가 ‘응, 아마도.’라고 했다.
“무슨 일 없었어, 유우야?”
유우야가 무얼 말하려다가, 방금 쿠로사키 슌을 만났다고 말했다. 곤겐자카가 유우야의 어깨를 잡고 정말 괜찮은 거냐고 되물었다. 유우야는 손을 들어 몸은 멀쩡하다고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정말 자신을 찾아올 줄 몰랐는지 그들에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세 명이 여기 있는 유우야에게 오기 위해서는 여러 길을 거쳐 와야 했기 때문이다. 미에루가 자신이 유우야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수정 사과를 보였다.
“그래, 그랬었지.”
유우야의 적안이 그들을 돌아봤다. 할 말이 있어.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내뱉는 말.
“나는, …….”
그 말을 들은 셋은 경악했다. 그는 도움을 요청했다.
*
LDS 센터 코트에서 원장과 아이들이 특별훈련이라며 뛰어나갔다. 남은 사람들도 덩달아 뛰었다. 그는 뛰던 도중 흔들리며 자신의 손목을 치는 팔찌가 신경 쓰였다. 팔찌라기보다는 그냥 인형을 줄에 매달아 놓은 것이지만. 뛰면서 손을 들어 인형을 보았다. 인형이 시야를 가렸다. 다시 손을 내려 뛰려 했다. 시야를 가린 인형을 치우니 뛰면서도 자신을 보고 있던 미에루와 마주쳤다. 헛, 미에루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뒤를 보면서도 뛸 수 있구나, 저 애.
우선 선물을 받았으니까, 보답은 해야겠지. 내 것은 아니지만.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더니 앞에 가던 사람들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조금 급해졌다. 속도를 내서 따라잡으려는 찰나에, 한 곳이 눈에 띄었다. 편의점이었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닌데. 다시 가는 것에 집중하려는데, 이미 다들 가고 없었다.
먼저 간 사람들이 걱정할 수 있으니 따라잡으러 가는 게 맞겠지만. 학원 위치는 알고 있으니까, 지금이 선물을 살 적기가 아닐까. 선물을 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잠시 들렀다가 가면 되니까. 가게 내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건 큰 실책이었다. 편의점 유리벽에 걸려있던 부적에 눈이 팔려 들어갔기 때문에, 그 부적을 사고 나왔다. 미에루란 아이가 차고 있던 목걸이도 그렇고, 들고 다니는 물건을 보니 이런 걸 좋아하지 않을까―사실 미에루는 유우야에게 뭘 받아도 좋아할 것이다.― 싶었기 때문에. 취향이 뭔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싫어한다면 다시 발품 팔아서 다른 물건을 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줄 수 없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물건을 사고 나왔을 때, 입구 옆에 바로 슌이 있었다. 슌을 발견하자마자 도망쳤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뛰어갔지만, 슌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을 쳐대며 따라왔다.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히고 말아. 한산한 골목길 쪽으로 길을 바꿨다.
인파 속에 몸을 숨기다가 재빠르게 들어간 거지만, 슌이라면 내가 어디로 갔는지 봤을 것이다. 따돌렸어도 그 흔적을 찾아 올 것이다. 사람들 눈이 있으니 몬스터를 타고 날아오르는 건 하지 않겠고, 흔적을 지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코앞에 있을지도 모르므로 거리를 벌리는 것에 집중했다.
다른 애들과 같이 뛰었을 때랑은 다르게 전력으로. 낮은 담벼락이라도 나를 감출 수 있다. 같은 높이에 있는 한은. 뛰면서도 전에 왔던 기억을 되살려 어떻게든 막다른 길만은 피해가려고 했다. 차가운 바람을 밀고 나가며 예상보다 몸이 빨리 지친 걸 느꼈다. 주변을 둘러봤다. 몸을 감출 곳이 없었다. 벽을 제외하고는. 저기라도 넘어가서 몸을 숨겨야 했다.
벽을 넘어가기 전에, 슌이 위에 올라선 자신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잡히겠지. 지친 몸과 달리 머리는 잘 돌아갔다. 하지만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여기서 쉬면 언젠가 도달할 슌에게 잡힐 테고, 넘어갈 때 아무도 없다면 도망칠 길이 하나 더 열리는 것이다.
지쳤건만 몸은 가볍게 뛰어올랐다. 벽에 손을 짚어 한 번에 넘어갔다. 넘어가면서 높아진 시야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넘어온 벽에 바로 기대어 앉았다. 아직 안심할 때가 아니다. 분명히 올 것이다. 건너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벽 너머로 소리가 아직은 들리지 않았다. 심호흡을 했다. 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자.
♪~ ♬ ♪
갑자기 들린 소리가 몸을 들썩이게 했다. 바지주머니 속에 있는 듀얼디스크에서 나는 소리다. 아마도 누군가 유우야에게 전화를 걸었겠지. 주머니 쪽으로 손이 가다가 멈칫했다. 전화를 받기 위해 꺼내들면 벨소리가 커질 것 같았다. 소리가 커지면 들킬 확률이 올라갈 것 같고. 황급히 소리를 죽이기 위해 듀얼디스크가 들어있는 주머니 쪽을 깔고 누웠다. 바닥과 닿은 살이 따갑고, 시렸다. 그래도 소리가 작아졌다.
작아진 벨소리는 몇 번 더 계속 울리다가 끊겼다. 조심스레 다시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소리를 듣고 왔을지도 몰라.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벽에 다시 귀를 갖다 대어 본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제 움직여도 될까?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렸다. 일어서려던 몸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대로 멈춰 소리를 들었다. 작았던 그 소리는 이쪽으로 다가온다. 점점 커지는 발소리가 이제는 바로 뒤에서 들려온다. 뒤의 사람이 슌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입을 가려 숨을 참았다. 발소리가 멈췄다. 들킨 건가.
위를 바라봤다. 사람의 얼굴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냥 하늘뿐이었다.
조용했던 골목에서 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벽 뒤에 있는 사람은 슌이었다. 작게 ‘젠장’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멀어지는 발소리. 근처에 있다는 걸 모르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좀 더 멀어졌을 때, 그때부터 움직여야 한다.
조금만 더. 마음속으로 되뇌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혹시 다시 돌아와서 보고 있을지 몰라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한 발짝만 더 가면.
바로 지금!
반대쪽으로 조용히 나가려고 했었다. 일어섰을 때 방금 전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위나 뒤를 봐봤자 소용없다. 확인하려다가는 바로 잡힐 뿐이다. 바로 눈앞의 벽으로 달려나가 넘었다. 계속 앉아서 쉬고 있었지만 몸이 무거웠다. 아까 뛰었던 만큼은 못 갈 거란 확신이 들었다. 넘어서니 훤하게 뚫린 직선 길이다. 저 멀리 보이는 갈림길까지 또 냅다 뛰었다.
오른쪽 길로 돌아 들어가려는 때 웬 돌멩이가 날아와 손목을 때렸다. 확실히 따라오고 있다. 그 길로 들어가니 다른 갈림길이 있었다. 길은 오른쪽 왼쪽 두 갈래뿐이었지만, 직진해서 벽을 넘어갔다. 벌써 지근거리까지 온 건 아니겠지. 멀리서 들릴 발소리가 이곳을 지나가길 빌었다.
들리지 않았다. 이럴 리가, 분명히 이쪽으로 가는 걸 봤을 텐데. 벽에 기대어 더 자세히 상황을 알아보려고 했다. 눈앞의 벽에 주먹이 나오며 부서졌다.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기보다는 다시 뛰었다. 아.
방금도 벽 뒤에 숨어 있었으니 이제는 의심 가는 곳을 다 찔러볼 작정이다.
우선 다시 거리를 벌리자. 또 바로 앞에 닥친 벽을 넘으니 이번에는 공터였다. 아차!
“의미 없는 숨바꼭질은 끝났다. 도망칠 수 없어.”
돌 부스러기가 붙은 손을 털어내며 다가온다. 나는 슌이 다가오는 걸 보고 있지만, 이렇게 가까워서는 뛰어봤자 따돌릴 틈도 없이 잡힐 것이다. 뒤로 그가 거슬려 하지 않도록 조금씩 물러났다.
“방해할 놈도 없지.”
순순히 유토가 어디로 갔는지 말해라. 먼지를 다 털어내고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정말로 도망갈 곳도, 막아줄 사람도 없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쫓아온 걸 보면 마지막까지 유우야가 같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지. 모른다는 발뺌이 통하진 않을 거다. 나는 또 다시 침묵을 택했다. 다가온 손이 팔을 잡았다. 붙들린 몸이 흔들렸다.
“말해!”
슌은 대답이 없자 그를 멀리 내팽개쳤다. 그는 바닥에 던져지며 굴렀다. 흙먼지가 일었다. 공터 한가운데까지 굴러가다 멈췄다. 그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먼지를 마셨는지 기침을 했다. 옆으로 눕는 자세로 바꿔도 계속 기침 소리가 났다. 다시 슌이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나쁜 꼴 당하기 싫으면 아는 걸 불으라며 으름장을 놨다.
...이제껏 피해온 이유가 뭔데. 말하고 싶지 않았다.
슌이 유우야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주먹에 힘을 줬다. 무언의 대치 상태가 유지되고 있을 때였다.
슌의 뒤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생겼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 사람은 슌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양팔을 포박했다. 또 다른 그림자가 나타나 날뛰는 슌을, 배를 때려 제압했다. 잡고 있던 이가 늘어진 슌을 어깨에 맸다. 각자 달과 태양을 형상화한 서클렛을 찬 이들이었다.
“실례하겠소.”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바닥에 엎어진 그 하나만이 남았다.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다 일어섰다. 구르면서 묻은 먼지를 털다가, 인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도망치다 떨어뜨렸을까. 처음 슌에게 들켜 도망간 곳까지 돌아갔다.
돌아가니 아까 뒤에서 돌멩이를 맞은 장소에 떨어져있었다. 바람 등에 굴러간 듯 흙이 묻어있었다. 그걸 주웠다.
뒤에서 유우야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놀랐다.
*
“나는 유우야가 아니야.”
몸은 유우야 것이 맞는 것 같지만. 이 말을 들은 그들이 놀라는 게 보였다. 믿어주든 믿어주지 않든, 지금 이 시점에서 내 힘만으로는 유우야를 찾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유우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유우야를 찾는 걸 도와줘.”
* *
1. 쓰면서 느낀 점: 다음 편은 유우야라 해야 하나 유토라고 해야 하나.
2. 이미 1화부터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이지만 원래 계획대로 씁니다.
3. 배빵을 넣고 싶었을 뿐인 소설입니다. 근데 배빵을 넣으니까 빨리 끝내버린 것 같아요. 갈등을 더 적고 싶었는데 말이죠.
4. 우와, 다음 화 쓰면 완결이다! 4편은 1인칭 주인공 시점입니다. 근데 1~3 합친 분량에 사건 해결까지 써야 하는데. 시간 안에 쓸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