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팬픽의 소재는 이 게시판의 한 갤러분이 번역하신 단편만화 2편에서 따와서 살을 좀 많이 붙였습니다.
링크는 여기이니 혹시 궁금하신 분은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http://gaia.ruliweb.com/gaia/do/ruliweb/family/3512/read?articleId=2345612&objCate1=866&bbsId=G006&searchKey=daumname&itemId=546&sortKey=depth&searchValue=%25EB%258D%2594%25EC%258A%25A4%25ED%258B%25B0+%25EB%25A1%259C%25EB%25B8%258C
#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지 약 2주 후, 학생회 회의실
얼마 남지 않은 마이아미 시 중학교 체육대회를 앞두고, 학생회는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격려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현재 전교 회장은 병실에 누워있지만 지난번 추락 직전에 했던 연설에서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추진하는 건 당연하겠지만......아카바 레이지가 병원에 입원한 동안 유우야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요약해서 병문안도 할 겸 직접 보고를 하러 갔는데, 자신이 올 때마다 안경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지의 눈에서 수상쩍은 느낌을 여러 번 받았던 유우야는 이후 방문 보고를 중단하고 꼬박꼬박 메일을 보냈다.
방문 보고 마지막 날, 행사는 알아서 준비하겠다고 했더니 아카바 레이지는 유우야를 믿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어째 그 말이 더 섬뜩한.....어쨌든 오늘은 행사 준비에 앞서 아이디어를 받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 혹시 여기 온 사람들 중에 뭐 좋은 의견 있는 사람?”
“ 저요! 요리 같은거 어떨까요?”
“ 요리?”
“ 네, 요즘 한창 TV에 나오는 모코타 미치오씨를 초대하는거예요!”
어떤 여학생이 자기가 말해놓고도 좋은지 꺄악 거리고 있었다. 다른 여학생들도 동조하는지 들떠서 꺅꺅 거리고 있자
유우야가 한숨을 쉬었다.
“ 누군지 알겠다.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그 요리 잘하는 사람 말하는거지? 그런데 모코타 미치오 그 사람은
다른 학교 학생이잖아.”
“ 그래도 부르면 와주지 않을까요?”
“ 듣기로는 친절하고 상냥하다고 하니 만약에 정중히 초대하면 온다 쳐도....그런데 운동부 행사와 요리가
무슨 관련이 있는데?”
“ 그분은 요리사니까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영양가 있는 요리를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친구 유도부에 있는데
운동하면 음식도 가려먹어야 한다고 그러더라구요.”
“ 듣고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잠깐만, 너무 들떠있는거 아니야? 너희들 사심 보이는거 다 안다고!
뭐 의견은 의견이고, 설득력도 있고. 유고 너 지금 나온 의견 어떻게 생각해?”
정작 유우야가 불렀던 유고는 정신을 반 쯤 놓은 것 같이 멍한 눈으로 앉아있었다.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건가,
초점이 흐릿한 유고의 눈을 보고는 유우야가 유토에게 눈을 돌렸다.
“ 아, 루리 궁도부지? 루리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 루리한테 물어봐달라고? 요즘 루리 대회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함부로 말 걸기 좀 그런데. 그리고 지금 한창 연습하고 있을 시간이라 연락해도 못 받아. 급한게 아니라면 이따가 루리 연습 끝나고 나서 슌하고 같이 큰 길 사거리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 가기로 했으니까 그때 물어볼게.”
“ 알았어. 어쨌든 의견이니까 받아둘게. 또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저기 유고? 유고 정신 좀 차려봐-”
“ 헤에에.....”
린에게 장기간 교육을 받고 왔던 유고는 교육 기간이 끝나가는지 슬슬 학생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영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정신줄을 놓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린이 교육은 잘 되어가고 있고 교육을 마치면 학생회에서 매우 쓸모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웃으면서 말했으니 믿어 볼 수 밖에.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 때 다른 남학생 하나가 손을 들었다.
“ 저 의견있는데요.”
“ 어떤거야?"
“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행사니까 운동부 학생들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는건 어떨까요? 뭔가 따로 원하는게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면 격려행사니까 운동부 학생들을 위한 특별공연이라던가...”
“ 설문조사는 조만간 진행할거야. 그리고 공연? 음악회 같은거나 댄스 공연 같은거 말하는거지?
공연 같은 건 다른 동아리와 얘기도 해야하니까 우선 의견으로 접수해둘게. 또 다른 의견 있ㄴ..”
유우야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왜냐하면 교내 안내방송의 알림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 방송부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 교내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3시 반까지 운동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교내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3시 반까지 운동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방송부에서 알려드렸습니다."
방송부는 방송부원들이 돌아가면서 교내 당번을 맡는데, 오늘은 안내 당번이 유즈인 것 같았다. 그런데.....
“ 오늘 오후에 뭐 있어? 나 아무것도 못들었는데.”
“ 아니. 나도.”
“ 아뇨 전혀 모르겠는데요....”
" 무슨 일 있는거 아니예요?"
“ 누가 모이라고 시킨 것 같긴 한데 대체 누굴까요?"
누가 모이라고 시킨 것 같다는건 정황상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뭔가 있다는 얘기는 들은게 없는데......그렇다고 지금 병원에 누워있을 아카바 레이지가 시킨 건 아닐테고(레이지는 뭔가 시킬게 있으면 무조건 유우야에게 연락하기 때문에 레이지는 절대로 아니다.), 유우야가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건지 막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데니스가 문을 열고 학생회실로 들어왔다.
“ 유우야, 오늘 학생들 모이라고 한거 너야?”
“ 아니, 나 아니야. 데니스, 혹시 너나 유리가 뭐 알고있는 거 있어?”
“ 그걸 모르니까 내가 여기에 물어보러 온 거지. 유리는 자고 있다가 방송 알림 듣고 깨서 별로 기분이 안 좋아졌어.
난 학생회에서 모이라고 시킨줄 알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러 온 건데. 그럼 아무도 모르는거야?”
“ 아무도 모르니까 이러고 있지. 유즈가 안내방송 했으니까 유즈에게 물어볼까...”
유우야가 D-패드로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 나도 모르겠어. 그냥 방송부 문 틈에 누가 쪽지를 꽂아놓은걸 봤는데 쪽지에 학생들 오후에 모두 모이게 하라고
써 있길래 그대로 했거든. 그 쪽지 학생회에서 보낸거 아니야?"
“ 유즈도 모른다는데...누가 꽂아놓고 갔다고, 대체 뭐지?”
“ 모이라고 했으니 별 수 있나. 그럼 나는 혹시나 모르니까 아지트에 가 있을게-”
데니스가 손을 흔들며 나갔다. 모이라고 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유우야를 비롯한 학생회 멤버들이 학생회 실을 나갔다.
# 운동장. 약 3시 30분 경
안내방송이 나갔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특히 여학생이 남학생들보다 많아보였는데, 저번 아카바 레이지의 공개 고백의 여파인 것 같았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는지 여학생들이 들떠서 술렁술렁거렸다. 이렇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불러 모을 정도면 또 공개 고백을 하려는 게 틀림 없다고. 공개 고백 받는 사람은 좋겠다는 둥, 이렇게 많은 학생들 앞에서 고백하다니 고백하는 사람도 용감하고 멋있다는 둥 여기저기서 꺄아 꺄아 하며 좋아하는 소리로 운동장이 북적거렸다. 남학생들은 저번처럼 누가 깜짝 서프라이즈를 벌이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모인 것 같았다.
“ 헤에-많이 모였네.”
“ 저번의 그 일 때문이겠지.”
“ 유토, 너 루리 데리러 가봐야하지 않아? 좀 있으면 궁도부 연습 끝나는 시간이잖아.”
“ 오늘은 루리가 4시까지만 연습한다고 했으니까 30분 정도 여유 있어. 좀 듣다가 난 중간에 빠져나갈게.”
3시 반.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조용히 연단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연단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나타난 사람은 쿠로사키 슌이었다. 연단에 서있는 쿠로사키의 표정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 3학년 쿠로사키잖아?"
" 오늘 공개 발언하는 사람이 3학년 쿠로사키 선배라고?"
" 불러낸 사람이 쿠로사키씨라는거야?"
“ 또 무슨일이야? 혹시 쿠로사키도 공개고백하는거야?”
“ 설마 전교회장처럼? 만약에 그렇다면 2학년 세레나가 또 고백받는거야?”
린과 유즈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레나를 쳐다보았다. 세레나는 “흥-”하면서 콧방귀만 뀌었다. 세레나와 쿠로사키 슌은 같은 선도부의 선후배 사이이기 때문에 잘 알고있었다. 절대로 나한테 고백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걸.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토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쿠로사키 슌을 바라보았다. 왜 저기에 올라와있는거지?
“ 쿠로사키? 왜 저 녀석이 저기에....”
" 자꾸 연단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고, 아오 짜증나."
“ 유토 너는 알고 있겠지? 슌이 왜 그러는지?”
“ 아니. 모르겠어. 전혀 들은게....”
슌의 시야에 학생회 멤버들과 같이 모여있는 유토가 눈에 들어왔다.
유토. 슌이 바라보는 유토는 매우 성실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에, 맡은 일도 깔끔하게 처리하고 상냥한 성격이라 주변 학생들이 신뢰하는 매우 좋은 녀석이긴 하지만 단 하나, 둔한 구석이 있다. 내 여동생 루리가 유토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유토 저 녀석은 모르고 있다. 저번에 루리를 좋아하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을때도 유토는 약간 당황해하고 부끄러워했지만 단호하게 루리는 소중한 친구라고 말했다. 소중한 친구라.....내 여동생 루리의 마음을 여전히 모르고 있군. 그렇다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서 유토의 본심을 끌어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매우 극단적이고 기괴한 방법을, 설령 내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내 여동생 루리를 위해서라면.....
“ 모두 모여주어서 감사한다. 지금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건 할말이 있기 때문이다.”
슌이 소리치자 학생들이 웅성웅성 거렸다.
“ 할말이래.”
“ 우와-”
“ 진짜 공개고백?”
“ 이번엔 어떤 여자애가 고백받는거야?”
" 꼭 고백이 아닐수도 있잖아."
" 에이. 김빠지는 소리 하지 마."
“ 난 너에게 할말이 있다! 유토! ”
유토를 찾는 슌의 외침에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놀란 유토의 눈이 커졌다. 슌의 외침에 유우야와 유고가 놀라 유토를 쳐다보았다. 공개 발언으로 자신이 지목당한 것 때문인지 많은 학생들의 시선이 점점 자신에게 향하는 걸 느낀 유토의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대체 무슨 할 말이 있다는거지? 손가락을 세보며 지나간 일을 떠올려봐도 딱히 마음에 걸리는건 없었다. 요 근래에 딱히.....그보다 왜 슌은 왜 연단에 서서 많은 학생들의 앞에서 나를 찾는거지? 머릿속에 설마 설마 하면서 지난 전교회장 사건 때의 일이 떠올랐지만.....설마.....그런 말도 안되는...
# 유리의 아지트
이 광경을 모니터로 지켜 보고 있던 유리는 미친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 아무리봐도 저건......설마 하겠지만 분위기가 어째....”
데니스가 당혹해하는 것과 달리 유리는 팝콘을 한움큼 집어넣고 쿡쿡거리고 있었다.
“ 괜찮은걸까? 막아야 되지 않아? 느낌이 어째 쌔한데”
“ 아니 싫어. 유토 저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해서 계속 봐야겠어.”
유리가 팝콘을 한움큼 쥐어 볼에 잔뜩 넣고 쿡쿡거렸다.
# 운동장
“ 할 말이 있으면 연단에서 내려와서 말해! 지금 전교생들 다 모아놓고 뭐하는거야!”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참다못한 유토가 소리를 쳤다. 그러나 슌은 무슨 각오를 한건지 단호한 표정으로 미동도 하지 않고 연단에 서있었는데, 모습을 보앙하니 유토가 소리를 질러도 내려올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 아니, 난 여기서 말해야겠다!”
“ 그러니까 할 말이 있으면 내려와서....”
“ 유토, 내가 이 자리에 올라온 건 너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서다!”
그 말에 학생들이 충격을 받았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뭐야 진짜 고백이야?”
“ 그럼 슌이 유토한테 고백하는거야? ”
“ 남자가 남자한테?”
“ 유토는 루리하고 붙어다니던데, 둘이 사귀는거 아니었어?”
“ 뭐야 저게, 어떻게 된 거야?”
“ 사랑고백이라고?”
“ 남자가 남자한테 고백이라니...이해할 수가 없어.”
유토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유우야와 유고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슌과 유토를 번갈아 보고있었다. 점점 정신줄을 잡기 시작하는건지 멍하니 있어서 죽은 사람 같았던 유고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슌의 충격 발언을 들은 유토의 머릿속이 점점 하얘지고 있었다. 슌 저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유우야는 뭔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실시간으로 멘탈이 붕괴되고 있는 유토의 표정을 보며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다.
# 궁도부 연습실 밖
루리와 궁도부 후배 여학생들이 막 연습을 마치고 나오고 있었다.
“ 루리언니, 이따가 정말 거기 가는 거예요? 사거리에 생긴 디저트 가게?”
“ 응. 린이 저번에 가봤는데 괜찮다고 했었거든.”
- 쿠로사키 루리 : 궁도부의 에이스. 오빠인 슌, 동급생 유토와 늘 같이 다닌다. 어른스럽고 정숙한 분위기가 풍겨서 3학년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루리는.....
“ 와 거기 딸기로 만든 디저트 맛있다는데. 유토 오빠하고 데이트하는거예요?”
“ (얼굴을 붉히며) 아냐. 오빠도 같이가.”
“ 에이 언니 그런데는 유토 오빠하고만 같이 가는거예요.>_<”
“ 다 같이 가서 맛있는 케이크 먹자고 먼저 말 한건 나였어. 요즘 하도 스트레스 받아서 단 거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았거든. 어?”
루리는 운동장에 학생들이 북적북적거리는걸 보았다.
“ 왜 다들 모여있는거지? 무슨 일 있어?”
“ 아, 아까 방송으로 나오긴 했었어요. 학생들보고 모두 모이라고....그런데 저번에 전교회장님이 떨어져서 다친것도
그렇고, 언니 연습하는데 방해될 것 같아서 말 안했거든요. 요즘 대회 준비한다고 언니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보나마나 또 공개고백 같은거 아닐까요?”
“ 공개고백? 누구한테?”
“ 와 부럽다. 저번에 선도부 세레나 선배가 고백받았잖아요. 언니는 유토 오빠한테 저런 고백같은거 받고싶지 않아요?”
“ 아무리 고백이라고 해도 저렇게 학생들 다 불러놓고 고백하는건 좀......”
“ 어? 저기 연단에 서있는 사람 루리 언니 오빠다! 언니 저기 봐요!”
루리가 후배가 가리킨 방향을 보았는데 정말로 자신의 오빠 슌이 연단위에 있었다.
“ 왜 오빠가 저기에....”
“ 언니 한번 가봐요.”
루리와 궁도부 학생들이 웅성웅성거리며 학생들이 북적거리는 운동장쪽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루리의 귀에 들려온 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유토의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일이지?
“ 정신나간 소리 그만하고 거기서 내려와 슌! 가만안둬!”
유토는 어이없는 상황에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처음엔 황당해하던 유고는 이제 유토를 한심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유고와 눈이 마주치자 유토는 더 화끈거려서 재빨리 얼굴을 감싸쥐었다. 도저히 이 상황을 똑바로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루리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있어서 가까이 갈 수는 없었고 학생들의 주변에 있었다. 루리가 어떤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 저기..대체 무슨 일이예요? 왜 오빠가 저기에 있는거예요?”
“ 아니 저 그게....”
굳이 더 묻지 않아도, 루리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단위에 서있는 슌이 곧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 유토. 너는 루리와 함께 줄 곧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래서 그동안 널 루리와 나의 친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던 어느날 불현듯 깨달았다. 내가 한심한 행동을 하거나, 지나치거나 과격해질 때마다 네가 잔소리를 하던
것도, 날 막기 위해 나에게 스스럼없이 주먹(배빵)을 날려서 날 정신차리게 해줬던 것도 유토 네가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걸!”
슌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엄청난 말이 쏟아져나왔다. 보통 사람의 정신이라면 받아들이기,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 그러니까 잔소리를 하는것도, 배빵을 날리는 것도 내가 슌에게 애정을 가져서 그런거라고? 대체 저런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는거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고, 이제는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느라 유토의 머릿속은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학생들의 웅성거림과 수군거림이 커졌다.
“ 루...루리선배....”
“ 언니 괜찮아요?”
점차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루리를 보며 후배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있던 루리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고 살벌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죽일 것 같은 기운을 오오라를 풍기며 어디론가로 향했다. 슌의 충격발언속에서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 언니 어디가요!”
“ 선배!”
“ 이거 진짜인가봐.”
“ 우와 세상에....”
“ 남자가 남자한테 고백해도 되는거야?”
“ 뭔가 이상하지 않아?”
“ 모르겠어...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지?”
“ 당장 그만두라고 했잖아!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거야! 왜 그게 내가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거라고
해석하는거냐고! 너 제정신이야!?"
“ 그래. 너는 또 나에게 늘 그랬듯이 주먹을 날리겠지. 하지만 괜찮다! 그렇게 너에게 배빵을 맞으면서,
너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너를 좋아하게 됐다! 유토 난 네가 아니면 안된다!”
슌의 입에서 그 누구도 수습하지 못할 엄청난 말이 튀어나왔다. 다이렉트로 유토에게 고백(?)을 하는 슌의 발언에 학생들이 충격받은 건 물론이고 고백(?)받는 당사자 유토에게도 정신적으로 엄청난 데미지가 가해졌다. 슌의 발언으로 정신적 데미지가 누적된 유토는 머리끝까지 올라왔던 분노가 사라지면서 이제 입을 열 힘도 없었다. 점점 주변 학생들이 원형을 이루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제 어쩌면 좋지? 어쩌면.....
또각또각. 점점 연단위로 올라오는 루리의 눈 앞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오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루리는 조심스럽게 계단으로 올라왔다. 루리가 슌의 등 뒤로 다가갔을 때, 유토는 마지막으로 소리를 질렀다.
“ 난 너에게 우정이면 모를까 애정같은거 없어! 뭘 어떻게 해야 내가 너를 왜 사랑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하냐고!
그런식으로 따지면 내가 좋아하는건 루리....."
말하는 도중에 뭔가 요란한 소리가 중간에 들린것 같은데, 잠시 후 정적이 흘렀다. 뭐지? 유토가 눈을 떴다. 눈을 뚠 유토가 본건 연단아래로 떨어져있는 슌이었다. 그리고 슌 근처에 모여있던 학생들은 유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 뭐지? 무슨....."
" 저기 유토"
유우야가 말을 걸었다. 운동장에는 정적이 흐르고, 학생들이 묘한 시선으로 자신과 떨어진 쿠로사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유토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 유우야? 무슨 일이야? 슌은? 지금 다들 왜....."
" 방금 그 말 진짜야?"
" 어떤?"
" 너 방금 루리 좋아한다고 했잖아!"
유우야의 뒤에 있던 유고가, 손가락으로 어떤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토는 유고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엔 뜻밖에도 쿠로사키 루리가 서있었다. 연단위에 서있는 루리는 당황해하면서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연단에 서있던 슌은 누군가가 자신을 밀어버리는 듯한-몸이 확 쏠리는 느낌과 함께 그대로 연단 아래로 추락해버렸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슌이 연단에서 ‘쿵’하고 떨어지자 학생들의 시선이 운동장에 떨어져 누워있는 슌에게 향했는데, 바로 그 다음에 유토의 발언이 터져나오면서 묘한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 어...이거 어느쪽이 더 중요한거야?"
" 다친 사람 아냐?"
" 방금 유토가 루리 좋아한다고 말한거 맞지?"
" 공개고백이야!"
" 너 지금 그게 문제냐? 사람이 다쳤잖아!"
“ 추락했는데 괜찮을까?”
“ 구급차! 구급차불러!”
“ 이거 딱 봐도 전교회장님 처럼 많이 다친 것 같은데?”
“ 양호선생님 부르러갈테니까 슌 좀 누가 보고있어!”
“ 저기 연단 위에 서 있는 사람, 궁도부 쿠로사키 루리잖아!"
“ 쿨럭...루리...라고?”
슌이 루리가 왔다는 말에 움직이려고 하자 주변 학생들이 다가가서 슌을 막아섰다.
“ 일어나면 안돼 쿠로사키!”
“ 구급차 부른거야?”
“ 학생회에서 방금 구급차 불러서 이리로 오고있대!”
“ 루리....어째서....”
유토 역시 당황한 얼굴로 루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떨결에 터져나온 유토의 고백을 들었던 루리는 당황스러움, 부끄러움이 뒤섞여 어쩔줄 몰랐다.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선, 그리고 오빠가 벌인 말도 안되는 일.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건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유토.
“ 오빠도 유토도 꼴도 보기 싫어! 당분간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소리친 루리는 연단을 내려가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주변 상황에 당황해 떠나는 루리를 바라보며 유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심한 부상을 입은 슌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떠났다. 그렇게, 대회를 앞두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 겸 오빠, 유토와 맛있는 디저트를 먹겠다는 루리의 계획은 산산조각나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 루리...나는..."
" 유토 정신차려, 괜찮아?"
" 이게 대체....."
슌이 실려가서 상황이 진정되고 나서도, 유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유리의 아지트
유리가 어이없는 사태가 끝나고도 미친듯이 낄낄거리고 있자 데니스가 한숨을 쉬었다.
“ 유리, 이거 좋아할 일이 아니야.”
“ 아니 나는 재밌어.”
“ 하아....네녀석도 참;;;"
" (팝콘을 먹으며) 이번일은 덮어주기 어려워."
그게 아니라고 유리....라고 말하려다가 데니스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걸까?
아니, 확실히 이 상황이 문제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긴 한데....
# 병원
슌이 천천히 눈을 떴다.
“ 슌, 괜찮아? 정신이 들어?”
슌의 눈에 천천히 들어온 사람은, 유토였다.
“ 유...토? 왜 네가 여...기에?”
“ 너, 대체 뭐하는 짓이야!”
“ 너야 말로 뭐하는 짓이야! 당장 루리한테 갔어야지!”
“ 뭐!?”
“ 네녀석은 루리하고 같이 디저트 가게에 갔어야지 나를 쫓아오면 어떻게 하라는거냐.”
“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거야! 너 지금 중상이야, 네가 이렇게 다쳤는데 루리하고 나는 팔자 좋게 디저트 가게 가서
디저트 먹고 있으라고? 그게 말이 돼?”
“ 둔한 녀석 같으니라고. 뭐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나. 당분간 루리는 네가 바싹 붙어서 책임지고 챙겨줘.”
" 그건 불가능해. 루리가 당분간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치고 떠나버렸다고. 네가 한 짓 때문에!"
유토가 마구 화를 냈지만 슌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 학생회실, 학생회 정기회의일.
연달아 일어난 사고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뒤숭숭해져있어서 학생회 상황도 말은 아니었다. 전교회장 추락사건이야 그동안 이를 바득바득 갈고있던 부회장 사카키 유우야의 주도로 벌어진 일이었고, 이상한 방향으로 수습되는 바람에 유우야가 사과하고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얼마전의 쿠로사키 슌의 추락사고는 정말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게다가 슌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 때문에 그날의 사건 이후 며칠 동안, 학교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것 때문에 가장 마음고생을 한 건 유토였다. 유토는 루리랑 붙어다니는데 둘이 사귀는거 아니었냐는 둥, 슌이 유토를 좋아하니까 삼각관계 아니냐는 둥, 유토는 뭘 어쨌길래 쿠로사키 남매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냐는 둥.....오히려 루리가 슌과 유토 사이에서 방해가 되는거 아니냐는 둥...
“ (사탕을 입에 넣고)이거 학교에 마가 낀거 아닐까나?”
- 시운인 소라 : 학생생활복지부 소속의 학생. 사탕이나 초콜릿 등 단 것을 매우 좋아하며 담당하는 일은 수업 시작 전 아침에 1학년 학급에 배달되는 우유의 배급 업무. 본인은 흰 우유보다는 딸기우유, 쵸코우유, 바나나 우유를 더 좋아한다.
“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 요즘(사탕을 물고) 계속 사고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잖아? 점술 동아리의 호츈 미에루한테 점이라고 쳐달라고
부탁해볼까?”
“ 이건 모두 다 우연이다. 물론 쿠로사키 슌의 일은 전혀 예상 못했다만.”
곤켄자카가 헛기침을 하며 소라의 말을 끊었다. 사와타리 신고가 옥상에서 다친 일, 아카바 레이지가 연단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일, 쿠로사키 슌이 해괴한 일을 벌이다가 여동생 루리가 연단 뒤에서 밀어버리는 바람에 크게 다친 일. 물론 그것도 슌의 말도 안되는 짓거리에 화가 날대로 났던 유토가 뜬금포 고백을 하는 바람에 이상한 방향으로 수습되었지만.
“ 오늘도 유리 대신 네 녀석이 참석하는건가?”
“ 유리의 기분이 많이 안 좋아서 말이지. 그 녀석 기분 안 좋으면 나도 어떻게 해주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데니스와 곤켄자카가 대화하고 있는 동안, 유우야 근처의 유토는 멍하니 안건이 적혀있는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우야가 안건이 올라온 종이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어디보자....방송부, 환경미화부, 선도부.......하고 오늘 가장 중요한 것. 옥상의 보수문제와 연단의 사용건인데.
이건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나중에 얘기하고 각 부서에서 올라온 건의사항부터 먼저 볼게. 우선 첫 번째가
방송부....”
“ 앞으로 방송 공지를 할 때, 그러니까 저번 전교 회장님의 일이나, 쿠로사키 슌 선배 일 처럼 교내 방송을 개인적인
이유로 사용할 때 방송안내로 공지하기로 했어. 그리고 앞으로 이런 개인적인 이유의 교내 방송이 있을때, 학생회
멤버들에게 미리 연락하도록 할게. 이건 방송부 선배와 후배 모두 모여서 긴 이야기를 한 끝에 결론을 내린 일이라서 학생회에 안건으로 올렸어.”
- 히이라기 유즈 : 린과 함께 방송부에 소속되어 있다. 사카기 유우야, 곤켄자카와는 소꿉친구
“ 아 그래서 교내 안내 방송에 관한 건이라고 올린거지? 알겠어. 아무래도 그건 정보에 관한거니까
데니스나 유리한테 먼저 말하는 게 나을거라고 생각해."
“ 그런거 미리 알려주면 나야 땡큐지.”
“ 그럼 난 급한 일 있어서 먼저 실례할게. 정말 미안해!”
“ 아냐 잘가- 그럼 이제 방송부 관련 안건은 끝인가....그 다음은....환경미화부?”
유즈가 문을 열고 나간지 얼마 안되어, 학생회 부실의 문을 열고 유리가 나타났다. 유리는 심드렁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와 빈 의자에 앉았다.
“ 어라 유리? 오늘 안 온다고 해서 내가 대신 왔는데, 이제 비켜주면 되지?”
“ 아냐 귀찮아. 그냥 너도 있어.”
유리는 심드렁하고, 피곤해보였다. 그리고 기분이 나쁜지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
“ 어라 유리 왔어?”
“ 너 기분 안좋다며, 무슨 일 있는거야?”
유리가 왔는데도 유토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별 반응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뇌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그 바보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 유고 그 녀석은 어디에?”
“ 유우야가 말하길 린에게 교육을 받으러 갔다고 하던데."
세레나가 입을 열었다. 세레나는 선도부 부장은 아니지만 선도부 안건 보고를 위해 부장을 대신해 와 있었다. 유리가 세레나를 보자 표정을 찌푸렸지만 세레나는 별 관심도 없어보였다.
+ 드디어 나오지 않았던 요주의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다음편은 아마 유리와 세레나의 이야기, 그리고 옥상사건의 진상이...
+ 언제나처럼 오타나 이상한 부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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