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요소가 등장합니다. 필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봅니다.
"그렇구나."
그녀가 고개를 약간 숙였다.
꽃무늬 치마가 하늘거린다.
유행 한참 지난 거라고 그리 말했건만.
"축하해 줄 거야?"
"그랬으면 해?"
"글쎄."
"뭐야."
15년 동안 함께 웃고 떠들고 밥도 먹은 사이지만,
오늘따라 말 거는게 유난히 힘들다.
"알겠다. 너 지금 엄청 떨고 있어."
어느새 왼손에는 제비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왜 긴장한 거야?"
"애, 애초에 이런 중대한 일을 맡았는데 긴장 안 하는 게 이상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리고?"
"솔직히 난 좀...
무서워."
"뭐가?"
"내가 보게 될 것들이,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면 어쩌지?"
"으음."
그녀가 한참을 서 있다가, 내게 보라색 한 송이를 건넸다.
바람결에 치마폭이 넓게 퍼졌다.
짙고 맑은 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나는 구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믿는 걸."
"무엇을?"
"「내일」은 분명 행복한 날일 거라고.
난 늘 그렇게 생각해."
가로등 불빛 새로 한참을 걸었다.
대로변에 핀 풀들을 보았다.
비록 하찮은 것이라도 그 날은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웠다.
아주 익숙한 철문에 다다랐다.
"그럼 내일 봐."
"와줄거야?"
"네가 원한다면 예쁜 옷도 입고 올게."
"그 촌스런 꽃무늬 원피스만 아니라면-"
"너!"
"농담이야!"
쾅 하고 문이 닫혔다.
화가 실리진 않고 그냥 장난스런 소리라 마음이 놓였다.
"아!
저기. 루이제.
오늘 공원에서 「주머니 속 사람 찾기」 이벤트 한 거 말야. 대체 뭐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붉고 파란 깃발들.
요란한 함성과 더 요란해 빠진 말소리들.
그 한 가운데에 내가 서야만 한다.
"왜 맥이 빠져서 그러고 있니? 콜라라도 한 잔 주랴?"
"아, 교수님."
나의 스승님.
이 연구를 끝으로 은퇴한다고 하신다.
모두의 앞에선 당연히 무게를 잡으시지만 평소엔 재치있고 온화한 분이시다.
"걱정할 필요 없다.
기계는 자동으로 움직여.
모든 것이 물 흐르듯 빠르고 순탄할거야."
"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곰인형 가지고 예비 실험도 여러 번 했잖냐. 결과를 보니, 혹여나 실패 하더라도 멀쩡히 살아 돌아올 수 있을테니까 걱정 말거라.
내가 직접 하고 싶어도 늙어서 시력이 안 좋으니 원."
"..알겠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할까.
자동 항법 장치도 정상. 연료 탱크 및 기타 부품 모두 정상.
이 기계가 출발해 돌아온 다음, 넌 네가 그 동안 본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기만 하면 되는거고."
날이 날이라 그런건지 교수님도 긴장한 듯 보이셨다.
"자, 그럼 연단으로 갈까.
모두가 기다리는 곳.
이제부터 새로운 세계가 시작될 곳으로 말이다."
그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발표 도중에는 출입 금지다.
단념하기로 했다.
박수 갈채가 흩어진다.
모두가 웃고 있다.
걱정 뿐이던 내 마음 속에도 미소가 조금씩 퍼졌다.
모두가 꿈꾸고 상상하던 것이 실현되었을 공간.
현재를 사는 우리가 바라던 세상.
그런 곳에 최초로 손을 뻗을 수 있음은 얼마나 대단한 영광인가.
"친애하는 네오 도미노 시티의 과학자 여러분!
오늘 이 기념비적인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 이 순간을 끝없이 상상했고, 지금 이 순간과 같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것은 수 천 개의 나라를 번영하고 쇠락하게 했으며, 때로는 값비싼 희생에 목을 매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한계를 넘어서고자 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예언 따위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기계장치는 저의 제자를 태우고 「내일」로 향하게 됩니다.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간섭도 조작도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내일」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일」에서 「오늘」로 돌아오는 일은 어떻게 합니까?"
한 과학자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는 「내일」뿐만이 아니라, 「어제」로 돌아가는 기계장치도 미리 개발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제자가 갈 「내일」에선 이 기계를 작동시켜줄 우리는 없겠죠.
세월의 흐름 너머의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단 세 가지 입니다.
우리는 물려줄 이름을 남기고,
이 날은 모두에게 기억될 것이며,
그 다음에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에 있을,
「오늘」을 아는 자들은.
이 기계장치를 통해 저의 제자를 그들의 「어제」로 돌려보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못되지 않은 길을.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실험 개시를-"
"협회장님!"
밖에서 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익숙한 목소리다.
"루이제?"
"협회장님!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부탁드려요!!!"
"아는 사람인가?"
"아. 그, 사실...
그러니까 제...
...소꿉친구. 입니다."
"들어오시게나."
"미안해. 자전거 바퀴가 펑크나서-"
그녀가 숨이 가득 찬 채로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땀 난거 봐. 너 또 긴장 많이했구나?"
"...응. 미안."
"아직도 무서워?"
"사실, 조금..."
"너. 내 말 잘 들어봐.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오늘」을 노력하잖아.
그러니 이 노력의 끝에,
거기 있는 「내일」은 행복할 거라고.
나는 늘 믿는걸.
그러니 너도 믿어줘.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줘.
「내일」을.
즐거운 세상을.
그것이 존재함을.
그게 모두에게 「희망」이 될 거야."
올라서서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유리창이 흐려 그녀가 웃고 있던건지 울고 있던건지도 보이지가 않았다.
분명 부드럽게 돌아가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금속음과 충격음만 점점 커졌다.
한참을 지새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불시착한 걸까.
유리창 너머엔 폐허가 된 건물과 산처럼 쌓인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렇지 않은 곳엔 넓은 황무지와 틈새 사이로 언뜻 보이는 지평선이 있었다.
탈출도 못 하고 거의 굶어 죽어가던 나를,
누군가가 연구소 같은 장소로 주워 왔다.
이것은 15일째의 일지다.
병원 침대 하나가 있는 낡은 방에 누워있다가,
이제 겨우 몸을 일으키게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방에 있는 달력의 년도와 시계 등을 보아하니,
나는 정말 미래로 온 것 같다.
불시착 한 게 아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사실인데
어째서인지 기쁘지가 않다.
이것은 23일째의 일지다.
몸이 많이 나아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연구소 안엔 사람들이 스무 명 남짓 있고, 다른 생존자들도 찾는 중이라고 한다.
고글을 쓴 사람에게 말을 걸어 들은 건데,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들 나와 같은 사람인가 싶어 대화를 했다.
내가 과거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날 불쌍하게 여기면서 원래 충격이 크면 헛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목발을 짚고 가로등 밑을 지나가는데,
아주 익숙한 보라색이 있었다.
그 색조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아, 제비꽃아.
우리는 이렇게 속절없이 지어버렸건만.
너는 오늘도 변함없이 곱게 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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