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과 매너를 지킨 듀얼은 본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듀얼이 안 나옵니다.=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 등장인물 및 단체명은 실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모두 허구의 것임을 밝힙니다.=
서기 2016년 4월 23일 토요일.
세계를 뒤집어 엎어버릴 법한 학술 연구 발표회가 있었다.
"발견했습니다! 저희 하버드 신인류 연구팀은 선천적으로 새롭게 진화한 인류! 그 이름도 결투자(듀얼리스트)로의 진화 유전자를 발견해냈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신인류의 등장.
그것이 1장의 논문에서 발전해 어느덧 현대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어느덧 사회의 커다란 변혁을 일으킬 신드롬으로 발전해, 커다란 사회문제, 그리고 사회 개혁을 초래해 나갔다.
그리고, 하버드의 연구 발표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밝혀낸 신인류, '듀얼리스트'는 어느덧 현인류와 공존하는, 기존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
-2046년 4월 23일, 듀얼리스트 가정주부 A씨의 하루.-
삐비비비빅.
새벽 4시로 맞춰둔 시계가 내뿜는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내 눈이 떠졌다.
내 입으로 새삼 이런 말 하긴 부끄럽지만, 나는 인류가 발견해낸 진화한 신인류, '듀얼리스트'다.
그리고 듀얼리스트의 아침은, 보통의 인간보다 빠르다.
"새벽.. 4시지? 당장.. 후라게를 체크해야!"
듀얼리스트가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중국 공장에서 재빨리 유통되어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리는 통칭 '플라잉 겟(후라게)'를 보기 위해서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카드가 만들어져 전 세계로 유통된다는 제품업의 제국 중국은 서기 2046년이 되어서도 건재.
지금도 그 광활한 대지에서 수억만장의 카드를 찍어냄과 동시에 팔아재끼고 있는 엄청난 장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일찍 생산되는 곳에서 가장 정보가 빨리 풀린다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지사.
듀얼 몬스터즈를 제작/관리하고 있는 'K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정보 유출은 이미 사회 문제로 발전할 지경이었지만.
그런 거 알게뭐냐, 일단 후라게를 확인하는 것이 듀얼리스트의 본능이기 때문에 현 지구상의 인류 70%가 듀얼리스트인 지금.
그러한 사회 현상은 암묵의 룰로서 묵과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오! 나왔다! 이번달 신규 정규팩 후라게 왔네에에에! 어디보자.. 헉!? 궁극용마왕 라모르팩터P? 이런 쌈박하게 미친 녀석들, 수십년전 카드를 이렇게 리메이크 해서 내놓다니.."
"으..으음.. 당신.. 일어났어?"
"어머, 깼어?"
내가 후라게를 보고 들썩이는 거에 잠이 깬 건지, 남편이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남편은 나와 다르게 듀얼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인간, 따라서 나와는 달리 후라게를 보고 들썩이는 일은 없었다.
"미안해, 그치만 이건 본능과도 같은 거라.."
"아니, 괜..찮아, 그보다.. 나 오늘 일찍 나가야 하니까.. 6시 쯤엔 깨워..줘.."
"알았어."
그런 내 체질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한다는 듯이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넓은 도량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난 듀얼리스트가 아닌 이 사람과 결혼한 것을 잘했다고 느끼곤 한다.
아, 여기서 남편자랑 하고 있어으면 안됀다,
또 후라게 보고 들떠서 남편을 꺠우면 안돼니까, 난 스마트폰을 들고 침실에서 나와 거실로 나왔다.
듀얼리스트 주부인 나는 이렇게 후라게 체크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것을 기념해
매번 남편의 아침밥을 준비하거나 어제 저녁에 먹고 난 식기들을 설거지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훙훙훙~ 이제 남은 건 슈퍼레어 카드 2장과 노멀레어랑~ 그냥 레어카드 2장 정도네요~ 훙훙훙~"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함과 동시에 시선은 스마트폰에 올라오는
신규 후라게와 싱크대의 설거지 거리들을 번갈아가면서 아침을 보내는 나.
후라게 체크가 끝남과 동시에 설거지가 끝나면 어느덧 남편을 꺠워야 할
아침 6시가 다가왔음을 스마트폰의 전자 시계를 보고 눈치챈 나는 침실에서 남편을 일으켜 세우고는 그의 출근 준비를 도왔다.
"흐아아암.."
"아직 졸려요?"
"아, 괜찮아.. 커피 한 잔 끓여줘."
"그럼 블루아이즈 마운틴으로 끓여드릴까요?"
"그건 당신 같은 듀얼리스트들이 마시라고 나온 거잖아, 난 됐어."
가끔 이렇게 듀얼리스트 식을 권해도 남편은 거절하곤 해,
난 혓바닥을 살짝 빼놓고는 평범한 인스턴트 커피와 함께 오늘 아침식사인 드로우 빵을
나무로 엮어 만든 바구니에 5개 정도 담아 내놓았다.
남편은 2034년에 흔히 보급된 홀로그램식 전자 신문을 펼침과 동시에
한 손으로 식탁 위에 올려진 바구니에 담긴 드로우 빵을 한개 집어 물더니,
금새 표정이 파랗게 바뀌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남편이 싫어하는 블루베리 잼 맛이 걸린 모양이다.
"으윽.."
"오늘은 꽝 드로우네요 당신?"
"블루베리 맛은 안 섞으면 안됐어?"
"듀얼리스트에게 있어 처음 드로우되는 5장은 그 날 하루의 운을 점치는 신성한 의식이나 마찬가지, 드로우 빵도 그 중 하나, 꽝도 섞여있어야 운세를 점치기 쉽다고요."
"난 싫어하는 맛을 뽑아야 되는 운세 확인은 사양하고 싶은데."
남편은 불평을 말하면서 전자 신문을 넘겼다.
신문에 띄워진 스포츠란에는 오늘의 듀얼 토토, 해외 진출 듀얼리스트 용병, 팔쿠스트의 챔피언쉽 8연승 등등의 소식이.
그 다음 장에 적힌 사회란에서는 유치원 교과 과정에도 듀얼리스트 특화 교육을 넣어야 한다는
교육부 장관에 대한 칼럼이 섞여 있는 것을 보며.
오늘도 새삼 별다를 것도 없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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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올게."
"다녀오세요~"
남편을 배웅하고 난 다음이 본격적인 내 하루의 시작이다.
우선은 어제 만들다 만 덱을 마저 만들고,
어질러진 카드들을 깔끔히 정리, 밀린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한번 돌린 것으로 대충의 집안일은 끝.
"그럼, 가볼까?"
준비를 마친 나는 외출복을 입고는 나만의 전쟁터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듀얼리스트란 신인류가 개척되기 이전에도, 그리고 개척된 지금에도 주부들의 전장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곳은 바로 시장.. 아니면 '할인마트'가 바로 그곳.
"쌉니다~ 싸! 산지 직송의 대파가 오늘 대특가 세이이이일!!"
"총각! 여기 있는 건 할인 스티커가 안 붙어 있잖아~!"
"여사님! 지금 그런 걸 신경쓸 틈이 없어요~! 바쁩니다 바빠~"
"뭐? 감히 손님의 클레임을 무시해? 당장 내려와! 듀얼이다!"
"좋습니다 여사님~ 제가 이기면 오늘 할인 서비스 종료됩니다~"
..............
"아저씨, 여기 서비스로 한 근만 더 주세요."
"좋습니다 부인, 대신, 저와 듀얼해서 이긴다면 서비스를 드리죠! 하지만 제가 이기면 오늘 특가 상품도 하나 집어가셔야 합니다!"
"얼마든지!"
....................
"신상품 헝그리 맥주의 시음행사가 진행중입니다~ 저희 측 듀얼리스트와의 듀얼에서 이기시면 푸짐한 경품 증정의 서비스가~"
이곳 저곳에서 울리는 시장을 보러온 듀얼리스트 주부들과 마트측의 할인 승부.
당장 오늘의 식탁 위에 올라갈 반찬 하나에 붙을 0을 하나라도 더 줄이기 위해,
나 역시 그 박빙의 전장 속에 몸을 담갔다.
오늘의 저녁 반찬은 남편이 지난주 부터 먹고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오징어 볶음.
월급날이 한참 남아 항상 편의점 싱크로 도시락류에 몸을 맡기던 남편의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한 지금.
내 주부로서의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기분과 함께,
난 남편을 위해 오징어 볶음을 만들어야한다는 사명감을 굳게 세기고는 수산물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곳에서 오늘 막 들어온 듯, 싱싱하게 수족관을 해염치고 있는 오징어들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졌다.
"어서옵쇼~ 오징어 드릴까요?"
"이거, 할인.. 상품이 아닌거죠?"
"그렇습니다 고객님, 오늘은 수산물 행사기간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듀얼로 이긴다면.. 할인해주시는 거죠?"
"호오..?"
수산물 코너를 맡고 있는 이 마트의 토박이.. 라고 하기엔 이 마트가 생겨난 지 얼마 안됐지만,
아무튼, 베테랑 근무원이자 수산물 코너의 담당자.
나와 같이 행사 외 듀얼 할인을 노리고 온 수 많은 주부 듀얼리스트들을 격추해낸 악명높은 이 남자..
그 이름, '수산수'는,
이 마트의 단골인 내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도전의 의사를 내비친 것에 흥미롭다는 듯이 웃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고객님, 고객님이 이기신다면, 오늘 오징어를 반값에 해드리죠."
"좋아!"
"대신, 제게 지면..?"
"아..알고 있어요, 패배의 10만 황금 도미.. 사도록 하죠."
"좋습니다, 얘들아 테이블 가져와라! 듀얼이다!"
결전의 시간.
주변의 동료 주부들의 입담으로 익히 들었던 그의 실력에 지금의 내가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내가 오늘 아침 막 완성한 새 덱의 완성도에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인, 전 해황자 넵토 어비스를 소환하죠!"
역시, 예상대로 그의 덱은 구관이 명관, 3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물속성 테마이자 전통의 강자
'해황'시리즈로 이루어진 물속성 덱.
수산물 관리 코너의 책임자라는 직함에 걸맞는 덱을 가지고 있다고
광고하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쉬이 공략당할 법도 한데.
일개 동네 마트 직원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을 법한 화려한 듀얼 택틱스에 동네 주부들은 늘상 격추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 쉬이 당할 수 없다.
왜냐면 이 쪽엔 가족의 화목을 불러일으킬! 오늘의 저녁반찬 오징어 볶음이 걸려있으니까!
"심연의 숨은자 효과로 묘지에서 발동하는 몬스터 효과를 무효!"
"뭣!?"
"이걸로 해황자의 효과로 몬스터를 보내봤자 헛수고죠!"
"큽, 고객님.. 강하시군요!"
됐다!
운 좋게 선턴에 뽑아든 심연의 숨은자로 묘지의 해황 몬스터들의 효과를 원천봉쇄.
그 흐름을 끝까지 가져간 나는 기어코 인근 주부들 사이에서 최종보스로서 군림하던 그를 쓰러뜨리며,
값지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은. 반값 오징어를 받아낼 수 있었다.
"훙훙훙~ 초강마도 대역~ 무사신귀 츠바사리~ 오메가 윙 싱크로 드래곤~"
승승장구하여 즐겁게 마트를 나온 나는,
콧노래로 오늘 나온 후라게 등장 카드들의 이름을 흥얼거리며 즐겁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머,어머,어머~ A씨,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어머, 부녀회장님, 오랜만이네요, 미국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성적은 어떠셨어요?"
"스위스 탈락이야, 하필이면 금제가 완화된 코즈모를 만났지 뭐려."
"금제 풀린지 얼마 안됐다고 하는데, 그새 그 덱을 쓰는 사람이 있었나보네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아파트 부녀회장님.
한 달 전 쯤에 남편의 미국 대회 출장에 따라나섰던 그녀의 생생한 미국 대회 체험기를 들으며
우리의 수다는 끊길 일 없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A씨 그거 들었어? 304동의 C씨 말인데, 글쎄 아들이 듀얼 아카데미아 특별 수석에 합격했데 글쌔!"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거기 서울대보다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하던데."
"그러게나 말이야, 나한테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눈꼴시렵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부럽기도 하더라고~ 아, 그러고보니까 A씨는 아직 소식 없어?"
"요즘 남편이 바빠서요.."
"힘내시구려, 이럴 때 일수록 여자가 힘내야 남편이 기가 사는 법이야, 아! 그런 의미에서 이거!"
"이게 뭐에요?"
"미국 본토에서 사온거야, 체력 증강제 슈퍼 Z, 이거면 오늘 밤은 아주!"
"어머~ 회장님도 참 남사스럽게!"
............................
기대불안의 미래가 섞인 저녁.
남편이 힘든 몸을 이끌고 퇴근함과 동시에, 난 오늘 얻어낸 황금과도 같은 반값 오징어로 만들어낸 오징어 볶음을 대령했다.
그렇게나 노래를 부르던 오징어 볶음이 자기 앞에 한 냄비 가득찬 상태로 나타나자,
남편은 '내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던 보람이 있었어!' 라며 눈믈을 흘릴 정도로 감격했고.
오늘은 날 아주 신혼 때 처럼 떠받들어주며 즐겁게 저녁식사를 이어갔다.
좋아.. 이 페이스라면, 어쩌면?
"저, 여보.. 오늘 부녀회장님이 그러시는데.."
"음.."
"자기야~!"
"자..잠깐!"
"응?"
"당신들 식으로, 해결하자."
"그 말은?"
"듀얼하자는 거지."
오호라, 이 양반이 지금? 듀얼리스트도 아닌데 듀얼리스트에게 듀얼로 도전을 해보겠다 이거지?
후후후, 좋다 이거야.. 남편, 각오하라고, 오늘의 나는 마트의 제왕조차 쓰러뜨리고 당신 앞에 오징어를 내놓은 최강의 여자라 이거야!
마치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을 손에 넣은 카이바 스러운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었던 나는,
남편의 기가 찰 법한 도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는 그와 오랜만의 듀얼을 펼쳤다.
당연하게도 내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말이다.
그런데..
"사이버 드래곤 인피니티로, 다이렉트 어택."
"에에에엑!?!? 져..졌어!? 내가?"
"휴우.."
"자.. 잠깐! 당신 덱에 그 카드는 없었잖아? 대체 어떻게 된거야!?"
"이럴 줄 알고.. 비상금으로 1장 사뒀어."
"너무해애애애애애애애!!!"
그 날 나는, 패배의 쓰라림을 가슴에 품은 채, 배개를 눈물로 적셨다.
아아, 이럴때는 내가 듀얼리스트라는 게 그토록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듀얼리스트는 언제나 듀얼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DNA 레벨로 각인된 본능을 거스를 수가 없었던데다가, 난 오늘, 거사를 치루지 못했다는 감정보다는
듀얼에서 패배해서 분하다는 감정을 더 크게 가졌다는 것에 울분을 토해내며, 잠자리에 들었다.
-2056년 4월 23일, 독거 노인 듀얼리스트 E씨의 하루.-
내 나이 벌써 팔십줄..
파릇파릇하던 어린 시절, 청년 시절은 이미 없어진 내 민둥산의 흰머리들과 운명을 같이하며 사라진 현재.
난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은퇴하고는 홀로 유유자적 이라기 보단 외롭고 투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청년 시절은 남 못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다.
내 청년 시절때는 듀얼리스트란 학술명이 발견되기 이전의 시기 였던지라.
너는 아직도 그 나이대에 어린이 카드를 붙잡고 사냐? 란 비아냥을 실컷 들으며 자랐던 세대다.
듀얼리스트라는 신종족이 인정되질 않아, 듀얼은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
것도 어린아이들이나 갖고노는 장난감 취급에서 벗어나질 못했기에, 항상 따가운 시선을 받는 건 예사고.
어디가서 카드 게임 놀이 한다고 떠벌리면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기도 했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나서 어느덧 안정되나 싶었더니,
난대없이 듀얼리스트란 신종족의 발견 학술이 사회 전체를 흔들었고.
영화에서나 능히 볼법한 차별, 멸시, 분노의 화살 등등을 받아가며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와선 그런 것도 다 옛말.
이제와선 다 좋은 추억이었지~ 라며 껄껄 거리며 들어줄 주변인도
다 언데드족 몬스터 부럽지 않을 뼛가루들이 되버려, 한 사람도 남지 않아 쓸쓸한 독거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형편이다.
"큽.. 또 이 놈의 발작이.."
듀얼리스트인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듀얼리스트란 종족은 정말이지 슬프고도 괴로운 종족이다.
우리들은 매일, 하루라도 듀얼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다는 고어가 전혀 틀린 말이 아닌지라.
마치 흡연자가 담배를 피지 않으면 겪는다는 금단증상과도 비슷한 것을, 듀얼을 하지 않으면 느끼게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듀얼이라는 것은 박수와 같다, 손벽이 마주쳐져야 소리가 나고, 상대가 있어야만 듀얼이 가능한 것이 현실.
나 같은 80줄 노인네를 상대해줄 듀얼리스트 따위, 옛저녁에 사고로 죽은 할망구 말고는 있을리가 없었기에.
나는 오늘도 발작을 가라앉히는 신경성 알약을 삼키며, 괴로운 하루를 이어가고 있었다.
"쿨럭! 쿨럭!'
사례가 걸려 내뱉는 기침이, 나 밖에 없는 집에 쓸쓸히 울려퍼졌다.
이거야 원, 노인네가 기침을 하는데 누가 걱정스럽게 물어볼 사람도 없다는 게 서럽고도 눈물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고독이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마치 인페르니티나 정크도플이 3분 넘게 솔리티어 하고 있는 걸 보는 것 만큼
무감정해 졌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하였다.
뭐, 이렇게 거창하게 놀라고 기침하고 해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말이야.
"빌어처먹을 현실이야."
-띵동, 띵동,-
"뭐야.. XX, 가스 점검이라도 왔나?"
쑤시는 허리와 무릎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며, 난 초인종 소리를 듣고는 현관문을 열어 누가 찾아왔는지 확인했다.
"헥.. 헥.."
"음? 뭐여 이 꼬맹인?"
"할아버지! 저 좀 숨겨주세요!"
그 날부터였다.
지루하고 씁쓸한 독거 생활에 소음과 활기를 불어넣어준,
정룡으로 치면 꼬마정룡, 마도로 치면 신판, 백룡으로 치면 아백룡 같은 황금 지원과도 같은.
몬스터로 치면 가가가 키드 같은 귀여운 꼬마 녀석이,
나 같은 할애비랑 말을 섞기 시작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빌어처먹도록 놀라운 일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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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할아버지 덱 많아아아~!"
"다 구식 덱들이여, 너 같이 새파란 어린애가 봐서 즐거울 거 하나 없는 구닥다리 들이지."
친구들이랑 숨바꼭질 하다가 내 집에 숨어들기로 결정했다고 하는 요 맹량한 꼬맹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 늙어빠진 나 같은 할아범이 뭐가 좋다는 건지는 내가 늙어선지 아니면 요즘 어린놈들이 특이한 건지는 몰랐으나,
아무튼 적적한 생활 속에서 말을 잊어갈 무렵에 꼬맹이 상대로 말동무라도 한다는 샘 치고,
나는 입으로는 쌍욕을 내뱉었지만.
녀석이 들어오는 걸 막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주책바가지 스럽지만 말이다.
"그치만, 책에서나 보던 덱들이 많은데요? 이거 정룡이라는 거죠?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이 녀석은 저어어어얼대로! 금지에서 안 풀린다고!"
"뭐, 동감이다, 나도 수집 욕망이 들어서 사서 맞춘 것 뿐이지만... 켁! 콜록.. 콜록!"
"할아버지 뭐 먹는 거에요?"
"빌어처먹을 약."
"약이요?"
"그래, 듀얼 금단 증상의 발작을 막아주는 약이야, 나 같이 상대 없는 노인네는 이런거라도 먹으며 연명해야 하지.. 빌어처먹을."
"할아버지 듀얼리스트잖아요? 그럼 듀얼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요 맹랑한 녀석이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아니, 필시 모르겠지, 너 같이 아직 앞날이 창창한 꼬맹이는 말이다.
"이 할비가 워낙 빌어처먹게 강해서 말이다, 우리 할망구 말고는 상대가 안됐었거든."
"그 정도에요? 노인정 같은 곳에 강한 사람 많지 않아요?"
"노인정? 껄껄껄, 농담마라 꼬맹아, 그런 애송이들 구역에 가서 덱에 쓸때없는 잡귀 붙일 일 있니? 그딴 하수들이랑 하느니, 차라리 발작으로 뒤지는 게 백배 낫다."
뭐, 녀석의 말대로 노인정에 가면 듀얼이야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 할애비 몸이 거기까지 무사히 갈 정도로 좋지 못하단다 이 망할 녀석아.
난 살아생전 거짓말과 거짓말쟁이를 제일 혐오했지만,
왠지모르게 이 녀석 앞에서는 내가 가장 혐오하는 짓과 혐오하는 대상이 되버린다.
꼴에 남은 마지막 자존심을, 없어진 머리숱 속에 살짝 남은 흰 실털 같은 거라도 지키고 싶었던 건지 뭔지..
정말이지 나이를 먹는 다는 건 뒤지는 게 낫다는 거랑 동의어라니까.
"그럼 할아버지! 저랑 듀얼해요!"
"뭐여? 듀얼? 너랑?"
"그래요! 저 이래뵈도 저희반에서 두 번째로 듀얼 잘해요! 덱도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드레그니티라니까요?"
"드레그니티? 이런 정신나간, 남정룡도 없는 드레그니티를 누가 짜? 그딴 건 덱도 아니고 카드뭉치야!"
"카드뭉치라뇨! 그럼 한 번 시험해보세요!"
"오냐, 짜식이 맹랑하기는... 좋다, 이 할애비가 버릇을 고쳐주마."
"절대로 이길테니까요!"
이게 얼마만에 듀얼이냐,
참내, 나잇값도 못하고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 증거로 녀석의 드레그니티에 맞서 난 내 덱 중에서 가장 국민 연금을 많이 빌어처먹은 용살자덱을 꺼내.
녀석의 도마뱀 나부랭이들을 썰어재껴 나잇값 못하는 승리를 쟁취했다.
정말이지 듀얼리스트란 종족은 슬프다.
이런 꼬맹이 상대로도 적당히가 안됀다니까.
난 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을 듀얼리스트란 종족탓과 나이탓으로 돌리며 녀석과 듀얼을 계속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날은.. 약 없이도 무척이나 평온하게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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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그 녀석의 부모가 찾아왔다.
"어르신, 더 이상 저의 아이와 가까워지지 말아주세요."
아, 이거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 상황이구만,
흔히 막장 드라마에서 나오던, 이거 줄테니까 더 이상 우리 아이랑 가까워지지 말게나 하는 그거.
이 새파란 것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건지,
나 같은 다 늙어빠진 빌어처먹을 노인네 앞에 나타나서 그 시츄에이션을 연출하니
배가 곪아터질 정도로 웃어재낄 수 밖에 없었다.
"그 놈이 지 멋대로 찾아오는 거지, 내가 가까워지는 게 아니여."
"그 아이에겐 제가 제대로 타일러 두겠습니다, 그러니 어르신도 더 이상 그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지 마세요."
"애지중지 하는구만, 아이들은 어렸을 땐 방목하고 키우듯 해야 해."
"하지만, 그 방목도 다 죽어가시는 어르신과 함께해선 안돼는 거죠."
이 여편네가 어른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네.
뭐, 다 죽어가는 건 사실이니 여기선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괜시레 언성 높였다가 황천길 가면 내 손해니까.
"그렇게 알아두시죠, 그럼.. 이만."
좋은 시간은 다 갔다 이거구만.
하긴, 나잇값 못하고 어린애를 너무 물들이긴 했다.
그 벌을 받는거다 이건.
뒤져가는 놈은 얌전히 뒤져야 한다, 세월에 뒤쳐진, 도태된 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세상의 도리.
빌어처먹을, 세상이라는 곳은 나 같은 다 늙어빠진 놈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나는 녀석도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매몰차게 대했다.
"다시는 오지말어!"
"할아버지 왜 그래요!?"
"빌어처먹을, 못 들었어!? 꺼지라고!"
지팡이를 휘두르며 녀석을 내쫒았다.
모처럼 찾아왔는데.. 미안하구만,
아니 뭐야, 내가.. 미안하다고 생각한겨?
이런 빌어처먹을, 저 녀석한테.. 정이 들어버렸구나.
"썩 꺼져!"
"흥! 칫! 뿡! 붸에에에 다!"
메롱이라니, 욘석아 그거는 옛날 만화에서도 인정한 구닥다리 인사야.
에휴, 그래, 가라 가.
나 같은 늙은이랑 엮여봐야 좋을 거 없어.
젊은 놈은 젊은 놈들 끼리 어울리면 되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난 마지막 선물이랍시고, 녀석에게 소리쳤다.
"얌마!"
"?"
"너, 반에서 최강이 되고싶지? 그러면 말이다! 상대를 똑바로 봐! 녀석의 덱에 가장 잘먹히는 카드를 찾아! 그리고 녀석이 싫어하는 듀얼을 해! 그러면 녀석의 페이스가 흐트러질게다!"
"할아버지.."
"그러면 그 듀얼은 네가 다 ㅁㅁ은거야 짜샤! 알겠냐? 귓구녕 잘 열어두고! 잘 세겨들어!"
".... 응!"
녀석은 밝게 웃으며 달려나갔다.
그래, 다신 오지마라 욘석아.. 그리고, 고마웠다.
나이를 먹어가며 다 말라 비틀어진 줄 알았던 눈물샘이.
그 날만큼은 왠일인지, 다시 수도꼭지를 비틀어 연 것 마냥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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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우리집에 찾아오지 않은 것도 어느덧 2주 남짓 지났다.
날은 벌써 6월, 따뜻한 봄 날씨는 어느덧 여름이라고 할법한 푹푹 찌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바깥의 날씨가 빌어처먹도록 좋던 말던, 내 말 수는 줄어들고 복용하는 약의 양은 늘어났다.
그리고, 다시금 외로움을 껴앉게 되었다.
이게 다 그 빌어처먹을 꼬맹이 탓이야, 에휴.. 청승맞게 나잇대 걸맞는 처녀도 아니고 이게 뭔지.
이렇게 울적해서야 사람이 살아도 산 게 아니겠어, 그래, 오랜만에 할망구 묘소라도 가볼..
"컥.. 쿨럭!"
-털썩!-
뭐야, 바닥에 피가..!
이런 빌어처먹을! 이건.. 평소의 발작과는 틀리다, 몸이, 심장이.. 바닥에 토해진 내 피들이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명계의 마왕 하데스 곁에 있을 할망구와 만날 시간인 모양이구만,
뭐야 이런 빌어처먹게 맙소사.. 죽어가는 와중에도 듀얼뇌가 안 멈추는 구만.
정말이지 빌어처먹을.. 아.. 이거, 눈 앞이 어두워진다... 평소 같았으면 뭐라도 쌍욕이라도 내뱉었을 입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 정말로 큰일..났..네 이거..
"할아버지 저 왔어요~"
어, 뭐..야?
저 망..할 놈이 여길 또 왔..어?
안돼, 오지.. 마..
"오늘! 할아버지가 말해준 대로 덱을 고쳐서 싸웠더니 정말로 이겼다니까요!"
뭐.. 시여..? 이...겼냐? 그거.. 빌..잘 됐..구..
"동찬이 녀석이 얼마나 분해하던지! 그 표정 할아버지도 보셨어야 하는데!"
나도.. 보고 싶..
".........할아버지 자요?"
...........................................
"할아버지 일어나요."
"......................."
"할아버지~~"
"..........................."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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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공간,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쯔쯧.. 노인네가 결국엔.."
"이런게 고독사라고 하던가요? 안됐네요."
"오래 버티셨지, 부인 분 돌아가신지 10년 가까이 지났었다면서?"
"10년 동안이나 팔십줄 노인네가 혼자서 오래 살았구만."
"재산은? 자식이라던가 있었어?"
"다 사회에 기부하셨데, 애초에 혼자 살던 것도 그것 때문에 자식들이랑 싸워서 였다나 봐."
"쯔쯔즛.. 그래서 장례식에 사람이 이렇게 없는건가? 하여간에.."
허름한 맨션에서,
홀로 살아가던 80대의 노인 E씨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장에는 그의 가족이나 일가 친척은 일절 찾아오지 않았다.
고작해야 동네 주민들 몇몇이 소박하게 치뤄준 것이 전부.
이런식으로, 쓸쓸하게 죽어가는 듀얼리스트 노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 전반에 펼쳐지면서 새로운 사회 이슈로 떠오르긴 했으나,
그것은 결국, 지나가는 하나의 소식으로서 소모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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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 유희왕 게시판 2주년 기념 특별 단편.
이번엔 좀 발상을 달리해 듀얼 팬픽이 아니라, 논픽션? IF 듀얼 팬픽?으로 찾아와 봤습니다.
사실 여러 기획들이 있었는데, 쓰다보니 설명들이 너무 길어지고 재미가 없어서.
도중에 노선을 바꾼게 꽤 있었는데, 요건 그래도 꽤 괜찮게 나온 듯 해서 요걸로 결정했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듀얼리스트가 인류를 대처할 신인류가 된 평범한 일상과 그에 동반한 사회문제?를 조금 다뤄봤습니다만.
특별 팬픽 치고는 좀 하하호호 만으로 안 끝나서 영 껄끄럽기도 하네요.
아무튼 유희게 2주년 축하와 감사의 말을 남기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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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마여어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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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여러분들의 주변에도 외로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마디 말이라도 같이 나눠주는 하루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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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노인까지는 생각을 못 했는데 놀랍습니다. 현실성 있고 개연성이 뛰어나서 '진짜 있을법 한데?'하고 머리를 굴릴만한 글을 만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죠. 추천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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