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없다. 없어!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어!! 오에산, 어느 도구장인의 공방 안에 날카로운 여자의 외침소리가 울려펴졌다. 카네구마 쇼우코가 요술망치가 없어진 것을 깨달은 건 이바라키가 오고 나서 한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 동안 다른 도구를 만들어 내느라 신경이 가지 않았던 요술망치였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좀 더 쓰기 좋도록 개량을 하고 싶은 맘이든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쓰고 내버려뒀던 곳을 뒤졌는데 요술망치는 나오지 않았고, 혹시나 다른 곳에 뒀나 싶어 그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는데도 흔적조차 없으니 그녀로서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자신의 공방 전체를 뒤지기에 이르렀고, 그래도 요술망치는 나오지 않았다. 「우찌된 영문이고? 발이 달려서 지멋대로 기어 나간기가??」 아니면 누군가가 말도 없이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가 감히 겁도 없이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도구를 훔쳐갔단 말인가? 사천왕 미만의 오니들이라면 그런 건방진 짓은 감히 할 엄두를 못 낼 것이다. 그렇다고 토라구마를 범인으로 보기엔 그 녀석은 자신의 훌륭한 도구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 문디자슥이다. 구마는 멍청해서 훔친다는 개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유우기를 지목하기엔 그 올곧고 정직한 성격상 말도 없이 가져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노릇. 그럼... 두령이? 확실히 가능성은 있었다. 그 두령이라면 종잡을 수 없을 만치 제멋대로이니까. 하지만, 왜? 「술만 마실 수 있다면 재보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하던 두령인데, 어따 쓸려고 가져갔단 말이고?」 만에 하나 두령이 가져갔다고 치고, 가져간 이유에 대해 추측해 보건데, 그럴싸한 이유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려고 가져간 것인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두령이니까. 범인이 두령이라면 쇼우코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왜냐면 두령 슈텐은 장난을 치는 것에 있어서 너무할 정도로 용서가 없으니까. 아마, 돌려받기는커녕 실컷 골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요술망치를 가져간 범인이 두령이어선 안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쇼우코 안에서는 그 불길한 가능성이 점차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대로 요술망치를 찾지 못한다면 두령이 가져갔다고 밖에는 판단 할 수 없어! 쇼우코의 불안이 커져갈수록 공포심도 비례해서 커져간다. 결국, 요술망치를 찾는 것을 포기한 쇼우코는 영혼이 빨려나간 얼굴로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아직 두령이 가지고 갔다고는 확신 할 수 없으나, 쇼우코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하나는 두령의 괴롭힘을 감안해서라도 찾아오는 것과 또 하나는 새로운 요술망치를 만드는 것. 둘 다 그녀에게는 만만치 않은 선택이었다. 전자는 악독한 괴롭힘에 시달려야 할 것이고 후자는 요술망치에 들어간 재료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기에 어느 것을 골라도 괴로운 일이 되고 만다. 그래도 결단을 내린다면 내키지 않겠지만. 「이젠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고... 어쩔 수 없나...」 그녀에겐 두령의 놀잇감이 되어 지독하게 시달리는 길을 택하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땅이 꺼지라 한숨을 푹 내쉰 쇼우코는 기운 없이 일어나 비틀거리며 공방을 걸어 나왔다. 입구에 기대어 서서 한낮의 태양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심하게 야위어 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의 고민이 그녀를 그렇게 야위어보이게 만든 것이었다. 곧, 눈이 부신 태양빛에 쇼우코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렇게 넋이 나간 상태로 서있기 보단 얼른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하고 볼 일이다. 그녀는 무거운 걸음으로 두령의 본거지인 술 창고 굴로 향했다. * 크르르렁-. 동굴의 철문이 열리고 쇼우코가 그 안으로 들어섰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지만 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둘려져 있는 도깨비불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기에 그리 어둡지 않다. 쇼우코는 두령이 주로 앉아있던 장소를 살폈고, 다행히 밖에 나간 것인지 두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신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가능한 두령이기에 평소에는 이 술이 가득한 동굴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했었는데, 그 본체가 자리를 떠나 있었다. 이유야 어찌됐던 쇼우코에게는 잘 된 일이다. 드물게 외출한 두령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니, 쇼우코는 서둘러 두령의 자리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아니, 뒤질 것 까지도 없었다. 명색이 수백의 오니들을 이끄는 대악귀 슈텐도지의 권좌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이 있는 것이라곤 마을 하나를 가득 매울 정도의 술들과 언제 한 번 단숨에 대륙까지 건너가 구해온 호피(虎皮) 몇 장이 다였다. 그렇기 때문에 행여 이곳에 요술망치가 있다면 바로 눈에 띠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요술망치는 이곳에 없다는 거겠지. 후우-. 쇼우코가 날숨을 길게 늘여놓았다. 역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탓에 판단을 잘못한 모양이었군. 돌아가서 다시 한 번 공방을 뒤져 볼 생각을 하면서 되돌아가려는 그녀에게 무언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차가운 동굴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기 위해 널찍하게 깔려있는 호피의 가장, 호랑이의 손에 해당하는 부분이 뭉텅하게 솟아있었다. 틀림없이 그 아래에 무언가가 깔려 있는 것이라 확신한 쇼우코는 조심스레 네다리로 술 냄새에 절어있는 호피 위를 기었다. 그리고 호랑이의 손 부분을 젖혀 제치자, 아니나 다를까. 그토록 찾고 있던 요술망치가 떡하니 있었던 것이다. 쇼우코는 요술망치를 찾아냈다는 기쁨에 안면의 구멍이란 구멍이 평상시의 몇 배는 크게 해서는 소리 없이 전율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면 요술망치를 이런 곳에 방치했다는 것은 두령이 이것의 존재를 그만 잊어먹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한마디로 쇼우코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인 것이었다. 두령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재수 없게 걸리기 전에 속히 동굴 안을 나와야 했기에 쇼우코는 서둘렀다. 품속에 요술망치를 넣고, 열려져 있는 문을 향해 달려 나가려는 순간,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 외엔 없었던 공간에 누군가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쇼우코는 땅을 박차기 위해 굽혔던 무릎을 세우고 조용히 시선을 뒤로 던졌다. 온몸이 짜릿해질 정도의 기척. 절로 긴장을 하게 되는 걸로 보아 침입자는 평범한 자가 아니었다. 아마, 대요괴 중에서도 상당한 거물이리라. 고개를 돌린 쇼우코의 눈에 보인 것은 허공을 찢고 나타난 기괴한 눈들이 가득한 암흑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 너머로 이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요악하게 아름다운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규슈의 여식과 같은 고귀한 차림세지만 기모노가 아닌 이색적인 의복을 한 보라색 눈의 여인. 그 모습이나 품고 있는 기운이 너무나 기이하고 요악해 수상하게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쇼우코가 경계의 눈으로 정체를 물었다. 「누꼬?」 「어머, 슈텐은 지금 없는 모양이네요.」 수상한 그녀로부터 두령의 이름이 나왔다. 도대체 누구 길래 겁도 없이 두령을 찾는단 말이지? 경계를 풀지 않은 쇼우코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누구라고 안 묻나?」 「그쪽 분에게는 처음이겠네요. 저는 슈텐과 동문인 야쿠모 유카리라고 해요,」 원래 아름답던 얼굴이 웃음까지 머금으니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님처럼 곱고 예쁘다. 한순간이지만, 쇼우코는 그만 유카리라는 여인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말았다. 얼굴에 홍조를 그리는 것도 잠시,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가늘게 뜬 눈으로 선녀 같은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쇼우코는 이전 두령에게 들었던 얘기에 대해 떠올렸다. 두령의 스승도 반했다던 절세미녀. 틈새를 조작하여 어디든지 제약 없이 드나든다는 경계의 여인. 들었던 대로의 요괴다. 언젠가는 이곳을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두령이 말했지만, 설마 지금 찾아 올 줄이야. 괜히 관여했다간 성가신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직감에 쇼우코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이 장소에서 벗어날 만한 구실을 궁리했다. 저 여자가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두령이니까, 나는 간단한 자기소개만 하고 나가면 되겠지? 「두령의 사매님이었군요. 듣던대로 엄청시리 이쁘시네. 하하... 지는 카네구마 쇼우코라 한데이. 뭐, 여기서 나름 사천왕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는 가시나고마.」 「후훗. 칭찬 감사드려요. 쇼우코 씨라고 했죠? 그 쪽도 예쁘신 거 같네요.」 「하이고 마~. 그런 입 발린 소리 하지 마쇼. 실은 길바닥에 굴러 댕기는 돌맹이 같을 거 아닌교?」 「그건 자신을 너무 비하하는 말인 걸요? 봐봐요. 이렇게 앞머리 좀 다듬으면..」 유카리가 쇼우코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그녀의 앞 머리칼에 하얀 손을 갖다 대었다. 순간, 움찔하고 몸을 굳힌 쇼우코를 숨 막히게 아름다운 눈으로 그윽하게 바라보다가 손을 놀려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예쁘게 보이도록 정리 했다. 평소 아무렇게나 내버려뒀던 쇼우코의 꾸불거리는 산발이 점차 유카리의 손에 의해 여성스럽게 정돈되었고, 그러는 동안 쇼우코는 잠자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유카리의 손에 자신의 머리를 맡겼다.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유카리의 손이 묘하게 기분이 좋았던 데다가 또 그녀의 몸에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에 그녀는 차마 뿌리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쇼우코는 같은 여자인 유카리에게 조금이나마 반해버릴 것만 같았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절세미인이란 말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경국지색이란 말 까지도 절로 이해가 되었다. 만약, 자신이 남자였더라면 그녀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로운 냄새를 잊지 못해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테지. 아니야, 여자여도 오늘 밤 다 잤다 다 잤어! 「자, 다 됐어요. 한 번 봐보세요.」 유카리의 목소리가 쇼우코의 상념을 깨웠다. 그리고 허공에 작은 틈새를 연 유카리는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 머리 크기 만 한 동경(청동으로 이루어진 거울)을 꺼내서 쇼우코에게 들어 보였다. 동경에는 머리를 뒤로해서 비녀로 묶어놓은 개성적인 외모의 여인이 비치고 있었다. 쇼우코는 잠시 동경에 비쳐진 여인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나 이내 그 여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에?' 놀람과 감탄이 섞인 단말을 작게 내뱉었다. 저 인위적이지 않은 마로눈썹(점 같은 눈썹)은 틀림없이 자신이었다. 그런데 예쁘다? 물론, 진짜 예쁜 유카리에 비하면 여전히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맹이 수준이지만, 고작 머리를 만져진 것만으로 이정도의 변화가 생기다니! 「무슨 요술을 부린 기고!?」 「요술이 아니라 여자의 기술이에요.」 「뭐? 여자의 기술??」 자신을 여자같이 바꿔놓은 것이 여자의 기술이라고? 참으로 무섭도다. 여자의 기술! 쇼우코는 들뜬 기분으로 동경 속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어쩐지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무언가 알 수 없는 종류의 기쁨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모처럼 머리를 예쁘게 했으니 당분간을 유지하고 다녀야지. 아니, 이 참에 배우자! 「저기, 그.. 여자의 기술이란 거 나한테 갈케주지 않을래? 나 이뢰뵈도 손재주 하나 억수로 좋거든. 금방 배울 거니까.. 갈케 줘!」 무언가 원래의 목적을 잊고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좋은 쇼우코였다. |
|
유카리가 입고 있는 옷은 송나라의 여성 의복인 한푸입니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