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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석을 깎아 만든 돌층계를 오르며 이바라키는 오니들이 세운 나라를 둘려보았다. 산문과 같이 크고 웅장한 건물들이 질서 없이 늘어서 있었고, 크고 작은 가지각색의 오니들이 처마 위에나 그 아래, 또는 마루에 누워서 낮잠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어지럽혀져 있는 술병과 잔들로 봐서는 술에 취해 골아 떨어져 있는 것일 뿐. 술을 즐기는 오니다운 모습이었다. 「어라? 두령, 그 여자는 누굽니까?」 오니 하나가 스이카와 이바라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8척 정도의 덩치에다 눈을 다 가리는 산발을 한 오니였다. 그의 물음에 스이카가 시원스레 답했다. 「내 마누라다.」 그 순간,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이바라키가 스이카의 등을 강하게 한 대 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틀린 소리는 아니잖아?」 「뭐가 틀린 소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언성을 높인 이바라키는 스이카의 등을 한 대 더 때리고는, 혹여나 저 산발의 오니가 오해를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오해하지 마셨으면 해요! 이 오니는 오니인 주제에 거짓말을 잘 하니까요.」 「그 모습을 보니 두령 말대로 정말로 부인인가 보네.」 그러나 이바라키의 그러한 노력은 오히려 부부사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 산발의 오니가 허허 웃었고, 스이카도 따라 웃었다. 그 둘 사이에서 이바라키는 속이 바짝 타들어갔다. 「그니까, 단정 짓지 마라니까요! 전 이 오니와는 절대 부부사이가 아니라고요!!」 이바라키는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그럼에도 오니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도리어 「두령, 부인이 많이 쑥스럽나 보네요.」하고 약 오르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스이카가 그 말에 동조하며 맞장구를 쳤다. 「어때? 내 마누라 엄청 귀엽지?」 「부럽네요. 저도 저런 마누라 가져보고 싶은데..」 참다못한 이바라키가 소리를 와락 질렀다.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마세요! 거기 오니 씨, 보면 몰라요? 같은 여자끼리 어떻게 부부사이가 될 수 있죠?」 눈썹을 치켜세운 이바라키를 쳐다보며 산발의 오니가 잠시,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대답하길 「두령이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건 유명한 얘기라 딱히 이상할 건 없는데?」 당연하다는 듯 반론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스이카가 깔깔 웃으면서 오니의 말을 보충했다. 「여긴 나뿐만이 아니라 딴 오니들도 같아.」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이바라키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묻자, 스이카는 산발의 오니에게 눈짓으로 그에 대한 대답을 떠넘겼다. 의도를 눈치 챈 오니가 대신 설명한다. 「아 그건 말이야, 맛만 좋으면 상관 안한다는 말이야.」 「그건... 설마....?!」 「편식 안 한다고!」 스이카가 부연을 하며 끼어들었다. 「떡치는데 까다로울 필요가 있어? 취향이면 되는 거지.」 「저질...」 「오니 주제에 순진해 빠져서는.」 이바라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관자놀이를 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요괴에겐 인간의 관념 따위 통용되지 않는다는 건 요괴인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남녀라는 성이 존재하는 이상, 성을 탐하는 것에 있어 동성이 끼어 들 여지가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상반된 성끼리 사랑을 하며 반려자로 맞이하는 것이 순리인 것인데, 저들은 그 순리를 완전히 거역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같은 오니라지만,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다. 이바리카는 머리가 지끈해져 오는 것을 참아가며 또 다른 오니 하나가 다가오고 있음을 눈치 챘다. 사팔뜨기 눈을 한 오니였다. 눈이 사팔뜨기인 오니가 이쪽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말을 건네 왔다. 「곱상한 여자구만. 두령이 납치해 온 거요?」 「천만에.」스이카가 대답했다. 사팔뜨기는 좀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 못생긴 상판떼기를 이바라키에게 들이밀었다. 그리곤 감탄을 하며 입을 나불거렸다. 「이쁘네. 너 이름이 뭐야?」 그의 입에서는 생선 썩은 냄새와 술 냄새가 동시에 풍겨져 나왔다. 그 지독한 입 냄새에 이바라키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고, 옆에 있던 스이카가 혀를 차며 불쾌감을 드려냈다. 「시발, 똥을 입으로 싸고 다니나? 썩은 내가 진동한다!」 스이카의 핀잔에 사팔뜨기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막았고, 지켜보던 산발의 오니가 허허허,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두령이 찜한 여자니까, 건들면 ↗되니까 조심해.」 산발의 주의에 사팔뜨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입을 쩝 다시며 아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스이카는 사팔뜨기를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며 경고했다. 「저 호로새끼, 눈은 높아가지고. 저래 뵈도 너 보단 세니까, 꿈도 꾸지 마.」 그러고는 방긋 웃으며 이바라키를 그윽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 내가 있는 한 널 건드는 새끼는 없을 거야.」 「하아-. 당신이나 절 안 건드렸으면 하네요.」 스이카의 느끼함에 안 그래도 지끈하던 머리가 더 아파오는 이바라키였다. 아무리 부부사이가 아니라고 부정해도 부끄러워하는 걸로만 받아들일 테고, 그렇다고 이대로 스이카의 아내 취급 받는 건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설득 시킨단 말인가? 말로는 통하지 않는 상대인데. 그렇다면 남은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수밖에. 이바라키는 사팔뜨기와 산발을 번갈아서 노려보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신다면 가만 안 두겠어요.」 갑작스런 경고에 스이카가 물었다. 「뭐가 쓸데없다는 거야?」 「저랑 야..야한 짓 할 생각. 그리고 당신이랑 부부 취급하는 거 말이에요!」 이바라키는 얼굴에 홍조를 띄우며 설명했다. 몹시 부끄러워하는 반응에 스이카는 양 입가를 찢으며 그녀를 귀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산발의 오니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역시, 두령이 부러워 죽겠어요. 너무 귀엽잖아!」 사팔뜨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공감했다. 「내 마누라였다면 밤마다 재우지 않았을 거야.」 의견이 일치한 두 오니의 시선이 동시에 이바라키에게 향해졌다. 스이카도 두 오니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음흉한 시선으로 이바라키를 훑었다. 미녀라 불리기 부족함이 없는 외모에 옷 위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훌륭한 가슴. 이바라키는 얼굴과 몸매, 둘 다 충족시키는 보기 드문 미인상이었다. 끈적거리는 세 오니의 시선에 이바라키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들의 시선에 전신이 유린당하는 감각을 느끼며 그녀는 말아 쥔 양 손에 불끈 힘을 주었다. 지독한 불쾌감에 분노한 것이었다. 이바리키는 감정이 담긴 어조로 차갑게 내뱉었다. 「가만 안 두겠다고 말 했을 텐데요?」 그녀의 말이 끝맺음과 동시에 두 오니에게 강한 살기가 향해졌다. 그리고 두 오니가 미처 자각하기도 전에 이바라키의 폭력이 그들을 덮쳤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상황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빠르게 종결 됬다. 과정은 없고, 결과만 남아버린 것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팔뜨기가 누워 있었고, 이어서 산발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 가운데 훌륭하다는 듯이 손뼉을 치는 스이카가 있었다. 「열 받으면 무시무시하게 변하는 것도 여전하구나.」 크하핫. 큰 소리로 웃으면서 땅바닥에 널 부려져 있는 두 명의 오니를 내려다본다. 쓰러진 두 오니는 방금 자신이 무언가에 맞았다는 사실 조차 제대로 인식 못한 채, 서로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봤다. 눈으로 볼 수 없을 만치 빠르고, 또 매서운 공격이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대는 이바라키를 보며 스이카가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나는 안 때릴 거야?」 「당신을 때려봤자, 제 손만 아플 뿐이에요.」 「차별은 싫은데...」 「흥. 그럼 특별히 아주 세게 때려 드릴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일부로 맞고 싶어 하는 건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이바라키는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그녀가 원하던 대로 전력으로 때려주기로 했다. 하지만, 직접 쳐봤자 손만 아플 정도로 단단한 스이카다. 확실히 피해를 입힐 만한 공격이 아니고서야 의미가 없다. 이바라키는 잠시 궁리를 하다 정했다는 듯 결심을 굳힌 얼굴로 자세를 가다듬었다. 이바라키의 전신으로부터 붉은 요기가 거칠게 발산 되어 나왔다. 그녀의 중심으로 거센 칼날 바람이 사방팔방 뿜어져 나간다. 그녀는 스이카를 상대로 오랜 수행으로 얻은 필살의 오의를 먹일 생각이었다. 어지간한 요괴라면 틀림없이 일격필살인 수준의 기술이지만, 저 슈텐을 상대로 과연 어디까지 통할지, 이바라키에게 있어 그 궁금증을 풀 좋은 기회였다. 이바라키가 내뿜는 심상치 않은 요기에 누워있던 두 오니가 마른입으로 침을 삼켰다. 겉보기에는 그저 예쁘장하게만 보이던 여자가 실은 엄청난 요력을 지닌 강자였다니. 두령을 통해 겉모습과 강함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어디까지나 두령은 예외라고만 알고 있던 터라, 이바라키의 힘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두 오니는 이대로 있다간 자신들도 휘말릴 거란 예감에 앉은뱅이 자세로 슬금슬금 힘의 근원으로부터 거리를 벌려갔다. 그에 비해 스이카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철철 넘쳐 흘렸다. 전신의 요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이바라키가 외쳤다. 「각오하세요!」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왼손으로는 오른팔을 지지하듯 붙잡은 자세를 취한다. 이바라키의 오의는 그녀가 「황룡낙진격!」하고 그 명칭을 외쳤을 때, 발해졌다. 쿠르릉. 땅이 요동치며 흔들리더니 스이카의 발밑이 거칠게 솟아났다. 그 충격으로 자세가 흔들린 스이카를 거센 강풍이 하늘 높이 들어 올렸고, 이어 번쩍하고 마른하늘에 벼락이 쳤다. 어느새 생성된 암운이 하늘을 온통 검게 뒤덮고 있었다. 공중으로 띄워진 스이카의 머리위로 암운의 중심지가 갈라지기 시작했고, 곧 커다란 구멍이 되었다. 그것은 무방비해져 있는 스이카에게 일격을 먹일 통로였다. 그리고 한 번 더 번쩍 하고 벼락이 쳤을 땐 거대한 황색의 빛줄기가 스이카를 삼키며 지상으로 떨구어졌다. 콰쾅! 귀를 찢는 파괴음과 함께 대지가 산산이 부셔져 나갔다. 빛줄기가 떨어진 땅으로부터 크고 작은 돌덩이가 튀어 오른다. 수많은 술법 중에서도 낙뢰를 부르는 술법은 흔치 않을 뿐더러 그 강함에 있어서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바라키가 부린 저 조화는 평범한 낙뢰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낙뢰이긴 하나 낙뢰라고 하기엔 너무나 괴이했다. 거대한 황룡이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형상이었고, 그 어떠한 술법도 비교를 불허하는 압도적인 규모와 파괴력을 지녔다. 스이카에 미치지 못한다고는 하나, 그녀 역시 기예유의 제자답게 요술을 부리는 것에 있어 일류인 요괴였다. 오의가 행해진 장소는 그 충격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 있었고, 그 중심지에 스이카가 대자로 누워있었다. 스이카는, 거대한 뇌격에 옷은 거의 다 타버려 검게 그을린 속살을 드려내고 있었고, 숯이 묻은 것인 양 시커먼 얼굴에 이 만이 하얗게 보였다.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피해는 크게 입지 않았는지, 알몸이나 다를 바 없는 몰골인데도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가까이 다가와 스이카의 모습을 확인한 이바라키는 질렸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가 좋다고 그리 웃어대는 거예요?」 그에 스이카가 쾌활한 어조로 답했다. 「전신이 짜릿짜릿한 게 어쩐지 이거 중독될 것만 같아!」 「아... 머리야, 슈텐. 당신은 정말로 대책이 없는 변태에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바라키는 몰러오는 피로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녀는 스이카를 대한지 반나절도 안 되었음에도 벌써부터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갔다. 지금도 이런데, 이 오에산에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이바라키는 앞으로의 일이 너무나도 걱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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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이든 수컷이든 맛만 좋으면 상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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