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짓은 그만두죠?"
히지리는 말로만 하지 않았다. 히지리는 발을 들어올려 그대로 내리찍었다. 토지코의 몸을 자비없이 짓밟았다. 쾅! 토지코는 육체가 없는 망령임에도 불구하고 히지리가 짓밟는 그대로 땅에 쳐박혔다. 하지만 땅에 쳐박힌 토지코를 바라보는 히지리의 표정은 영 만족스러워보이지 않았다. 히지리는 몸을 낮춰 토지코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토지코의 머리를 땅바닥에 쳐박았다. 쾅! 한 번. 쾅! 두 번. 쾅! 세 번째가 되서야 히지리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히지리는 신음을 흘리고 있는 토지코를 그대로 벽을 향해 내던졌다. 쾅! 이전에 레이무가 그랬던 것마냥 토지코는 벽에 쳐박혔다. 레이무와 달리 벽이 무너져내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토지코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토지코가 피를 흘리지 않았다고해서, 흙먼지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코는 주저앉은 채로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미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덜덜 떨고만 있었을 뿐이다.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을 턴 히지리는 고개를 돌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세이가는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히지리가 고개를 돌리자 세이가는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세이가는 어떻게 할까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양손을 들어올렸다.
"저 그냥 가봐도 될까요?'
"방해할 생각이 없으시다면 괜찮아요."
히지리는 온화하고 친절히 말했다. 세이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오히려 저 가공할 폭력을 피한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될 지경이다. 그러다가 문뜩 세이가는 히지리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이질감? 그때였다.
"크윽……."
벽에 쳐박힌 채 미동도 보이지 않던 토지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히지리의 시선이 토지코를 향했다. 얼굴에서 미소가 희미해진 히지리는 혀를 찼다.
"질기군요. 쓸데없이 질겨."
흉흉하고 온화했던 목소리가 조금씩 쇳소리처럼 변해가는 히지리가 토지코에게 다가갔다. 아니, 다가려고 했다. 히지리가 한 걸음 내딛은 순간 그녀의 발에 무엇인가 걸렸다. 검이었다. 토지코가 미코에게 건네주려고 했던 그 검이었다. 걷다 말고 그걸 지켜보던 히지리의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떠올랐다.
"토지코, 당신 이 검을 미코에게 주고 싶어했죠? 그 소원 이루어드릴게요. 그정도야 어렵지 않으니까."
히지리는 검을 줏어서 미코에게 내밀었다.미코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건네받았다.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미코가 검을 받아들자 히지리는 다시 걸음을 뗐다. 그러면서 미코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따라오세요."
미코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한 쪽 무릎을 먼저 일으켜세우고 몸을 일으켜세우려는 순간 미코의 몸이 무너지듯 넘어져버렸다. 쿠당탕!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에 히지리는 걷다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히지리는 미코가 넘어져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미코는 다시 몸을 일으켜세웠다. 다시 넘어졌다. 다시 몸을 일으켜세웠다. 이번엔 한 걸음 걸어갈 수 있었다. 다시 넘어졌다. 일어나고, 걷고, 넘어진다. 그리고 반복한다. 그동안 공포에 질려있던 미코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결국 미코는 히지리의 곁에, 토지코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히지리가 말했다.
"뽑으세요."
"네……?"
짝!
미코가 반문한 그 순간 히지리의 손바닥이 미코의 뺨을 치고 지나갔다. 미코의 뺨은 붉게 부어올랐다. 히지리는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해드릴까요?"
"아…아닙……니다."
미코는 거의 애원하듯이 말하며 검의 자루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그리고 마치 그 검을 처음 만져보는 사람처럼 어색하게 검을 뽑아들었다. 미코가 검을 뽑아드는 것을 본 히지리는 토지코의 가슴을, 정확히는 그 너머로 심장이 있을 부근을 가리켰다.
"미코. 당신이 해야되는 일은 간단해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지요. 이것만 해낸다면 때리지 않을게요. 항상 귀여워해드릴게요. 사랑해드릴게요. 보살펴드릴게요. 자, 여기를 찌르세요."
미코는 깜짝 놀라 히지리를 쳐다보았다. 현명한 선택이라면 현명한 선택이었다. 만약 반문했다면 히지리가 다시 미코를 때렸겠지만, 그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는 히지리는 아무런 가해도 주지 않았다. 미코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자신은 이미 한 번 그런 짓을 했었다고. 더이상 그런 짓은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의지가 말로도, 행동으로도 표현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미코가 토지코를 찌르는 일도 없었다. 미코는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그사이 히지리는 토지코의 턱을 잡고 그녀의 귀에다 속삭였다.
"재밌는 내기 하나 할까요? 미코가 과연 당신을 찌를지, 안 찌를지? 만약 찌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승리. 미코가 당신의 태자님이라는 걸 인정해드리죠. 당신의 태자님이라면 당신 같은 충성스런 신하를 찌를 리 없으니까. 그리고 만약 찌른다고 하더라도 그걸로 끝. 당신에게 아무런 손해도 없어요. 어때요? 흥미로운 내기가 아닌가요?"
히지리는 정말로 흥미롭지 않냐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토지코는 이를 악물고 눈에서 번갯불을 튀기며 히지리를 노려보았다. 히지리의 눈웃음이 비웃음으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 비웃음이 점점 광기에 물들어가기 시작할 때 히지리는 갑자기 몸을 돌려 미코를 돌아보더니 양팔을 양옆으로 펼치며 말했다.
"자, 토요사토미미 미코! 소가노 토지코를 찌르세요!"
미코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다. 찌르면 안된다는 것을. 찌르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미코 자신을 찌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몸은 의지를 배신했다. 아니, 의지조차 변절하고 있었다. 찌르지 않으면 기다리는 것은 치욕스런 나날 뿐이었다. 고통스럽고, 굴욕스러운, 하루하루가 지옥이나 다름없는. 손잡이에 힘이 들어갈수록 손이 떨리는 정도는 점점 심해져갔다. 당장이라도 이가 갈려나갈 듯이 미코는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하면 마음의 망설임이 줄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히지리를 노려보던 토지코는 갑자기 피식 웃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귀에 거슬릴 정도였던 웃음소리가 급기야 광소가 되었다. 마치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토지코는 웃어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제3자의 입장으로 지켜보던 세이가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망령의 광소에 세이가는 팔을 쓸어내렸다. 그에 반해 히지리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토지코를 돌아보더니 의아해하며 말했다.
"어머, 미쳐버린 걸까요?"
"하하하하…… 미친 땡중. 내가 왜 네놈 따위랑 내기를 해야되는 거지? 내가 거기에 응할 이유는 없다!"
토지코는 히지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히지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은 인간다운 표정이었다.
"당신에게 선택권 따위가 있을 거 같나요? 아! 그렇군요. 당신의 목적은 그것이었군요?"
히지리는 눈살을 풀며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미코가 당신을 찌르게 되면 당신의 헛된 믿음조차 망가져버릴까봐? 그랬다간 당신조차 무너져내릴까봐? 그래서 저를 도발한 것이었군요? 제가 당신을 죽이도록. 아니, 이미 죽었으니까 죽인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군요? 아아, 이기적이어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아예 이참에 혼자 살아가는게 어떠냐? 혼잣말하는 것만 봐도 혼자서 잘 살 것 같은데 말이다?"
"쓸데없는 말이군요."
"굳이 네놈 따위랑 내기를 해야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저 분은 나를 찌르나, 찌르지 않으나 나의 태자님이시다. 그것은 너 따위가 어찌할 수 없는 진실이다."
으득.
히지리는 이를 갈았다.
"미코! 당장 이 년을 찔러!"
히지리의 입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코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고통에 힘겨워하고, 굴욕에 힘겨워하고, 치욕에 힘겨워했던 미코의 몸은 히지리의 꼭두각시라도 된 마냥 움직였다. 발걸음을 한 걸음 내딛고, 검을 잡은 두 팔은 앞으로 뻗는다. 하지만 얼굴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거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안된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리고 검은 토지코의 가슴을 꿰뚫었다.
푹!
망령이기에 피가 솟구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미코의 검은 과거 성덕태자의 격에 어울리는 검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망령조차 한 번 더 죽일 수 있는 검이다.
토지코를 찌른 순간, 미코는 검에서 손을 놓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미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미코는 울음을 터뜨렸다. 검에 찔린 순간, 토지코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렇지만 금방 충격에서 빠져나온 토지코는 미코를 직시하며 말했다.
"태자님. 이 미천한 몸은 태자님의 선택을 믿습니다."
콰아앙!
그순간 폭음이 울려퍼졌다. 기쁨에 겨워하고 하고 있던 히지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그 소리는 아까전 하쿠레이의 무녀가 돌무더기에 묻혀있던 방향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돌무더기를 날려버린 하쿠레이의 무녀가 거기 서있었다.
"이 바보가!"
레이무는 그렇게 외치며 히지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이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토지코가 박혀있는 벽을 향해 비녀를 날렸다. 비녀가 벽에 꽂힌 순간 벽에 구멍이 뚫렸다. 벽에 구멍이 뚫리자 검에 박힌 토지코의 몸은 그대로 밖을 향해 쓰러져갔다. 그리고 세이가는 히지리가 레이무에 정신이 팔린 사이 미코를 향해 달려갔다. 그렇지만 목적을 알아차린 히지리는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레이무가 날아오든 말든 세이가를 노려보았다.
"데려갈 생각이면 죽여버리겠다……!"
"어머? 그러면 전 가만히 있죠."
세이가는 그렇게 말하며 바로 멈춰섰다. 악귀같던 히지리의 얼굴이 잠시 멍해졌다. 세이가는 사선다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순간 레이무가 히지리를 향해 부적과 함께 날아들었다. 히지리는 세이가를 뒤로한 채 레이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둘의 격돌이 다시 시작되었다. 세이가는 조심스럽게 미코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하지만 히지리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고는 흠칫했다. 세이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딛었다간 히지리가 정말로 그녀를 죽여버릴 거라는 것을.
그렇지만 세이가는 그런 히지리를 향해 히지리 못지 않게 사악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전 가만히 있겠다고 했죠? 요시카! 당장 태자님을 데리고 나가!"
벽에 난 구멍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시카는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다. 요시카는 세이가가 명령한 대로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는 미코에게 다가갔다. 레이무와 싸우고 있던 히지리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어떡하죠? 요시카는 이미 시체라 죽인다는 협박이 소용 없는 모양이네요?"
히지리는 레이무와 싸우다말고 미코를 끌고나가는 요시카를 향해 뒤늦게 움직였다. 히지리는 세이가한테만 신경쓰고 있었지 밖에 있는 하찮은 강시 따위에겐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하지만 뒤늦게 움직였더라도 히지리가 허공을 박찬 순간, 그걸로 끝이었다. 히지리는 요시카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그러나 히지리가 발을 내딛는 순간 근처에 깔려있던 부적들이 갑자기 빛을 발하더니 히지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발을 묶었다. 히지리의 얼굴이 점점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히지리는 미코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러나 요시카는 미코와 함께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구멍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치 원래부터 뚫리지 않았던 것처럼 닫혔다.
히지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하.하.하.하.하."
히지리는 웃기 시작했다. 토지코의 광소 못지 않게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였다. 히지리를 향해 달려들던 레이무는 그 소리에 멈춰섰다. 밑도 끝도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히지리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채 말했다.
"그래. 날 방해할 생각이지? 나와 미코 사이를 떨어뜨려 놓을 생각인거지? 괜찮아. 죽여버리면 그런 짓은 하지도 못할테니까. 죽여버리면 되. 나와 미코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은 모조리 죽여버릴거야. 그리고 모조리 죽여버리고 난 후에……."
히지리의 목이 기이하게 꺾이기 시작했다. 히지리는 고개를 뒤로 눕힌 듯, 옆으로 눕힌 듯 목을 꺽으며 레이무를 노려보았다. 히지리의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 쪽 눈은 울고 있었고, 다른 한 쪽 눈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그늘져있는 얼굴은 일그러져있었다. 더이상 인간이라고 보지않아도 된다고 인정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히지리의 입이 열렸다.
"기다리세요, 미코. 지금 바로 모조리 죽이고 찾으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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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상 한 번 더 끊어야하는데... 이거 단편으로 기획한건데 거의 지금 몇개월 째 쓰고 있는 거지...?
거기다가 원래 태자님을 골탕먹여보자! 라는 의미에서 쓴 글인데 의미가 없어진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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