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왔어... 어라? 레이무?"
나는 곧바로 내가 어둡고 음습한 역에 앉아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일단 나는 일어나서 주변을 보았다. 빛도, 열도, 생기도 없는 역에는 나를 제외한 아무런 생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상한 꿈에 들은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역의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역 밖은 한술 더 떠, 완전히 깜깜했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생기가 하나도 없는 남자의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머지않아, 열차가 옵니다. 그 열차를 타면 당신은 무서운 경험을 당하게 됩니다."
무서운 경험, 이미 이전의 일들로 많이 맛보았다 생각했고, 흥미도 돋기 시작했기에 나는 출구를 찾는 것을 멈추고는 열차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열차가 들어오자 나는 열차을 타기 위해 다가갔다.
열차는 일반적인 모양새와는 다른;유원지에서나 볼 법한 원숭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분명 과거에 이런 열차가 나오는 괴담을 보았던 것 같지만,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열차에는 몇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전부 움직임이 없었고, 전부 무표정이었고, 전부 안색이 나빴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나는 열차에 타려고 했을 때서야 내 앞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대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뒤에 따라오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듯 불안하게 주변, 그리고 승객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가 열차 뒤쪽에서 세번째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별 수 없이, 유일하게 남은 자리인 바로 그 남자의 앞자리에 앉았다. 좌석 주변의 공기는 마치 이 장소의 것이 현실의 것이기라도 한 마냥 늦봄의 따스한, 약간 후덥하다고 할 수 있기도 할 묘하게 생생한 것이었다. 그러자, 마치 내가 앉기를 기다렸다는듯 "출발합니다." 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열차가 출발했다.
역 밖이자 열차의 밖이기도 한 주변은 여전히 완벽한 어둠에 뒤덮여 있다. 열차는 그 어둠 속에서 모습을 혼자 선명히 드러낸 채, 그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하게, 이 원숭이 열차에는 분명 아무런 조명이 없는데도.
일일이 생각하는 것은 그만 두자. 꿈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어쨌거나, 별다른 흥밋거리도 없기에 나는 그나마 뒤에 앉은 사람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눈에 생기가 있었지만, 나를 보고 있다고 하기에는 초점이 너무나 심하게 엇나간 눈으로 내가 앉아있는 앞을 보고 있었다. 남자는 반은 흥분한 상태, 나머지 반은 겁에 질린듯 떨고 있었다. 나는 아예 몸을 돌려 남자를 똑바로 보았지만 여전히 무시로 일관했다. 나를 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하면 되려나.
계속 앞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 보라색의 빛이 비추어졌길래 나는 뭔가가 열차의 앞에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몸을 다시 돌려 앞을 보았다. 저 멀리, 터널 같아보이는 구멍 안에서 보라색의 영문 모를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필시 어릴 적에 보았었던 것 같은 빛이었지만, 이 꿈의 것은 행복한 추억의 빛이 아닌 미묘하게 괴기한 빛이었다.
이제서야 이 꿈의 내용이 떠올랐다. 터널 안에 들어가면 갑자기 영문을 모를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동시에 난쟁이들이 나타나 탑승객들을 뒤에서부터 하나 하나 차례대로 도살하듯 죽일 테지.
일단 나는 시험 삼아 뒷자석에 앉은 남자의 머리털을 몇개 뽑아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분명 남자의 검은색 머리털이 맞았지만, 남자는 제 머리가 뜯겨져 나간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그냥 터널에서 나오는 빛에 홀린 것인지 멍청한 표정을 한 채 굳어 있었을 뿐이다. 멍청한...
결국 열차는 터널 안으로 들어갔고, 예상했던 대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은 회뜨기, 회뜨기입니다."
그 방송이 끝나자마자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터널을 가득 메웠다. 분명 B급 고어영화의 살해 장면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허나 내 시선은 내 생각과 별개로, 자동적으로 열차의 뒤를 향해 돌아갔다. 내 뒤에 있는 남자는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있었지만, 그 뒤의 여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음... 눈을 돌리는 것이 좋을 텐데.
어린이인지, 난쟁이인지 모를 누더기를 입은 넷이 칼로 맨 뒤에 앉은 사람을 말 그대로 회뜨고 있었다. 칼이 살을 바람을 가르듯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피가 사방에 튀기고, 비리고 구역질나는 냄새가 풍기며 피부 아래의 붉은 단면들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난쟁이들은 무표 그대로 살에서 껍질을 발라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 생선회 꼬락서니가 된 살점들은 스플래터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바닥에 마구잡이로 내던져졌다.
이미 피와 살점으로 난장판이 된 바닥에 엉성하게 잘라내진 내장들까지 칠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신줄을 놓은듯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이건 꿈이잖아. 그냥 악몽. 심해 봤자 몇일간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겠지.
두번째 방송은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바로 그때 들려왔다. "다음은 도려내기, 도려내기입니다."
나는 갑자기 들려온 방송에 깜짝 놀라 다시 시선을 뒤로 돌렸다. 내 뒤에 있는 남자 또한 정신을 차린 것인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회가 되어버린 남자는 어느새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져 있었고, 난쟁이들은 어느새 둘만 남은 채 뒤에서 두번째에 앉은 여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난쟁이들의 손에는 아까의 회칼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퍼내는 도구가 들려 있었다. 나는 괴담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난쟁이들은 예상했던 대로 그것으로 여자의 양 눈을 마구 파내었고, 그러자마자 여자의 얼굴에는 공포와 고통이 떠올랐다. 터널은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소리로 다시금 메꿔졌다. 더이상 눈이라고는 할 수 없는 으깨진 것들이 피와 섞여 바닥에 흩뿌려졌다. 난쟁이들이 여자한테서 떨어졌을 때, 여자의 눈꺼풀 안은 텅 비어버린 채 피눈물로 착각될 핏줄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이건 꿈이다. 그냥 꿈. 어차피 내 힘도 멀쩡하니까 일이 위험해지는 것 같다 싶으면 난쟁이들을 박살내고, 차장까지 같이 처리한 뒤 꿈에서 깨어나 상쾌한 아침을 맞는 거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체크했다. 숟가락 몇개, 카드... 좀 사야겠네. 그리고 스마트폰 하나.
"다음은 간 고기, 간 고기입니다."
세번째 안내방송과 함께 미친듯이 반복되는 "깨어나" 소리가 내 뒤의 남자 입에서 흘러나왔다. 남자 주변을 둘러싼 난쟁이들의 손에는 프로펠러 비슷한 기계가 윙윙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괴담대로라면 이 꿈의 주인은 분명 지금 위기에 처한 남자다. 그렇다면 나는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또 도망치는 것입니까? 이 다음에 왔을 때는 끝이에요, 끝."
갑자기 들려온 안내방송에 화들짝 놀랐을 때에는 이미 남자가 사라진 후였다. 아마 그 남자, 지금쯤이면 땀과 눈물에 푹 젖은 채 일어나서 '현실에서는 심장마비겠지만 꿈에서는 간 고기가 되버리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안내방송이 다시 들려왔다."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더라?"
맥을 끊는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잠시간의 소강기가 찾아왔다. 이 앞에 일어날 일은 나, 그리고 저 마이크 앞의 정체모를 차장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듯 하다. 이 괴담, 원숭이 꿈이라는 이름의 괴담은 분명 남자가 사라진;꿈에서 깨어난 그 시점까지만의 이야기이니까.
이 잠시간의 시간 동안 나는 바깥에 무기로 쓸만한 물건들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가로수, 가로등, 표지판, 무거운 쓰레기 등등... 아무래도 열차가 가르고 지나갔던 칠흑같은 어둠은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던게 아닐까.
"아, 여기 있군. 다음은 짓이기기, 짓이기기입니다."
방송과 함께, 난쟁이들이 큼지막한 고기 망치를 들고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악몽의 주최자들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지. 내가 초능력자, 그것도 강력한 초능력자라는 것?
퍽!
나는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난쟁이의 손에 들린 고기망치를 뺏어 얼굴에 맞췄다. 난쟁이는 얼굴에 망치가 박힌 채 빙빙 돌며 날아가 열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지, 지금 이런 생각으로 망설이면 내가 죽을 테지. 바깥에서는 심장마비, 여기서는 짓이겨져서... 생각하지 말자.
나는 일어서며 이렇게 외쳤다. "미안하지만 쉽게 죽어주지는 않아."
내 말을 들은 셋은 잠시 수군대다가, 그 중 하나가 망치를 버리고 누더기 안에서 회칼을 꺼냈다. 나는 그에 응답해주기 위해 공중으로 날아가며 주머니에 있던 카드를 꺼내 날렸다. 회칼을 든 난쟁이는 내 공격이 웃긴듯 피식 소리를 내고는, 그대로 조그만 카드 두장을 차례대로 맞고 날아갔다.
"뭐야, 너희들 엄청 약하잖아?"
그 뒤 바로 가장 가까이 있던 표지판을 두개 뜯어 가져와, 하나를 다시 일어나려던 두번째에게 날려 버렸다. 이제 남은건 가만히 서 있는 둘.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내 열차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방송에 정신을 차린 듯 난쟁이 하나가 전기톱을 꺼내고는 위협하길래 나는 표지판으로 답해 주었다. 나머지 하나가 열차 앞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궤적을 눈으로 쫓는 동안 나는 다른 승객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목표를 극도의 겁에 질리게 해 제대로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환상이었구나.
일단 후환을 제거해야겠지. 나는 좌석을 뜯어 난쟁이한테 날렸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일어난 먼지가 다시 내려앉자 나는 조심히 접근했다. 다행히도 난쟁이는 좌석에 깔린듯 손만 내놓고...
"꺄악!"
난쟁이가 좌석 뒤에서 칼을 들고 튀어나왔다. 함정을 파기 위해 자기 손까지 자르다니. 근데, 그렇다고 난쟁이가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야. 난쟁이가 좌석 위에 오자, 나는 순간적으로 좌석을 위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이윽고 천장에 박힌 좌석이 다시 떨어져 쿵 소리를 냈다. 난쟁이는 같이 떨어지지 않고 위에... 읏, 보기 좋은 광경은 전혀 아니야.
앞쪽으로 가려는 찰나 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졌습니다. 졌어요! 이제 다시는 오지 마시길!"
...
----------
"~라는 것으로 끝이 나는 거야."
레이무 앞에서 자신의 꿈 얘기를 두시간 넘게 늘어놓은 뒤, 목이 마른듯 이제는 식어버린 녹차를 한모금 삼키는 스미레코였다.
"잘도 악몽을 박살내고 나왔네."
"그냥 꿈이잖아."
그 말을 들은 레이무는 스미레코한테 몸을 기울였다. 스미레코는 레이무의 그 행동이 부담되는 듯 뒤로 슬슬 빠졌다. 이윽고, 레이무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치자면 이 환상향도 그냥 꿈이겠지."
그 말을 들은 스미레코는 얼마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내가 어둡고 음습한 역에 앉아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일단 나는 일어나서 주변을 보았다. 빛도, 열도, 생기도 없는 역에는 나를 제외한 아무런 생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상한 꿈에 들은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역의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역 밖은 한술 더 떠, 완전히 깜깜했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생기가 하나도 없는 남자의 목소리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머지않아, 열차가 옵니다. 그 열차를 타면 당신은 무서운 경험을 당하게 됩니다."
무서운 경험, 이미 이전의 일들로 많이 맛보았다 생각했고, 흥미도 돋기 시작했기에 나는 출구를 찾는 것을 멈추고는 열차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열차가 들어오자 나는 열차을 타기 위해 다가갔다.
열차는 일반적인 모양새와는 다른;유원지에서나 볼 법한 원숭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분명 과거에 이런 열차가 나오는 괴담을 보았던 것 같지만,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열차에는 몇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전부 움직임이 없었고, 전부 무표정이었고, 전부 안색이 나빴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걸까.
나는 열차에 타려고 했을 때서야 내 앞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대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뒤에 따라오는 나를 눈치채지 못한듯 불안하게 주변, 그리고 승객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가 열차 뒤쪽에서 세번째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는 별 수 없이, 유일하게 남은 자리인 바로 그 남자의 앞자리에 앉았다. 좌석 주변의 공기는 마치 이 장소의 것이 현실의 것이기라도 한 마냥 늦봄의 따스한, 약간 후덥하다고 할 수 있기도 할 묘하게 생생한 것이었다. 그러자, 마치 내가 앉기를 기다렸다는듯 "출발합니다." 라는 안내 방송과 함께 열차가 출발했다.
역 밖이자 열차의 밖이기도 한 주변은 여전히 완벽한 어둠에 뒤덮여 있다. 열차는 그 어둠 속에서 모습을 혼자 선명히 드러낸 채, 그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하게, 이 원숭이 열차에는 분명 아무런 조명이 없는데도.
일일이 생각하는 것은 그만 두자. 꿈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어쨌거나, 별다른 흥밋거리도 없기에 나는 그나마 뒤에 앉은 사람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눈에 생기가 있었지만, 나를 보고 있다고 하기에는 초점이 너무나 심하게 엇나간 눈으로 내가 앉아있는 앞을 보고 있었다. 남자는 반은 흥분한 상태, 나머지 반은 겁에 질린듯 떨고 있었다. 나는 아예 몸을 돌려 남자를 똑바로 보았지만 여전히 무시로 일관했다. 나를 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는 상태라고 하면 되려나.
계속 앞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 보라색의 빛이 비추어졌길래 나는 뭔가가 열차의 앞에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몸을 다시 돌려 앞을 보았다. 저 멀리, 터널 같아보이는 구멍 안에서 보라색의 영문 모를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필시 어릴 적에 보았었던 것 같은 빛이었지만, 이 꿈의 것은 행복한 추억의 빛이 아닌 미묘하게 괴기한 빛이었다.
이제서야 이 꿈의 내용이 떠올랐다. 터널 안에 들어가면 갑자기 영문을 모를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동시에 난쟁이들이 나타나 탑승객들을 뒤에서부터 하나 하나 차례대로 도살하듯 죽일 테지.
일단 나는 시험 삼아 뒷자석에 앉은 남자의 머리털을 몇개 뽑아 보았다. 결과는 대성공. 내 손에 들어온 것은 분명 남자의 검은색 머리털이 맞았지만, 남자는 제 머리가 뜯겨져 나간 것조차 눈치채지 못한 건지 아니면 그냥 터널에서 나오는 빛에 홀린 것인지 멍청한 표정을 한 채 굳어 있었을 뿐이다. 멍청한...
결국 열차는 터널 안으로 들어갔고, 예상했던 대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음은 회뜨기, 회뜨기입니다."
그 방송이 끝나자마자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터널을 가득 메웠다. 분명 B급 고어영화의 살해 장면같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허나 내 시선은 내 생각과 별개로, 자동적으로 열차의 뒤를 향해 돌아갔다. 내 뒤에 있는 남자는 나와 같은 곳을 보고 있었지만, 그 뒤의 여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음... 눈을 돌리는 것이 좋을 텐데.
어린이인지, 난쟁이인지 모를 누더기를 입은 넷이 칼로 맨 뒤에 앉은 사람을 말 그대로 회뜨고 있었다. 칼이 살을 바람을 가르듯 가르고 지나갈 때마다 피가 사방에 튀기고, 비리고 구역질나는 냄새가 풍기며 피부 아래의 붉은 단면들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난쟁이들은 무표 그대로 살에서 껍질을 발라내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 생선회 꼬락서니가 된 살점들은 스플래터 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바닥에 마구잡이로 내던져졌다.
이미 피와 살점으로 난장판이 된 바닥에 엉성하게 잘라내진 내장들까지 칠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신줄을 놓은듯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이건 꿈이잖아. 그냥 악몽. 심해 봤자 몇일간 잠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겠지.
두번째 방송은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바로 그때 들려왔다. "다음은 도려내기, 도려내기입니다."
나는 갑자기 들려온 방송에 깜짝 놀라 다시 시선을 뒤로 돌렸다. 내 뒤에 있는 남자 또한 정신을 차린 것인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회가 되어버린 남자는 어느새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져 있었고, 난쟁이들은 어느새 둘만 남은 채 뒤에서 두번째에 앉은 여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난쟁이들의 손에는 아까의 회칼이 아닌, 아이스크림을 퍼내는 도구가 들려 있었다. 나는 괴담의 내용을 떠올리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난쟁이들은 예상했던 대로 그것으로 여자의 양 눈을 마구 파내었고, 그러자마자 여자의 얼굴에는 공포와 고통이 떠올랐다. 터널은 여자의 찢어지는 비명소리로 다시금 메꿔졌다. 더이상 눈이라고는 할 수 없는 으깨진 것들이 피와 섞여 바닥에 흩뿌려졌다. 난쟁이들이 여자한테서 떨어졌을 때, 여자의 눈꺼풀 안은 텅 비어버린 채 피눈물로 착각될 핏줄기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이건 꿈이다. 그냥 꿈. 어차피 내 힘도 멀쩡하니까 일이 위험해지는 것 같다 싶으면 난쟁이들을 박살내고, 차장까지 같이 처리한 뒤 꿈에서 깨어나 상쾌한 아침을 맞는 거야.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체크했다. 숟가락 몇개, 카드... 좀 사야겠네. 그리고 스마트폰 하나.
"다음은 간 고기, 간 고기입니다."
세번째 안내방송과 함께 미친듯이 반복되는 "깨어나" 소리가 내 뒤의 남자 입에서 흘러나왔다. 남자 주변을 둘러싼 난쟁이들의 손에는 프로펠러 비슷한 기계가 윙윙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괴담대로라면 이 꿈의 주인은 분명 지금 위기에 처한 남자다. 그렇다면 나는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또 도망치는 것입니까? 이 다음에 왔을 때는 끝이에요, 끝."
갑자기 들려온 안내방송에 화들짝 놀랐을 때에는 이미 남자가 사라진 후였다. 아마 그 남자, 지금쯤이면 땀과 눈물에 푹 젖은 채 일어나서 '현실에서는 심장마비겠지만 꿈에서는 간 고기가 되버리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안내방송이 다시 들려왔다."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더라?"
맥을 끊는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잠시간의 소강기가 찾아왔다. 이 앞에 일어날 일은 나, 그리고 저 마이크 앞의 정체모를 차장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듯 하다. 이 괴담, 원숭이 꿈이라는 이름의 괴담은 분명 남자가 사라진;꿈에서 깨어난 그 시점까지만의 이야기이니까.
이 잠시간의 시간 동안 나는 바깥에 무기로 쓸만한 물건들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가로수, 가로등, 표지판, 무거운 쓰레기 등등... 아무래도 열차가 가르고 지나갔던 칠흑같은 어둠은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던게 아닐까.
"아, 여기 있군. 다음은 짓이기기, 짓이기기입니다."
방송과 함께, 난쟁이들이 큼지막한 고기 망치를 들고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악몽의 주최자들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지. 내가 초능력자, 그것도 강력한 초능력자라는 것?
퍽!
나는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난쟁이의 손에 들린 고기망치를 뺏어 얼굴에 맞췄다. 난쟁이는 얼굴에 망치가 박힌 채 빙빙 돌며 날아가 열차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이래도 되는 걸까... 아니지, 지금 이런 생각으로 망설이면 내가 죽을 테지. 바깥에서는 심장마비, 여기서는 짓이겨져서... 생각하지 말자.
나는 일어서며 이렇게 외쳤다. "미안하지만 쉽게 죽어주지는 않아."
내 말을 들은 셋은 잠시 수군대다가, 그 중 하나가 망치를 버리고 누더기 안에서 회칼을 꺼냈다. 나는 그에 응답해주기 위해 공중으로 날아가며 주머니에 있던 카드를 꺼내 날렸다. 회칼을 든 난쟁이는 내 공격이 웃긴듯 피식 소리를 내고는, 그대로 조그만 카드 두장을 차례대로 맞고 날아갔다.
"뭐야, 너희들 엄청 약하잖아?"
그 뒤 바로 가장 가까이 있던 표지판을 두개 뜯어 가져와, 하나를 다시 일어나려던 두번째에게 날려 버렸다. 이제 남은건 가만히 서 있는 둘.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내 열차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방송에 정신을 차린 듯 난쟁이 하나가 전기톱을 꺼내고는 위협하길래 나는 표지판으로 답해 주었다. 나머지 하나가 열차 앞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궤적을 눈으로 쫓는 동안 나는 다른 승객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목표를 극도의 겁에 질리게 해 제대로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환상이었구나.
일단 후환을 제거해야겠지. 나는 좌석을 뜯어 난쟁이한테 날렸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일어난 먼지가 다시 내려앉자 나는 조심히 접근했다. 다행히도 난쟁이는 좌석에 깔린듯 손만 내놓고...
"꺄악!"
난쟁이가 좌석 뒤에서 칼을 들고 튀어나왔다. 함정을 파기 위해 자기 손까지 자르다니. 근데, 그렇다고 난쟁이가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야. 난쟁이가 좌석 위에 오자, 나는 순간적으로 좌석을 위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이윽고 천장에 박힌 좌석이 다시 떨어져 쿵 소리를 냈다. 난쟁이는 같이 떨어지지 않고 위에... 읏, 보기 좋은 광경은 전혀 아니야.
앞쪽으로 가려는 찰나 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졌습니다. 졌어요! 이제 다시는 오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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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으로 끝이 나는 거야."
레이무 앞에서 자신의 꿈 얘기를 두시간 넘게 늘어놓은 뒤, 목이 마른듯 이제는 식어버린 녹차를 한모금 삼키는 스미레코였다.
"잘도 악몽을 박살내고 나왔네."
"그냥 꿈이잖아."
그 말을 들은 레이무는 스미레코한테 몸을 기울였다. 스미레코는 레이무의 그 행동이 부담되는 듯 뒤로 슬슬 빠졌다. 이윽고, 레이무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치자면 이 환상향도 그냥 꿈이겠지."
그 말을 들은 스미레코는 얼마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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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쓴 것도 아닌데 술마시고 쓴 것 같네. 대체 뭘 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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