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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장보러 오신 겁니까?」 「…… 네.」 친근하게 물어오는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이 세계의 란은 인간 마을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요괴인데도 저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거겠지. 욕심을 부리자면, 저 친절한 아저씨에게 장보는 장소까지 에스코트를 받고 싶지만, 그건 굉장히 실례일 거야. 경비를 서시는 분에게 바랄 게 결코, 아니다. 마을 안을 적당히 돌아다니다 보면 고기나 채소 따위를 파는 상점가 정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 나는 아저씨를 지나쳐 목책 너머의 마을 안으로 발을 들였다.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광경은 시대극을 연상케 하는 메이지 이전 수준의 오래된 집들과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것처럼 보여 지는 논들이었다. 나는 그 경치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만 넋 놓고 바라보게 된다. 매일 바쁘고 복잡한 도회지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경할 만한 풍경. 과거로 타임슬립 한 것처럼 오래된 옛날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아니, 여긴 옛날 시골 그 자체였다. 한 동안 말없이 서있자, 아저씨가 소근 거리는 어조로 감사와 충고, 두 가지 의미가 담겨진 말을 했다. 「주제넘은 참견인데, 매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조금은 본인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사실에 대해 자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로서 그것이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생긴 것을 보니 조금 민망한 일과 연관된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이곳의 란은 마을에서 무슨 짓을 벌였던 거야? 감사하다고 하는 걸 보니, 나쁜 일은 아닐 테고, 그럼에도 민망한 일이라 하면…. 아 몰랑.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주의하겠습니다.」 도대체 뭘 주의하겠다는 건지. 본인이 꺼내놓고도 모를 말로 얼버무린 뒤, 서로 머리를 숙이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얼굴에 새겨진 그 홍조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자세히 묻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어봤자 절대 좋은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에 본능적 거부감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의 저항감이라면 이유가 있을 거다. 호기심 삼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말자. 나는 아저씨가 보여준 홍조의 의미를 머릿속에서 지워내기 위해 애썼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은 사실을 상자 안으로 부터 꺼내지 않으려 인내했다. * 넓은 농경지를 걸으며 주변을 둘려본다. 한창 더울 시간이라 그런지, 일하고 있는 농부들의 모습은 발견하진 못했다. 개굴개굴. 논두렁으로 부터 자그마한 개구리가 폴짝하고 뛰어 올랐다. 나는 그 개구리를 내려다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있어 이런 일상적인 시골 풍경이 전부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늘을 붕붕하고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찌르찌르르하고 시끄럽게 우는 매미들, 파르르 날아다니다 가볍게 풀잎에 안착하는 무당벌레, 내 무릎 높이까지 튀어 오르는 방아깨비. 누군가에겐 그저 지겨울 뿐인 풍경일지는 모르나, 나에게는 모두가 그리운 것들이었다. 유년기에 대한 기억도 없고,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이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그리움을 느끼는 건 대체 어디 쪽이지? 이 몸의 기억인지 아니면 내 영혼의 기억인지? 개굴. 눈앞에서 개구리고 폴짝하고 내 발밑을 지나쳐 갔다. 애매한 것에 대해 생각을 계속 해 봤자, 무슨 소용이야. 그런 쓸데없는 생각, 그만 털어 내버리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 농경지는 정말로 넓고 광대했다.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거의 한 시간가량 걸렸을 것이다. 그냥 손쉽게 살짝 날아서 가면 훨씬 빨리 도착 할 수도 있었지만, 이 농경지 풍경을 좀 더 오랫동안 감상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 굳이 걸어서 간다는 선택지를 취하게 만든 것이었다. 숲에서 해매인 탓에 지금쯤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 가는데도 말이다. 아직, 결혼도 안한 몸이지만 내 자신이 주부 실격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이러다 집에서 기다리는 두 식구가 쫄쫄 굶게 생겼네. 유카리는 둘 째 치고, 그 첸이라는 얘한테 미안해서 어쩌나. 지금부터 서두른다 해도 제 시간에 맞춰서 돌아온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 오늘 점심은 펑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두를 거 없다는 논리로 발걸음을 천천히 했다. 그건 그렇고, 참 옛날 집들이다. 마치, 민속촌에 온 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마저 든다. 민속촌이 아니라 진짜 메이지 이전 시대 같지만. 아… 요괴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판타지세계 확정이지.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줄곧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마을 풍경과 어울리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지금 나한테 스마트폰이 있다면, 정신없이 찍어대고 싶을 정도로 옛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던 길을 멈추더니 나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켜갔다. 뭐… 뭐야? 갑자기 집중되는 시선에 어디 몸 둘 바 없이 당혹감이 든다. 이래서야 우리속의 동물이 된 것 같잖아.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침착히 저들의 시선을 분석했다. 지금의 나는 란이 되어있지. 그리고 란은 여자가 봐도 반해버릴 만큼 미녀고. 알았다! 저 시선은 란이 된 내 미모 때문인 거구나. 이렇게 나이스바디인데 눈이 안 가면 그게 이상한거지! 아…… 어쩐지 전신이 고양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아닌 란의 몸에 관심 있어 하는 거지만, 그래도 미인을 보는 이 시선. 자신감이 마구 샘솟는 것이 콧대가 클레오파트라 뺨치게 높아지는 기분이다. 눈 돌아가게 예쁜 미녀들은 언제나 이런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건가 싶다. 하지만, 나에게 쏟아지고 있는 시선들이 조금 묘해 보이는 건 무슨 이유지? 나이스바디의 미녀를 보는 시선이 아닌 좀 더 뭔가 이상한 것을 보는 시선이었다. 그 중에서도 여자들의 시선이 특히 따가웠다. 마치, 여자의 적을 보는 듯 한 그런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이 몸뚱이의 원 주인이 무슨 안 좋은 짓이라도 저지른 걸까? 그런 것 치고는 남자들 쪽은 그다지 적의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끈적거리고 능글맞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점점 더 있기 힘들어지네. 서로 상반된 남녀들의 시선이 점점 비수처럼 가슴을 찔려오기 시작했다.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죄를 지은 것만 같고, 심지어 영문 모를 수치심까지 들어 이유도 없이 민망해 죽을 것만 같다. 어서 빨리 여길 벗어나지 않으면…. ─ 포옥. 그때, 누군가가 내 꼬리에 얼굴을 파묻어왔다. 갑작스러웠기에 조금 놀란 심정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헤헤헤. 누나 꼬리 엄청 푹신푹신해-!」 요- 개구쟁이 녀석. 내 허리춤 정도밖에 안 되는 꼬마 녀석이 내 꼬리에 파묻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이어서 다른 꼬마 두 세 명이 와아- 하고 달려오면서 내 꼬리를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꼬마 셋이 내 꼬리 숲 안으로 파고 든다. 「따끈하고 포근해!」 꼬마들은 내 아홉 개의 꼬리가 어지간히도 맘에든 모양이었다. 란의 꼬리가 그렇게도 푹신하고 따끈하고 포근하단 말이야? 커다란 게 아홉 개나 달린 것이 그저 거추장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나도 한 번 안아 봐야지. 「인석아! 란님에게 이 무슨 실례를 범하는 거니!!」 그때, 화난 음색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마의 부모로 보이는 남자 둘이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내 꼬리에 들려 붙은 꼬마들을 떼어낸 다음, 바로 머리를 꾸벅 숙이며 사죄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 어린 자식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옆에 아들로 보이는 꼬마가 아직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있자, 남자는「너도 사과드려!」라는 말과 함께 우직한 손으로 꼬마의 머리를 잡아 눌렸다. 남자의 손에 의해 강제로 숙여진 꼬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죄… 죄송해요」하고 마지못해 사죄했다. 그리고 이어서 두 남자가 동시에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나에게 도개자를 해왔다. 「자식의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다음엔 절대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주겠습니다.」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땅에 머리를 박고 용서를 구해오고 있다.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야? 이러면 내가 완전 나쁜 놈 같잖아! 「저는 그리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 그만 머리를 드십시오.」 다 큰 성인도 아니고 애잖아. 딱히 엉덩이를 만진 것도 아니고, 고작 꼬리에 파묻혀 부비부비한 것 정도야 당연히 죄가 되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자식이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저러니 내 쪽이 부담스러워 죽겠어! 내가 무슨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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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아무도 못말려. 6 - 그리운 경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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