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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날 수 있게 되었는데 고소공포증이라니. 이 무슨 계륵이란 말인가요. 하지만, 나는 지금 날고 있습니다. 리글 나이트버그라는 이름의 소녀의 손을 잡고. 이름을 물어본 건 방금. 내가 생각해도 참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뒤늦은 시점이었지만, 워낙 경향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환경 적응에 빠른 나라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건 아니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째서 고소 공포증인 내가 하늘을 날고 있느냐면. 「리글‥ 씨.」 「네?」 「절대로 손 안 놓을 거지?」 「당연하죠. 제가 란님의 손을 일부로 놓을 리 없잖아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데… 손에 땀이 차서 쑥 빠지거나 그러진 않겠지?」 「걱정 마세요. 전 땀을 별로 안 흘리는 체질이라.」 지금의 대화로 눈치 챘을 테지만, 굳이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지금 리글의 손을 잡는 것으로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 상태로 손을 놓치게 된다면…. 「으아아….」 「무슨 잘못 된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야. 그냥 좀 심장이‥.」 「그거, 큰 일 인거 아니에요?」 「아니, 괜찮데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리글은 나의 안색을 살펴가며 걱정하는 어조로 안부를 물어왔지만, 말해 봤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니 대충 둘려대기만 했다. 지금 깨달은 건데. 나 참 겁쟁이였구나. 아니지, 쓸데없이 고소 공포증이 발병한 게 문제야. 그러니까 고소 공포증을 죽입시다! 무서운 건 어쩔 수 없긴 해도 하늘을 난다는 것 자체는 기분을 참 좋게 만들었다. 쉽게 말하자면, 해방감을 느낀다고나 할까? 뇌 내의 도파민이 급속도로 생성되는 느낌이다. 다만, 고개를 아래로 내려 아찔한 높이를 자각하게 된다면 그 좋았던 기분이 싹 달아나 버리긴 한다만. 나는 안면을 밀어내는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직감에 의지한 채 나아갔다. 어차피, 리글도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했고, 나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제 의지할 건 내 몸의 기억 밖에 없는 셈. 리글은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나의 손을 놓치지 않고 잡아주는 것으로 내 직감이 알려주는 곳을 향해 같이 비행하는 중이다. 만약이긴 한데, 직감에 배신당해 전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괜한 초조감이 들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미래에 벌벌 떨어서 되겠어? 이럴 때 일수록 자신을 믿어야지. 나를 믿는 날 믿는 거야! 어딘가의 열혈 메카물에 나오는 명대사 같긴 하지만, 이걸로 조금이나마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좋아, 미리 걱정해 봐야 손해니까. 내 자신, 아니. 이 란의 기억을 믿어보자! * 멀리서 부터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는 장소가 보여 온다. 그때 리글이 말했다. 「저기라면 확실히 알겠어요!」 그래. 이건 그거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승리!' 좀 거창한 말이긴 해도 지금의 심정으론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걸? 리글이 이어서 설명했다. 「저긴 인간 마을인데, 인간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에요.」 인간 마을? 그렇담 여긴, 요괴들만 사는 세계가 아니란 건가. 분명 기뻐해야 할 정보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 내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들이 날 적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옛날부터 미디어나 각종 매체에 나오는 인간과 요괴의 관계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일 정도로 안 좋았으니까. 여기서도 그럴 것이란 근거는 없었지만, 상식적으로 인간과 요괴란 대게 그러니 말이다. 그래도 리글이 여기서 부턴 잘 아는 듯하니 리글에게 의지하면 되지 않을까. 「리글, 여기까지 동행해줘서 고맙다.」 「아니, 별 말씀을. 제 쪽이 도움을 받았는걸요?」 「그래서 말인데. 조금 만 더 어울려 줄 수 없겠니?」 「네?」 사실, 나는 법도 알려주고, 내가 불안하지 않게 여기까지 손을 놓지 않아준 리글에겐 미안함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지금 의지할 상대라곤 리글 뿐이니까. 나에게 주는 배려, 사양하지 않을 거야. 「그게, 오늘 장을 보기로 했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서….」 말을 꺼내는 것이 조금 쑥스럽게 느껴졌다. 리글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아이 같은 얼굴로 말했다. 「기억 상실증이라곤 하나, 오늘의 란님은 어쩐지 귀여워서 무척 신선해요.」 「내가 귀여워?」 「아…, 죄송해요. 제가 좀 무례했어요.」 「아니, 괜찮으니까. 계속 말해봐.」 귀엽다는 말에 무심코 양 볼을 붉히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귀여운 건 이전의 란과 비교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갭이란 것 때문이겠지만, 그럼에도 얼굴이 화끈해질 만큼 기뻐하고 말았다. 리글은 방금 자신의 말이 실례가 되었다 생각했는지, 황급히 안색을 굳히며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였으나, 괜찮다는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금 머쓱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었다. 「그게… 예전의 란님은 조금 무섭다는 인상이었거든요.」 솔직하게 들려준 얘기에 나는 잠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졌다. 란이 무섭다고? 내가 알고 있던 란은 무섭긴 커녕 밝고 명랑해서 주변으로 부터 인기가 많았던 친구인데. 거기까지 생각하자, 잠깐 잊었던 상식이 나를 질책하듯 떠올랐다. 정말, 바보 같게도. 당연한 사실인데 말이다. 이 세계의 란이 내가 알고 있던 란과 동일인일리가 없잖아. 그래. 여기의 란은 리글의 말대로 좀 무서웠나 보다. 그렇게 상념에 사로잡혀 갈 때, 아까의 얘기를 보충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것도 최근에는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었고.」 「종잡을 수 없다고?」 「네. 아무튼 지금의 란님이 가장 좋아요.」 「거 고맙구나.」 지금의 내가 좋다면서 미소를 짓는 리글을 보고 있자니, 이전의 란이 어떻니 하는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이 얘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의 내가 가장 낫다는 말이니까. 아까보다 더 쑥스러워졌다. 나는 콧잔등을 긁으면서 아까의 부탁을 다시 한 번 청했다. 「오늘 장봐야 하는데‥.」 「그거라면 저기, 인간 마을에서 보시면 될 거에요.」 「그렇구나.」 장보는 곳을 알았으니, 지체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나는 멈췄던 몸을 움직여 리글과 함께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점을 향해 날았다. 마을이 점점 그 윤곽을 드려내며 커져가고 있을 동안,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리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리글은 마을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표정을 굳혀갔다. 아무래도 인간 마을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나 보다. * 「여기까지 왔으니 혼자서 장보실 수 있으시죠?」 「어.」 「그럼, 저는 여기서 헤어져야겠어요. 유카리님을 찾으신다면, 나중에 하쿠레이 신사에 들려서 거기 무녀에게 물어보세요.」 마을 입구에서 리글은 나에게 작별을 고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여기서 부턴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점들이 남아 있다. 분명, 마을 안에서 장을 본 다음, 리글 말대로 하쿠레이 신사인가 거기로 찾아가면 유카리님을 만나 볼 수 있을거 라 본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 앞. 리글이 무언가 쫒기는 듯이 달아나게 만든 인간 마을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도 어제까지 인간이었으니,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란 게(지금은 요괴지만) 항상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존재던가. 지금의 나처럼 이성과는 반대로 막연한 두려움에 주저할 때도 많은 법인 것을. 높다란 목책 앞에 경비를 서고 있는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의 시선이 묘하게 따가웠다. 과연, 나 같은 요괴를 저 안으로 통과시켜 줄지가 의문이다. 그렇게 인간 마을이라고 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첫 발걸음을 주저하기를 십여 분. 말없이 서있기만 하던 경비 아저씨가 으흠,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고 말을 걸어왔다. 「저기, 란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들려오는 목소리는 험악한 인상처럼 걸걸했지만, 담겨져 있는 어조로부터 이웃 아저씨와도 같은 친근감을 받았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니 긴장이 누그러지면서 안도감이 든다. 덕분에 리글과 헤어진 직후부터 계속되었던 불안감도 해소되었다. 나는 외견과는 달리 친절한 아저씨의 물음에 대답했다. 「별 일은 아니고, 장을 보러 온 것뿐입니다.」 저 분이라면 조금 의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칠칠맞은 기대를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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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까진, 별 다를 것 없는 빙의물.
하지만, 몇 회 만에 장르가 돌변할 겁니다.
크크크...
갑자기 딴 작품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 보여주겠음.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