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으로 소녀의 가녀린 등과 어깨를, 그리고 다른 손으로 매끈한 물고기의 꼬리를 감아올리는 손길. 호수의 인어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을 안아올리기 위해 부드럽게 파고드는 그 손길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이윽고 자신의 꼬리지느러미까지 완벽히 수면 위로 올라오자, 눈을 떠 자신을 안아올린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 박자를 가지고 불어오는 산들바람 만큼이나 기다란 갈색의 머릿결, 그리고 그 위로 솟은 뾰족한 늑대의 귀. 히메는 따스한 햇살이 일으킨 그림자에 가려진 늑대인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틀림없이 미소짓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히메, 오늘은 어디로 갈까?"
히메는 죽림의 수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그 얼굴만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표정은 카게로가 그녀를 바라보는 표정;단 하나, 최고의 친구를 보는 듯한 미소와는 사뭇 다른, 그저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지는 막연한 동경을 표출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허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사랑을 원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히메? 내 말 듣고 있어?"
히메는 카게로의 말을 듣고 곧바로 정신을 차렸지만 무슨 말이 지나갔는가만을 간신히 기억했을 뿐, 그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충 카게로가 할만할 말 중 하나를 골라 답을 해줬을 뿐이었다. "음... 카게로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행히 그 말은 카게로가 한 말과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이윽고 카게로는 자신의 집으로 히메를 초대했다. "그럼 히메, 우리집에 오지 않을래?"
대답은 순간이었다. "응! 좋아!"
와카사기히메는 자신의 푸른색을 띈 머리와 극도로 대비될 만큼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서는 카게로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렇게 카게로는 자신의 집으로 히메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안개의 호수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미혹의 죽림까지. 물에서 한참동안이나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히메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물에서만 살 수 있다는 금기, 그리고 그 비슷한 것 하나 없이 자유로운 인어. 바로 와카사기히메라는 이름의 인어였다. 하지만 진정 자유로운 존재이지는 않았다. 딱 하나의, 또한 히메 혼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풀지 않는다에 가까운 속박이 있었다.
그 속박은 고동색의 흙만큼이나 선명한 갈색의 털로 이루어진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녀린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만큼이나 선명하게 붉고, 메스만큼이나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차분하고 부드럽지만, 야성을 완벽히 감추지는 않은 붉은 눈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을 처음 보았을 때, 히메는 수초로 엉켜진 늪에 빠져버린 가련한 들짐승마냥 깊숙히 빠져들어 버렸다. 그리고 더이상 가까워지지 않을 사이까지 가까이하게 되었다. 허나, 히메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더욱 더 긴밀한 것들을 원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거리를 좁혔다. 허나, 그 거리는 처음만큼 빠르게 좁혀지지 않았다.
카게로는 히메를 안은 채 자신의 집;대나무 숲 사이에 은밀히 숨겨진 작지만 아늑한 집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다시 닫혔다.
카게로는 히메를 의자에 사뿐히 앉혀 놓고 "미안, 잠시 나가봐야겠어." 라는 말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히메는 카게로의 집을 둘러보았다. 작은 탁자 위에는 그 탁자를 겨우 덮을 정도 크기의 보자기와, 사과가 들어 있는 바구니가 올려져 있었다. 히메는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창문은 늑대 모양의 자수가 수놓여 있는 커튼으로 가려져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햇빛 말고는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히메는 다시 눈을 앞으로 돌리려는 찰나, 바닥을 보았다. 털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히메는 그렇겠지 하며 눈을 들어, 공기중에 떠 있는 털을 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흩날리는 털을 하나 잡았다. 갈색의 가늘고 보드라운 털...
히메는 그 털을 유심히 보았다. 카게로가 나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의 눈은 아쉬움을 느끼는 듯한, 그리고 슬픔을 느끼는 듯한 눈빛으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이윽고 카게로가 돌아오자 히메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털을 불어버린 뒤 허물 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경직된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 서린 어색함을 카게로는 눈치채지 못한 채, 반대쪽의 의자에 앉아 몸을 히메의 방향으로 돌렸다.
"이름 모를 요괴들이 난리를 쳐서 돌려보냈어. 미안해, 그때 이후로 계속 시끄러워서."
카게로는 수건을 꺼내 손톱과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필히 그 잡스러운 요괴중 하나, 어쩌면 그들 중 둘 이상의 것이리라. 하지만 히메는 그것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카게로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카게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히메는 카게로를 위로했다."괜찮아. 상관 없어."
"잠깐만, 차라도 가져올께."
카게로는 그 말과 함께 주방 방향으로 가려 했다. 허나, 히메는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카게로의 꼬리를 잡아 가는 것을 막았다. 카게로는 교성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입을 겨우 겨우 막으며, 히메의 손을 떼어낸 뒤 히메를 노려보았다. 히메는 뭍에 떨어진 물고기 꼴을 한 채로 카게로를 올려다보았다.
"미, 미안해. 골탕먹일 생각은 아니었어. 나는 카게로만 있어도 돼. 다른건 필요 없어."
그렇구나라는 표정을 한 채 히메를 다시 의자 위에 올려준 뒤, 카게로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이윽고 심심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사과를 하나 집어들어 한 입 깨물어 먹으며, 탁자의 나무 사이에 끼인 털을 손톱으로 긁어내며, 커튼을 열어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히메는 그런 카게로의 얼굴, 이제는 자기 자신의 얼굴보다도 더욱 더 선명히 뇌리에 서린 얼굴을 한조각 한조각 정성스레 새겨나가듯 한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히메는 카게로를 향해 자신이 언제나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카게로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 말과 함께, 히메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 카게로한테 다가갔다. 눈을 돌린 카게로의 얼굴에 떠오른 부끄러운 기색이 선명해질수록, 히메의 마음 또한 기대감에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이윽고 카게로는 다시 눈을 돌리고, 상상 이상으로 가까이 밀착한 히메를 보고 깜짝 놀랐다. "히, 히메?"
히메는 답 없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마저 좁혀, 카게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딫혔다. 카게로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핑핑 돌아가는 눈을 한 채 히메를 떨어트리려 했다. 허나 히메는 그에 굴하지 않고 몸을 더욱 더 가까이 해, 카게로의 어깨와 등을 감쌌다. 완전한 연인이 행하는 포옹의 모습이리라.
카게로는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물기 어린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히메의 혀라는 것을 눈치채자 카게로는 무엇인가 끊어졌다.
"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인어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카게로는 잔뜩 흥분해 불규칙적인 숨을 내쉬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각하고는 쓰러진 채 힘 없는 표정을 한 히메의 앞에 앉아 눈을 맞추었다.
"미안해. 나는 못할 것 같아. 호수로 돌려보내줄께. 알았지, 히메?"
그 말은 거절이었다. 그 말은 히메의 마음을 메마르게 했다.
히메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히메를 다시 안아올렸다. 히메는 전에 안길때와는 달리 순순히 몸을 내어주지 않아, 자신을 들어올리려는 카게로가 약간의 난항을 겪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 해는 점점 기울어지고 하늘에는 노란색이 점점 선명히 감돌기 시작했을 때였다. 히메는 침울한 얼굴을 한 채 땅만을 쳐다보며 카게로의 발걸음에 맞춰 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카게로는 그런 히메의 침울한 얼굴을 보았고, 히메가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카게로는 히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개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히메는 말도 없이 돌아보지 않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카게로는 그저 튀겨오르는 물방울들만을 맞으며, 히메가 일으킨 수면의 흔들림을 잠시 멍하니 보다 돌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카게로가 더이상 보이지 않자, 히메는 다시 수면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물에서도 흐르는 인어의 눈물로.
...
깊게 파인 초승달이 구름들 사이로 뜬 그날의 밤 히메는 호수 위로 솟은 바위에 앉은 채, 달을 바라보며 슬피 울며 노래하고 있었다. 슬픈 감정만을 말이라 할 수 없이 코로 흥얼대던 소리는 어느샌가 말이 되고 노래가 되었다.
"하늘에 뜬 달아, 너는 무얼 보니?
나는 한명만을 보고 있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있어.
나는 물 위에 물 안에 있지만
내 마음은 말라 비틀어져가.
이제는 눈물마저 나오지 않을 거야."
노랫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작아져갔다. 이윽고 호수 주변에서 들려오는 벌레들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히메는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달이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호수는 잠시간의 어둠에 잠기자, 풍덩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달이 나타났을때에는, 물 위 외로이 서 있는 바위만이 위에서 내려오는, 물에 비치는 달빛을 혼자 조용히 받고 있었을 뿐이었다.
...
카게로는 하룻밤의 비가 지나간 죽림을 거니고 있었다. 그 중간, 투명해 밑의 풀이 비치는 작은 물 웅덩이를 보자 카게로의 마음 속에는 히메가 떠올랐다. 기억 속의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기운 없는 얼굴을 한 채 쓰러져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카게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날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1주일? 1달? 카게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호수의 안개가 그 때의 기억을 가린 것 마냥 그 날을 기억하려 할 때마다 카게로는 불안감을 느끼고,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 열기를 느꼈다.
카게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이미 히메의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했기에, 죄책감에 빠져 안개 호수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채 시간을 흘려보내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카게로는 죽림에서 나갔다. 그리고, 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
호수에 도착한 카게로는 자신을 기다리는 듯 수면 위로 상체를 드러낸 히메를 마주했다. 히메의 눈과 얼굴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눈물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던 것일까.
"왔구나, 카게로. 기다리고 있었어."
카게로는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만일 히메의 마음이 물러져 흐트러진다면 자신이 잡아 주리라 생각하며.
"미안,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너를 친구로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어."
카게로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저, 히메를 피하려 했을 뿐이다.
카게로는 말을 마치며, 앞으로 어떻게 히메를 위로해야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히메의 반응은 카게로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히메는 실성한 듯 힘 없이 광소했다. 그리고 웃을 힘도 남지 않자 웃음을 멈추고 카게로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친구? 친구라고? 카게로, 내 마음을 왜 몰라주는 거야?"
말을 할수록 히메의 눈은 슬픔에 천천히 짓이겨져, 결국에는 텅 빈 모습이 되었다.
"왜, 왜,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바라봤는데,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동경했는데,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사랑했는데!"
이번에는 카게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히메, 그건 그냥 집착이 아닐까? 사랑이 아닌, 그저 광기어린 집착 말이야."
카게로의 말을 들은 히메는 감정의 격류를 멈춘 채 눈을 감았다. 카게로는 그 모습에 잠시 안도했지만, 더 큰 해일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집착? 카게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내가 가진 마음은 집착이 아니야."
그 말과 함께 히메는 입고 있던 기모노의 앞섶을 풀었다. 그리고...
"히, 히메!"
히메는 자신의 두 가슴 사이로 손을 푹, 깊숙히 꽂아넣었다. 피가 힘차게 뿜어져 나와 푸른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그 광경을 본 카게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윽고 히메는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다시 빼내어 카게로한테 보여주었다. 피로 젖어버린 그 손에는 이제는 고동을 멈춰버린 인어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내 심장은 너만 보면 마구 뛰니까... 지금처럼..."
히메는 그 말과 함께 심장을 터트리려는듯 움켜쥐었다. 하지만 실제로 행한 것은 힘 없이 자신의 심장을 물 속으로 떨어트리는 것이었을 뿐이다.
히메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한 카게로한테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더이상은 말할 기력도 없는듯 바람 소리만 내었다. 그리고, 호수의 한자락을 붉게 물들인 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카게로는 히메의 마지막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히메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가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해> 라는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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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 배드엔딩이라는 이름의 독... 맛있어... 중독될 것 같아... 크흐흐흐흐...
해피엔딩 버전을 내일 쓸 수도 있음
"히메, 오늘은 어디로 갈까?"
히메는 죽림의 수인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그 얼굴만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표정은 카게로가 그녀를 바라보는 표정;단 하나, 최고의 친구를 보는 듯한 미소와는 사뭇 다른, 그저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지는 막연한 동경을 표출하는 표정에 가까웠다. 허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사랑을 원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히메? 내 말 듣고 있어?"
히메는 카게로의 말을 듣고 곧바로 정신을 차렸지만 무슨 말이 지나갔는가만을 간신히 기억했을 뿐, 그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대충 카게로가 할만할 말 중 하나를 골라 답을 해줬을 뿐이었다. "음... 카게로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행히 그 말은 카게로가 한 말과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
이윽고 카게로는 자신의 집으로 히메를 초대했다. "그럼 히메, 우리집에 오지 않을래?"
대답은 순간이었다. "응! 좋아!"
와카사기히메는 자신의 푸른색을 띈 머리와 극도로 대비될 만큼 시뻘개진 얼굴을 하고서는 카게로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렇게 카게로는 자신의 집으로 히메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안개의 호수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미혹의 죽림까지. 물에서 한참동안이나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히메는 그에 개의치 않았다. 물에서만 살 수 있다는 금기, 그리고 그 비슷한 것 하나 없이 자유로운 인어. 바로 와카사기히메라는 이름의 인어였다. 하지만 진정 자유로운 존재이지는 않았다. 딱 하나의, 또한 히메 혼자서는 절대 풀 수 없는, 풀지 않는다에 가까운 속박이 있었다.
그 속박은 고동색의 흙만큼이나 선명한 갈색의 털로 이루어진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녀린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만큼이나 선명하게 붉고, 메스만큼이나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차분하고 부드럽지만, 야성을 완벽히 감추지는 않은 붉은 눈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그 눈을 처음 보았을 때, 히메는 수초로 엉켜진 늪에 빠져버린 가련한 들짐승마냥 깊숙히 빠져들어 버렸다. 그리고 더이상 가까워지지 않을 사이까지 가까이하게 되었다. 허나, 히메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더욱 더 긴밀한 것들을 원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거리를 좁혔다. 허나, 그 거리는 처음만큼 빠르게 좁혀지지 않았다.
카게로는 히메를 안은 채 자신의 집;대나무 숲 사이에 은밀히 숨겨진 작지만 아늑한 집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들려오고, 문이 다시 닫혔다.
카게로는 히메를 의자에 사뿐히 앉혀 놓고 "미안, 잠시 나가봐야겠어." 라는 말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며, 히메는 카게로의 집을 둘러보았다. 작은 탁자 위에는 그 탁자를 겨우 덮을 정도 크기의 보자기와, 사과가 들어 있는 바구니가 올려져 있었다. 히메는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창문은 늑대 모양의 자수가 수놓여 있는 커튼으로 가려져 그 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햇빛 말고는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히메는 다시 눈을 앞으로 돌리려는 찰나, 바닥을 보았다. 털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히메는 그렇겠지 하며 눈을 들어, 공기중에 떠 있는 털을 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 흩날리는 털을 하나 잡았다. 갈색의 가늘고 보드라운 털...
히메는 그 털을 유심히 보았다. 카게로가 나가 돌아오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의 눈은 아쉬움을 느끼는 듯한, 그리고 슬픔을 느끼는 듯한 눈빛으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이윽고 카게로가 돌아오자 히메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털을 불어버린 뒤 허물 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경직된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 서린 어색함을 카게로는 눈치채지 못한 채, 반대쪽의 의자에 앉아 몸을 히메의 방향으로 돌렸다.
"이름 모를 요괴들이 난리를 쳐서 돌려보냈어. 미안해, 그때 이후로 계속 시끄러워서."
카게로는 수건을 꺼내 손톱과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필히 그 잡스러운 요괴중 하나, 어쩌면 그들 중 둘 이상의 것이리라. 하지만 히메는 그것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카게로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카게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히메는 카게로를 위로했다."괜찮아. 상관 없어."
"잠깐만, 차라도 가져올께."
카게로는 그 말과 함께 주방 방향으로 가려 했다. 허나, 히메는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카게로의 꼬리를 잡아 가는 것을 막았다. 카게로는 교성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입을 겨우 겨우 막으며, 히메의 손을 떼어낸 뒤 히메를 노려보았다. 히메는 뭍에 떨어진 물고기 꼴을 한 채로 카게로를 올려다보았다.
"미, 미안해. 골탕먹일 생각은 아니었어. 나는 카게로만 있어도 돼. 다른건 필요 없어."
그렇구나라는 표정을 한 채 히메를 다시 의자 위에 올려준 뒤, 카게로는 다시 앉았다. 그리고, 이윽고 심심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사과를 하나 집어들어 한 입 깨물어 먹으며, 탁자의 나무 사이에 끼인 털을 손톱으로 긁어내며, 커튼을 열어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히메는 그런 카게로의 얼굴, 이제는 자기 자신의 얼굴보다도 더욱 더 선명히 뇌리에 서린 얼굴을 한조각 한조각 정성스레 새겨나가듯 한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히메는 카게로를 향해 자신이 언제나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카게로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그 말과 함께, 히메는 몸을 앞으로 내밀어, 카게로한테 다가갔다. 눈을 돌린 카게로의 얼굴에 떠오른 부끄러운 기색이 선명해질수록, 히메의 마음 또한 기대감에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이윽고 카게로는 다시 눈을 돌리고, 상상 이상으로 가까이 밀착한 히메를 보고 깜짝 놀랐다. "히, 히메?"
히메는 답 없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마저 좁혀, 카게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딫혔다. 카게로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핑핑 돌아가는 눈을 한 채 히메를 떨어트리려 했다. 허나 히메는 그에 굴하지 않고 몸을 더욱 더 가까이 해, 카게로의 어깨와 등을 감쌌다. 완전한 연인이 행하는 포옹의 모습이리라.
카게로는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물기 어린 부드러운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히메의 혀라는 것을 눈치채자 카게로는 무엇인가 끊어졌다.
"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인어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카게로는 잔뜩 흥분해 불규칙적인 숨을 내쉬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각하고는 쓰러진 채 힘 없는 표정을 한 히메의 앞에 앉아 눈을 맞추었다.
"미안해. 나는 못할 것 같아. 호수로 돌려보내줄께. 알았지, 히메?"
그 말은 거절이었다. 그 말은 히메의 마음을 메마르게 했다.
히메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게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히메를 다시 안아올렸다. 히메는 전에 안길때와는 달리 순순히 몸을 내어주지 않아, 자신을 들어올리려는 카게로가 약간의 난항을 겪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 해는 점점 기울어지고 하늘에는 노란색이 점점 선명히 감돌기 시작했을 때였다. 히메는 침울한 얼굴을 한 채 땅만을 쳐다보며 카게로의 발걸음에 맞춰 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카게로는 그런 히메의 침울한 얼굴을 보았고, 히메가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카게로는 히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개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히메는 말도 없이 돌아보지 않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카게로는 그저 튀겨오르는 물방울들만을 맞으며, 히메가 일으킨 수면의 흔들림을 잠시 멍하니 보다 돌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카게로가 더이상 보이지 않자, 히메는 다시 수면 밖으로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물에서도 흐르는 인어의 눈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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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파인 초승달이 구름들 사이로 뜬 그날의 밤 히메는 호수 위로 솟은 바위에 앉은 채, 달을 바라보며 슬피 울며 노래하고 있었다. 슬픈 감정만을 말이라 할 수 없이 코로 흥얼대던 소리는 어느샌가 말이 되고 노래가 되었다.
"하늘에 뜬 달아, 너는 무얼 보니?
나는 한명만을 보고 있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있어.
나는 물 위에 물 안에 있지만
내 마음은 말라 비틀어져가.
이제는 눈물마저 나오지 않을 거야."
노랫소리는 점점 가늘어지고 작아져갔다. 이윽고 호수 주변에서 들려오는 벌레들만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히메는 눈물을 훔치고는 다시 흐느껴 울었다.
이윽고 달이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호수는 잠시간의 어둠에 잠기자, 풍덩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달이 나타났을때에는, 물 위 외로이 서 있는 바위만이 위에서 내려오는, 물에 비치는 달빛을 혼자 조용히 받고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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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로는 하룻밤의 비가 지나간 죽림을 거니고 있었다. 그 중간, 투명해 밑의 풀이 비치는 작은 물 웅덩이를 보자 카게로의 마음 속에는 히메가 떠올랐다. 기억 속의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기운 없는 얼굴을 한 채 쓰러져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카게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 날 이후 얼마나 지났을까, 1주일? 1달? 카게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호수의 안개가 그 때의 기억을 가린 것 마냥 그 날을 기억하려 할 때마다 카게로는 불안감을 느끼고,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 열기를 느꼈다.
카게로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이미 히메의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했기에, 죄책감에 빠져 안개 호수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채 시간을 흘려보내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카게로는 죽림에서 나갔다. 그리고, 호수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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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도착한 카게로는 자신을 기다리는 듯 수면 위로 상체를 드러낸 히메를 마주했다. 히메의 눈과 얼굴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눈물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매일을 눈물로 지새웠던 것일까.
"왔구나, 카게로. 기다리고 있었어."
카게로는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만일 히메의 마음이 물러져 흐트러진다면 자신이 잡아 주리라 생각하며.
"미안,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그저, 너를 친구로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어."
카게로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저, 히메를 피하려 했을 뿐이다.
카게로는 말을 마치며, 앞으로 어떻게 히메를 위로해야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히메의 반응은 카게로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히메는 실성한 듯 힘 없이 광소했다. 그리고 웃을 힘도 남지 않자 웃음을 멈추고 카게로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친구? 친구라고? 카게로, 내 마음을 왜 몰라주는 거야?"
말을 할수록 히메의 눈은 슬픔에 천천히 짓이겨져, 결국에는 텅 빈 모습이 되었다.
"왜, 왜,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바라봤는데,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동경했는데, 내가 그렇게나 오랫동안 사랑했는데!"
이번에는 카게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히메, 그건 그냥 집착이 아닐까? 사랑이 아닌, 그저 광기어린 집착 말이야."
카게로의 말을 들은 히메는 감정의 격류를 멈춘 채 눈을 감았다. 카게로는 그 모습에 잠시 안도했지만, 더 큰 해일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집착? 카게로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내가 가진 마음은 집착이 아니야."
그 말과 함께 히메는 입고 있던 기모노의 앞섶을 풀었다. 그리고...
"히, 히메!"
히메는 자신의 두 가슴 사이로 손을 푹, 깊숙히 꽂아넣었다. 피가 힘차게 뿜어져 나와 푸른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그 광경을 본 카게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윽고 히메는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다시 빼내어 카게로한테 보여주었다. 피로 젖어버린 그 손에는 이제는 고동을 멈춰버린 인어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내 심장은 너만 보면 마구 뛰니까... 지금처럼..."
히메는 그 말과 함께 심장을 터트리려는듯 움켜쥐었다. 하지만 실제로 행한 것은 힘 없이 자신의 심장을 물 속으로 떨어트리는 것이었을 뿐이다.
히메는 공포에 질린 표정을 한 카게로한테 무엇인가 말을 하려 했지만, 더이상은 말할 기력도 없는듯 바람 소리만 내었다. 그리고, 호수의 한자락을 붉게 물들인 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카게로는 히메의 마지막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히메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가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해> 라는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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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 배드엔딩이라는 이름의 독... 맛있어... 중독될 것 같아... 크흐흐흐흐...
해피엔딩 버전을 내일 쓸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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