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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기에 못 이겨 축 늘어져 버린 히라사키. 흥겨운 분위기에 어느새 오니들 사이에서 자신의 영웅담을 늘어놓고 있는 신고. 스이카는 기분 좋은 얼굴로 술잔을 들이켰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급작스럽게 치룬 신고식 치고는 괜찮은 느낌이다. 해는 산 능선에 걸쳐져 하늘을 붉게 노을로 만들고 있었다. 스이카는 그 석양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여긴 이제 볼일 없으니 슬슬 다른 곳으로 가 볼까?」 그 말에 동의하는 듯. 우오-, 하는 오니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히라사키는 한 건장한 오니의 등에 업혀졌고, 신고도 인사불성이 되어있는 터라, 옆에 있던 오니의 부축을 받아 겨우 몸을 일으켰다. 커다란 나무 술통이 실어져 있는 가마도 네 명의 오니가 각각 손잡이를 드는 것으로 땅 위로 들려진다. 이제 걸음만 옮기면 될 정도로 채비를 마친 오니들은 두령인 스이카에게 다음 행선지에 대해 물었다. 그 물음에 스이카는 실없이 웃으며 답했다. 「발이 닫는 대로. 이 정도의 백귀야행을 보면 숨어있던 녀석들도 알아서 기어 나오겠지!」 백여 명에 달하는 오니의 군세에 기어 나오기는커녕 되러 숨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지만, 실제로 여기에 소속 돼 있는 몇몇의 오니들은 스이카의 말대로 알아서 기어나 온 자들이었다. 강함을 동경하고, 거기에 이끌리는 요괴라면 특히나 이 백귀야행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강한 요괴인 오니 역시 같았다. 그렇게 발길이 닿는 대로 무리를 이끌고 다닌 지도 어느덧 일 년. 처음 투귀암을 떠날 때만해도 30명에 불과하던 오니들은 이젠 그 세 배가 넘는 수만큼 불어나 있었다. 오니로만 이루어진 백귀야행. 사실, 스이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투귀암의 두령자리를 그만 둘 당시만 해도 그녀를 따르겠다고 한 요괴들 중엔 오니가 아닌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점차 늘어나는 오니들을 견디지 못하고 요 일 년도 안 되어 모두 떨어져 나가 버린 것이었다. 자신이 이 무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그도 그럴 것이 오니는 격이 다르게 강한 요괴. 어지간한 요괴들은 이 백귀야행 무리에 낄 자격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리에 요괴도 아닌 인간이 둘 끼어 있다. 독한 오니의 술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신고와 히라사키. 자신을 업고 있는 오니의 등이 편한 것인지 새삼 모르게 자고 있다. 두령의 한마디에 오니들이 일제히 발을 움직였고, 그에 따라 지축이 쿵쿵 울린다. 정연하게 울리는 발소리가 흡사 일 만이 넘는 대군의 행군을 연상케 했다. 백여 명이 만들어내는 만 명의 행군 소리. 가볍게 내딛는 그 발걸음 하나에 얼마만큼의 힘이 실려 있는지 충분히 가늠 될 정도였다. 쿵쿵쿵쿵. 가벼운 지진을 만들어내던 그 행군이 어느 순간, 갑자기 뚝 하고 끊겨졌다. 방해물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에 대적할 상대가 없을 거라 여겨지는 오니 백귀야행을 멈춰 세운 것은 단 한 명의 오니. 스이카를 제외하고는 백 명의 오니들을 단신으로 상대 할 수 있는 귀신. 투귀, 호시구마였다. 느껴지는 요력은 강하지 않지만, 전신에서 발산되 나오는 투기는 백 명의 오니에게도 지지 않는다. 시뻘건 안구가 번뜩였고, 사나운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 머저리 같은 년아 ─ !!」 스이카를 향해 감정이 담긴 일갈을 내질렀다. 호시구마는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로 가마위에 걸터앉은 스이카를 노려보았다. 「좀 더 오랫동안 기절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을 툭 뱉는 것과 동시에 스이카는 그 자리를 박차,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몇 바퀴 공중제비를 돌더니 사뿐히 땅에다 두발을 동시에 내딛는다. 「회복이 빠르구나.」 장난스럽게 던진 말이었지만, 감탄이 섞여있었다. 낮에 있었던 그녀와의 일전. 처음엔 서로 커다란 돌덩이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그 이후엔 주먹다짐으로 발전 되었고, 그 결과 호시구마는 산의 깊숙한 중심부에 쳐 박혀 버리는 결말이 났었다. 보통의 요괴라면 잘게 다져진 고기파편이 되었을 것이고, 금강력의 오니라도 살아남기 힘들 수준의 일격. 그 일격을 받고도 호시구마는 한나절 기절해 있는 정도로 그친 것이다. 맷집 하나는 자신 다음가는 요괴란 말인가. 그 점이 더없이 맘에 들긴 하지만, 문제는 저 호시구마가 자신에게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자신에게 패해 두령으로 인정했었던 그녀다. 그런데 뭐가 또 불만이기에 가는 길마다 저렇게 막아서서 결투를 걸어오는 것이란 말인가. 그 이유를 모르지는 않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스이카였다. 호시구마는 자신의 몇 발자국 앞에 서있는 스이카를 죽일 듯 노려보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투귀암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냐!」 이것은 그녀가 스이카를 두령으로 인정한 것과는 별개의 일. 그곳의 두령이면서 요괴들을 이끌고 투귀암을 완전히 떠나버린 것, 그에 대한 분노였다. 7 년간 투귀암의 두령으로 군림하면서 그곳의 암묵적인 규칙을 철칙처럼 따라왔던 호시구마에게 있어 충분히 화가 날 만한 일이었다. 투귀암의 두령은 그곳에 남아서 언젠가 찾아올 도전자를 맞이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호시구마가 당연시 여기는 투기암 두령으로서의 책무였다. 헌데 그걸 내팽게치고 오니 백귀야행을 꾸러 전국을 떠돌고 있다니. 호시구마는 이를 으득 하고 세게 악물었다. 하지만, 스이카는 호시구마가 자신의 행동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는 것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말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힘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것이 오니, 요괴들의 방식 아니던가. 스이카가 이죽대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 답답한 새끼야. 고지식한 것에도 정도가 있어.」 뭔 놈의 책무고 철칙인가. 그 따위 진부한 것에 얽매여 있으면 나 스이카가 아니다. 그렇게 말해오는 눈으로 호시구마를 응시한다. 빠드득. 호시구마의 입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크게 새어나온다. 눈가에는 핏줄이 잡혀 꿈틀거렸고, 팔자주름이 깊게 파여 들었다. 「역시, 너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군.」
스이카의 말처럼 호시구마는 자신이 다소 고지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규칙.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쁜가? 약육강식이 기본인 요괴라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 지켜야 할 법도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을 긍지로 여기는 요괴도 존재한다. 호시구마가 그랬다. 호시구마는 투귀암의 두령이었던 자로서 그곳의 모든 것을 긍지로 여기는 요괴다. 서로 상반되는 가치관 속에 다툼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 대 갈겨주고 싶어 하는 호시구마의 시선이 둘 사이의 공기를 가열시켜갔다. 호시구마가 천천히 다리 한 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쿵! 땅에 힘을 실어 내딛자, 바닥이 쩌저적-, 갈라지면서 대지가 요동쳤다. 건장한 두 다리로도 서있기 힘들 정도라 백여 명의 오니들이 비틀거렸다. 그 과정에서 이제껏 달콤한 잠을 자던 두 퇴치사가 별안간 눈을 떴다. 갑자기 왠 지진이지 하고, 아직 잠기운이 달아나지 않은 눈을 끔뻑거리며 앞쪽을 바라보니 오늘 낮, 산을 오르다 보았던 오니가 사나운 인상으로 서 있는 것이었다. 신고가 입을 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이게 또 무슨 일이야?」 「아, 저 분은 말이지. 두령 다음으로 강한 오니인데. 우리 두령을 끔찍이도 미워하거든.」 신고를 업고 있던 오니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단편적인 설명이었지만,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도 그럴게 저 오니는 낮에도 슈텐과 다퉜으니 말이다. 그리고 슈텐 못지않게 범상치 않은 강함. '두 번째로 강한 오니라.' 저 자비심 없어 보이는 상판을 보니, 만약 산에서 만난 것이 슈텐이 아닌 저 오니였다면 절대 살아남지 못 했을 거다. 그건 히라사키도 같은 생각이었다. 흔들거리던 땅이 잠시 소강에 접어드는가 싶더니 다시 한 번 쿠구궁, 거리며 흔들렸다. 허나, 호시구마가 한 번 더 발을 내딛은 것이 아니었다. 이미 땅에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있는 상태에서 흔들리게 만든 것이었다. 이어서 사방으로 금이 간 바닥이 날카로운 이를 드려내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악 물어-!」 호시구마는 주먹을 활시위 당기듯이 머리 뒤로 보내고는 「으아아─!!」맹수의 포효를 내지르며 상체를 비틀고 당겨졌던 주먹을 앞으로 힘껏 내질렸다. 그 주먹 끝에는 스이카의 면상이 위치해 있었다. 전신전력의 패력이 담긴 호시구마의 주먹이 스이카의 얼굴에 명중하기 직전. 쾅! 몸을 돌려 채찍처럼 휘어지는 스이카의 다리에 막혀 방향이 틀어졌다. 쿠쿵. 틀어진 방향 쪽으로 일직선으로 압축된 공기가 토해진다. 그 아래로 단단한 땅이 길게 파여졌고, 그 여파로 인해 주변엔 거친 광풍이 불어 닥쳤다. 무자비한 귀신의 패력. 구경하고 있던 백여 명의 오니들이 호시구마가 휘두르는 괴력에 감탄을 내지른다. 과연, 투귀암의 패자로서 군림해왔던 투귀다운 강함이었다. 만약, 슈텐이 없었다면 저 호시구마를 두령이라 떠 받들었을 것임을 부정 못하리라. 그러나 경외심에 감탄하던 오니들과는 달리 두 퇴치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기겁을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저 두 괴물의 싸움에 자신들도 휩쓸려 사지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찢겨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까 슈텐이 발차기로 주먹의 궤도를 바꾸지 않았다면 저 패력의 폭력에 자신을 포함한 수백의 오니들이 그대로 노출 될 번 하지 않았는가! 슈텐이 부하들을 지켜가며 싸운다 하더라도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를 일이었다. 오니들이야 단단한 육체 덕에 가벼운 상처로 끝나겠지만, 신고와 히라사키는 인간이다. 틀림없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주먹을 회수한 호시구마가 허리를 낮추고 자세를 잡았다. 이어 땅을 박차고 덤벼들려고 하는 순간─ 「잠깐만!」 하는 스이카의 외마디가 그녀의 행동을 멈춰 세웠다. 「뭐냐?」 호시구마가 자신을 멈춰 세운 이유를 짜증을 내며 묻는다. 그에 스이카는 잊고 있었다는 듯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대답했다. 「여기서 너랑 싸웠다간 순식간에 뒈져버릴 놈이 있거든.」 「뭐어?」 다른 요괴도 아니고, 튼튼하기로 비견될 존재가 없는 오니들로만 이루어진 백귀야행이면서 그런 약골이 있다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그런 약골 오니가 있다 해도 다툼에 휩쓸려 죽어버린다면 그걸로 끝인 거지, 스이카가 일부로 싸고 돌 이유란 없었다. 호시구마는 눈을 찌푸리며 볼멘소리로 꾸짖듯이 말했다. 「구경하다 뒈질 놈이라면 오니 소리도 못 듣고 다닐 놈이겠구나.」 「그래. 당연히 오니 소리 못 듣고 다닐 놈이지.」 「응?」 「오니가 아니라 인간이거든.」 뭐라고? 순간 호시구마의 얼굴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경직되었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바로 이어진 말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부하로 삼을 놈이 이미 뒈져 있길래, 그넘 대신 부하로 삼았어.」 그리 말하는 스이카의 얼굴은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퇴치사야. 당초, 부하로 삼을 놈을 죽인 넘들이지.」 흥겨운 어조로 들려주는 말에 호시구마는 새삼스럽게 눈앞의 오니가 어지간히도 별종임을 깨달았다. 거 참, 네년답네. 한마디로 슈텐다웠다. 동족을 죽인 인간을 부하로 삼은 것과 또 그런 인간을 감싸기 위해 싸움을 중지시킨 것도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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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퇴치사 아직까진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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