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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별로 없니?」 내 젓가락질이 시원찮아 보였는지, 유카리님이 물었다. 「아뇨. 그게‥.」 나는 적당히 둘러대고는 젓가락에 집혀진 밥을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아, 유카리님의 말대로 지금의 난 입맛이 별로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식사를 준비하고, 밥상을 차려서 지금, 유카리님과 당연하다는 듯이 식사를 하고 있다. 초록색 천 모자를 쓴 귀여운 여자애도 함께다. 이렇게 보면 별 문제 없어 보이는 일상이지만─. 이상하잖아. 당연하다는 듯이라니! 난 뭘 평소처럼 행동하는 거냐고!! 이건 다 이 몸뚱어리 때문이야. 그러니까 위화감도 없이 이 상황에 녹아들어 있는 거겠지. 아니면 뭐야, 나는 사소한 건 신경 쓰지 않는 주의? 아니지. 이건 절대 사소한 일이 될 순 없어. 이렇게 머릿속이 완전 아수라장인데 어떻게 입맛이 있겠어? 「죄송합니다.」 나는 그만 밥을 반 공기나 남기고는 젓가락을 식탁위에 내려놓고야 말았다. 유카리님은 「별일이구나.」하고 조금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봤지만,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았다. 첸이 내 옷자락을 당기며 물었다. 「란님, 어디 아파요?」 「아니야. 조금 밥 생각이 없어서.」 기특하게도 내 걱정을 해주는 첸에게 옅은 미소로 답했다. 그나저나 나 저 애의 이름을 알고 있구나. 어떻게 안 거지? 이것도 이 몸의 기억? 어쩐지 모 요괴가 나오는 애니의 '이게 다 XX 소행이야.'와도 같아졌다. 이게 다 이 몸의 기억 탓이야! * 식사를 마치고, 밥상위의 식기들을 정리하고 있던 내게 유카리님이 말을 걸어왔다. 「란.」 「네, 유카리님.」 「오늘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괜찮은 거니?」 「네. 문제없습니다.」 아니, 나 지금 엄청 심각합니다요. 그게 내 진심이지만, 차마 그런 말이 목구멍 위로 올라오지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진 유카리님은 내가 진짜-전의 란-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서 차라리 일찍 알아차렸으면 좋겠는데. 그도 그럴게 내 입으로 '저는 사실, 유카리님이 알고 있던 란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가 무척 어렵거든. 「그럼, 괜찮은 걸로 여겨도 되는 거지?」 「네.」 조금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카리님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혼자가 된 나는 멈춰졌던 손을 재차 놀렸다. 그리고 마음 한 컨에 내려놓았던 의문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의문들은 여긴 어디인가? 왜 나는 란이 되어있는가? 란은 어째서 구미호가 되어 있는가? 유카리님은 누구이고, 첸이란 소녀는 누군가? 나는 왜 그들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있는가? 하나 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럴 때, 어떡해야 스스로 납득이 될 런지 누가 좀 조언을 해줬으면…. 그러고 보니 뒤늦게 깨달은 건데. 나뿐만이 아니고, 유카리님과 첸이란 소녀도 인간이 아니었어. 그 말은 즉. 여긴 완전 요괴 소굴이란 거! 그래, 이렇게 생각하자. 자고 일어났더니 요괴들이 사는 세계에 란이 되어 있었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이렇게라도 단정 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걸로 된 거야. 억지로라도 납득하자. 「모르는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등 뒤로부터 기습적으로 들려온 유카리님의 목소리가 나의 상념을 깨뜨렸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 말만 하고선 냅다 사라진 모양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니. 그 한마디를 남기고 바로 모습을 감추는 건 대체 무슨 꿍꿍이시지? 왠지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마치,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 식기를 다 치워낸 나는 석연치 않은 기분으로 설거지를 했다. 아까부터 그 말이 잊혀 지지 않는다. 뭐냐고? 다 안다는 듯이. 저 유카리라는 여자가 란의 상관이라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긴 한데, 맘에 들지 않는다. 님이라 붙이면서 굽실거리며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복종하다는 기분으로 따르는 거지, 결코 내가 원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이 기분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란의 몸조차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주방은 다행히도 현대식이라 식사를 준비하거나 정리하는 데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이 집 전체가 고풍적인 양식인 것에 비해 지나치게 세련된 부분이었다. 뭐, 나야 편해서 좋지만. 대충 깨끗이 씻은 식기를 정리하고 나서 젖은 손을 털면서 주방을 나섰다. 마당에 나와 보니 따스한 한낮의 햇빛이 나를 반겼다. 어제 밤만 해도 한 겨울이었는데, 하루 만에 초여름 정도의 날씨라니. 역시, 이곳은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아닌 게 분명해. 이젠 거의 확신이었다. 그렇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것은 최근 유행하는 이세계물이랑 비슷한 전개라는 걸까? 트립, 환생, 빙의. 나는 그 중에서도 세 번째 경우겠구나. 그것도 내 친구인 란과 판박이인 몸에…. 근데, 이거 란과 닮았을 뿐이지, 전혀 다른 인물이지?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힌다. 바람이 선선히 불어오긴 했지만, 조금 더운 날씨였다. 나는 몸을 돌리고, 다시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 들어선 나는 가장 먼저 냉장고의 문을 열어 시원한 물부터 찾았다. 그리고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장을 봐야겠구나.' * 나는 장을 보기위해 신을 신고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장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그렇다. 나는 애당초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연히 장을 볼 만한 장소 따위 알리가 없었다. 그때, 유카리님이 하신 말이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렴. 역시, 내 정체를 알고 계신 걸까? 그렇다고 해도 선 듯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보다 어쩐지 생리적인 레벨로 싫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유카리라는 여자가 싫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장은 봐야겠고, 어쩌지? 아 몰라, 장보는 것도 몸이 기억하겠지. 하고, 집을 나서 발이 닿는 대로 걷기로 했다. 그것이 참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엔 한 시간이나 헤맨 후였다. * 「으아──! 여긴 어디냐고!!」 패닉 상태가 된 나는 머리에 쓰고 있는 천 모자를 부여잡고, 한 시간 전의 나를 격렬하게 원망했다. 이건 순전히 내 실수였고, 너무 안일한 행동이었다. 처음 보는 유카리님과 첸을 알고 있고, 평소처럼 행동하게 되었다곤 해도 몸이 기억하는 건 그 정도까지일 수도 있는 건데. 그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찌르르하는 짙은 녹음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합창처럼 들려왔다. 주변이 온통 푸른 풀숲인데다 따가운 햇살조차 뚫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산림의 한 복판이었다. 이제는 돌아가는 길 조차도 확실치가 않았다. 그래. 난 지금 완전히 길을 잃었어. 엉엉 울고 싶어진다고! 거부감이 들더라도 물어볼걸 그랬나?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해. 완전히 조난해 버렸는데.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은 갈수록 느려졌다. 사삭. 사삭. 내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러워 진다. 행여나 뱀을 밟지나 않을까, 혹은 맹수가 나오진 않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데, 풀숲으로부터 ‘불쑥’하고 무언가가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꺄아-!」 깜짝 놀라서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나는 겁먹은 얼굴로 튀어나온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 무언가는 다행히도 맹수는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 란님!?」 인간의 모습을 한 소녀?가 의아하다는 어조로 내게 말을 걸었다. 소녀(아마도)는 녹빛이 도는 단발머리에 한 쌍의 더듬이 같은 게 돋아나 있었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애도 인간은 아니겠지? 「어‥ 응.」 얼떨결에 대답을 해주고 나서 소녀의 모습을 좀 더 살폈다. 키는 첸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고, 하얀 셔츠에 검은 반바지. 검은 망토를 걸친 귀여운 아이였다. 유카리님과 첸과는 다르게 이 애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걸 보니, 별로 중요하게 여기던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덕분에 드물게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죄송하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어? 너도 조난한 거야!? 좋다 만 기분이었다. 혹시나 저 애의 도움으로 조난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같은 처지였다니! 「저기, 미안한데.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몰라.」 나는 멍청하게도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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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소녀?인 리글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