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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주무세요?」 「으음... 무슨 일인데요.....」 세이가는 잠에 들었으나 그리 깊게 들지는 않았다. 얕은 잠이라 유카리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무거운 눈꺼풀을 열었다. 유카리는 세이가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손수 끓어온 죽을 수저로 떠서 세이가에게 내 밀었다. 「제가 손수 만든 죽이에요.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지만 한 숟갈 드셔보세요.」 세이가는 유카리가 내밀은 흰 죽이 담긴 수저를 내려다보며 아무 말 않고 고개를 내 저었다. 「에? 드시기 싫으신가요?」 「신경 써 주신 건 고맙지만, 지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세이가는 불청객에 불과한 유카리가 설마 자신을 위해 죽까지 끓여 왔을 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호의를 거부한 것은 정말로 내키지 않아서였고 눈앞에 섭섭한 표정을 짓는 유카리를 보며 약간,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죽을 먹는 것을 거부했다. 유카리는 세이가의 거부에 아쉬워하며 내밀었던 수저를 치우려다가 다시 한 번 더 내밀었다. 「그래도 아무 것도 안 먹으면 건강에 나빠요.」 세이가는 그런 유카리의 고집에 손사래를 쳤으나 「제가 얼마나 정성들여 끓인 죽인데. 한 번 맛이라도 봐 보세요!」 「저 안 먹는다... 우웁!」 유카리의 다른 쪽 손이 세이가의 양 볼을 붙잡고 강제로 입을 벌리도록 힘을 주고 눌렸다. 세이가의 양 볼이 유카리의 손에 눌려 치아를 비집고 들어가자, 그로인해 열러진 입안으로 뜨거운 죽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우우웁 !!」 환자에게 죽을 떠먹인다 하면 보통은 입으로 ‘후후~’ 불어서 식혀 먹이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 유카리에겐 그 당연한 상식조차 결여 돼 있었다. 가뜩이나 먹기 싫다고 거부하는 환자의 입을 강제로 개폐한 것도 모자라서 식지도 않은 뜨거운 죽을 입안에 강제로 집어넣은 것이다. 세이가는 씹지도 못한 뜨거운 죽이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식도에 화상을 입는 통증을 느끼며 몸부림 쳤다. 「우웁 ~~ !!」 그 몸부림에 유카리가 들고 있던 수저가 날려져 바닥에 떨어져 굴렸다. 그리고 세이가는 자신의 턱을 강제로 벌리게 만든 유카리의 손목을 꽉 움켜잡으며 말했다. 「절 죽일 셈인가요...」 세이가는 인상을 무섭게 구기며 유카리의 손목을 잡은 손아귀를 분노를 담아 강하게 쥐었다. 그러자 자신의 입을 열게 한 유카리의 손이 점점 힘을 잃어가더니 입의 자유를 되찾는다. 유카리의 손이 자신의 볼을 완전히 해방시켰지만 그녀의 팔목을 잡은 세이가의 손아귀는 힘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더 꽉 쥐었다. 「세이가 씨, 화나셨나요?」 「다..당연한 거 아닌 가요!」 세이가가 정말로 자신에게 화를 내며 소리치자 유카리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유카리는 자기 딴에 신경 써서 한 호의가 도리어 화를 내게 만든 사실에 충격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카리에게 세이가의 질책이 이어졌다. 「나 참, 도대체 뭐하는 요괴인 가요? 제가 먹기 싫다고 했는데도 강제로 떠먹이는 건 무슨 괴롭힘인가요? 그 뜨거운 죽을 식히지도 않고 강제로 먹이면 어쩌자는 거죠?? 제 의사를 무시하지 말라 고요!」 세이가는 자기 눈앞의 존재가 환상향에 살아가는 그 어떤 인요들도 우러러 볼 현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에게 폐를 끼치기만 하는 말썽쟁이 요괴로만 보였다. 그래도 현자라는 것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도 못 가게 발을 묶은 것과 곁에 두고 듣기 싫은 수다를 떨어댄 것도 참았건만. 뜨거운 죽에 의해 식도가 화상을 입게 되자 인내가 한계를 넘어버린 것이다. 유카리는 세이가의 질책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자신이 세이가에게 폐가 되었다는 자각이 있어서였다. 그런 자각이 있었기에 세이가가 불만을 토로하고 난 후 심호흡을 고를 때, 유카리는 사죄의 말을 입에 올렸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신경했었나 봐요. 전 제 생각만 했었어요. 세이가 씨의 기분을 무시한 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을 했어요. 부디 이런 저를 용서해 주시지 않겠어요?」 「.. 용서고 뭐고... 일단 물이나 한 모금 마셔서 속을 달래야겠어요.」 세이가는 씩씩거리며 침대에서 벗어나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분후, 부엌으로부터 세이가의 절규소리가 들려왔다. 「끼야아아아!!」 물을 마시기 위해 들어선 부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벽은 시커멓게 그슬려 있었고 그 아래로 처음 보는 물건들이 난잡하게 쌓여있어 쓰레기 매립장을 연상케 했다. 거기다 끓이다 실패한 죽들이 냄비 채로 탑을 이루고 있었다. 부엌을 이렇게 만든 자는 누구겠는가. 조금 전,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던 유카리의 얼굴을 떠올리니 머리에 혈압이 더욱 치솟아 오르는 세이가였다. * 다음 날. 야쿠모 란은 전날에 이어서 주인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실은 주인 찾는 다는 것은 명목일 뿐, 그 보다 어제 새로이 눈을 뜬 재미에 빠져버린 란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머리와 똑같은 모양으로 이발을 시키는 행위였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마리사와 치르노 였다. 그 두 명의 희생자 외엔 다행히도 아직 없는 이유는 요괴의 산을 뒤지던 란으로부터 불길한 요력을 감지한 요괴들이 몸을 사리기 위해 숨어버렸고, 산의 경비를 맡고 있던 백랑 텐구들 조차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란의 모습을 천리안으로 파악하여 텐구 사회에 미리 경고를 해 주었기에 화를 면했던 것이다. 물론, 위기에 둔감한 요괴도 있었으나 그들은 대부분 캇파들이라 란에게 발각 당해도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애당초 소갈머리가 뺀질뺀질한 캇파들은 이미 충분한 빛나리이기에 란의 희생양이 될 수조차도 없었다. 그렇게 요괴의 산의 요괴들은 란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고 이날의 란은 다른 장소를 탐색하기로 했으니 오늘 역시 무사할 것이다. 누구든지 걸리기만 하면 자신과 똑같은 머리로 이발을 시켜버릴 작정인 란은 주머니 속의 바리캉을 만지작거리며 히죽대고 있었다. 그런 란이 향한 곳은 인간 마을 근처에 위치한 명련사. 불도에 입문한 비구니들이 있는 절이건만, 그곳의 비구니는 말이 비구니지 하나 같이 개성이 강한 모습을 하고 있어 도저히 비구니로는 보이지 않는 땡중들의 집합소였다. 요괴라 하여도 불법을 공부하는 비구니라 하면 삭발을 하는 게 보통이 아닌가. 란은 그런 기본중의 기본도 안 지키는 땡중에게 자신이 손수 비구니로서의 올바른 모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바로 이,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바리캉으로. * 란이 명련사에 도착했을 땐 명련사는 평소와 다름없이 신도들이 드나드는 평범한 사찰이었다. 그러나 절의 구성원 전원이 요괴들인 요괴절. 주지인 히지리 뱌쿠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비록 인간의 몸이긴 해도 란의 눈엔 똑같은 요괴로 보이는 요괴중에 불과했다. 그녀의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정수리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갈수록 보라색이 금색으로 그라데이션처럼 칼라풀한 색채를 띄는 그 아름다운 머리를 떠올린 란은 염색도 하지 않은 인간이 그런 머리카락을 지닌 것에 격렬한 질투심에 휩싸였다. 제 아무리 마법을 익히고 법계에서 수련을 했다지만, 그 아름다움은 요괴보다도 요사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요사한 아름다움을 지금 당장 없애서 진정한 불제자로 거듭나게 만들어 주겠다고 다짐한 란은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살기와 요력을 최대한 억누르며 산문을 지났다. 「안녕하세요!」 산문을 지나치자 마당을 쓸고 있는 야마비코. 카소다니 쿄코가 란을 보고 큰 소리로 인사해왔다. 자신의 의도를 눈치 챈 건 아니었지만, 워낙에 큰 소리로 인사를 해오는 통에 란은 그만 흠칫하고 놀라버렸고, 그 바람에 줄 곧 만지작거렸던 주머니 속의 바리캉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런...」 란은 바리캉을 떨어뜨린 것을 눈치 채고 황급히 그걸 주우려 했다. 「죄.. 죄송해요!」 그때 쿄코가 자신이 큰소리로 인사한 탓에 란을 놀래 킨 것에 대해 사죄를 빌며 땅에 떨어뜨린 란의 물건을 대신 줍기 위해 다가가서 허리를 굽혔는데. ‘쿵’ 하고 자신과 동시에 허리를 굽힌 란의 머리를 박고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아우웃... 죄.. 죄송해... 헉!」 처음 본 신도의 머리와 부딪혀버린 무례를 범하고 만 쿄코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또 다시 사죄를 하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자신의 눈에 살짝 스쳐간 모습을 떠올리고는 자세를 고쳐 잡고 태도를 바꾸었다. 「아.. 몰라 봐서 죄송합니다. 스.. 스님!」 「스님..?」 란은 자신을 보고 스님이라고 칭하는 쿄코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천모자를 발견하고는 그 연유를 깨닫고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졌다. 치르노를 골룸 머리로 이발 시켰을 때 이미 각오한 일이건만, 막상 이 추한 자신의 머리가 누군가에게 발각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데미지를 준다. 하지만, 이 쿄코의 반응을 보니 자신의 머리를 비웃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착각인지 스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란은 바리캉과 함께 자신의 천모자도 주워들면서 쿄코의 착각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 나는 저 멀리 다른 사찰에서 온 고명한 대사니라.」 근엄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란은 이어서 이곳의 주지 스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쿄코에게 일렀다. 순진한 쿄코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스님인 척 하는 란을 대웅전에서 설법중인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이 있는 곳에 안내해 주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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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침입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