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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정말 큰일이었다. 그냥 만나도 위험한 상대를 동족을 퇴치한 직후에 만나다니. 히라사키와 신고는 어쩌면 자신의 운이 다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오니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가만히 저들을 보며 옅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싸웠다간 절대로 승산 없을 만큼의 대요괴. 하지만, 아직 하늘이 자신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 척 잘 무마해서 넘어가면 살아서 산을 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공포에 질려 가만히 서있는 것이 고작인 제자를 제치고, 신고가 나섰다. 「혹시, 이 산골짜기가 오니님의 영역이었습니까?」 「아니. 그러는 너희들이야 말로 이런 위험한 산에 뭔 이유로 들어선 거야?」 「하하. 그건..」 신고는 굳어진 안면으로 억지 웃음을 지었다. 지금 자신의 태도가 매우 비굴하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오니의 눈에 그저 호의적으로 비춰지길 빌어야 했다. 「응? 말해 봐.」 오니. 스이카는 킥, 웃으면서 신고의 대답을 재촉했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신고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좀 더 그럴싸한 이유도 있었을 텐데, 너무 대충 둘러댄 것이 아닐까. 오니가 수상하다고 여기면 그걸로 끝이다. 그땐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다. 헌데 오니는 낄낄 웃으며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기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가 없었다. 신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럼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스이카가 이죽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대체 얼마나 길치면 이런 깊은 산속을 헤매는 거야?」 그러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호리병을 짚어들더니, 마개를 열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안에 내용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이어 말한다. 「하핫. 여기엔 무서운 오니가 살고 있다고.」 주절거리는 입에서 강한 주향이 풍겼다. 호리병 안의 내용물은 틀림없이 술이리라. 스이카는 입가에 흘려 내리는 술 줄기를 손등으로 닦아 내면서 덧붙였다. 「아, 나 말고. 뭐 내가 더 무섭긴 하지만!」 그 무서운 오니를 퇴치한 게 나와 제자라고. 심장이 철렁인다. 신고는 떨리는 감각으로 최악의 상황을 상정했다. 만약 퇴치한 오니가 저 오니의 친구였고, 자신들이 퇴치한 사실을 오니가 알게 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허나, 들키지만 않으면. 오니가 알아채기 전에 산을 무사히 내려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신고는 오니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 치기로 했다. 한눈에 봐도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더 무섭다는 건.. 혹시, 그 유명한 호시구마님이십니까?」 「호시구마? 그 놈이 그렇게 유명했어?!」 「호시구마가 아니시라면 누.. 누구신지..」 「나?」 긴장한 기색이 잔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묻자, 스이카는 헹, 코웃음을 치면서 답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신 슈텐도지. 이 스이카를 일컫는 말이지!」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입을 찢는다. 그 모습은 분명, 아이가 제 잘난 맛에 하는 행동과 다를 바 없었지만, 신고와 히라사키에게는 너무나도 거대한 태산. 제 입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부르짖을 만한 그런 거대한 존재로 비춰졌다. 그리고 이 위압감. 산 전체가 전율한다. 아까까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숨 막힐 듯한 요력에 두 퇴마사는 압살 될 것만 같았다. 「컥..」 숨쉬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짙은 요기였다. 거부 할 수 없는 공포가 정신을 침식했고 심장을 죄여왔다. 신고는 이성을 유지하는 것이 겨우. 문득, 제자가 걱정이 되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아아....」 제자는 이미 공포에 굴복해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오니의 강함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산을 오르다 본 것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이대로 모든 걸 제쳐놓고 정신없이 도주해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신고는 그러지 않았다. 노련한 퇴마사답게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당장 미쳐버릴 공포 속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그의 폐안의 공기가 점차 줄어든다. 이제 괴로울 정도로 공기를 갈구하게 되었을 즈음,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아까의 짙은 요력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거 미안. 내가 너무 건방졌지?」 스이카가 그렇게 물었다. 가당치도 않는 말이다. 이 정도의 위압감과 요력을 지닌 존재라면 아무리 건방을 떤다 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신고는 겨우 살았다는 심정으로 대답을 들려주는 대신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선 아부를 떨어봤자, 역효과만 날 것 같았다. 근데 슈텐도지라. 십여 년 전에 행방불명되었다 들었는데, 그 대요괴가 어찌해서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신고는 그 점이 매우 궁금했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자는 짙은 요기가 걷히자마자 제정신을 찾은 모양이고 이제 적당한 이유를 들어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신고는 허허. 맥 빠진 웃음을 내뱉으며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그 유명한 슈텐도지를 이곳에서 뵙다니, 가문의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약삭빠르게 구실을 만든다. 「이거, 자랑거리가 늘어 기쁘네요. 한시라도 빨리 자랑하러 가야겠습니다.」 이것으로 저 슈텐을 지나쳐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허락이 떨어지면 말이다. 헌데, 너무 서두른 탓일까? 「너 말야.」 스이카의 목소리가 신고의 발목을 붙잡았다. 「내가 무섭냐?」 그 순간 스이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자신에 대해 무섭냐는 질문에 신고는 「그.. 아...아..아..」하고 더듬다 「아니요.」하고 거짓을 고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도 모르게 다리까지 떨고 있었다. 「이그. 완전 쫄았다는 얼굴을 하고선. 오줌 안 지렸어?」 스이카가 조롱을 하며 낄낄 웃는다. 겁에 질린 것이 빤히 보이는데도 아닌 척 거짓을 하는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한낮 인간이 어찌 자신의 정체를 알고도 무섭지 아니할까. 그러나 살기위해 허세를 부리며 아등바등 대는 꼴이 여간 안쓰러운 게 아니었다. 「오줌냄새가 진동하니까. 얼른 내려가서 바지나 갈아입어.」 그냥 눈감아주자. 자비를 베푸는 것도 아닌 요괴의 변덕. 다른 오니였다면 거짓을 내뱉는 순간 머리를 터트려 버렸겠지만 스이카는 그러지 않았다. 「아.. 알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신고는 허리를 굽혀 정중한 인사를 하고는 제자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이 순간 두 퇴치사는 사지(死地)에서 벗어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기쁨은 느끼진 않는다. 슈텐을 마주친 일은 단순한 불운이었으니까. 신고와 히라사키가 스이카를 지나쳐 경사진 내리막에 접어들 때였다. 털썩-. 발을 잘못 디딘 신고가 그대로 미끄러져 땅에다 엉덩방아를 찍었고, 아이고하는 곡소리를 내며 제자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고를 보며 스이카는 크캬캬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안 잡아먹으니까 급하게 굴지 마.」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신고는 스이카의 비웃음에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그래, 슈텐이 그럴 맘이었다면 이미 저세상이겠지. 신고는 조금 발걸음을 늦추기로 했다. 경사가 있으니 서둘러 봐야 넘어지기 밖에 더 하겠는가. 그는 어깨에 걸쳐진 보따리 끈을 추스른 다음 신중히 걸음을 뗐다. 바로 그때─ 툭. 무언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따리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신고와 히라사키는 고개를 내려 떨어진 것의 정체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아연질색하며 굳어졌다. 「스..스승님.. 이건...」 「목소리를 줄여라.」 왜 하필이면! 신고는 오늘을 마(魔)가 끼인 날이라 확신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발아래 굴러다니는 것이 다름 아닌 오늘 퇴치했던 오니의 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응, 방금 떨어진 거 뭐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이카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신고는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다리로 떨어진 머리를 살짝 가리고 태연한척 능청을 떨었다. 「하하. 별 거 아닙니다. 목적지에 전달해 줄 불상 머리입니다.」 「불상 머리라고?」 「네.」 단언하는 신고. 하지만, 스이카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의 다리에 가려진 불상의 머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인간 보다 배나 뛰어난 시력을 가진 스이카지만, 신고가 워낙 잘 가려놓은 터라 제대로 그 모양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스이카는 짜증난 어투로 말했다. 「야 시발, 안 보이니까 다리 치워.」 대체 어떤 불상이 길래 대가리만 툭 떼어서 전달을 한단 말이냐? 아니면 머리만 있는 불상이라도 되나. 스이카는 저 다리에 가려진 불상의 생김새가 궁금했다. 그러나 신고는 자신의 말을 잘 못 알아 들었는지 다리를 안치우고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스이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귀에 ↗ 박았냐? 치우라는 말 못 들었냐고.」 「그게.. 벼... 별 거 아니라서...」 「별 거 아닌데 왜 안 보여주는 거야?」 「보여 드릴 만 한 게 아니라서..」 자신을 보며 덜덜 떠는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완고했다. 도대체 저 불상 대가리가 뭐 길래 이렇게 까지 안 보여주려는 걸까? 무언가에 대해 감추려 들수록 확인하고 싶어지는 건 인간이나 요괴나 똑같다. 스이카는 저것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말로 할 때 들어라.」 윽박이 아닌 조용한 어조였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당장, 다리를 치우고 내보이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 신고는 더는 얼버무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다리 밑의 머리를 들어올리기로 했다. 허리를 굽혀 머리를 집는다. 그대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스이카가 잘 볼 수 있도록 들어올리는 그 동작은 참으로 굼떴다. 이젠 끝장이야. 머리를 들은 손이 덜덜 떨린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 채 사색이 된 신고에게 예상대로 오니의 질책이 쏟아졌다. 「내가 아는 불상 머리랑 좀 다른 거 같은데?」 좀 다른 정도가 아니지. 「요즘 불상은 저리도 흉흉하게 생겼던가?」 헝클어진 산발에 '나 오니요.'하고 치솟은 뿔. 거 참 못생긴 상판떼기로다. 「이 새끼, 정말 뒤지려고 환장했구나. 어딜 봐도 오니 대가리잖아!」 걸음걸음 산을 울리며 다가온 스이카가 몇 발자국 앞에서 신고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고는 살기위해 좋은 수를 떠올려야 했다. 고개를 돌린 상태로 스이카의 눈과 슬쩍 마주친 그는 몸을 흠칫 떨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길 「이건... 그.. 그거입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 「사실은 이 산에 있던 오니의 머리입니다!」 하고 이실직고를 하는가 싶더니 「제 형님의 머리입니다-!」 이해 못할 소리를 내뱉는 것으로 고개를 떨궈서 끅끅,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게 뭔 소리야? 스이카는 울먹이는 신고를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기도 안 찬다. 불상 머리라고 하다가 오니 머리라 하질 않나 이젠 형님의 머리란다. 스이카는 저 주둥아리에 의해 기상천외하게 변화하는 머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게 왜 니 형님인데?」 어떻게 오니가 인간의 형님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피가 이어지지 않은 의형제 사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에 대한 신고의 대답은 이랬다. 「옛날의 형님은 인간이었습니다.」 흑흑흑, 어딘가 어색한 울음소리를 덧붙이며 「그런데, 어느 날 오니가 되어버린 형님이 저에게 자신의 목을 베어 달라 부탁한 겁니다!」 변명거리로도 쓰지 못 할 무리수를 입에 담는 것이었다. 그런 거짓말 누가 믿겠냐! 히라사키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평소, 스승이 좀 바보 같은 면이 있다고는 생각해 왔었지만 저건 너무했다. 자신에게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궁색한 변명조차 스승에게 맡길 일은 없었을 텐데. 답답함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스승의 그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믿는 인간. 아니, 오니가 있었다. 「그거 참 비극이었겠구나...」 슬픈 눈을 한 오니가 스승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모습에 히라사키는 얼빠진 얼굴로 결론 지었다. 스승은 바보지만, 저 오니는 그 보다 더 한 바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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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다 쓰는 연재물.
이제 부터 이틀, 삼일에 한 회 올릴 수 있도록 해야지.
으휴, 내가 너무 나태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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