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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몹쓸 계략은 야쿠모 부부의 개입으로 그 끝을 고했다. 그 후로 시간은 흘려 연회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절정에 달해갔다. 근데. 이 소외감은 대체.... 그나마 변태 오빠라 부르면서 친근하게 대해주던 히로코는 아이답게 일찌감치 잠을 자러 들어갔고, 마리사는 너무 쌀쌀 맞다. 다른 녀석들이야 볼 것도 없고. 이런 와중에 유일하게 상대해 주는건 그 이부키 스이카라는 오니뿐이다. 처음 보는. 그것도 꼴사나운 모습을 잔득 보였는데도 허심 없이 대해주는 걸 보니 아,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저 분 꼭 만나 봐야지. 반드시. 그렇게 술에 못 이겨 골아 떨어지는 인간과 요괴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날 즈음. 여성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붉은 롱 헤어에 작은 날개가 양 옆으로 돋아나 있고, 비서 같은 차림의.. 그러니까 불러지는 명칭과는 다르게 쭉쭉빵빵한 소악마. 원래 세계에서는 내 속을 아주 뒤집어놓았던 그 빌어먹을 ㅁㅁ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빛나는 소악마의 눈빛은 매우 고혹적이라 나도 모르게 꿀꺽하는 침 넘김 소리가 새어나온다. 뭐냐. 혹시 날 유혹이라도 하는 건가? 「저기, 같이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예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이거 어떻게 대해야 하나. 무시하긴 좀 그렇고, 상대하자니 내키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소악마는 싱긋이 웃으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순간, 소악마의 팔이 내 팔에 닿는다. 나는 움찔하고 몸을 떨고 약간 놀란 기색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제가 옆에 앉는 게 싫으신가요?」 「아..아뇨.」 소악마가 혹시 실례인가 하고 묻자, 그만 반사적으로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저렇게 까지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싫다고 내 쫒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거기다 내가 좀 쓸쓸한 것도 한몫했다. 왜냐면 지금 완전 아싸거든 흐허허헣.. 머쓱해하는 나에게로 소악마의 시선이 쏟아진다. 저 눈, 내게 관심 있어 하는 눈이다. 이럴 때 무슨 얘기를 해야 한담? 아. 왠지 있기 힘들다. 그 상태로 미지근한 시간이 흘렸고, 그동안 나와 소악마 사이에는 어떠한 대화도 없었다. 그저 과묵하게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어색한 공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소악마였다. 「환상향에서 저 이외의 악마를 본 건 처음이에요.」 「아. 그러세요?」 「네.」 나는 앞만 바라본 채 소악마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소악마는 '후후'웃으면서 이어 말했다. 「얘기 들었어요. 다른 차원에서 오셨다면서요?」 「뭐. 그렇죠.」 「재난이었겠네요.」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그 이후로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묻는 말에 대충 답하는 나와 진부한 질문만 하는 소악마. 이래서야 대화가 길게 이어질 리 없었다. 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상하잖은가. 저 소악마가 저렇게 다소곳이 앉아있는 게. 내 기억 속의 소악마는 이런 분위기를 절대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나를 놀려먹을 구실을 만들어내서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시선을 던지며 조롱할 게 분명하니까. 그러니까 지금의 저 소악마는 내가 알던 소악마와는 상당히 틀리다는 거다. 다른 세계의 환상향이라 그런가? 그러고 보니, 마리사도 그렇고 유카리의 성격도 미묘하게 틀렸던 것 같다. 잘 모르겠군. 단순한 가설이니 확실치 않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그런 나를 보며 소악마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몰히 하세요?」하고 물어온다. 고개를 돌리고 쳐다본 그녀의 얼굴은 달빛이라도 흡수했는지,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 얼굴을 무심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은 그 미색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정도로 아름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실은 썩어빠진 ㅁㅁ이라는 사실 조차 사소한 것으로 치부 할 만큼 홀려버렸다. 그녀는 서큐버스인가. 그래서 내가 이렇게 까지 동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만으로는 내가 홀려버릴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래. 그녀는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도 예쁜 것이다. 서큐버스는 커녕 결코, 악마라면 가지기 힘든 순수한 마음. 이 세계의 소악마는 악마의 모습을 한 성녀였다. ... 말도 안 돼. 내가 한 생각이지만, 성녀라니! 미치겠군.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지는 걸 느끼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기, 괜찮으세요?」 소악마가 걱정 되서 묻는다. 나는 「별거 아네요.」하고 얼버무린 뒤 고개를 쳐들어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둠속에 빛나는 별빛들을 하나하나 세어본다. 그래.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고... 「혹시, 제가 불편 하신 건?」 「아뇨.」 역시, 이 소악마는 예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지금 내 얼굴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 이성을 대할 때처럼 붉어져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내 자신의 한심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입에서 풋내 나는 소년의 고백과도 같은 말이 나왔다. 「그 쪽이 예뻐서.. 좀 쑥스럽네요.」 막상 내뱉고 나니 쪽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이게 뭐야. 나 정말 바보 아냐? 나이가 몇인데!! 그러나 소악마는 그 동정냄새 풀풀 나는 말에 맞장구라도 쳐주듯 '후훗'하고 상냥하게 웃어주었다. 마치, 자신을 사모하는 제자를 보는 여선생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의 얼굴에 안경이라도 씌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지금의 소악마는 내 이상형에 한 없이 가까웠다. 나는 이대로 원래 세계에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이쪽 환상향에 남고 싶어졌다. 눈앞의 이상형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소악마는 서로 시시한 대화를 나누며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왔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건지는 모른다. 눈을 떠보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개판이 되어있는 집 마당. 인간과 요괴와 선인들이 서로 뒤엉켜 술에 떡이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제 밤. 이 세계의 소악마가 나의 이상형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유카리에게 이쪽 세계에 남겠다고 말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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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가 마지막.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