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단풍으로 색색이 물든 숲에도, 금빛으로 물든 논밭에도 웃음이 가득한 계절.
가을의 정취에 행복하게 젖어든 사람들을 멀리서 뿌듯하게 바라보는 두 신이 있습니다 -
붉은 옷을 입고 황금빛 머리를 휘날리는, 마치 그 자체로 가을을 연상시키는 모습의.
한 명은, 떨어진 낙엽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그를 보며 웃음짓는 부모들이 있는 숲을 바라봅니다.
다른 한 명은, 농부들이 온갖 작물을 후두두 거두어들이는 논밭을 바라봅니다.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사람들을 둘러보던 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떠올랐던 걸까, 씨익 웃고선 다시 사람들 쪽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아마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거겠죠.
조금은 유치하고 부끄럽지만, 정말로 소중한 추억이.
몇십 년이나 전이었을까요,
아마 지금 숲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할아버지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두 명의 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단풍의 신, 다른 하나는 풍요의 신.
그들은 셀 수도 없이 오랜 기간, 자신들이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가을마다 단풍을 물들이고 논밭을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가을이 돌아올 때마다 두 신을 생각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돌연히 두 신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람들은 우리 둘 모두를 사랑할까?'
너무나 우연하게 떠오른 이 생각은, 두 신의 사이를 갈라 놓게 되었습니다.
'과연 사람들은 누굴 더 사랑하는 걸까?'
시간이 흘러 그녀들의 일상은 가을이 오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투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그것은 무척 막연한 다툼이었기에, 두 신은 별다른 결론을 내지도 못한 채 서로 으르렁거릴 뿐인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투는 와중에도 신으로서 해야 할 일은 잊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함없이 그녀들을 사랑했습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변함없이 보내져 온 사람들의 사랑은 더 이상 두 신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
비록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지만,
두 신은 이미 서로보다 더 많은 사랑을 쟁취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버렸으니까요.
그렇게 오랫동안 다투기만 하던 두 신은, 어느 날 한 가지 방안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것은,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는 것, 즉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니,
누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인간들에게 더 많은 걸 베풀 수 있는가 내기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끝없는 다툼에서 벗어나 우열을 가릴 수 있게 된 것 같았습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할까?' '누가 먼저 실력을 뽐내볼까?' '몇 번이나 내기를 해 볼까?"
한껏 기대에 부푼 두 신이 이것저것 정해나가느라 계절이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천천히 가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첫 해는 단풍의 신의 차례였습니다.
그녀는 바쁘게 뛰어다니며 온 산을 더 붉게, 더 노랗게, 더 화려하게 물들였습니다.
노을이 통째로 내려앉은듯한 빛으로 물든 산과 숲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가사를 돌보고 밭일을 해야 할 이들마저 단풍을 즐기러 산으로 들로 향했습니다.
밭에선 농부도, 소도 아닌, 풍요의 신만이 남아 평소와 같이 묵묵히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 해 가을, 산과 들은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일손이 부족해진 밭은 황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부족한 식량이야, 내년에 더 열심히 일하면 되니까요.
단풍의 신은 아름답게 물든 나무 아래서 어깨를 으쓱r거리며 풍요의 신을 쳐다보았습니다.
풍요의 신은, 메말라버린 밭에 홀로 서서 몸을 떨며 단풍의 신을 노려봤습니다.
이듬해 가을은 풍요의 신의 차례였습니다.
작년에 이미 충분히 단풍놀이를 즐긴 사람들로부터, 금년의 단풍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맘때면 밖에서 뛰놀았을 아이들마저 밭에 나가 어른들을 도왔습니다.
평소보다 힘을 쓴 풍요의 신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덕에, 기름진 땅에서 작물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여느때처럼 온세상은 단풍으로 물들었지만, 색을 입힌 신만이 단풍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추수철. 논밭은 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그 외의 온갖 채소를 거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단풍놀이는 못 해서 아쉬울망정, 곧 겨울에 필 눈꽃을 즐기며 배불리 지낼 생각에 그저 기뻐했습니다.
풍요의 신은 잘 익은 과일들을 담은 소쿠리를 의기양양하게 든 채 단풍의 신을 쳐다보았습니다.
단풍의 신은, 쓸쓸히 떨어져 말라가는 낙엽 더미를 보며.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년간 같은 내기는 계속되었지만, 사람들은 어쨌든 즐거운 모양이었습니다.
오히려 능력만 더 사용한 탓인지, 해가 갈수록 신들만 점점 피곤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신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또 어떤 가을이 될지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다시 한 번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내기의 방법을 바꾸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한 해씩 돌아가며 힘을 쓰는 게 아닌, 동시에 최대한의 힘을 발휘하는 것.
그 방법이라면 누가 더 사랑받는가를 똑똑히 확인해 볼 수 있었을 테지요.
때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두 신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내기에 사뭇 긴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몇 해를 되풀이하더라도, 이번에야말로 내기를 끝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 신들은 열심히 힘을 모았습니다.
다시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신은 지금까지보다 더 멋진 단풍을, 더 기름진 논밭을 보여주기 위해 모아둔 힘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에 응답하듯, 온 세상이 가을의 빛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정작 신들에게 중요했던 내기의 결과는 시원찮았습니다.
단풍과 경작, 어느 한 쪽도 포기하기 아쉬웠던 사람들이 낮에는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가족들과 단풍을 즐겼으니까요.
이다지도 멋진 가을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사람들은 두 신에게 사랑을 표했지만,
이미 본래의 목적도 잊어버린 채 경쟁하는 데에만 빠져버린 두 신들에게 닿지는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결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로도 같은 내기는 반복되었습니다.
그를 위해 나무들은 평소보다 오랫동안 밤낮도 없이 잎을 달고 있어야 했고,
논밭은 더더욱 많은 작물을 길러내기 위해 더 많은 양분을 소비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지만, 자연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힘을 과다하게 사용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두 신이 어김없이 내기에 임하려는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상한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풍의 신이 잎에 색을 들이기가 무섭게 잎이 말라 떨어지고,
풍요의 신이 아무리 힘을 써도 작물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거듭되는 내기에 가장 많은 부담을 짊어졌야만 했던 자연이 지쳐 버렸던 것입니다.
그 해 내기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두 신이 여태껏 열심히 색을 입혀왔던 가을은, 서로에의 질투로 빛이 바래버렸습니다.
두 신이 여태껏 받아오던 사람들의 사랑은, 황량한 가을에 대한 분노로 변해 날아왔습니다.
두 신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린이들이 뛰놀며 노래할 뿐이었습니다.
"이번 가을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신님들, 예쁜 가을을 돌려주세요~
노을에 빠져버린 산과, 금을 뒤집어쓴 들과, 어른들의 미소를~"
그제서야 두 신은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이 되풀이 해왔던 어리석음을,
그리고 자신들이 받아오던 사랑의 가치를.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실려오는 사람들의 활기 덕분일까, 두 신은 지치지도 않고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 때, 단풍든 산에서 놀다 지친 아이들이 엄마 곁에서 온갖 간식을 베어물고 깔깔거리는 모습에,
모자를 벗은 채 불어오는 바람과 가을빛을 즐기던 신의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밭에서는 사람들이 기지개를 펴며 단풍에 물든 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다가 다시금 허리를 숙입니다.
단풍잎 치마를 펄럭이며 밭을 쳐다보던 신도, 한 순간 뿌듯한 미소를 띄웁니다.
아마, 앞으로도 환상향의 가을은 행복이 넘칠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을을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과,
그들의 사랑에 감사하는 신들의 미소로 말이죠.
======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전 이런 글밖엔 못 쓰겠습니다..
권선징악을 권장하는, 꼭 옛날 얘기같은 글 말이죠.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