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절이라고도 불리는 묘렌사는 오늘도 평화로웠다. 그녀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홍백의 무녀, 하쿠레이 레이무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소나기보다 더 갑작스럽게 날아온 그녀는 다짜고짜 묘렌사의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의 이름을 고래고래 외쳤다. 당연하지만 자리를 비운 히지리 뱌쿠렌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고, 묘렌사에서 지내고 있던 요괴들은 난데없는 고함에 하쿠레이의 무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묘렌사의 지붕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던 호쥬 누에였다. 레이무가 갑자기 소리친 덕분에 그녀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워났다. 누에는 그녀가 뱌쿠렌을 찾는다는 것을 깨닫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어주고는 다시 자려고 했지만 레이무는 소리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잠을 잘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누에는 지붕에서 내려왔다.
"이봐, 무녀. 히지리는 없어. 그러니 좀……."
"없다고?"
레이무에 의해 말을 끊긴 누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 같아서는 '닥치고 꺼져!'라고 하고 싶었지만 묘렌사에 머물던 요괴들이 하나둘 나오는지 인기척이 들려오고 시작했고, 하물며 상대는 하쿠레이의 무녀다. 그렇게 했다간 아무리 대요괴인 자신이라도 미래를 보장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누에는 할 수 없이 레이무를 말로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없어. 그러니……."
"그거 진짜야?"
"……."
다시 말이 끊긴 누에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그녀는 언젠가 히지리한테 배운대로 소수를 세며 마음 속의 번뇌를 잠재웠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입을 열면 욕지거리가 나올 거 같았다. 누에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두 번째 '참을 인(忍)'를 머릿 속에 새기며 말했다.
"진짜니까 좀……."
"그럼 비켜봐. 한 번 확인해보게."
"……."
빠직. 누에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참을 인'도 벌써 세 번째다. 마지막으로 한 번. 한 번이다. 누에는 마지막 참을성을 보이며 보이려고 했다. 레이무가 그녀의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지 않았다면.
레이무는 더이상 누에한테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다만, 다소 고의적으로 보이게 누에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말그대로 무시당한 누에는 더이상 참아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잠을 깨우고, 말을 끊고, 무시까지한다? 그것도 감히 대요괴라 불렸던 자신한테? 아무리 하쿠레이의 무녀라고 하지만 한낯 인간 따위가?
"이 년이……!"
누에의 몸에서 요기가 들끓어올랐다. 지독히 요괴스러운 요기였다.
"무슨 일인가요, 누에!"
그때 누군가 묘렌사 안쪽에서 뛰어나왔다. 한 손에 보탑을 들고 있는 금발의 여성이었다. 주변에 몇몇 요괴들은 이미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끼어들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 여성은 허겁지겁 달려나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발견하고 다급히 누에를 불렀다. 말려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분노할대로 분노한 누에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누에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레이무 앞에 나타났다. 레이무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비켜."
"하, 이젠 명령까지? 오냐오냐 해주니까 인간 따위가 아주 기어오르는……."
"안 비켜?"
"너야말로 꺼지시지?"
"그래. 그렇다면……."
레이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누에는 이 건방진 인간을 어떻게 요리해서 묘렌사의 식구들한테 나눠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솥에 푹 삶을까? 아니면 그냥 산 채로 뜯어먹을까? 누에는 레이무가 어서 자신한테 덤벼오기를 기다렸고, 레이무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다소 그녀의 표정이 기이했다. 그녀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았다.
"일단 맞고보자."
레이무가 말했다.
* * * * *
묘렌사의 이곳저곳에 요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대요괴 호쥬 누에도 그 중 일부였다. 그녀는 끔찍하다는 눈으로 묘렌사 한 가운데서 손을 털고 있는 홍백의 무녀를 쳐다보았다. 저 깡패가 정말 히지리를 찾으러 온 것일까? 그녀가 보기엔 그냥 심심풀이로 묘렌사를 쳐들어온 것 같았다. 혹시 오늘 그 날인가? 만약 그걸 입 밖으로 냈다면 호쥬 누에는 정말 퇴치됬을 지도 모른 일이었다.
레이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절대로 그녀가 한 일에 도취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원하던 것들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이무가 원하던 것들을 답해준 토라마루 쇼는 지친 표정으로 앉아 다음부터 하쿠레이의 무녀를 접대하는 방식을 고려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히지리는 왜 찾으시는 거죠?"
"나중에 그녀한테 물어봐."
쇼는 레이무가 자신과 달리 전혀 정성이 담기지 않은 대답을 하자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그것을 표출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쇼의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었다.
"어머, 레이무 양.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온 선인, 카쿠 세이가는 묘렌사 일원들의 처참한 몰골들을 보고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레이무는 귀찮다는 듯이 대답도 하지 않고 보란 듯이 턱으로 누에를 가리켰다. 카쿠 세이가를 뒤이어 따라내려온 망령, 소가노 토지코는 저주스럽다는 듯이 묘렌사의 일원들을 쳐다봐주고 레이무에게 물었다,
"그 년이 어딨는 지는 찾았나?"
"찾진 못했어. 하지만 찾는 건 도와주겠다고 하더군."
"아, 저기 토지코 씨, 세이가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쇼는 토지코와 세이가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레이무가 어째서 묘렌사의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을 찾는 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이가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이 알송달송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토지코는 고개를 돌려 쇼를 내려다보았다. 쇼를 본 토지코의 눈동자에선 번갯불이 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게 봐도 화가 나있는 게 확실했다. 쇼는 그녀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토지코가 말했다.
"……정말 모르는 건가?"
"예. 당신들이 왜 히지리를 찾는 지도 모르고, 당신이 왜 그렇게까지 분노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으득.
망령이라고 하지만 이를 가는 소리는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대답을 듣기가 힘들 것이라는 걸 깨달은 쇼는 혼자서 고민하기로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나을 거 같기 때문이다. 우선, 어째서 전혀 연관성이라고는 없는 이 삼인방이 왜 묘렌사의 주지승, 히지리 뱌쿠렌를 찾고 있는가? 그건 바로 현재 히지리가 묘렌사에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히지리는 시주를 하러간다며 자리를 비우더니 가끔식 묘렌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꽤 오래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하지만 묘렌사의 일원들은 그 누구도 히지리를 의심하거나 미행하는 일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히지리 뱌쿠렌은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구원자였기 때문이다. 쇼는 답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군. 명확한 답은 아니지만 의문은 풀렸다. 하지만 다른 하나의 의문, '소가노 토지코는 왜 분노했는가?'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쇼는 문뜩 얼마 전에 토지코가 그녀의 동료 모노노베노 후토와 함께 묘렌사를 찾아온 것을 떠올렸다. 그때 토지코와 후토는…… 성덕태자 토요사토미미노 미코를 찾고 있었다. 그로 인해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쇼는 굳이 그 결론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생각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신 쇼는 입을 열었다.
"나즈린이 깨어나는 대로 바로 찾아드리겠습니다."
"레이무 양……?"
"아, 다음부턴 조심하도록 할게."
레이무는 어깨를 으쓱였다. 쇼는 잠자코 그런 그녀를 보더니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 걸 입장이 아닐텐데?"
"그래도 한 번 들어봐주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우선 들어는 봐줄게."
레이무는 인심썼다는 듯이 말하자 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첫째, 저희는 히지리를 찾는 대로 바로 돌아갈 겁니다."
"좋은 선택이야. 다른 조건은?"
"둘째, 히지리를 살려주셨으면 합니다."
쇼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쇼는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레이무, 그리고 토지코의 생각을 떠보는 것이었다. 여기서 만약 이 말을 가볍게 받아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만약 그건 힘들겠다는 투로 받아치면 좀 심각한 일이지만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쇼는 레이무와 토지코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진지하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지리. 당신은 도대체 토요사토미미노 미코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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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짜르게 됬네요. 어떻게든 다음화엔 완결내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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