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향의 명절은 음력을 따른다.
달이 열 두번째로 보름달이 되는 날도 지난, 새해가 되었다.
카구야와 모코우는 아무래도 좋았다.
한 살 더먹는 것 따위. 이미 영원을 살고 있는 그들에게, 필멸자인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의미에 그들이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에이린은 그들이 함께 외출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어딘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않았다. 아마도 같이 이 들뜬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던 것같다. 영원정도 새해맞이에 들뜬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아무리 인도어파 공주님이라도 붕 떠버리는건 당연한 일이겠지.
"모코우랑 같이 나갈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잘못들은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드는 건 역시 그 둘의 관계때문일 것이다.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입 아프다. 그저 순수한 증오와 어린아이의 동정같은 감정이 얽힌 둘의 관계는, 이미 300년이나 길게 이어져 내려왔다.
이미 인간들은 그 시간에 열번이라도 세대가 교체되었겠지만, 그 둘의 태도는 한결같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도 싸운 사이인데 그렇게 갑자기 사이가 좋이지거나 할수있는건가?"
"둘만의 전통이야. 항상 축제가 벌어지면 그 둘이 같이 어딘가로 놀러 가버리거든."
"...크리스마스 휴전같은건가."
"음? 그게 무슨 말이지?"
"아니. 바깥세계의 일이야. 신경쓸만한 일은 아닐거야."
둘만의 전통이라니. 그런 관계도 전통 하나 세우면 커맨드입력이라도 한것처럼 태도가 바뀌어버리는구나. 서로 죽이고 죽이는 카구야와 모코우가. 일년에 단 한번 이렇게.
"신기하네. 언제부터 그런 일이 있었던거지?"
"공주님의 과거에 관해선 말을 않겠어."
에이린은 이번에도 확고했다. 아무래도 절대 가르쳐주고 싶지않은 비밀이라도 있는 것같다.
"뭐. 이번에도 내 스스로 찾아보면 되겠지."
"알아서해."
에이린은 테위를 불러 어딘가로 사라졌다. 영원정의 새해맞이는 저 둘이 통솔해서 준비될것이다. 그리고 에이린이 사라진 복도에서, 레이센이 걸어나온다.
"아. 축제에 가실 준비를 하셨나요?"
"그래. 나도 카구야와 같이 가고 싶었는데. 거짓말같이 선약이 있었더라고."
"후후 바람을 맞으신거네요."
"별로 그런 기분은 아니야."
레이센은 블레이져같은 제복이 아닌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스스로 맘에 드는지 이런 저런 몸짓을 해보며 자신을 확인해 보는 것같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붉히면서, 그런 말을 했다.
"혹시 같이 미혹의 죽림을 나가지 않으실래요?"
"좋아. 난 역시 길치에다가 하늘도 제대로 날수없으니까 마침 도움이 필요했어."
축제는 해가 지는 시각부터 시작된다. 겨울밤은 이르다. 저녁을 먹을 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그 시각이 오기전에 밤이 올것이다.
"곧 해가 질테니.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 떠나요."
레이센은 앞장서서 소매를 잡고 이끌었다. 이번해에서 보는 영원정의 마지막 모습은, 분주함으로만 기억되겠지.
"레이센. 너는 카구야와 모코우의 관계를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지?"
"꽤 되었을거에요. 하지만 제가 여기로 오기전부터 그 싸움은 있었다고했고. 새해에 둘이서 같이 외출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처음엔 기분이 이상했던것 같네요."
"그런건가. 기원은 아무도 알려주지않겠네."
남은 후보는 에이린과 테위지만. 에이린은 먼저 거절했고, 테위도 어쩐지 순순히 가르쳐줄것같지가 않다.
"저도 궁금하긴 해요. 저런 사이인데도 왜 이런 날 함께 축제를 즐기려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게 보통일텐데."
"정상적으로도 보이고 말야. 하필이면 원수지간에 축제를 즐기겠다니."
그 이유를 모르는 것도 마음에 들지않는다.
"레이센."
걸음이 멈춘다ㅡ. 죽림은 아직 끝없이 이어지고 있고. 해도 지고 있다.
"네?"
레이센는 의아한듯 구겨진 토끼귀가 쫑긋 움직였다.
"미행해볼까."
"...공주님이 화내실지도?"
묘하게 싸늘한 반응이다.
"너도 궁금한건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도와줘. 네 능력이 필요해."
갑자기 레이센이 화들짝 놀란다.
"제..제가 필요해요? 우와와아아."
"그 파동을 이용하는 능력으로 모습을 숨기고, 둘이 뭘하는지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을거야."
어디까지나 가정일뿐이다. 만약 저 전통이 300년짜리라면, 이미 그 둘은 모든걸 자연스럽게 여기고 일상처럼 대화할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서를 기대하는 마음를 져버려선 안되겠지. 궁금함을 넘어서 꼭 알아야할 비밀이 되어버린것같다. 어떻게 저런 크리스마스 휴전같은 일이 가능했는지. 어떻게 저런 평화로운 일상을 원수지간에 가질수 있는건지. 무엇보다 그 일상이 어느 누구나 가지는 일상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꺼림찍하다. 그 둘의 관계를 안다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것이다.
"알겠어요."
"그래. 가자ㅡ."
다시 걸음을 옮긴다.
기묘하게 시작된,
환상향에서의 첫축제가 그렇게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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