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옛날 이야기 좀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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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는 성장이 이미 끝나 인구가 점점 줄어가는 황혼기에 접어든 마을이었다. 한 때 번화했던 중심가는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 들고 있고, 문을 닫는 가게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내가 살던 무렵까진 주택가에 사는 사람도 많았고, 아이들도 많았으며, 사람이 부족해 폐교하는 학교는 없었다.
그 마을 주택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인적이 드문 공터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자주 노는 놀이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적 드문 곳에서 아이들이 놀다니 범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기겁할 상황이지만, 당시엔 인심도 지금보다 좋았고,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 공터 옆에는 1.5m정도는 되어 보이는 붉은 색 벽돌담으로 둘러 쌓인 2층짜리 양옥집이 한 채 있었다.
우리들은 그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고, 가끔 오는 택배원을 제외하면 사람이 출입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오고, 마녀가 산다느니, 미친 여자가 산다느니, 담력 시험하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모조리 죽었다느니 하는 이상한 소문만이 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지만,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무렵인지라 우리는 그 중에서 뭐가 진실인지를 놓고 친구들과 얘기하며 상상했다. 우리들은 그 집을 “마녀의 집”이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그 집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면서도 꺼려했다. 가끔 야구를 하다가 공이 그 집 담장으로 넘어가도, 우리는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공터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있었다. 상황은 9회 말 2아웃 만루상황. 우리 팀은 4점 차이로 지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타석에 올라간 타자는 나였다. 내가 홈런을 쳐야만 이긴다. 그 긴장감과 부담감 속에서 나는 크게 배트를 휘둘렀고, 공은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저 멀리 어디까지든 날아갈 듯한 기세로 날았다. 외야수의 머리를 넘어 기세 좋게 날아간 공은 붉은 벽돌담을 넘어 그 “마녀의 집”의 유리창을 깨버렸다.
나에게 화를 내는 친구도 있었고, 나를 두둔해주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의 마음 속에선 책임감이 피어 올랐다. 결자해지라고 내가 벌인 일이니깐 내가 수습해야 한다. 또 유리창을 깼으면 사과를 하는 게 도리다.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으면서 그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고, 나는 내 안의 공포심과 책임감을 저울질했다. 그리고 저울은 책임감 쪽으로 기울었다. 평소에 그 집에 대해 갖고 있던 호기심이란 저울추가 올라갔기 때문었이다.
여름의 해는 길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었음에도 아직도 해가 지지 않았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붉은 벽돌담 아래에 섰다. 그 무렵 나는 작았기 때문에 1.5m밖에 안 되는 벽돌담이 무지하게 커 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를 가로막고 있던 벽돌담이 잊고 있던 공포심을 다시 깨웠다. 그러나 아직까진 호기심과 책임감이 위였기 때문에, 나는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인터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녀란 생각에 잠깐 위축되었으나 이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낮에 야구를 하다 유리창을 깬 건 바로 접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러 왔습니다.
“일단 들어오렴.”
짧은 기계음과 함께 현관이 열렸다.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불안함에 몸을 떨면서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를 맞아 준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빨간 여자였다. 앞머리는 그대로 놔두고 뒷머리만을 묶은 여성은 흰 와이셔츠 위에 빨간 조끼를 입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붉은 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여성의 안내를 받으며 거실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복도에 즐비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에 눈길을 빼았겼다. 수정으로 된 해골, 흰색의 초가 꽂혀있는 금으로 된 촛대,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없는 지팡이,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단검 등등. 그리고 도착한 거실 한 복판엔 복잡한 도형과 알 수 없는 언어들이 그려진 마법진이 있는 걸 보자, 나는 정말로 이 여자가 마녀일거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설마 나는 유리창을 깬 대가로 마법의 산제물이 되는 게 아닐까. 이 집에 대해 들었던 불길한 소문이 머리 속에 스멀스멀 생각났다. 그리고 안이한 마음으로 이 곳에 오게 만든 내 호기심을 속으로 저주했다.
나는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마녀인가요?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하!”
자지러진 듯이 웃고 있는 이 여자를 보며 나는 말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상황을 봐서 도망칠 생각도 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내 웃음을 멈춘 여자는 슬픈지 화내는지 모를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난 마녀가 되는 데 실패했단다.”
내가 영문을 모르고 겁에 질려 떨고 있자, 여자는 나를 안심시킬 생각인지 거실 테이블에 앉히고, 잠깐 기다리라 말했다. 잠시 후 딸기 향이 나는 차와 빨간 딸기가 얹힌 쇼트케이크가 내 앞에 놓였다. 당시 나는 철없는 어린 애였고, 눈 앞에 놓인 맛있는 간식에 이내 긴장이 풀렸다.
“겁내지 마렴. 난 마녀 같은 게 아니니깐. 꼬마 아가씬 마법을 믿니?”
나는 한창 케이크를 먹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 옛날 얘기 좀 들어 볼래?”
옛날 옛날, 그렇게 먼 옛날은 아닌 몇 년 전에, 학회엔 천재로 추앙 받은 물리학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교수 자리에 오르고, 뛰어난 논문과 연구 성과를 내보여서 학회에서 일약 반짝이는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녀의 천재성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한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마법이었습니다. 지금은 동화나 소설 속에서만 나오는 얘기입니다만, 그녀는 그 마법의 가능성을 현실에서 엿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발견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발견을 학회에 발표하기로 합니다. 그녀는 발표 직전까지, 자신의 발견이 과학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주장이 허무맹랑하다고 야유하며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아직 자료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한 그녀는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준 조교수와 함께 몇 년간의 노력 끝에, 마법으로 가득찬 환상향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번에야 말로 자신의 발견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마법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가능했던 거라곤 단순한 모방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녀는 간신히 모은 자료를 다시 학회에 발표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손가락질 했고, 결국 그녀는 학회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믿어준 조교수와 함께 계속 마법을 증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도 진전은 없었고, 자신의 가능성 없는 아집이 유능하고 미래가 밝은 조교수의 앞길을 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몰려왔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였던 조교수를 해고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멀리 이사해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라서 미안하구나.”
이야기를 끝마친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어린 나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두뇌는 명석했다. 이야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렇구나, 이야기 속 물리학 교수는…
“믿을지 안 믿을진 모르겠지만, 세상엔 아직도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단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인 환상향은 실존한단다. 꼬마 아가씨는 믿니?”
“저는 믿어요!”
“그러니? 정말이라면 생각을 말해줬으면 하는구나.”
다른 사람들이라면 코웃음 쳤을 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마음 한 구석에 집히는 게 있다. 마침 길고 긴 여름 해가 떨어지고 날이 어두워져 달과 별이 떴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20시 17분 19초. 제 눈은 별을 보면 시간이, 달을 보면 장소가 보여요.”
그녀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전자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딴 사람처럼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멋진 눈이구나! 정말 멋져!”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기쁜지 슬픈지 모를 웃음을 지었다.
“나는 불가능했지만, 꼬마 아가씨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어른이 되어도 잊지마렴, 환상향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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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공인 영능력자 서클 비봉구락부의 첫 활동 개시일이다. 우리의 목표는 어딘가에 있을 환상향을 찾는 것! 나는 방을 나서기 전에 잊은 물건이 없는지 체크했다. 수첩, 지도, 사진, 또 음…좋아 잊은 물건은 없는 것 같군! 나는 마지막으로 모자를 쓰고 방을 나섰다. 빨리 가자, 내 파트너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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