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짙은 풀냄새와 녹음이 시끄러운 계절이 오면 제 친구인 치르노는 언제나 들떠요. 몸에서 냉기를 발산하는 빙정이면서 이 더위에 뭐가 좋다고 들 뜨냐 하면, 크고 작은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엄청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개굴개굴개굴. 나는 이 미끈미끈한 생물체가 시끄럽기만 하고, 싫기만 한데 치르노는 그런 생물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해요. 그것도 아주 악질적으로요. 뭐가 악질적이냐고요? 자신의 힘으로 얼리면서 놀아요. 그러고 나선 얼린 개구리가 녹았을 때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니까요? 그렇게 해서 되살아난 개구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다 대부분 녹기 전에 산산조각 나는걸요. 산산조각이 난 얼음이 녹았을 땐 정말로 끔찍해요. 그래서 제가 몇 번이나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데도 그만두지 않아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최근 요괴의 산에 이주를 해온 신님이 개구리를 좋아하는데, 개구리를 얼리면서 괴롭히는 제 친구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본답니다. 그러다 결국, 혼나기를 수십 번. 그러면 그만 둘 때도 됐는데…. 후우-. 치르노는 오늘도 어디선가 개구리를 얼리고 있겠죠. 치르노는 언제나 몹쓸 장난만 치는 친구지만, 그래도 소중한 제 친구에요. 소중한 친구니까. 언제까지나 함께이고 싶어요. * 오늘은 또 어디에서 개구리를 얼리고 노는 걸까? 녹발에 네 쌍의 날개. 장난만 치는 요정들 중에서도 모범적이란 소리를 듣는 착실한 대요정은 요정들 중에서도 특히나 말썽꾸러기 소리를 듣는 치르노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의 역활은 친구인 치르노가 더이상 못된 장난을 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역이지만, 친구인 치르노가 그녀의 주의를 들을 리 없고, 잔소리 듣기 싫어 언제나 그녀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장난을 친다. 그런 치르노를 매번 찾아다니는 데에 이골이 난 대요정은 오늘 따라 치르노의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을 피해 다닌다 해도 바보인 치르노가 있는 곳은 항상 정해져 있을 텐데.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 대요정은 적당한 장소에 기웃거리다 어느 한 계곡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침울하게 두 다리를 감싸고 앉아 있는데, 익숙한 무언가가 계곡물을 따라 떠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치르노!?」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치르노가 뒷머리와 등을 제외한 부분이 전부 잠겨진 채 떠내려 오는 중이었다. 깜짝 놀란 대요정은 얼른 치르노를 계곡물로 부터 건져 올렸다. 낑낑. 대요정 본인은 힘이 약하고, 치르노는 보기보다 무게가 나가는 편이라 물가로 건져 올리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허억허억. 거친 숨을 몰아쉰 대요정은 정신을 잃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치르고의 얼굴을 걱정의 눈으로 내려다봤다. 혹시, 죽은건? 아니. 그럴리가 없어. 자연의 권화인 요정에겐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저건 단지 정신을 잃고 있을 뿐이야. 대요정은 그렇게 결론 짖고는 치르노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그대로 앞뒤로 흔들어 댔다. 「정신차려, 치르노!」 그러나 쉽사리 눈을 뜨지 않는 치르노. 초조해진 대요정이 격렬하게 흔들어대자. 「으응‥ 다이‥쨩?」 간신히 눈을 뜨을 떠 자신을 깨운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다. 「다행이야….」 치르노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대요정은 안도한 얼굴로 두 눈에 맑고 투명한 물방울을 머금었다. 치르노가 무슨 일이냐는 듯이 물었다. 「다이쨩. 왜 그래? 슬픈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아니야. 아무것도.」 급하게 얼버무린 대요정은 눈물이 흘려 내릴 새라 손등으로 눈을 비벼댔다. 그런 대요정을 치르노가 의아하다는 눈으로 응시하다 눈가를 찌푸리며 「에… 다이쨩. 울었어?」 의문문으로 묻다가 이내 「아하하! 다이쨩 울보네-!」 하고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대요정은 치르노의 장난스런 반응에 괜히 걱정했다가 손해 봤다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 때문에 운 건데. 칫-. 친구의 조롱 섞인 웃음에 대요정은 양 볼을 잔뜩 부풀린 채 고개를 훽 돌린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었는데. 그런것도 모르고… 치르노는 바보야!」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게 몹시도 귀여워 보였는지. 치르노는 베시시 웃으며 단숨에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다이쨩은 화난 얼굴이 무지 귀여워!」 「무‥무‥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요정은 화들짝 놀라면서 정색해 보지만, 오히려 치르노의 장난을 부추기는 결과만 가져오고야 만다. 치르노는 입가를 크게 찢고는 으흠. 기침을 한 뒤, 큰소리로 외쳤다. 「다이쨩은 귀여워─!」 「그만해. 치르노!」 「에헤헤. 다이쨩 정말 귀여워─!!」 「그‥그만 하래도!!」 계속되는 장난질에 대요정은 더는 참지 못하고 진심으로 화를 냈다. 제 아무리 바보인 치르노라도 진심으로 화난 대요정을 상대로 장난질을 계속 하진 않는다. 머쓱한 웃음으로 「미안.」짧게 사과를 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 대요정. 심술난 얼굴로 입술을 샐쭉 내밀고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렸다. 「한 번 더 사과하면 용서해 줄지도.」 「그래? 그럼.」 활짝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미안.」하는 치르노. 그 얼굴이 어찌나 천사같이 사랑스럽던지. 대요정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넋을 놔버리고 말았다. 「으응‥ 그럼 용서해 줄께.」 화끈거리는 얼굴로 치르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대요정은 얼굴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도 더웠었나? 그나마 시원한 계곡이라 더위가 덜할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의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져 가자, 그 탓을 날씨에게 돌리는 대요정에게 치르노가 순간, 그녀의 손을 덥썩 하고 잡았다. 「꺅-!」 소스라치게 놀라는 대요정을 보며 치르노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그렇게 놀라는거야?」 「아니. 갑자기 손을 잡으니까 차가워서.」 심장이 두근두근 달음박질하는 대요정은 대충 얼버무린 뒤,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근데, 치르노는 어째서 계곡물에 떠내려 왔던 거야?」 대요정은 질문을 하면서도 이 얘기를 참 빨리도 꺼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순간에 물어 봤더라면, 창피한 꼴은 보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도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질문을 마치고, 가만히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치르노가 그 이유를 떠올리기 쉽지 않은지 고개를 들고는 끙끙 대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 거려보다가 그래도 떠오르지 않는지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치르노. 억지로 떠올리려 하지 않아도 돼.」 「아냐. 다이쨩. 이건 반드시 떠올려야 할 것 같아. 그런 기분이 들어.」 방금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무엇 하나 생각나는 건 없지만,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기분이 드는 치르노였다. 마치 머릿속이 그 기억만큼은 떠올리지 못하게끔 자물쇠로 꽁꽁 잠겨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포기 할 수 없었다. 치르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고 안간힘을 썼다. 「이젠, 그만해!」 친구의 걱정 어린 경고가 들려왔지만, 그만 둘 수 없었다. 이대로 묻어두기엔 너무나도 무서운 기억이니까. 무엇하나 떠올린 건 없는데도 어째서 무서운 기억이란 걸 아느냐면 치르노 스스로도 잘 몰랐다. 모르지만, 본능처럼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떠올리려 한 것이었다. 「치르노. 그만─!」 울음 섞인 절규가 들려왔다. 그 순간. 꽁꽁 잠겨있던 치르노 머릿속의 자물쇠가 한 꺼풀 풀어진다. 치르노에게 둔탁한 둔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가해졌다. 「아‥아아…!」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치르노는 너무나 아파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드디어 누락되었던 기억이 단편적으로 나마 떠오른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다이쨩… 나‥ 그 개구리에게 저주 받아 버렸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신히 떠올려낸 치르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무서운 얘기였다. 「개구리 신이 말했어. 개구리의 원념이 저주의 형태로 내게 돌아왔다고….」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대요정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치르노는 거짓말이 서툰 친구니까. 하지만…. 「요정이 저주에 걸리다니, 그런 얘기 들어 본적 없어.」 요정은 생명체이기 전에 자연의 권화이기에 일반적인 생물들과는 다르다. 질병에 걸리지 않으며, 죽음의 개념마저 없다. 하물며, 저주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저주에 걸렸다니. 대체 개구리들의 원념이 얼마나 컸 길래? 「안되겠어, 치르노. 넌 여기서 기다려. 내가 그 개구리 신에게 따져보고 올거야!」 대요정은 신이 개입한 일이라 단정지었다. 평소에도 치르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던 신이었기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찾아가 봐도 소용없어.」 「어째서?」 「개구리 신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 했어.」 「그 말을 믿는 거야?」 그 신님에게 직접 따져볼 요량이었던 대요정은 치르노의 말림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신이라는 작자가 단순히 자신을 골려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는 일인데. 치르노는 어째서 저기까지 순진한 걸까? 그래도 그 순진함마저도 대요정에게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치르노는 한치의 거짓도 없이 자신이 한 얘기 전부가 진실이라는 듯 결연한 얼굴로 대요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요정은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 계곡물에 떠내려 온 것은 무슨 이유야?」 「잘은 모르겠지만, 목이 마르더라고. 그리고‥ 몸이 말라와서.」 「몸이 마르다니?」 「응. 몸이…….」 대답을 하다말고 갑자기 자기 몸을 감싸 앉는 치르노.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묘하게 건조해보였다. 갑작스런 용태 변화에 걱정이 된 대요정이 「왜 그래?」하고 물어보았지만,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계곡물 쪽으로 달려가더니. 풍덩. 다이빙 입수를 하는 치르노였다. 부글부글. 물속에 머리끝까지 잠긴 치르노는 공기 방울을 몇 개 내뱉더니 푸하-.하고 머리를 쑥 내밀었다. 「살았다.」 마치, 구사일생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대요정이 당최 이해할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입을 열고 말한다. 「아까도 이런식으로 물에 뛰어들었었어!」 치르노는 몸을 적시는 계곡물이 기분 좋은지 샹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었어.」 그렇게 말하고는 얼굴에 그늘이 끼기 시작했다. 「나, 이제 물 없인 안되는 몸이 된 걸까?」 「그럴리 없잖아. 이건 전부 그 신님의 장난인게 틀림없어!」 「누가 내 장난이라는 거야?」 비관하는 치르노에게 모든 게 신님 잘못으로 돌리며 다그치는 대요정에게 제 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요정이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온 쪽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신이 돌 위에 앉아서 자신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앗, 개구리 신!」 「개구리 신이라니, 모리야 스와코다.」 신은 치르노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내뱉은 명칭을 바로 정정했다. 그러고 나선 반쯤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히죽 웃었다. 「그 저주는 아주 강해서 말이지. 설령 죽어서 부활한다해도 없어지지 않아.」 태연한 어조로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고는 혀를 기다랗게 늘어뜨렸다. 신의 눈은 흰자위가 검은색으로 대체된 사악해 보이는 양서류의 눈을 하고 있었다. 「저주를 풀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지. 하지만 말이야. 난 용서를 구한다 해도 절대로 안 들어줄 거야. 케로케로케로.」 질척함이 느껴지는 검고 흉흉한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뱉은 스와코는 그 자리에서 허상 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장소엔 치르노와 대요정은 무어라 따지지도 못한 채, 충격에 빠진 얼굴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저 신 말고는 풀 수 없는 저주라니. 매우 사악해 보이는 신님이라 거짓을 말한 것 일수도 있지만 심각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다시 되살아나더라도 풀 수 없는 저주라니. 치르노는 침울해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대요정은 그런 치르노에게 위로의 한 마디 조차 해 줄 수 없었다. 다만, 지금 자신이 친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시라도 빨리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 뿐이었다. 「치르노. 어떻게 해서라도 그 저주를 풀 방법을 찾는거야.」 대요정은 치르노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우선, 자신이 아는 한 누구의 도움이라도 구해보기로 했다. 대요정의 가슴속은 확고한 결의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물 없인 견딜 수 없는 몸이 된 치르노는 물이 있는 호숫가나 계곡을 벗어 날 수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치르노가 걸린 개구리의 저주가 무슨 종류의 것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의 체질이 되어버리는 저주인 것 같았다. 즉, 장시간 물이 닿지 않으면 몸이 말라와 괴롭게 되는 저주. 그 저주에 괴로워하는 치르노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대요정은 그날 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저주를 풀기 위한 단서를 모으려 다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 마리사와 레이무를 비롯한 홍마관의 당주에게도 사정을 하면서 까지 찾아가 봤지만, 무엇하나 만족스런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낱 요정 따위로 치부되어 무시당하거나 되러 공격 받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대요정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적대하는 인물에게 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도움을 구했다.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는 모른다. 수 십 아니, 수백 번을 반복하더라도 친구의 저주를 풀 단서만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그러던 중 숲속을 배회하는 어느 여우 요괴를 발견한 대요정은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다. 요괴는 대요정 자신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흥, 요정 주제에 나한테 도움을 구할 줄이야.」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대요정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한 요괴. 환상향을 관리하는 요괴 현자인 야쿠모 유카리의 식신이자, 대요괴 구미호인 야쿠모 란은 결계 수복을 위한 측량중에 다짜고짜 머리를 조아리며 도움을 구해오는 한 요정을 차디찬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제발, 제 친구를 도와주세요!」 다급한 어조로 무릎 까지 꿇은 요정을 보며 란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혀를 찼다. 「장난을 좋아하고 겁이 없는 요정이 무릎을 꿇는 다라‥. 그래 좋아, 무슨 일인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가‥감사합니다!」 대요정의 얼굴에 환희가 그려졌다. 자신의 절실함이 통했는지, 하찮은 벌레를 보는 눈을 하고 있던 란이 최소한 자신의 사정만이라도 들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대요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어조로 란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그러면서도 요약을 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대요정의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윽고, 그녀의 입으로 부터 차갑고 냉랭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저주 들어 본 적이 없구나. 설령, 유카리님이라도 방도가 없을 거다.」 이번에도 기대를 벗어난 대답이었다. 대요정은 더는 란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축 쳐진 날개로 자리를 옮긴 그녀는 이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좋을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돼 버렸다. 자신이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치르노는 저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자, 대요정은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소리 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괴로워하는 친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왜 이다지도 나약한 걸까? 자신을 질책하며 서럽게 울고 있는 대요정에게 어둡고 침침한 기운이 짙게 깔렸다. 「케로케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지?」 매우 사악한 목소리로 달콤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대요정은 그 목소리의 정체를 바로 깨닫고는 울분에 겨운 어조로 외쳤다. 「역시, 신님이셨군요!」 「뭐가?」하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목소리. 이어 짙게 깔린 검은 기운이 걷혔다. 그리고 섬뜩하게 차가운 양손이 대요정의 목덜미를 지나 가슴을 끌어 앉았다. 긴장한 채 잔뜩 굳어진 대요정의 얼굴 옆으로 사이하게 웃는 스와코가 긴 혀를 내밀고는 그녀의 귀에다 음험하게 소근 거렸다. 「저번에 말했듯이 저주를 풀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아아….」대요정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초점이 없어진 눈으로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죽음이 없는 요정은 공포한 감정을 알지 못하지만, 지금 대요정이 품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공포의 감정이었다. 난생처음 격어 보는 두려움에 대요정은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극도의 공포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몸도 그 기능이 그대로 마비가 된 것 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혹한의 추위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대요정은 목안으로 부터 살려달라는 애원소리를 무심코 내뱉으려다 문득, 소중한 것을 떠올리고는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 여기서 저 신님에게 굴복해 버린다면 내 소중한 친구는? 치르노는 어떻게 되는 거야? 「케로케로. 처음 겪어보는 공포란 견딜 수 없지?」 굳어진 대요정의 얼굴을 곁눈질로 쳐다보며 음습한 목소리로 말하는 스와코. 대요정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굴복하지 않아. 다짐을 하며 고함을 내지른다. 「이거 놔-!」 공포 따위에 지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흐응. 스와코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웃었다. 그리고는 감싸 쥐었던 양팔을 풀어 대요정을 해방시켜줬다. 「처음 겪어본 공포를 이겨내다니. 요정 주제에 보통내기가 아닌걸.」 스와코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대요정이 기특하면서도 괘씸했다. 「그래, 그래서 넌 어쩔 건데?」 「…….」 「내 도움이 간절하잖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요정은 가만히 눈을 내리고 침음성을 흘렸다. 스와코가 껄껄 거리며 말을 이었다. 「알았으면 어디 한번 빌어봐.」 고압적인 태도로 대요정에게 용서를 재촉하는 스와코. 대요정은 분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신이 말한 대로 이제는 신님에게 비는 수밖에 없었다. 대요정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땅에 머리를 박고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 「부탁이에요. 제발, 제 친구를‥ 치르노를‥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세요-!」 친구를 구하기 위한 간절한 사죄였다. 눈시울을 적신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땅을 적신다. 대요정은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아내려 입을 앙 다물고 끅끅댔다. 그 모습을 쌀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스와코는 한쪽 입가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흐음-. 그 간절함. 잘 전해졌다. 네 부탁을 들어줘도 나쁘지 않겠지.」 「저… 정말이에요!?」 대요정은 고개를 들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한 송이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그토록 원하던 대답이 신님의 입으로 부터 나왔으니까. 스와코는 기쁨에 젖은 대요정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 수상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매우 불길한 웃음이었다. 그 순간, 대요정은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에 휩싸였다. 어째서일까? 잘은 모르지만, 본능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케로케로. 기분 나쁜 개구리 울음을 내뱉은 스와코는 속까지 메스꺼워지는 사이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늦어 버렸는걸.」 그러고는 대요정 쪽으로 무언가를 휙-하고 집어 던졌다. 대요정은 황급히 자신에게 던져진 무언가를 확인해 보았다. 던져진 것의 정체는… 「이건…….」 살색과 푸른색이 섞여있는 가죽. 그것을 집어든 대요정은 침을 꿀꺽 삼키고,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신음했다. 한눈으로도 알 수 있는 그것. 「… 그럴 리가 없어.」 어찌 모르겠는가. 손에 들려진 것은 가죽에 불과했지만, 그건 의심할 나위 없이 자신의 친구인 치르노였다. 아니, 치르노였었던 가죽이었다. 대요정은 아연실색했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찍었다. 대요정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도대체, 어째서 치르노가 가죽이 되어버린 것인지 영문이 가질 않았다. 이건 꿈일 거야. 그래 질 나쁜 꿈인 게 분명해! 절망감에 일그러진 얼굴로 도리질 쳤다.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깨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꿈이 아닌 현실이다. 대요정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정신이 붕괴되어갔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외침만 연신 내질렸다. 그리고 폐 속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가자, 컥컥. 고통스런 기침이 침과 함께 새어나왔다. 망가져가는 대요정에게 스와코가 혀를 쭉 내빼며 말한다. 「네가 친구의 저주를 푼다고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 케케케. 사악한 웃음소리. 스와코는 악의로 가득 찬 검고 노란 양서류의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이 멍청한 요정이 널 찾는다면서 몸이 버썩 말라가는 줄도 모르고 날아다녔지 뭐야.」 대요정이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훗. 코웃음 치며 이어 말했다. 「결국, 이 꼴이라고. 케로케로케로. 결과적으로 너의 노력이 친구를 말라비틀어진 가죽으로 만든 거야!」 「으아아… 아니야. 난,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충격에 휩싸인 채 절규하는 대요정을 보는 스와코는 너무나도 섬뜩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을 그녀의 절망감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대요정은 마지막, 일말의 희망이라도 붙잡아 보려고 스와코에게 쉰 목소리로 애절하게 빌었다. 애원 했다. 「신님. 부탁이에요. 치르노를 원래대로 돌려주세요!」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렇게 말라비틀어지기 전이었어야 했어.」 무정하게 방법이 없다는 얘기로 대요정의 애원을 잘라버린 스와코는 이젠 여기엔 볼일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그녀의 몸에 사이한 검은 기운이 휘감겼다. 「시‥ 신님. 제발이에요. 치르노를…!」 대요정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스와코의 몸은 그 자리에서 검은 기운과 함께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망연자실한 대요정은 생기가 없어진 눈으로 신이 사라진 자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렸을까? 감정이 없는 인형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 껍질만 남은 치르노를 앉고 있던 대요정은 문득,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아직, 아직 이야!」 치르노 껍질을 소중히 앉고 조심스럽게 어디론가 달려가는 대요정. 「반드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거야!」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이젠 지푸라기는커녕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치르노는 그녀에게 너무나 크고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근처 물가 까지 달려간 대요정은 치르노 껍질을 물속에다 깊숙이 담갔다. 그리고는 다시 부활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 「치르노, 오늘은 뭐하고 놀꺼야?」 「우웅-, 글쎄? 홍백에게 결투나 하려 갈까?」 「그건, ■■ 행위야.」 「에헤헤, 그건 그렇네.」 당장이라도 한차례 폭우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한여름의 흐린 날. 오늘도 밝고 유쾌한 빙정. 치르노가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었다. 반딧불이 요괴인 리글과 밤참새 요괴. 미스티아 로렐라이 그리고 어스름의 요괴. 루미아. 이들 넷은 흔히 세간에서 바콰르텟이라 불리는 4총사들로 인간과 요괴 가리지 않고 민폐를 끼치는 장난꾸러기 들이다. 그리고 항상 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요정이 하나 있었다. 「근데, 최근 안 보이네?」 「뭐가?」 미스티아의 물음에 치르노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네 친구 요정 말이야.」 「그래, 대요정인가 하는 걔.」 미스티아의 말에 리글이 맞장구친다. 말썽을 부린다 싶으면 어느 샌가 쫒아 와서 잔소리를 늘어놓는 성가신 요정이라 생각했던 이들이었지만, 요사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친구들의 의문에 치르노는 크게 웃으면서 얼버무린다. 「하하하하. 다이쨩은 요즘, 엄청 바쁘다고.」 「그래?」하고 미심쩍은 얼굴로 겨우 납득하는 친구들에게 치르노는 덧붙여 말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니까. 잘 알고 있어! 다이쨩은 한동안 보이지 않을 거야.」 티 없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니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치르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치르노는 바보이긴 해도 거짓말을 할 녀석이 아니니까. 「그런건-가?」 「응. 그러니까 한동안 장난을 마구 치고 다녀도 잔소리하려 안 와.」 「그치만, 오늘은 이만 돌아갈래.」 듣던 중 희소식이긴 하나, 오늘은 장난을 치고 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머리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은 탁한 구름이 잔뜩 끼여 있었고, 거기로 부터 한 방울. 두 방울. 빗줄기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놀고 싶은 기분이 만만인 것은 이들 중 오로지 치르노 뿐이었다. 「그럼, 나도 집으로 갈래.」 「나도, 얼른 집에 가봐야 돼.」 루미아에 이어, 리글 그리고 미스티아도 오늘은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건 순식간. 홀로 남게 된 치르노가 뿔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고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칫-. 비 맞는 게 그렇게도 싫나보지!」 불평을 늘어놓는 것도 잠시. 어느새 창백한 얼굴이 된 치르노는 우수에 찬 눈으로 차분하게 읊조렸다. 「그래도, 넌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 일거지?」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지? 치르노.」 하고, 언제까지고 함께인 치르노에게 속삭였다. |
|
|
대요정과 치르노. 두 요정은 둘이서 하나.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영원이 되어있었다. |
|
---------------------------
치르노를 생각하는 대요정의 우정.
눈물 겹습니다. ㅠㅠ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