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야!"
록은 그렇게 주장해보지만, 믿어 주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자신을 범인이라 확정 짓고, 처벌만을 생각하고 있다.
어째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하지 않는 거지?
록은 억울함을 넘어 분함을 느꼈다. 정의의 사자인 록맨이 자신을 거둬줬던 고마운 은인을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되다니. 그것도 범인 확정.
"이 꼬마를 어떻게 처리 한담?"
"유카리 씨. 잠깐, 괜찮습니까?"
유카리가 자신의 손바닥을 쥘부채로 탁탁 치면서 어떻게 처분할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히나가 그 앞을 막아서며 양해를 구해왔다. 응? 하고 의아한 얼굴로 히나를 쳐다보는 유카리. 이내 "좋아, 무슨 용무인지 말해 봐."라고 히나에게 물었다.
"저 파란 꼬마는 제 소유입니다. 그러니 처분의 권한 역시 저에게 있어요."
히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언지고 말했다. 그러나 그걸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유카리가 되묻는다.
"저 꼬마가 어째서 네 소유인지 설명해 주지 않으면 곤란한데."
"그건 저 꼬마가 제가 품고 있던 액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유카리의 물음에 답하면서 록을 슬쩍 훑어보는 히나. 그녀는 록이 자신의 액으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짙은 액의 기운은 액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록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저 여자가 품고 있던 액이라고? 록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깨달고 있었다. 자신은 한낱 허상뿐인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저 여자의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록은 그 사실을 인정할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 코메이지 사토리를 살해한 ─ 살인범이라는 누명.
자신에게 죄를 씌워 진짜 살인범을 은폐하려 하는 저들은 악이다. 나는 사토리를 죽인지 않았고, 저들은 진범을 감싸고 있다.
"무기 체인지. 블랙홀 봄."
록의 몸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갑작스런 록의 변화에 모두가 놀란 얼굴을 했다. 딱 한명. 니토리만이 매우 흥미롭다는 눈이었다. 히나는 싱긋이 웃으며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전신을 보라색 깔맞춤으로 바꾸다니, 재롱 잔치에 써먹기 좋은 재주군요."
그러나 록이 선보인 것은 결코, 재롱 잔치 따위에 쓰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배제하여 진범을 숨기려 드는 저 사악한 무리들을 처단하기 위한 폼. 블랙홀 봄을 쓰기 위한 변형인 것이다.
록은 자신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히나들에게 버스터를 겨누었다.
"너희들을 전부 없애고 진범을 찾아내겠어!"
그의 입에서 자신들을 전부 죽이겠다는 흉흉한 소리가 흘려 나왔다. 히나가 어이없다는 투로 되받아쳤다.
"증인을 인멸해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겠다는 소린가요?"
록이 입술이 기괴하게 비틀어졌다. 악을 처단하려는 행동을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증인 인멸로 보다니. 더는 용서가 안 된다. 록은 당장 블랙홀 봄을 쏘기로 했다.
"에잇! 시끄러. 뒈져버려 ─ !!"
록 버스터로 부터 짙은 보라색의 구체가 쏘아졌다. 강한 중력을 머금은 그 구체는 쏘아진 직후, 이내 근처에 있던 히나와 유카리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제 몸이 점점 끌려가는 군요."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탄막인가? 처음 보네."
실제로 허공에 떠있는 보라빛의 구체에 몸이 끌려가고 있음에도 히나와 유카리는 위기감을 가지지 않았다. 록은 "하하. 모두 블랙홀 봄의 먹이가 되 거라!"고 큰소리 치고 있었지만, 휘익. 유카리가 쥘부채를 들어 올리자 록이 쏘아낸 보랏빛 구체가 갑자기 생겨난 틈새 안으로 순식간에 삼켜졌다.
어엇! 자신의 블랙홀 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록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에잇! 연발이면 못 막아내겠지!!"
록 버스터로 부터 십 여발의 블랙홀 봄을 쏘아냈다.
쏘아진 각각의 블랙홀 봄은 느렸으나 사방팔방으로 퍼져서 히나들을 에워쌌다. 그리고 그 명칭과도 같이 블랙홀처럼 공기를 포함한 방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빨아 당겼다.
절제절명의 위기. 니토리는 겁을 집어먹고 '휴이!'하는 비명을 내질렸다. 그녀 이외에는 겁을 집어먹지 않았으나 곤란하다는 얼굴로 구체를 쳐다본다. 유카리가 성가시다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저항 할 줄이야."
그리고는 히나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히나 씨, 저거 어떻게 안 되는거야?"
"그걸 왜 저한테 묻는 겁니까?"
유카리의 물음에 고개를 삐딱하게 만들어 의문을 표하는 히나. 유카리는 혀를 차며 짜증을 냈다.
"저 꼬마가 자신이 품고 있던 액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어? 그런 근거까지 내세우면서까지 자기 소유라고 했으면 끝까지 책임 져야죠."
그러고 보니. 저 푸른 꼬마(지금은 보라색이지만)는 히나 자신의 소유물. 주인이 되는 자신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 잘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히나는 자신들을 향해 살의를 내비치고 있는 록에게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주인으로서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습니다."
"주인이라고? 웃기지마! 내 주인은 살해당한 사토리님.. 아니, 라이트 박사님이야!"
히나가 주인임을 주장하고 나서자,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하는 록. 버스터 총구로 부터 블랙홀 봄이 두어 개 더 쏘아졌다. 그리하여 사토리 개인실에 떠있는 보랏빛 블랙홀 봄은 모두 스무 개.
하나의 블랙홀 봄이 가지는 중력은 대요괴인 유카리와 신인 히나에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이지만, 그것이 두 개, 세 개... 열 개.. 스무 개 까지 불어나 버린다면 제아무리 대요괴와 신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지금 히나들이 봉착한 상황이 바로 그 무시하지 못할 위기. 사토리 개인실 안의 공기와 기재들이 수많은 블랙홀 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시 빨리 저 꼬마를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한 사태. 고민하는 히나 등 뒤로 부터 니토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히나, 나 저 꼬마 알고 있어!"
"뭐라고요?"
히나는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니토리 쪽으로 돌렸다. 니토리는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듯 했다. 니토리가 말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저 꼬마는 록맨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 록맨인게 분명해!"
"록맨? 그래서 지금 그런 사실을 알아봤자, 해결책이 되지 않을 텐데요?"
"아니, 저 꼬마가 게임속 록맨의 설정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면 손쉽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
"호오. 그 방법이 뭔지 말해 보세요."
히나가 흥미로워하며 묻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니토리. 씨익-. 자신 있는 미소를 내보이며 그 방법에 대해 발설했다.
"저 녀석. 가진 라이프에 상관없이 가시 한방이면 골로 가!"
치명상을 입힐 방법이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가시 한방에? 히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친우가 아니었기에 "그렇군요."하고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치명상을 입힐 가시가 있긴 하나?"
지금 이 장소에 함정에 사용되는 가시가 있을 리 만무했고, 그렇다고 바늘이나 송곳 정도로 치명상을 입힐 것 같진 않았다. 기껏 약점을 알아도 약점을 찌를 만한 물건이 없다.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히나는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괜히 공순이가 아니지!"
가방으로 부터 너저분한 고철들을 조립하고 있는 니토리가 있었다. 확실히, 없다면 만들어내면 된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인물이 바로 니토리가 아닌가. 눈에 안보일 정도로 손을 놀리던 니토리는 금세 뚝딱하고 적당한 크기의 철가시를 만들어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지만, 니토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원작겜에서도 록맨은 쥐톨만 한 가시에 찔려도 사지가 분해되어 여섯 방향으로 펴지는 빛이 되어버리니까.
"히나, 부탁해!"
니토리는 자신이 방금 만들어낸 철가시를 히나를 향해 던졌다. 그것을 히나는
"맡겨 주시라."
손바닥으로 부터 뻗어나온 액으로 배트를 만들어서 4번 타자와 같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철가시를 록이있는 방향으로 휘둘렸다.
까앙! 경쾌한 소리가 울렸고, 배트에 맞은 철가시가 록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블랙홀 봄으로 부터 발생된 중력이 있다.
기껏 자신의 약점을 찾아냈다 한들 닿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 저 위험한 철가시는 자신이 쏘아낸 블랙홀 봄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테지. 록은 후후 웃으면서 "소용없다!"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수많은 블랙홀 봄을 뚫고 날아드는 철가시.
"어째서? 어째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거지??"
믿을 수 없었다. 부질없는 노력인 줄만 알았던 철가시가 중력을 무시한 채 날아오다니. 록은 "이건 있을 수 없어!"라고 절규했다. 그리고 마침내 록의 몸에 철가시가 닿았다.
"치..칙쇼!"
록은 분함이 담긴 그 한마디를 내뱉는 것을 끝으로
─ 쭈웅쭈웅쭈웅쭈웅-.
빛으로 화해서 여섯 방향으로 반짝이며 퍼지는 구체가 되어버렸다.
록이 빛이 되어 그 명을 달리하고 나자, 그가 만들어냈던 보랏빛의 블랙홀 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걸로 사토리를 죽인 살해범은 현장에서 처단되어 사건은 이대로 끝을 고하는가 싶지만, 아직 남아있는 문제가 존재했다.
히나는 심각한 얼굴로 땀을 삐질 흐렸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절망을 느끼는 듯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있어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히나는 후회와 절망이 묻어나오는 어조로 주절거렸다.
"정말로 가시 한방에 골로 가 버릴 줄이야. 그 꼬마 자식, 내 노예로 써먹을 생각이었는데!"
골로 간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을 줄 꿈에도 상상 못했던 히나였다.
그저 치명상을 입고 전투불능에 빠질 줄로만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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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개월 만에 쓰는 히나가 간다입니다.
어쨌거나 골칫거리였던 무리수를 제거했습니다.
이번 회에서 쫑내려다가 다음 회로 미루게 되네요.
막회를 최대한 빨리 올려서 마무리 지어야 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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