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질려가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일어난 참극이 눈앞에 펼쳐지는것에 대해서.
이미 눈앞에서 수많은 적과 동료들이 죽어나갔다. 그나마도 살아남아서 전선을 뛰고있는 동료들도 대부분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거나, 버티지못해 미쳐버려서 이상행동을 계속해서 보이고있다.
몇 일 전까지만 해도 '괜찮을거다. 금방 끝날거다.' 라는 등의 말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던 동료들도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정도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퇴각명령이 떨어졌고, 나는 제일 상태가 좋다는 이유로 첨병으로 차출되어 다른 참호에있는 동료 몇명과 같이 참호에서 빠져나와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아할까 주변엔 아무것도 없는듯 하였고, 그렇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신호를하려는 순간,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무언가가 등을 세차게 내리치는 통증을 느끼며 수색을 나온 동료들과 같이 바닥을 뒹굴었다.
'포탄이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나와 동료들은 그대로 포복자세를 유지하며 주변을 경계하였지만, 몇명은 그대로 공황상태에 빠져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다가 날아온 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그 이후로도 적의 폭격은 참호와 주변에 두 차례정도 이루어졌고 나와 동료들은 그 곳을 벗어나기 위해 포복으로 어느정도 전진 한 뒤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약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동료들이 파편에 맞거나 총탄에 맞아 쓰러졌고, 나는 무조건 그곳을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가 잠잠해진것을 깨달은 나는 뛰던것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그곳엔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역한 감정이 밀려오며 현기증이 일어난다. 땅이 물렁거리면서 푹 꺼지는 감각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고꾸라진 나는 그대로 위액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속을 태우는 위액을 뱉어내고나니 묵직한 무언가가 몸 구석구석을 훑으며 끈적하게 달라붙어온다.
소름끼치는 감각에 공포에 질린 나는 그대로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기 시작한다. 볼을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더 이상은 싫다. 난 더이상 이 곳이 싫다.
벗어나고싶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거같다. 모든게 다 싫다, 싫다, 싫다…….
그렇게 흙바닥을 뒹굴며 한참동안 끅끅거리다보니 문득 어떤 생각이 날카롭게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도망치자. 이 악몽에서 벗어나자.'
나는 머리속 가득 도망치자 라는 생각만을 채워가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서 달리기시작했다.
내가 가는곳이 아군의 진지인지 적군의 진지인지 생각도 안하고 그냥 달렸다. 그저 남은 모든힘을 짜내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생각만으로 죽을듯이 달렸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몸은 그렇게 따라주지 않았다. 힘이 다한 몸은 마치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풀썩 쓰러져 돌비탈을 굴렀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을땐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있는 낭떠러지가 나를 삼켜가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된거다. 이렇게 살아갈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게 나을것이다.' 나는 그런생각을 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군가가 말하는것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처음보는 토끼인데? 일단 데려가야하나?"
…….
정신을 차렸을땐 어딘가 푹신하고 따뜻한 이불에 누워있었다. 처음보는 나무천장에 좁은 방, 속으로 딱히 좋은곳에 올 정도로 좋은일은 하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을하며 힘없는 웃음을 흘리고있자니 누군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며 들어왔다.
은발에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여성. 한눈에봐도 월인인것을 눈치챈 나는 여차하면 죽이고 도망갈 생각까지 하며 매섭게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없어. 일단 여긴 달이 아니니까."
"그러면? 여긴 어디지?"
"글쎄? 뭐 다들 환상향이라고 부르는 것 같지만."
그녀는 그 한마디만 던져놓고 방을 나갔고 나는 몸 이곳저곳에 감겨있는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때 쯤, 은발의 그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질그릇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어딘가 향긋하고 고소한 냄새에 뒤늦게 배고픔을 느낀 나는 침을 삼키며 입을열었다.
"그것은…?"
"이것저것 좋은것을 갈아서 쌀과함께 끓인 죽. 내가 엄선해서 넣은거니 위에 그렇게 큰 부담은 가지 않을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죽을 놓아주었고 나는 정신없이 숟가락으로 죽을 퍼서 입안에 구겨넣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함과 따뜻함이 비어있는 내 마음속 한켠을 채워주었고, 그것들은 뜨거운 응어리가 되어 내 두눈에 맺혀 흘러내렸다.
-에필로그-
그 날 이후, 나는 자신을 '에이린'이라고 칭하는 그 월인을 사부로 모시며 이것저것 도와가며 약과 약초, 제조법의 대한 약간의 지식들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월인의 언어는 이곳 환상향에선 사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카구야'라는 이름을 가진 어딘가 심상치않은 기운을 가진 또 다른 월인으로부터 이나바라는 이름을 받고, 사부도 그에따라 우돈게인 이라는 이름을 부여하여서, 지금은 레이센 우돈게인 이나바 라는 이름을 가지고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테위라는 이름을 가진 지상의 교활한 토끼와도 나름 친분을 쌓으며 잘 지내고 있다. 다만, 가끔씩 혼이 쏙 빠져나갈 듯한 이상한 말을하여 간신히 구한 약재들을 낚아채려 한다는것을 빼면 말이다.
하지만 가끔씩 불안하기도 하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지난 시간들의 악몽들과 이런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이, 지금의 소중한 존재들이 언젠가는 부수어질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그 불안도 그냥 한낱 걱정거리가 될 만큼 또 다른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더욱 더 힘차게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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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원작설정을 한껏 파괴한 팬아트 픽입니다.
의외로 쓰면서 이것저것 고민을 많이했네요... 뭔가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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