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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루키가 말한 불행이 끝나는 시기지? 내가 녀석의 불행에 말려들기 싫어 집을 나온 지 열흘이 되는 날이다. 한밤중에도 불행에 시달리는 녀석 탓에 나 까지 잠을 못 이루는 바람에 하쿠레이 신사에 신세를 지기로 했는데 그 째째한 레이무는 하룻밤 이상을 재워 주지 않았고 홍마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마지막으로 의지 할 덴 앨리스밖에 없었는데 겉으로는 틱틱거려도 지금까지 머물게 해 준 걸 보니 소문이 사실이다. 길 잃은 마을 사람을 무상으로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그 소문 말이야. 나는 앨리스가 그렇게 친절 했었나? 하고 반신반의 했지만 막상 이렇게 겪어보니 친절함을 넘어 조심스럽게 나를 대했다. 특히 잠자리에서 나는 같은 여자끼리 같이 자는 게 뭐가 문제인건지 앨리스는 한사코 나와 같은 이불을 덮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나는 침대에서 자고 오히려 집주인이 바닥에서 자는 진풍경이 연출 되었는데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나는 그런 앨리스의 과도한 친절 속에서 오늘까지 별 탈 없이 지냈는데 그 녀석, 루키는 지금 쯤 괜찮을 려나? 연이은 불행으로 죽어있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런 걱정에 앨리스가 차려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만 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문 앞에서 빗자루를 타고 떠나려고 할 때 앨리스가 나를 붙잡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마리사가 좋다면 여기서 계속 지내도 돼.」 음... 그건 못 들은 걸로 할게. 사실 앨리스가 차려준 밥도 맛있고 집도 넓어서(침대는 하나지만) 생활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편했지만, 네가 나한테 베푸는 친절이 너무 과해서 말이지. 부담된단 말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앨리스의 호의를 거절했다. *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눈 안에 바로 들어오는 광경이란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집을 엉망으로 하고 산다고 해도 이렇게 까지 엉망진창인 적이 있었을까? 이래서야 마치 강도가 들은 것 같잖아!? 루키 성격에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 리는 없을 테고 이건 그 불행의 여파로 봐야하나? 집안이 이런 상태가 될 정도로 방치 한 걸 보니 여유가 없었나 보다. 그런데 녀석은 어디 있지? 나는 평소라면 나 보다 일찍 일어나 청소를 하고 있을 녀석의 모습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론가 가있나 싶은 생각을 하며 차분하게 너저분한 바닥을 둘려보던 중 엎드린 채 쓰려져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루키? 근데 왜 알몸인 거야! 알몸인 채 쓰려져 있는 루키의 몸에는 수많은 키스자국이 새겨져 있었고 엉덩이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바닥을 얼룩지게 한 혈흔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난 아직 처녀라서 남자의 알몸엔 저항감이 있다. 그래도 지금 녀석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을 해봐야 했기에 조심스레 다가가 빗자루 끝으로 쿡쿡 찔려봤다. 그런데 아무런 미동도 않는 녀석. 진짜로 죽은 거야? 내 첫 사역마가 이런 식으로 죽다니 이거 굉장히 찝찝하다고! 시체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지? 장례식은 해야 할까? 아으으... 뭔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그래, 침착하자. 냉정하게 생각하자고. 아직 녀석이 죽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어.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녀석의 귓가에 얼굴을 디밀고 큰소리로 외쳤다. 「어 ─ 이! 일어나 ── !!」 그러자, 꿈틀대며 반응을 보이는 루키. 다행이다. 죽지 않았구나. 행여 죽어있었다면 곤란하니까 말이야. 루키의 입에서 「끄으응」하는 고통에 겨운 신음소리가 흘려 나왔고 고개를 간신히 들며 나를 쳐다보는 그 얼굴은 그 동안에 얼마나 격심한 고난을 겪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원래 초췌했던 얼굴이지만 지금은 앙상하게 골아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초점을 읽은 두 눈은 마치 혼이 떠난 시체와도 같은 눈이었다. 그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의 모습을 확인한 루키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며 미동도 않던 시체 상태로 돌아가고 말았다. 엉덩이에서 비롯된 출혈도 그렇고 얼핏 봐도 상당히 심각한 상태. 이대로 두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겠어. 지금이라도 당장 약초를 빻아서 상처가 난 곳에 바르고 침대에 옮겨 안정을 시켜야 하지만.... 「왜 알몸인 거야!!」 천둥벌거숭이 같은 모습에 손도 대지 못하고 약초만 빻아놓는 나였다. 정신을 차리면 알아서 바르라고 해야지. * 난 살아있어, 살아 있다고!!! 를 외치면서 양손을 번쩍 쳐들고 환호하고 싶지만. 젠장! 엉덩이가 아파서 맘 놓고 기뻐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엉덩이 상태가 괴멸적인 것 빼고는 기쁘기 그지없는 건 사실이다. 마리사는 상처에 잘 듣는 약초를 빻아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야 새파란 처녀가 남자의 알몸을 두 눈뜨고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 바깥 세계라면 발랑 까진 애들이 대부분이라 어려도 남자의 알몸 가지고는 그다지 놀라하지 않지만, 여긴 환상향이고 마리사는 보기보다 순진한 구석이 있어서다. 그래서 성희롱을 치는 보람이 있는 거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그 작은 키 때문에 초딩으로 까지 보이는 마리사지만, 저 작은 체구에서 내뿜는 마포는 규격 외라니까. 때문에 성희롱도 맘 놓고 칠 수가 없다. 암튼, 간신히 몸을 움직이게 된 나는 마리사가 빻아 준 약초를 조심스럽게 환부에다 발랐다. 환부를 바르면서 만져지는 항문의 감촉은 ‘이거 전봇대도 들어가는 거 아냐?’라는 말도 안 되는 확장성이었다. 워낙 너덜하게 되어버린 바람에 앞으로 기저귀를 차고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울한 기분이 들어 축지는 것이었다. 약초를 다 바르고 난 뒤, 핏물이든 팬티를 입고 여기저기 찢어져 있지만 이제 한 벌 뿐인 옷을 갖춰 입는다. 엉기적거리며 욕실에서 세안을 하고 거울을 보니 광대뼈가 앙상하게 솟아오른 해골이 푹 꺼진 눈으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 동안 계속 쫄쫄 굶으면서 단식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나는 뒤늦게 허기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쓰게 웃자, 거울 속의 나도 따라서 쓰게 웃는다. 그게 참으로 음산하게 보여 진짜 악마 같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아니다. 악마가 아니라 사신 쪽이구나. 그런데 사신을 실제로 만나본 적 없으니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르겠다. 역시 로브를 뒤집어 쓴 해골바가지 러나? 거실에 발길을 옮긴 나는 어지럽혀져 있는 집안을 치우고 싶지만 그 전에 허기부터 채워야겠다는 판단으로 부엌으로 가서 간단하게 차린 식사를 했다. 무려 열흘 가까이 굶었던 터라 허겁지겁 버섯과 빵조각을 물어뜯어서 삼켰다. 몸 안에 수분이 부족한지 입안에 침이 고이지 않아 쉽사리 삼키기 어려웠지만, 물과 같이 넘기니 별 문제가 안 되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예정대로 집안을 처음부터 차곡차곡 정리해 나갔다. * 내가 집안 정리를 거의 마쳐갈 무렵, 마리사가 돌아왔다. 「루키, 불행에서 벗어난 기념으로 내일 중으로 연회를 가져보지 않을래?」 마리사는 오자마자 저런 말을 하고는 쾌활하게 웃었다. 손에는 어디서 훔쳐왔는지 모를 술병이 들려있었고 살짝 붉어진 얼굴을 보아하니 이미 한 잔 걸친 모양이다. 근데 연회라? 연회 좋지. 그 열흘 동안 죽을 만치 고생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 겸 즐길 시간이라도 가지고 싶었던 참이니까. 그런데 아직 내 몸은 성치 않는 게 문제란 말이다. 엉덩이 상태를 보면 중환자나 다름없는 내가 내일 당장 입에 술을 대고 놀았다간 상처가 벌어져서 심해 질 수도 있으니 마냥 좋다고 연회를 찬성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래서 거절하기로 했다. 「내일이라면 무리야. 상처가 아직 심하거든.」 「에~~」 내가 거절하자마자 엄청 실망한 표정으로 아쉬워하는 마리사. 이거 아무래도 나를 축하해 주는 기념이라지만 실은 자기 자신이 연회를 가지고 싶어 나를 빌미로 삼은 눈치다. 그런데 그렇게 까지 아쉬워할 것도 없잖아! 연회 날짜를 뒤로 미룰 뿐인데. 딱히 곤란해 할 필요도 없는데도 마리사의 표정은 쉽사리 개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두워진 얼굴로 「하~」하고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이미, 내일 하쿠레이 신사에서 연회를 열겠다고 연회장을 돌렸단 말이야!」 마리사가 징징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나는 마리사가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했는지 깨달음과 동시에 그녀의 행동력에 작게나마 감탄을 하며 혀를 찼다. 그 단세 이곳저곳 다니며 연회장을 돌렸단 말인가? 참 빠르구나. 잠만, 나한테 한마디도 안하고 자기 멋대로 정해도 되는 거야? 연회의 주역이 나 아니냐고! 나는 심란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연회장을 돌린 곳으로 가서 정정하는 게 어때? 사정이 이러니 연회 날짜를 미루겠다고.」 마리사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이건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멋대로 한 쪽이 잘못인 거다. 「싫어, 여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게 아니거든.」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게 아닌 거겠지. 아무튼, 쓸데없는 고집 부리지 말고 내 말대로 하라니까.」 「싫다니까!」 이게 정말... 내 입장은 눈곱만치도 생각해 주지 않는구나. 저렇게 완고하니 나도 목청을 조금 높이기로 했다. 「네 눈앞에 있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거 같아?」 「응? 삐쩍 말라있는 상태.」 「마르기만 한 게 아니라 엉덩이도 엄청 심하게 다쳤거든. 내일 당장 술 마시고 놀았다간 상처가 심해질 지도 모른다고!」 「내가 빻아준 약초면 내일 중으로 금방 아문 다니까. 그래서 문제가 되지 않아.」 마리사가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약초의 효험을 믿어볼 만 했지만 내 엉덩이의 상처는 보통이 아니다. 약초 바른 걸로 내일 중으로 아문다고 하면, 이건 세기의 대 발견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장 항문외과.. 아니... 외상을 치료하는 전문 의료원을 죄다 망해 없어질 지도 모른다고. 그 만큼 상처를 빠르게 아물게 하는 약초 따위 있겠냐! 틀림없이 내일 연회를 열고 싶어 적당히 둘려댄 말이다. 그러니 나도 물러서지 않고 연회를 미루도록 설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빻아준 약초가 무슨 무안단물이냐? 내 엉덩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모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심각... 아... 확실히 출혈이 그렇게나 심하면 말이지. 하지만, 넌 인간이 아니잖아.」 「인간이 아닌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인외라면 그 정도 상처쯤은 기합으로 어떻게 되는 거 아니야?」 기합으로 어떻게 된다고? 마리사는 인외의 존재에 대해 오해가 심한 모양이다. 트롤 같은 재생력을 가진 요괴들이야 그럴 수도 있다지만, 마녀 주제에 악마를 어떻게 그런 트롤 놈들이랑 똑같이 취급할까? 인외도 인외 나름이다. 특히 나 같은 하급 악마는 재생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 마법에 의한 치유가 없인 평범한 인간과 동일한 수준인데 말이다. 나는 마리사의 주장이 편협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법사 주제에 악마를 요괴랑 똑같다고 보는 거야?」 「아냐, 하지만 너. 전에 레밀리아한테 큰 부상을 입어놓고 비교적 빨리 나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 그땐 분명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는데 그런 것 치곤 빨리 나았었어.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하는데 파츄리 노우렛지라는 그 마법사가 떠올랐다. 그래, 그 파츄리가 나에게 회복마법을 걸었던 거다. 그녀의 말로는 내 몸에 흐르는 마력을 전부 치유하는 쪽으로 전화시켰을 뿐이었다는데. 그거라면─ 「마리사, 너도 그거 할 줄 아는 거야?」 「그거라니 뭐가?」 설명 없이 물어봐서 당황하는 마리사. 나는 목청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이번엔 두서없지 않게. 「내 몸에 흐르는 마력을 전부 치유로 돌리는 마법을 거는 게 가능하냐고?」 그렇게 묻자 손가락을 입에 걸친 채 한동안 ‘음~’하고 생각하더니 「미안, 무슨 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 하고는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격이 틀린 걸까? 얘한테 파츄리만한 마법 처방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살짝 눈을 감고는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알았어, 파츄리님에게 치료를 받아보고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면 내일 중으로 여는 연회에 참가 할 거야.」 「으음... 그래, 그러면 연회는 예정대로 내일 열리니까 될 수 있으면 꼭 참가해.」 그렇게 내일 벌어질 연회에 참가하기 위해 파츄리에게 신세를 지는 걸로 합의가 되었다. 내 엉덩이가 파츄리의 마법으로 얼마나 호전될지는 모르겠으나 마리사가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데 어쩌겠어? 영 아니다 싶으면 연회에 안 나오면 그만, 나오더라도 될 수 있는 한 술을 입에 대지 않으면 되는 거다. 나는 그렇게 정했으니 한 시라도 빨리 엉덩이를 치료 받기위해 홍마관으로 향했다. 가만, 치료 받으려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까야하나? 왜 이럴 때 엉덩이 보이는 걸 창피하게 생각 되는 건지 모르겠다. 마리사 앞에서 알몸을 보여 놓고 말이야. * 불행이 끝난 뒤로는 어떻게든 날 수는 있었지만,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홍마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후였고 도서관엔 식사를 하러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파츄리가 돌아 올 때 까지 책이나 읽으며 기다릴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녔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책장이 하나 있었다. 천장에 닿을 만치 거대한 책장들 사이에 앙증맞게 끼여 있는 자그마한 책장에는 오래된 고도서가 아닌 낮이 익은 현대의 출판물들이 즐비하게 진열 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출판물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만화. 그 레밀리아라는 초딩 흡혈귀가 원피스 명대사를 잘 알고 있던 이유가 이거였나? 우와... 책장을 꽉 매우는 만화책들을 보니 슬램덩크, 원피스, 나루토, 죠죠의 기묘한 모험 등 하나같이 명작 소년물들이네. 여자애 주제에 순정 만화는 안 보이고 죄다 소년물만 보인다. 그래서 중2병 틱 했던 거군. 나는 그 중에서 죠죠의 기묘한 모험 1부를 한 권 집어 들었다. 흡혈귀가 흡혈귀 잡는 만화를 비치해 놓다니. 혹시, 죠죠 드립도 좋아하는 거 아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느새 나는 한 손으로 만화책의 옆단을 잡고 하늘 높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선 이 대사였지. 「난 인간을 관두겠다 ─ !! 죠죠 ─ !」 하하. 해버렸다. 누가 보지나 않았으면 하는데 다들 식사 하러 갔으니 세이프겠지? 하는 생각에 안심을 하려는 찰나. 짝짝짝하고 적막한 도서관내에 박수소리가 울려 펴졌다. 「대단해. 정말로 그걸 재현해낼 줄이야!」 홍마관의 초딩흡혈귀 당주. 레밀리아 스칼렛이 언제 그곳에 있었는지 다섯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방금 본 거야? 이거 엄청 쑥스러 운데.... 아... 아니, 창피해! 흑역사 추가된건가.. 잠깐, 조금 냉정해 지자. 여기서 나의 죠죠드립을 본 것은 레밀리아 뿐, 대단하다고 칭찬 한 걸로 봐서 오히려 놀림감이 아닌 호감을 산 행동을 한 거야. 부끄러운 행동을 들킨 탓에 딱딱하게 굳어졌던 나는 헛기침을 내뱉고는 긴장을 풀어내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물론, 나는 죠죠러거든.」 「으응? 죠죠러가 뭔데?」 「이 죠죠의 기묘한 모험이라는 만화를 신봉하는 열렬팬을 일컫는 단어야.」 「─ 호오, 그렇담 나도 죠죠러라는 거군.」 잉? 나도 죠죠러라니, 설마 이 흡혈귀 잡는 만화를 그렇게나 좋아한다는 거야? 흐흐 저렇게 말하는데 확인 안 해 볼 수가 없네. 「스스로 죠죠러를 자청한 이상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겠는데?」 「뭐? 날 시험이라도 해 보겠다는 거야?」 일순간, 레밀리아의 눈에 살기가 담겨있었지만 어차피 맘에든 덕질 친구인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담담히 말한다. 「당연하지, 죠죠 최신작인 8부 까지 읽은 내가 친히 죠죠러를 칭할 자격이 있는지 가려주겠다는 거다.」 「훗, 가소롭군. 그래 그 시험이 뭔지나 어서 마.... 어엇! 방금 뭐라 그랬어?」 오랜만에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말하다 말고 눈이 튀어나올 만큼 부릅뜨며 놀라는 레밀리아. 뭐가 그렇게 놀란 거야? 레밀리아는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얼른 놀란 표정을 감추고 다시 차가운 얼굴로 헛기침 하고는 침착하게 물어왔다. 「그... 죠죠가 8부 까지 나왔다는 거야?」 놀란 이유가 그거냐? 하하. 만화 가지고 홍마관 당주 보다 우위에 설 줄이야. 이거 왠지 재밌어 졌어. 자, 나의 만화 지식에 감탄해라! 이런 외부와 단절된 촌구석에 이 만큼의 만화가 유입된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대충 책장을 훑어보니 죠죠는 4부에서 끊겨져 있었고 원피스도 아직 2년 후로 넘어가지 않은 모양. 그 뒤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는 만화의 지식만큼은 저 흡혈귀보다 우월한 셈이다. 근데 이거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그래도 레밀리아 앞에서는 자랑 삼아도 되지 않을까?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동공이 살짝 떨리는 레밀리아에게 잘난 체 하며 말했다.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죠죠 뿐만 아니라 원피스도 67권 까지 나왔어. 루피가 에이스를 구하려 정상결전에 참가한 것에 대한 결말이 궁금하지?」 「너 거짓말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거짓말은 무슨! 마리사에게 소환되기 전에 내가 있던 곳은 도쿄였어. 거기서 최신 화를 바로바로 즐겨 봤었지. 뭣 하면 죠죠나 원피스 최신 화의 내용에 대해 알려 줄 수도 있어.」 「너... 이제 보니...」 「응?」 「대단하구나!」 차가왔던 레밀리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더니 환한 꽃밭이 피었다. 「도쿄에서 살고 있었다는 게 사실이야?」 「아..어!」 「그럼, 도쿄 타워도 직접 봤겠네?」 「그야 당연하지.」 「금각사나 혼노지도 봤겠구나!」 「그건 교토.」 어라? 방금 전 까지 죠죠에 대해 얘기를 했었는데 어느새 촌사람으로부터 수도에 대해 질문 공세를 받는 도시사람이 된 기분이다. 그건 그렇고 너무 돌변했잖아! 어디 가서 카리스마란 단어를 입에 담지나 마라.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레밀리아의 질문 공세에 마지못해 대답해 주고 있기를 한 참. 무언가 원래의 목적에 대해 잊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뒤늦은 자각이 들었다. 「이 얘기는 그만하자.」 나는 레밀리아와의 대화를 중단하고는 내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 떠올려보자 그제 서야 파츄리를 만나 치료를 받기 위해서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미 돌아왔을지 모르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레밀리아는 나랑 도쿄에 대한 화제로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나중에라도 실컷 할 수 있으니 우선 급한 불인 엉덩이가 급선무였다. 「나중에 네가 모르는 도시의 전경들에 대해 알려 줄 테니까. 알았지?」 「네가 안 알려줘도 대충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한 주제에 왜 내 뒤를 밟으면서 따라 오냐? 로비에 파츄리가 보이기 시작하니 쿨한 척 체면 차리는 것 봐라.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파츄리에게 다가갔다. 파츄리는 내가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응.」 내 인사를 짧게 받으면서도 시선을 책에서부터 떼지 않고 있는 파츄리. 이거 완전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파츄리는 원래 저랬다. 나에 대해 무관심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태도가 그럴 뿐이지 내 부탁에 대해 매정하게 거절하지는 않겠지. 그런 믿음으로 내가 겪었던 불행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본론인 엉덩이를 치료해 달라고 말하기엔 뜬금이 없어 보여서다. 이야기가 좀 많이 길어지겠지만,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으면 선 듯 치료를 해 주지 않을 테지. 그런데 「너무 길어, 요점만 말해.」 그렇게 말해오는 통에 나는 바로 본론인 심각한 엉덩이 상태를 설명했고 치료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뒤에서 듣고 있던 레밀리아의 폭소가 들려왔다. 「크케케케켁! 하..항문 파열이라니!! 크카카카칵 ─ !」 아주 제대로 빵 터진 레밀리아. 배를 부여잡고 목이 터져나가라 웃어 재끼고 있다. 어우.. 저 밉상. 난 지금 우스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나는 볼품없이 잇몸까지 드려내며 웃고 있는 레밀리아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웃는 거야 뭐라 안하겠지만 저 괴짜가족 같은 표정은 어떻게 안 되나? 명색이 홍마관 당주에 자칭 카리스마 흡혈귀면서 어쩜 저리도 웃는 얼굴이 엽기적일까?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못생긴 표정 짓기 대회에 나가도 될 만큼 망가지는 것이었다. 「레미, 보기 흉하니까 그만 좀 웃어. 지금 네 얼굴 엉망이야.」 파츄리가 내 심정을 대변하듯이 레밀리아의 웃음을 지적했다. 그 지적에 레밀리아는 그제야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깨달았는지 입술 넘어 하얗게 선이 생긴 침을 닦고 나서 정색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으음... 아까는 내가 체통 없이 굴었나 보군.」 그러고는 잔뜩 기합을 준 카리스마 웃음을 짓는 레밀리아. 어이,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고. 「그래, 항문 부분이 심각하게 파열 되어 있으니 치료를 받고 싶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건 네 마력을 전부 치유에 돌리는 정도뿐인데 괜찮겠어?」 「네, 그런데 내일 까지 태연히 앉아있을 수 있을 정도만 된다면 좋겠지만 어렵겠죠?」 「그건 네 항문의 상태를 살펴보고 나서 판단해 봐야겠는데? 얼마나 심한 거야?」 「그러니까... 음... 입구 쪽이 완전히 너덜하게 돼서 전신주가 들어갈 정도입니다.」 「전신주?」 「다른 말로 전봇대라고 하는데... 그런 거 보다 걸레처럼 헐렁하다고요.」 「꽤나 심각하다는 거네.」 파츄리가 나의 엉덩이 상태를 물어봐서 나름 설명한다는 게 전신주니 걸레니 하는 몹쓸 음담까지 나와 버렸다. 성희롱 발언을 즐기는 나의 입버릇이 내 항문의 상태를 설명 할 때도 불쑥 튀어나오다니. 내가 나를 성희롱 해봤자 뭔 소용이야. 아무튼, 그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 항문의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다. 나의 항문의 심각성을 알게 된 파츄리가 턱을 괘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일 때 또 다시 레밀리아의 빵 터진 웃음소리가 가차 없이 울려 퍼졌다. 「푸키키케케켁 ── !! 전봇대가 들어간다니..!! 아이고 배야... 나 잡네.. 루키드 너 이자식, 날 웃겨 죽일 셈이야!? 크카카카칵 ─ !」 저 쪽은 음담이 제대로 전달된 모양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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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축분은 이걸로 땡임.
여기까지 연재하고 중단한 상태고...
연재 재개하려니 차라리 또 다시 리붓해버릴까 싶음.
솔직히 나름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출한다고 쓴 소설인데
그다지 재미 없었던 모양임.
루키드가 다른 환상향에 소환되어졌다의 시간대가 바로 저 직후임.
파츄리에게 치료 받기 직전이라 완전 억울하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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