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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족감이 느껴지는 식사였다. 그야 그럴게 불행이 시작된 날 부터 지금 까지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어느새 밥 세 공기를 뚝딱 비워버린 나는 상에서 뒤로 물러나 편한 자세로 부풀어 오른 위장을 달래고 있었다. 집 안이 훈훈해서 그런가? 눈에 습기가 찰 만큼 큰 하품이 새어나왔다. 몰려오는 잠에 나는 잠시 눈을 부치고 싶었지만, 용무가 우선이지. 관청에서 공무를 본다는 분이 한가하진 않을 거고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돌아갈 가능성이 다분했다. 때문에 깜빡 잠들면 안된다. 바깥 공기라도 쐬어서 잠기운이 달아나게 해야한다. 툇마루로 나온 나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바람을 쐬고 있으니 모든 식구들이 식사를 마쳤고, 상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슬슬 찾아온 목적에 대해 말하자. 식기들이 없어진 상에는 후식으로 차와 과자가 마련 되 있었다. 일본 화과자 부터 양과자 까지, 바깥 세계에서 팔고 있는 과자도 있어 후식이라기 보다는 과자로 된 또 다른 식사 같았다. 차는 무난하게 홍차와 녹차인가... 콜라도 있었으면 하는데. 「루키드 씨는 저에게 용무가 있어 온 거라 들었습니다.」 「네. 그 말대로 절 도와주실 분을 찾아 온 거죠.」 유카리의 남편에 란의 남편에 세이가의 남편에 히로코까지 섭렵한 정력왕이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렇게 물어왔다.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하면 유카리를 포함해서 네 다리를 걸칠 수 있는건지 그리고 하필이면 저렇게 어린 소녀까지 부인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고 싶으나 억지로 참고 넘긴다. 괜히 비위 상할 질문을 했다간 해결 될 일도 망칠 테니까. 그래, 경솔해 지지말자! 테루가 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겠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인지 말씀 드리겠습니까?」 「그게. 이건 정확히는 아내분께서 힘 써야 할 일이라서」 나는 유카리 쪽을 힐끔 쳐다보며 이어 말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저는 다른 차원의 환상향에서 온 것 같습니다.」 「네?」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도움을 청하려 온 사람이 '나는 다른 차원에서 온 닝겐이다!'라고 말하면 누가 믿겠냐? 나라도 절대 안 믿는다. 하지만, 사실이라는 게 문제. 과연, 저 하렘을 차린 인간이 순순히 내 말을 믿어 줄까? 「아.. 그러가요. 루키드 씨가 말한 대로 역시, 이런 쪽은 제 아내가 전문이 겠네요.」 그러면서 유카리에게 눈빛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테루. 진심이 아닐지는 몰라도 일단, 믿어는 주는구나. 적어도 미심쩍어하는 눈치가 아니라서 안심이 되긴 했지만, 유카리는 뭐랄까? 나를 수상쩍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작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유카리에게 의심 받는 건 꽤나 좋지않은 상황이다. 속으로 유카리로 부터 받게 될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 최적의 대답을 하기위해 뇌를 최대한 가속시켜 시뮬레이터를 했다. 최소한 적이라는 인상을 줘선 안 된다. 만에 하나 실수로 잘못 말 했다가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는커녕 여기서 인생을 쫑 내게 된다. 긴장되는 와중에 유카리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루키드 씨. 당신 한테서 액귀와 닮은 기운이 느껴지는 군요. 정확히는 재액 그 자체 지만.」 「네에? 어... 그게..」 「실례되는 말이지만, 루키드 씨는 액귀와 연관이 있어 보이네요.」 유카리의 말이 내 숨통이 조여온다. 내가 재액을 뒤집어 썼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거지? 약속된 기한을 넘겨 이젠 더 이상 남아있는 재액 따윈 없을 건데? 아니면... 미립자 레벨로 잔류하고 있는 건가...? 물어오는 말 자체에 무거운 사기가 긷들어 있었다. 아니고서야 심장이 이렇게 까지 쫄깃해 질 수가 없으니까. 내가 재액을 품고 있다는 게 잘못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한 감정이 든다. 왜냐면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니까. 만약, 유카리가 내가 품고 있는 재액의 기운을 이유 삼아 적으로 간주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가장 최악의 결말이 될 것이겠지. 그러니까 어서 무어라 항변 해야 해! 나의 뇌야 힘을 내거라. 찰나라 하기엔 조금 긴, 미지근한 시간이 흘렸다. 바로 대답을 들려주지 않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저 보라색의 눈동자가 무섭다. 이럴땐 남편분에게 아내를 좀 말려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걸까? 슬쩍 살펴본 테루의 얼굴은 아내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젠장! 글렸다. 보아하니 유카리를 누구보다도 신용한다는 공처가의 얼굴이야! 결국, 나는 그동안 닥쳐왔던 불행에 대해 진솔되게 털어 놓기로 정했다. 달리 할 말이 없으니까. 저 요괴 현자에게 어쭙잖은 거짓말이나 얼버무림 따윈 통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창피해 죽겠어도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제가 왜 재액의 기운을 품고 있는 건지. 하나에서 열가지 사실 대로 말하겠습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내가 있었던 차원의 환상향에서 겪었던 일들을 상세히 발설해 나갔다. 액신의 액을 뒤집어 쓴 것 부터 시작해서 그 후로 열흘간 있었던 고통의 나날들. 나의 불행담이 진행될 수록 듣고 있던 야쿠모 가의 식구들의 안색이 점점 나빠져만 갔고, 내 항문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세이가 씨는 작은 목소리로 '그래서 였군요..'하고는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왔다. 처음에는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던 유카리도 내 얘기를 듣고는 어느새 불쌍한 어린 양을 보듯 나를 바라본다. 별로 기분 내키는 반응은 아니지만, 적의 보다는 몇 백배는 낫지. 「변태 오빠, 엉덩이 많이 아프지?」 히로코가 슬픈 눈으로 위로해 왔다. 「아프지만 괜찮아. 덕분에 앞으로 변비 겪을 걱정은 없는 걸.」 문제 없다고 태연한 척 미소를 짓고 있지만, 어째서일까? 갑자기 복받쳐 오르는 억한 감정에 휩싸여 내 두 눈엔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져 있었다. 하필 이럴 때 후유증이 닥치다니! 이 이상 창피해 지는 건 사양인데 말이야. 나는 흘러 넘치려는 눈물을 안간힘을 써서 참으려 했지만, 이 슬픔, 억울함, 분노의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댐의 한계 수위를 넘어 범람해 버린 강물 처럼, 눈에서 넘쳐 흐르는 눈물이 내 양 볼을 침수시켜 버렸다. 「루키드 씨. 제 아내분이 신중한 성격이라 의심을 해버린 것에 대해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테루가 아내를 대신해 사과해 왔지만, 내가 울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이것도 다 재액 탓이라고!! 그리고 사과하려면 유카리가 해야지. 왜 네가 하는데!? 나는 훌쩍거리며 서럽게 우는 얼굴로 정작 사과를 해야 할 유카리를 응시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유카리의 눈에는 내가 울고불고 떼를 쓰는 밉상인 아이 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유카리는 사과 대신 다른 말을 해왔다. 「루키드 씨가 액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걸 잘 알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이건 제 추측이긴 한데. 루키드 씨가 다른 차원의 환상향으로 부터 이곳으로 오게 된 원인과 그 원인이 액귀와 관계 됬을 가능성이 보이네요.」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되었다는 거예요. 지금 환상향 전역에 액귀가 뿌린 재액이 펴져있고 제 능력으로 여기만 유일하게 그 재액의 영향으로 부터 자유로웠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는 얘기에요.」 유카리는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한 얘기에 나는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몰라도 어리둥절하기만 했지만, 다른 식구들의 눈치를 보아하니 상당히 심각한 얘기인 것 같았다. 특히, 남편인 테루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시고 있었다. 「유카리. 그게 사실이라면 왜 인지 그 이유도 말해주지 않겠어?」 「하아. 네. 제가 아는 한도내에서 전부 말해 드리겠어요.」 남편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묻자, 길게 숨을 내뱉고는 사무적인 어조로 설명하기 시작하는 유카리. 이제 부터 들려주는 그녀의 얘기는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액귀의 기운과 비슷한 재액을 품고 있었던 루키드 씨의 몸이 환상향 전역의 재액을 이곳으로 끌어 들이고 있어요. 제 결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에요. 아마도 루키드 씨의 몸을 매개체 삼아 결계 자체를 무력화 시키고 있는 걸지도 모르죠.」 「그렇다는 건?」 「제가 겪은 것 처럼 말도 안되는 불행이.. 아니, 재액의 피조물들이 들이 닥칠 거란 거겠죠.」 나는 테루의 물음에 유카리 대신 답해 주었다. 그래도 일단 경험자이고, 그 무서움에 대해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유카리의 말을 종합해 보자는 한 마디로 일축 할 수 있다. 이거 ↗ 된 거라고. 보나마나 뻔하다. 이번에도 운이 지지리도 없게 액귀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있는 곳에 소환 되어서는 그놈이 뿌린 재액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이것도 전의 그 일로 인해 영 좋지 못한 체질이 된 탓이다. 저 요괴 현자는 눈치 채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환상향 전역의 재액이 모이는 이유. 즉,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게 된다면 더 이상 재액이 모여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날 제거해 버린다면 이 상황은 쉽게 해결 될 문제라는 거. 정말이지 겨우 재액으로 부터 벗어났다 싶더니.. 최악이다.
나는 부디 유카리가 그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기를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저 능력 좋은 요괴 현자가 다른 방법을 모를 리 없을 거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날 해치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만약, 해치기로 결정 한다면 옆에 있는 남편이 좀 말려줬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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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야쿠모 가에 찾아 올 재액의 피조물들은 어떤 놈들 일까?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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