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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전신이 찌부러지는 극심한 통증을 견디며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위로부터 수많은 빛의 탄막들이 비 내리듯 쏟아져 내려왔다. 이대로 멍하니 보고만 있으면 내 몸은 수초도 안 돼서 걸레가 되겠지. 이를 악물고 몸을 옆으로 굴려서 긴급 회피를 해본다. 다행히 그 많은 탄막 중에 아주 소수만 내 몸을 맞췄고 나머지는 땅에나 구멍을 만들며 사라졌다. 죽을힘을 다해 피했지만 내 몸을 맞춘 몇 개의 탄막은 그야말로 살상용. 탄막으로 찢겨나간 나의 피부 넘어 새빨간 근육조직과 함께 뼈까지 드러나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로 졸도해 버릴 만한 통증을 유발 할 텐데 오히려 감각이 둔해진 건지 감내할 만한 통증이었고 그보다 공포심으로 인해 정신이 아찔해 져 오는 것이었다. 저 흡혈귀의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이 그늘진 장소를 떠나 양지로 가는 방법 뿐이지만, 그전에 저 화가 난 레밀리아의 탄막에 의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더 많았기에 모 아니면 도였다. 이건 일종의 도박이 아닌 하나 밖에 없는 선택지. 지금 내가 용서를 빈다고 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았기에 나는 공중으로부터 이쪽을 응시하는 흡혈귀의 행동을 살피며 가장 가까운 양지 쪽으로 전력으로 뛰었다. 그러나 「크앗...!」 내 오른쪽 다리도 탄막에 피탄 당했나 보다. 힘줄이 절단 된 건지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뛰기는커녕 걸어가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 절제절명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레밀리아를 피해 양지로 도망친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 나에겐 한 가지 방법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 싹싹 빌자. 내가 그동안 너무 건방졌었으니까 말이다. 「...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않고 공중에서 살기를 내뿜고 있는 레밀리아에게 사죄를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의 사죄에 눈을 찌푸리며 혀를 차는 레밀리아. 「이제 와서 목숨 구걸이야?」 「네.. 살려주세요. 제가 너무 건방졌습니다. 이런 일로 저를 죽이신다면 메이드장의 가사는 누가 돕겠습니까?」 「그런 거라면 상관없어. 어차피 사쿠야는 처음부터 혼자서 잘 해내왔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다시 혼자서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면 많이 아쉬워 할 겁니다.」 「증말.. 가증스럽군, 난 너처럼 살기위해 자존심을 버리는 녀석이 가장 싫다!」 어차피 용서 받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최후의 발악이 자존심도 없는 구차한 녀석이라는 딱지와 함께 물거품처럼 부질없어져 버리니 이제 남은 것은 눈앞에 둔 죽음과 그로 인한 공포뿐이었다. 떠올려 보건데 내가 이곳 홍마관에 온 것에서부터 잘못이었다. 흑역사와 마주해 정신적으로 괴롭혀지다 그 스트레스로 인해 겁을 상실해 버린 것이 지금의 위기를 불러들인 것이었고 운이 없으려니까 최후까지도 개 같으니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나의 생존 확률은 아마도.. 제로가 아닐까? 시발.. 무서워 죽겠는데 억울한 감정이 앞서는 건 왜일까? 그냥 세상이 ↗같다는 생각만 든다. 어느새 레밀리아가 쏘아댄 붉은 탄막이 내 눈앞에 와있는데 그걸 피할 생각 보다는 지난 세월에 대한 주마등과 함께 저주받은 인생을 살아온 내 자신에 대한 후회와 좌절감만 있었다. 그래,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존재였던 거야. 가문에서는 쓸모없다고 내쳐져 동기에게 조롱만 당해. 생각해 보면 내가 그나마 즐겨웠던 적은 3년가량의 오타쿠 라이프 뿐이다. 이 얼마나 엿 같은가? 600년 인생에서 고작 3년 정도가 즐거웠다니. 이럴 거면 차라리 일찍 죽어버리든가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 텐데. 살상 탄막들이 무자비하게 나의 몸을 꿰뚫는 것을 느끼며 흙바닥에 쓰려져 누웠다. 더 이상 저항도 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버린 나의 몸을 내려다보며 쓴 웃음만 나왔다. 그래도 생각 보다 안 아프구나. 분명 미칠 정도로 비명을 지를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평온함이라니. 죽음을 앞둔 몸이 감각을 전부 차단 한 것일까? 마지막으로 러브 라이브 마지막 까지 시청하고 싶었는데... 풉.. 마지막에 마지막 까지 이런 쓰잘떼기 없는 거나 떠올리다니.. 참 바보 같아서 ‘피식’하고 조소가 새어나온다. 온 몸이 걸레가 된 채 큰 대자로 누워있는 나에게 다가온 레밀리아가 나의 조소를 보며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곧, 죽을 놈이 뭐가 재밌다고 웃는 거야?」 「그럼 울라는 거야? 어차피 죽을 텐데, 웃으나 우나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좀 전에 목숨을 구걸하던 주제에 여유가 넘치는 군.」 「그럼 내가 지금이라도 빌면 살려 줄거야?」 「아니.」 「그럴 것도 아니면서 내가 웃니마니 따지고 앉았냐? 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대사가 있어.」 「뭐야? 마지막 유언이라면 들어주지.」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대사. 어차피 죽을 거지만 기왕 죽을 거 남자답게 멋진 대사라도 치고 죽는 게 멋 아니겠어? 하하, 죽을 입장인데도 이놈의 중2병.. 아마 평생가도 없어지지 않겠지? 그럼 지금 이 순간에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멋진 말을 남겨보자. 「내 생애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서 들어 올렸는데 바로 후회가 밀려오는 것이다. 하필이면 왜 이런 대사가 나온 거냐고! 후회가 없긴 뭘 없어! 후회할 것 천지구만... 정정하지, 내 생애에 온통 후회뿐 이다!로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와 버린 저 대사를 어떻게 무마하지? 아 진짜 죽을 때도 바보 천치 같다. 그러니까 실수야! 「방금 건 취소. 다시 말할게!」 나는 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부정했지만 눈앞에서 내려다 날 내려다보고 있던 레밀리아의 표정이 어딘지 이상해 보였다. 뭐랄까? 눈썹을 찌푸리고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것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대면했을 때 지을 그런 표정이었다. 방금 전의 대사가 너무 이상했던 걸까? 어차피 정정하고 다시 말할 생각이라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려는데 레밀리아가 나보다 앞서 입을 열고 말한 것이다. 「아까 그 말, 다시 들려줄 수 없어?」 「응?」 「그러니까.. 그 내 생애에 한 점 어쩌구 말이야!」 레밀리아가 잘못 말한 마지막 대사를 다시 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왜지? 혹시 그 대사 맘에 들기라도 한 거야?? 설마... 아니... 생각해 보니 레밀리아도 중2병 기질이 다분했으니 세기말의 패자의 명대사에 꽂힌 걸지도 몰라. 대사 자체는 정말 멋지니까 말이야. 물론, 내 인생과는 하나도 맞지 않지만.. 저렇게나 간절히 원하니까, 나는 다시 한 번 세기말의 패자의 최후를 재현해 보기로 했다. 「내 생애에 한 점도 후회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은 불끈 쥐고 하늘 높이 올리니 저 흡혈귀 당주 녀석. 노골적으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거 혹시? 회생 플래그?? 그런 거야!? 「이봐.」 「왜...왜!?」 「죽일 거야 말 거야?」 「다.. 당연히 죽일 거야! 넌, 내가 살려 줄 거라고 생각 한 거야?」 「아니... 그냥 네가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 보길래.」 「그런 거 아니야! 그저 네 입에서 나온 유언 치고는 의외다 싶어서.」 아닌 척 하지만 내가 보기엔 레밀리아는 확실히 나의 그 대사에 꽂혀 멋지다는 생각을 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 이 기세를 놓치면 그땐 정말 바보겠지? 그런고로 나는 그녀의 호기심이 꺼지지 않게끔 다른 명대사로 말해보기로 했다. 이 대사는 어떨까? 「생전에 무슨 짓을 했던 간에 죽고 나면 가는 곳은 똑같아. 죽음은 평등하거든. 생이 길거나 짧아도 죽은 다음엔 거치는 곳은 피안의 삼도천일 뿐이지.」 앞부분은 데스노트에서 나온 대사를 나름대로 짜 맞춘 거고 뒷부분은 환상향 전용으로 누구나 죽고 나면 거치는 저승길을 말했다. 레밀리아의 눈이 또 다시 반짝인 걸 보니 대사 선정을 잘 한 것 같군. 그럼 이어서 말하지.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 하나? 심장 깊숙이 총알이 박혔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내가 이 대사를 치고 있을 때 레밀리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입은 반 쯤 열린 상태였다. 상당히 놀라고 있는 모습인데 왜 그런 반응인지 궁금했지만 아직 대사를 완전히 끝낸 게 아니니 마저 외기로 하고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을 입에 담았다. 「사람들에게서 잊혀 졌을 때다!!」 그와 동시에 「그거 ─ !」하고는 놀란 기색으로 소리를 지른 레밀리아는 곧이어, 크게 뜬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어왔다. 「너, 원피스를 알고 있는 거야?」 「너야 말로 잘 알고 있잖아?」 「그야... 맘에 든 만화니까!」 「흐흐.. 이런 곳에서도 만화가 유통되나 보네.. 아직 다 말한 게 아니야. 마지막 정말 하이라이트 대사가 남았는데 기억 한다면 같이 말해 보도록 할까?」 「그래.」 나는 레밀리아와 눈을 마주하고는 약속이나 했는 듯이 동시에 입을 열고 외쳤다. 「「정말!! 좋은 인생 이었다 ─ !!!」」 그 말을 마친 나는 아까 전부터 계속된 출혈로 인해 빈혈기가 강하게 돌았고, 어지러워진 머리로 인해 눈이 감겨옴 동시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 후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평소에 쓰던 손님방이었고 시간은 기절한지 이틀이나 더 지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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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쨩의 덕후기질로 구사일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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