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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치기어린 기분으로 자신은 특별하다고 여기던 때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기이고 이는 악마라도 피할 수 없었다. 바로, 나.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가 그랬다. 비록, 치기어린 시기라고 하기 엔 많은 나이였다는 게 문제지만. 나는 그 정도로 꿈이 많은 악마였던 것이다. 현실성 없는 허세의 종착점. 그것을 세간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중2병이라고. 하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거처 가는 시기이니 절대 부끄러워하지 말지어다.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씁쓸한 추억거리로 남길 수 있는 아련한 성장의 파편이다. 그 성장의 파편은 증거를 남기지 않았을 때.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도록 판도라의 상자 안에 꼭꼭 숨겨놨을 때에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좋은 추억거리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파편을.. 아니 너무나도 아픈 허세의 종착점 그 자체를 마주하고 만 것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나를 죽이러 왔다고.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나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과거의 자신이란 바로 저 소악마의 손에 들어간 나의 흑역사 모음집. 그 저주받은 출판물을 읽은 한 꼬마 당주가 있다. 레밀리아 스칼렛. 그녀가 지금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아는가? 연애인을 보는 선망과도 같은 눈과 조소에 찬 눈이 반반 섞여서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다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에서 나오는 너무나도 아픈 한 마디. 「혼돈의 대마왕이시여!」 그 한 마디에 나는 백사장에 모래성처럼 사르륵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동시에 이 곳. 홍마관의 문지기와 요정 메이드들이 나를 보며 수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이유도 알아 버린 것이다. 즉, 나의 흑역사가 이들에게 전부 까발려 졌다는 얘기가 된다. 이대로 있다간 나의 과거가 진짜 나를 죽이게 될지 모른다. 여서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역시 맞았네요. 저절로 손 운동이 되는 책을 쓰신 거 말이에요. 어서 사인해 주세요!」 「효과는 발군이었다고. 이거 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 손이 이렇게 오그라들려고 하잖아~」 으으.. 제발... 제발 그만둬... 그 이상 나를 창피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이렇게 속으로 애원한다고 해도 들어줄 턱이 없겠지. 아까부터 소악마는 사인해 달라고 아우성이고 레밀리아는 나를 혼돈의 대마왕이라는 낮 뜨거운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저 빌어먹은 저주받은 책을 태우지 않으면... 그래, 사인 해 주는 척해서 책을 뺏어들자.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소멸시켜 버리는 거야. HP가 거의 0에 가깝게 떨어진 상태지만 어찌해서 겨우 팔을 내밀어 소악마가 건 내준 사인펜을 받아든다. 그리고는 순순히 사인을 해주는 의미로 그 책을 확 낚아채고는 주문으로 태워 버릴러고 했는데 소악마는 손에 힘을 주고서 나에게 책을 뺏기려 하지 않았다. 왜 이러는 거야? 내가 책을 태우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거야? 소악마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서 사인해 주세요. 업화의 마신님~」 끄아아악!! 그만해.. 이젠 정말로 나의 HP는 0라고! 나는 온 몸에 두드러기가 돋아나는 기분을 느끼며 몸이 배배 꼬았다. 그 모습에 레밀리아가 소악마를 거들 듯이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다른 차원에서 대마왕님을 기다리는 충신들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사천왕들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런 설정... 내가 썼지만 정말 너무해! 다른 차원에서 내가 짱먹고 있었다는 설정은 말이죠. 현실에서 조빱인 게 불만이라 써본 거뿐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차원에서의 나는 힘을 잃고 있다는 걸로 자기 위안을 해왔을 뿐이라고!! 더 이상 정신공격에 이겨내지 못한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 않고 말았다. 그때 파츄리님이 나에게 다가와서 구원의 손을 내미는가 싶었는데.. 「코스모 렉터는 좀 너무한 네이밍이었어.」 「그만해 ──!!!」 나는 극도의 쪽팔림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절규를 하고 말았다. =SIDE 레밀리아 스칼렛= 녀석이 아까부터 괴로워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이걸로 소악마가 가져온 마계의 금서가 녀석에게 있어 흑역사란 것이 확연해 진거겠지. 잠깐만... 그렇다면 어째서 저렇게나 괴로워 할 정도의 흑역사를 출판시켜 낸 거란 말이야? 이건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다고. 괴로워 할 정도로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거라면 출판해내서는 안 되는 거 아냐? 아무래도 여기엔 그만의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는 것 같아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겠다. 다만, 저 반응 뭐야! 너무 재밌잖아!! 크하하하하! 실제로 처음 봤어. 자신의 흑역사에 괴로워하며 바닥을 뒹구는 거 말이야. 저게 소위 말하는 이불 킥이란 걸까? 그러니까 좀 더 괴롭혀 주고 싶어진다. 자, 어디까지 구르러나? 「소우시 다크.. 푸푸풉... 데스 하울링.. 키케케케켁!」 저 악마의 몸부림을 좀 더 보고 싶었기에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고귀한 밤의 혈통이 이런 식으로 잇몸을 드려내며 웃는 것은 체면이 달린 문제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무런 부각도 되지 않는다. 그야, 방금 내가 한 소리에 저 녀석이 무척 괴로워하며 비명을 질려대는 통에 모두의 시선이 저 녀석에게로 향하고 있거든. 아... 너무 웃어서 턱 밑으로 침이 흘려 내린다.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그거 내가 쓴 게 아니라고! 나를 사칭한 무언가다. 그 무언가가 나를 음해하려고 한 거야!」 바닥을 한참, 데굴 데굴 데굴 데굴 구르더니 이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흑역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악마 녀석. 그러고 보니 내가 저 녀석으로부터 허세 부리는 법을 배우려고 했었지? 이래서야 어렵겠네. 자신의 중2병에 저 정도로 괴로워하는 걸 보면 말이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의 카리스마로 괴로워 할 틈도 없이 공포를 새겨줘서 순종 시킬 테니까 말이지. 근데 파체. 아까부터 저 녀석한테 뭐라고 중얼 거리고 있는데? 나는 파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귀를 집중해 들었는데 「소우시는 일본식 이름인데 어째서 그 뒤에 다크라는 영어의 명사를 붙인 거야?」 그놈의 네이밍 지적. 아직도 하고 있나 보네. 내가 붙인 스펠명도 저런 식으로 일일이 태클을 걸어오더니 그 버릇 아직 못 고쳤나보다. 그런데 저건 보는 입장에서는 정신 고문으로 보이는데 말이야. 이러다가 저 녀석 멘탈이 다 나가겠다. 「그걸 무슨 생각으로 쓴 거야? 나는 이해가 안가서 묻는 건데? 그런 망상을 끄적거릴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좀 더 자신을 갈고 닦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데.」 「파체, 그만해. 저 녀석 얼굴을 보라구.」 「응?」 어휴.. 파체도 참, 아무리 지적하고 싶어도 그렇지 상대를 봐가며 해줬으면 해. 저걸 보라구. 악마 녀석이 완전 맛이 가버린 얼굴을 하고 있잖아. 이 쯤 되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단 말이야. 그런데도 파체는 여전히 마이 페이스로 자기 할 말을 늘여놓고 있다니까. 내가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파체의 지적이 멈추지 않는다. 녀석이 괴로워하며 망가지려 하는데도 봐봐, 또 소근 대며 녀석에게 말을 건네잖아. 「마이 슈퍼 이모랄 편은 도저히 다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어.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정신적인 고통을 줄 만한 글을 쓸 수가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래? 이건 연구 대상이야. 새로운 정신 공격 마법을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거야.」 파체... 너 그걸 연구 대상으로 삼은 거냐... 터무니없이 오글거리는 삼류 신파극에 억지 감동을 덕지덕지 써놓은 작위적 연출의 극치인데. 정신 공격 마법이라니.. 크크큭.. 맞는 말이다. 나도 그걸 읽다가 정신줄 놓을 뻔 했으니까. 「사랑하는 데몬 편이 진짜 정신 공격이 심한 글이에요! 저는 그 편을 몇 줄 안 읽었는데도 한동안 달달한 음식을 입에 대지 못했다니까요~」 파츄리의 말에 자신의 의견도 밝히는 소악마. 나는 마이 슈퍼 이모랄 편에서 좌절되어 사랑하는 데몬 편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역시나 소악마. 나 보다 뛰어난 정신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르겠군. 대체 얼마나 달달한 내용이 길래 한동안 단 음식을 못 먹었다는 거야? 호기심에 그 편을 보고 싶으나 분명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게 분명하니 인내하자... 자고로 나는 단 음식이 아니면 잘 삼키지 못하는 편이니 내 목숨과 연관되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나는 그 문제의 편을 읽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데 소악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인상 적인 구절이 하나 있어요.」 소악마의 입에서 한 동안 단 식을 자제하게 만들었다던 사랑하는 데몬 편의 한 구절이 흘려 나온다. 「내 영혼을 그대에게. 찬란한 우리 사랑을 전 마계가 축복해 준 다오~ 알러 뷰~ 알러 뷰~ 달콤한 그 입술에 내 영혼의 각인을 새기리라!」 그 닭살 돋는 구절이 나옴과 동시에 「으아아아악!」 하며 자기 머리를 쥐어뜯는 악마 녀석이 있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루키드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끔찍한 구절. 대체 저런 대사는 무슨 생각으로 쓴 거냐? 파츄리도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온 몸에 닭살이 돋아 오르는지 양팔로 몸을 감싸고 있잖아?! 소악마. 너, 우리들 까지 정신 데미지를 입게 만들려는 거야? 「어이, 소악마! 그 구절 너무 끔찍하다고 두 번 다시 꺼내지마.」 「에헷, 죄송해요. 하지만 이건 가장 약한 구절이고 이 보다 더한 건 정말로 단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할 정도로 달달 하답니다~」 「그쯤 해둬, 보나마나 유치하고 닭살 돋는 애증극의 끝판왕이겠지.」 보다 못한 파츄리가 소악마를 제지하고 나섰다. 저 건방진 소악마는 가끔 나를 우습게 알면서도 자기 주인인 파츄리 앞에서는 꼼짝없이 복종을 한단 말이야. 사역마들이란 전부 저런 놈들 뿐인 걸까? =SIDE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 버틸 수가 없다~(프로토스 톤으로) 아니 정말이야... 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쿄애니의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에 나오는 니부타니 신카의 마비노기온도 저 것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거라니까! 저 것은 무려 출판까지 돼서 마계 전역에 퍼져있는 저주 받은 물건이란 말이다. 내가 왜 마계에서 도망치다 시피 인간계에 머물렀겠어? 전부 다 저것 때문이야. 저놈의 흑역사 덩어리를 가지고 날 놀려대는 악우 녀석들을 피해 다녔었다고! 이곳이라면 마계에서 마음대로 넘나드는 곳이 아니니 더 이상 흑역사와 마주하지 않을 거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저 소악마가 가지고 있었다니. 어째서 운명이 이리도 가혹하게 돌아가느냔 말이야. 으흐흑... 파츄리님 자꾸 나한테 이건 왜 이런 거야? 하고 물어보지 마세요. 나도 저걸 쓰던 시절엔 별 생각이 없었다고요~ 그저 나 자신이 최고로 멋진 활극속의 주인공이라고 상정해 놓고 쓴 것들이란 말입니다. 각 화 마다 창작욕에 불타던 내가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썼던 이 글들을 내 악우들이 발견하고는 나 몰래 출판 업계에다 맡겨서 책으로 발행해 낸 겁니다. 나름대로 꽁꽁 숨겼다고 했는데 그런 건 귀신같이 찾아내요. 하여간.... 소악마 너 임마! 노골적으로 비웃지마. 레밀리아는 이젠 아예 날 동정하는 눈으로 보고 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어. 나 다시 돌아갈래!! 이젠 됐어, 나 못 참는다고! 그 흑역사 덩어리는 이 세상에 사라져야 해! 「게헨나의 업화로 불태워 주마!」 창피함을 넘어서 이젠 분노가 치솟아 오른 나는 소악마를 향해 마법의 불덩어리를 날렸다. 내 마법에 소악마가 휩쓸리는 것 따위 따질 게 아니다. 저 놈의 저주받은 책을 당장 불태워 없애야 한다는 생각만 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을 뿐이다. 자, 활활 불타서 사라지는 게 좋아! 그러나 파츄리님의 마법에 의해 순식간에 소각 되 없어져 버린 나의 불덩어리. 격이 다른 바람 마법으로 내 불 마법을 간단히 잠재운 파츄리님이 나를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쳐다 보며 입을 열었다. 「겨우 저 따위의 불 마법을 가지고 게헨나의 업화라니. 중2병이란 거 아직도 졸업 안 한거야?」 크아악..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었지.. 나의 흑역사란 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었어. 이런 유치한 허세가 습관적으로 배여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악마는 저 흑역사 덩어리를 부정할 자격이 있긴 할까? 이젠 창피함도 분노도 일지가 않는다. 그저 허탈함과 침울한 감정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 우울해... 진짜 죽고 싶어..... 으아앙~ 난 왜 이렇게 등신 같은 거야!!! 「싫어 ─ !!」 나의 비참한 절규에 파츄리와 레밀리아의 얘기가 들려왔다. 「파체, 저 녀석 망가진 거 아니야?」 「그러면 곤란해. 사쿠야의 가사를 돕기로 했는데 이러면 써먹기 힘들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또 다시 외친다. 「크크크... 그래, 나는 업화의 마신. 혼돈의 대마왕이시다!」 난 정말로 미쳐 버린 걸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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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답행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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