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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리사에게 소환된 지 일주일째가 되는 날. 마법의 숲에는 마력의 농도가 높아 아키바에서 생활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업을 정도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숙면을 해서 기분도 좋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착한 어린이의 표본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해야 하나? 악마인 나에게 여기만큼 건강에 좋은 환경도 없을 거다. 그에 비해 마리사는 이제 해가 중천인데도 침소가 아닌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어제 밤을 새가며 마법 공부를 한 것이겠지. 난 이렇게 노력하는 애를 보면 가슴 한 컨이 엄청 찔려오곤 한다. 내 스스로가 재능 없음을 탓하고는 담을 쌓아버린 마법인데 만약 저 애 만큼 노력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제대로 노력 해본 적이 없구나. 책상 옆에 나있는 창문을 통해 따가운 햇살이 마리사의 뺨을 밝혀주고 있었다. 공기 중의 먼지들이 새어나오는 빛에 의해 뿌옇게 보였고 그걸 보니 오늘이라도 당장 집안에 대청소를 단행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도대체 뭔 놈의 먼지가 이렇게 많은 거야. 이 먼지들을 내버려둔 나 자신에게 반성을 해본다. 그런데 마리사는 뭐 이렇게 달콤한 얼굴로 꿀잠을 자고 있는 거지? 이미 아침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깨워야 하겠지만 저렇게 까지 행복한 얼굴로 자고 있으니 건들 수가 없다. 새근새근 거리는 숨소리를 내는 입가에 침 자국이 새겨져 하얀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저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을 손으로 눌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하지말자. 나는 마리사 스스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며 나 먼저 아침 식사를 했다. 물론, 나중에 깨어날 마리사의 몫을 생각해서 여분의 식사를 만들어 놓고 책장을 가득 매운 책들 중 하나를 빼내서 읽었다. 상당히 난해한 내용의 마도서 였다. 마법에 담 쌓고 산 지 오래인 나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어려운 마도서를 저 어린 소녀는 잘도 읽었던 모양이군. 나는 지금 와서 다시 마법을 제대로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관두자. 나는 지금의 나로 만족한다. 적어도 이곳에서 생활하는 한 흑역사를 앞세워 나를 조롱해 오는 악우들도 없을 거고 이단 심문관 같은 정신 나간 인간들도 없을 테니까 말이야. 책장에 여러 책들을 살피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으음..」하는 마리사가 잠에서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눈을 비비는 마리사를 향해 「좋은 아침.」이라고 짧게 인사를 했고 마리사도 「하암~ 좋은 아침.」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눈에 붙은 눈곱을 땐 마리사가 비틀 거리며 욕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나는 미리 만들어 뒀던 아침 식사를 차렸다. 나는 식사를 만들 때 마다 느낀 거지만 이집의 식재료가 너무 한정적이라 만들고 싶은 음식을 조리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한 층 더 나아가 버섯에 치중된 식단이 되어버려서 먹는 입장에서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버섯 관련 요리에 관해서라면 그 바리에이션이 엄청 넓어져 버렸지만, 이제 슬슬 버섯 말고 다른 음식을 섭취하고 싶다고. 특히 고기 말이야 고기! 마리사 말로는 자신이 이집을 해결사 사무소 용도로도 이용하면서 의뢰를 받는 일을 한다고 했지만, 요 일주일 동안 그녀에게 의뢰를 해온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전에도 없었으리라 생각 된다. 마을에는 수호신 백택이 있고 하쿠레이 신사의 무녀는 요괴 관련 전문가라고 한다. 여기가 현대 사회처럼 불륜이 다분한 곳도 아닐 테고 뭣 하려 이런 미덥지 않은 마법사에게 일에 대한 의뢰를 해 올까? 그러니 해결사 사무소의 수입은 제로. 식료는 마법의 숲에 자생하는 버섯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좋든 싫든 간에 버섯을 먹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마리사 왈 「버섯의 멋짐을 알지 못한 네가 불쌍해」란다. 내가 볼 땐 네 쪽이 지나치게 버섯에 집착하는 걸로 보인다만... 이러니 기껏 홍마관의 도서관에서 대여 받아 온 몇몇의 요리책들이 빛을 바래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파츄리의 사역마로 전직할까? 욕실에서 씻고 나온 마리사가 내가 차려 논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왔다. 「그러고 보니 너 앞으로 여기서 살아갈 요괴인데 환상향연기가 개정해야 할지도.」 이보 게 나는 요괴가 아니라네. 그건 그렇고 환상향연기란 뭐냐? 「그건 또 뭐하는 거야?」 「환상향에 살아가는 인간들이 요괴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조심시키는 책이라고나 할까? 그걸 편찬해 내는 히에다노가에 들릴 셈이야.」 「그래? 난 요괴가 아니라서 상관없다고 보는데. 인간을 먹지도 않고」 「요괴가 아니라도 보통의 인간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실리게 되어있어. 심지어 나조차도 실려 있는 걸?」 「듣고 보니 별의 별 인사들의 정보를 모아 놓은 개인정보서류 같은 거네.」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굳이 일부러 히에다노가에 들리지 않더라도 네 정보가 실리겠지만 타인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서 미리 못 박아 놓는 게 좋을 거야. 히에다노 아레는 엄청 주관적인데다 삼자의 증언을 거르지 않는 주의라서」 「그 말은 누군가가 나를 안 좋은 쪽으로 증언해 버리면 정말로 그 증언대로 나의 인적 정보가 쓰여 져 버린다 이 말이네?」 「그래. 나도 네가 안 좋게 기록되어서 좋을 건 없거든. 일단 네 주인이기도 하니까」 마리사는 자신을 위해서 나를 마을에 있는 히에다노가에 데리려가려고 했지만 이건 나에게도 나쁠 게 없는 일이다. 괜히 안 좋은 인적 정보로 등록되어 봐야 피곤해 지기만 하니까 좋은 인상이여야 하지 않겠어? 오늘 나를 기록할 양반에게 최대한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야겠군. 인간과 우호적인 관계야 말로 내가 바라던 거니까. 나와 마리사는 오늘 마을로 가서 환상향연기란 것에 나의 인적 정보를 전하기로 정하고는 마을로 향했다. 환상향의 중앙에는 가장 큰 인간 마을이 위치해 있었고, 우리가 목표로 삼은 히에다노가는 그곳에 있었다. 가장 큰 마을이라고 해도 시대에 한 참이나 뒤쳐진 가옥들이 즐비했고 기본적으로 농경 사회인지라 마을 변두리에 보이는 것은 온통 논밭뿐이었다.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제법 층수가 높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그래봐야 시대극에서나 볼 법한 목조 건축물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서양식 건물과 카폐로 보이는 간판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사극을 찍기 좋아 보이는 촬영 세트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복식은 기본적으로 유카타 차림으로 간혹 서양식 복식을 한 별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중의 대부분은 요괴로 보였다. 대낮에 요괴가 인간들 틈에 끼여 당당하게 다니고 그걸 보는 인간들도 겁을 먹기는커녕 일상으로 여기는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 그러나 환상향에서는 그게 당연하다고 한다. 마을 안에서는 요괴들이 소동을 벌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설렁 인간을 덮치는 경우가 생긴다 해도 환상향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대부분 퇴마사 가문의 혈통들이라 자경단들이 제압을 하거나 자경단이 상대하기 힘들다면 백택이, 그것도 힘들다면 최종 병기인 하쿠레이 무녀가 나선다고 한다. 제 아무리 혈기 넘치는 요괴라고 해도 하쿠레이 무녀가 나서는 걸 알면서도 소동을 일으킬 멍청이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강대한 대요괴라도 예외가 아닌데 환상향 법도 제 일조라고 봐도 무방한 ‘환상향에 살아가는 모든 인요는 하쿠레이 무녀를 해 할 수가 없다’라는 규칙 때문이다. 만약 진심으로 해 하려고 했다가는 환상향 모든 인요들로부터 적으로 간주 당하게 되겠지. 거기다 지금 대의 하쿠레이 무녀인 레이무는 홍마관의 당주 레밀리아와 아주 친하다고 한다. 그 뿐이냐? 마리사 얘기론 명계의 공주와 오니 사천왕 중 하나와도 친하며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신들의 비호를 받는 존재란다. 덤으로 환상향을 대결계로 격리하는데 일조한 야쿠모 유카리라는 덕력이 참 깊은 대요괴도 레이무의 백이다. 환상향에 내 놓으라 하는 강대한 자들이 전부 레이무의 백인데 누가 미쳤다고 그녀에게 대들 수가 있겠어? 그걸 모르던 때의 내가 레이무의 겨드랑이에 홀려 성희롱을 해버릴 뻔 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하지 않았나 싶다. 백이 없더라도 레이무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절대 거역하면 안 될 존재이긴 하다. 히에다노가는 인간 마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규수 가문으로 그 저택을 처음 봤을 땐 고풍스러우면서도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규모에 감탄이 흘려 나왔다. 대문 안으로는 히에다노가를 지키는 경비병 들이 몇 명 보였는데 마리사를 보자 손을 흔들어 주었고 마리사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꽃다운 나이의 소녀가 자신들을 보며 웃어주니 좋아 죽는다는 표정으로 환호하는 경비병들. 병사란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 간에 상관없이 저러단 말이야. 노인이라도 치마만 두르면 환장하게 만드는 곳이 군대지만 그건 이곳의 경비병들도 별반 다를 게 없나 보다. 연못이 있는 마당을 지나 스즈의 ‘탁’소리를 들으며 저택 본채에 다가가자 「아큐, 나 왔어!」하고 호령하는 마리사. 그 소리에 반응을 했는지 장지문이 열리면서 머리에 동백꽃을 단 단발 머리 소녀가 걸어 나왔다. 그 소녀는 마리사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했고 시종을 시켜 응접실로 안내를 했다. 응접실에서 대접해 주는 화과자를 먹으며 기다리고 있자 옆에 두루마기를 끼고 귀에 붓을 낀 아큐라 불려 진 소녀가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뵈신 분이네요. 저는 히에다노 아큐라 합니다. 히에다노 아레라 불리는 환상향연기의 저자이죠.」 「네. 저는 옆에 있는 말괄량이의 사역마 노릇을 하고 있는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입니다.」 「누가 말괄량이라는 거야!」 마리사는 볼을 부풀리며 따가운 눈총을 나에게 쏟아 부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리는 히에다노 아큐. 작지만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소녀였다. 인간이니 실제 연령도 겉모습에 어울리는 나이일 텐데 그 보다 훨씬 나이 많을 레밀리아 보다 단연 이쪽이 어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행동이나 말투 하나하나가 규수의 몸가짐이 전해졌고 나에게 던져오는 질문이나 대답에 대한 반응들이 그 나이 또래라고 생각이 되어 지지 않을 만큼 어른스러웠기 때문이다. 「악마라는 종족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네요.」 「처음 본 악마가 이래서 참 죄송하네요. 하하하」 아큐의 처세는 상대가 원하는 반응을 미리 알아채고 적당하게 칭찬을 하거나 관심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질문에 최대한 많은 답변을 끌어내는 데에 능하였다. 저 나이에 가능한 처세술이 절대 아닌 거 같은데?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잠시. 띄워주는 것에 약한 나는 어느새 그녀의 처세에 빠져서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털어놓고 있는 중이다. 그 탓에 혼자 남겨진 마리사가 지루한지 옆에서 계속 툴툴댔다. 「그만하면 충분한 거 아니야?」 「아직 이야. 좀 더 나의 위대함을 말해주지 않으면..」 「아까부터 둘이서만 계속 얘기하고. 심심하다구!」 나는 뿌루퉁한 얼굴로 볼멘소리를 한 마리사를 쳐다보고는 아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기 아큐 씨, 여기 사탕이나 과자 있나요?」 「네? 화과자라면 잔득 있지만... 필요하시면 시종을 시켜 얼마든지 가져와 드릴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제 옆에 있는 애가 투정을 부리니 과자로 달래지 않으면 안돼서 말입니다.」 「그런 거라면 질문을 멈추고 차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요?」 「그거 좋습니다. 우리 마리사도 상대해 주지 않으면 곤란하니 말이죠. 하하하」 나는 그렇게 웃으면서 딸을 보는 아빠의 눈으로 마리사를 쳐다봤는데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 본 마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짜증내는 투로 말했다. 「애 취급 하지 마!」 그리고는 그대로 응접실 밖으로 나가버린 마리사. 아무래도 내가 너무 놀린 것 같네. 뒤 쫒지 않으면... 「우리 애가 많이 삐친 것 같습니다. 애가 멀리 나가면 곤란하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세요. 듣고 싶은 대답을 충분히 들었으니 좋은 기록이 나올 것 같네요.」 아큐는 응접실을 나와 마리사를 찾으려 간 나를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나저나 마리사 녀석 어디로 간 거야? 이대로 집까지 날아가 버렸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마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찾는다고 두리번거리고 있어?」 「널 찾는다고.」 대문 옆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잔득 삐쳐있는 마리사에게 「미안」이라고 짧게 사과를 했지만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말이란 걸 안 마리사는 인상을 구기며 불만을 뱉어냈다. 「사역마 주제에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 아큐 앞에서 애 취급을 해놓고 진심 없는 사과라니. 정말 너무해!」 「많이 화났쩌여~? 우쭈쭈쭈쭈...」 「너 끝까지 주인에게 그런 태도를!! 너 같은 사역마, 역시 필요 없어!」 그렇게 나오는 구나. 처음부터 필요 없었던 주제에. 언제는 필요했었나? 내가 봐도 네가 날 소환한 이유가 마법사 동지끼리의 경쟁심으로 보인다만 틀려? 뭐 그렇게 물어 보고 싶지만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미 내 안에서 확정 지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마리사가 알지 못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지. 악마를 사역하는데 드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주제에 주인 행세를 하는 건 뻔뻔하지 않나? 지금에서야 제대로 알려 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귓구녕 열고 똑똑히 들어. 「날 소환한건 네가 맞지만 그렇다고 내 주인이라고 칭하는 게 아니야.」 「뭐야? 그럼 내가 네 주인이 아니라는 거야?」 「넌 악마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역하는 걸로 알고 있는 거야?」 「뭐가?」 「정말 모르나 보네. 사역마는 무급 봉사하는 존재가 아니야. 주인 밑에서 일하는 악마들은 모두 주인으로부터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일해. 홍마관의 소악마만 하더라도 도서관의 책들을 마음껏 취급할 수 있다는 대가로 일하는 중인데 나는 뭐냐? 네가 나한테 그 어떠한 보수나 지불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거냐고?」 「그게... 의식주 마련해 주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야? 딱히 힘든 일도 안 시키잖아.」 「쯧쯧쯧... 저렇게 생각이 짧아서야. 악마에게 주인으로 인정받은 마법사들은 사후에 영혼이나 그 육신 자체를 대가로 거래를 했었고 지식을 양도하거나 자신의 전 재산 혹은 자식들을 담보로 부리는 경우도 많았어.」 「그게 어쨌다는 거야? 설마 나더러 그런 대가를 너에게 지불하라는 거야?」 「네 말대로 집안을 정리하거나 식사를 차리는 일 외엔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 만한 대가를 요구하진 않아. 대신 그에 준하는 대가를 받았으면 하는데. 예를 들어...」 「예를 들어?」 마리사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뭇 진지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나는 희미한 미소을 띄우며 말했다. 「그 예를 말하기 전에 물어 볼 것이 하나 있는데.」 「뭔데?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물어봐.」 「너 아직 처녀지?」 「무...무무무..뭘 묻는 거야!」 얼굴이 순식간에 화악하고 달아오른 마리사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저 반응을 보니 요즘 근대의 소녀들에게는 볼 수 없는 순진함이 느껴졌고 이런 애는 나의 경험상 처녀다. 그러니까 나는 확신을 하며 말한다. 「처녀 맞구나.」 「........」 그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마리사. 저런 반응은 정말 귀엽다고 해야 하나? 내가 그녀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사역마로 지낸 이유도 저런 귀여움 때문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자주 놀리는 거야. 반응이 귀여우니까. 흐흐흐.. 사실 혼을 요구한다느니 자녀를 담보로 부려지는 그런 악마들은 상급 악마들이라는 건 비밀. 그럼 슬슬 하이라이트를 말해 볼까?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건 너의 처녀. 아주 값싼 요구라고. 혼 보단 못하지만 순결한 여자의 처녀는 아주 귀중한 거라서 회소성을 좋아하는 악마들에겐 좋은 협상의 도구야.」 「처녀라니.. 너 설마 날?」 「눈 한번 딱 감고 처녀 딱지 떼면 앞으로 평생 널 위해 봉사할 건데 싫어?」 「... 싫어.」 「응?」 「싫다구! 이 변태 새끼야!!」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든 마리사의 얼굴이 이번엔 분노로 붉었다. 강한 적개심을 품고 나에게 팔괘로라 불리는 작은 팔각형의 나무 조각을 들이대더니 전력을 담은 마포를 그대로 토해냈다. 스펠 카드 룰을 적용시키지 않은 살상력 만땅의 마포를 나에게 쏘아댄 거다. 진짜 날 죽이려고 환장했나! 하고 욕지거리가 나왔지만 예민한 감수성의 소녀를 놀린 건 실수다. 마리사가 나 보다 강한 시점에서 함부로 깝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저런 화력을 막아낼 턱이 없고 근거리라 피할 새도 없다. 눈앞이 새하얗게 되는 시점에서 각오를 해야 되는 것이다. 통구이가 되는 각오 말야. ─ 쿠아아아앙! 마포를 맞고 그대로 날아간 나는 어느 건물의 외벽을 뚫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충격으로 몸엔 심한 타박상과 함께 갈비뼈가 몇 개 나가버린 것 같지만, 그보다 대낮에 날벼락을 맞은 이 집의 가족들의 시선이 쓰려져 있는 나에게 쏟아지는 게 더 신경이 쓰였다. 하필이면 마포를 맞고 날아간 곳이 일반 가정집이었다니. 그것도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밥상을 차리고 식사를 하던 중이었던 것 같다. 잔해 속에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나를 보는 그 가족들의 눈초리가 심히 불편했다. 아니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내 탓이 아니고 마리사가 앞뒤 안 재고 마포를 날린 탓이니 날 원망하지 마세요! 나도 피해자라고요. 아파죽겠다고요!!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변명거리 밖에 안 되겠지.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는데 뚫려진 벽 밖으로는 이미 구경꾼들이 몰려와 시선이 집중되었다. 으으 불편해.. 이런 관심 그다지 달갑지 않은데. 구경꾼들의 시선은 무너진 가정집의 벽에서 기어 나오는 나와 반대편에서 대치중인 마리사에게 양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나와 마리사 간에 싸움이 난 줄로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이미 저의 패배입니다. 난 저 애를 이길 수가 없어요. 그러니 기대 하지 마! 라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이미 구경꾼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세워 들어보니 ‘저 요괴가 먼저 시비 걸었어’ 라던가 ‘키리사메 집안의 딸이라던데 강하다고 들었어’ 라는 등 잡설이었지만 그 중에서 ‘누가 이길지 판돈 걸까?’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섞여있었다. 얼른 수습하지 않으면 귀찮게 될 것 같아 마리사에게 성큼 다가가서 「잘못했어!」 하고 솔직하게 사죄를 할 생각이었는데 「거기, 마법사! 얼른 저 요괴를 날려버려!」라는 싸움을 부추기는 구경꾼의 말이 들려왔다. 곧 이어 「어이, 요괴! 나, 너한테 판돈 걸었어!」하는 나에게 기대를 거는 말도 들리는 게 아닌가? 누구 맘대로 판돈을 거는 거야! 마치 시비를 거는 거 같아서 그 자식들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참자. 일단 마리사를 설득해서 이 자리를 뜨는 게 먼저인 관계로 구경꾼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마리사에게 말했다. 「마리사, 구경꾼들이 판돈을 걸기 시작했어. 귀찮으니까 어서 뜨자고.」 「그래? 후후후..」 뭐냐 그 자신감에 찬 웃음은? 설마 마리사 너? 구경꾼들의 바램대로 나랑 한 판 싸우려고 드는 거야? 난 싫은데. 정말 일이 짜증나게 돌아가네. 곤란하다는 나는 눈빛으로 마리사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눈에서 나를 이 자리에 때려눕혀 마을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겠다는 의지가 읽혀졌다. 「여기까지 주목을 받은 이상 그냥 물러날 순 없잖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지. 내가 대단하다는 걸 증명할 기회는 흔치 않은걸.」 내가 처녀 드립을 쳐서 수치심을 느끼던 소녀는 더 이상 없었다. 오로지 승자로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파이터가 있을 뿐이다. 내가 희생양이 라는 게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지. 「스펠 카드 룰로 탄막전을 할거야?」 「아니, 구경꾼들이 잘 보게 탄막전은 안 할 거야. 싸울 공간도 협소해서 스펠 카드 룰 없이 단판 승부로 간다!」 「야 임마! 나 더러 죽으라는 거야?」 「그래, 죽어! 이 변태 악마야!!」 아직도 앙심이 남아있는 겁니까? 마리사는 좀 더 쿨 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뒤끝이 있구나. 소녀에게 참 몹쓸 말을 한 탓도 있지만 마법사가 된 자라면 그깟 소녀심은 빨리 버려버리는 게 좋을 건데. 어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꼴사납게 당해야 하나? 아니 최대한 저항해 보자. 어쩌면 운 좋게 내가 이길지도. * 이기지 못 했다. 너무도 싱겁게 나의 패배가 확정되었고 구경꾼들은 관심이 금세 사그라졌는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중에서는 나를 향해 침을 카악- 퉷 하고 뱉어내면서 욕지거리를 하고 가는 무뢰배도 있었다. 아마 나에게 판돈을 건 자일 것이다. 싸움의 행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나에게 별모양 탄막과 레이저로 견제하던 마리사 품에 파고든 나는 근거리에서 칼날 바람을 일으켜 옷을 찢어 버리려 했지만 그 순간 마리사가 빗자루를 들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더라. 그리고 내가 있는 자상을 향하여 발사한 마스터 스파크. 그걸 정통으로 맞은 나는 그대로 K.O 뭔 놈의 소녀가 이리도 전투에 능한 거야? 밥 먹고 쌈박질만 했냐? 홍마관의 그 허약해 보이던 파츄리란 마법사도 대응력만 놓고 보면 백전용사였고 그녀의 사역마인 소악마 역시 최소 상급 악마 수준이었어. 그 나이스바디와 전투력을 보면 소악마가 아니라 대악마 던데. 내 주변이 쎈거야 아니면 내가 너무 약한 거야? 으아아아앙 ㅠㅠ 안 그래도 많은 구경꾼들 보는 앞에 떡실신을 당해서 창피한데 이후 마리사가 나에게 한 말은 심장의 비수를 꽂는 잔인한 말이었다. 「너, 너무 약해서 이겨도 주목 받지 못했어.」 「약 올리는 거야?」 「먼저 약 올린 쪽이 누군데.」 너 한테 안드로메다 캐관광을 당하고 침울해 하고 있는 나에게 위로는 못해줄 망정 그게 할 소리냐!? 다 필요 없어. 나 네 사역마 안 할래.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는 마녀 코스프레야! 나는 있는 대로 삐친 기분으로 마리사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그대로 홍마관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나를 잡으러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홍마관으로 가는 도중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정말 날 잡지 않을 모양이다. 마리사도 나에게 만 정이 다 떨어진 걸까? 일주일 같이 생활 한 걸로 뭔 놈의 정이 붙겠냐마는 이대로 나와 선을 가르려는 게 좀 서운한 기분이 든다. 내가 마리사를 애 취급하며 놀린 데서 시작된 다툼이 결국 서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될 줄이야. 상관없다. 홍마관에 취직하면 적어도 하루 세끼 버섯만 먹는 생활 보다는 훨씬 나을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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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마리사와 틀어진 루키드는 홍마관에 취직하게 된다는 에피소드.
그러나, 번외편인 혼돈의 대마왕을 본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뻔히 보임.
[번외] 혼돈의 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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