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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의 안내로 들어선 주점엔 주문도 하지 않았는데, 미리 술상이 한 가득 차려져 있었다. 켄이 마을의 수호를 마치고 돌아올 때를 맞춰서 준비된 것이었다. 그만큼 주점의 주인에겐 켄의 술상을 차리는 것은 일상의 한 영역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익숙한 것이었다. 이번엔 그와 같이 있다는 소녀의 몫까지 합쳐서 2인분의 술상을 차렸다. 서로 마주보도록 자리를 잡아 앉은 켄은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기 앞서 이부키의 잔에 다 술을 비웠다. 「일단, 맛을 보라고. 죽여준다니까!」 자신이 보증하는 술의 맛을 조금이라도 빨리 맛보게 하고 싶어서였다. 켄은 이부키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키는걸 기대하며 자신의 술잔을 채우는 것을 잊은 채 가만히 그녀의 술잔을 응시했다. 그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이부키는 무언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술잔을 들어 단숨에 끝까지 들이켰다. 술을 집어 삼킨 이부키는 술잔을 내려놓는 동시에 콜록콜록 기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어간 술은 알싸한 향과 함께 지나간 자리를 태웠고, 코에서는 뜨거운 김이 새어나왔다. 기침과 함께 눈에서 짜디 짠 물기가 스며든다. 몸에 맞지않은 이물을 억지로 삼킨 것처럼 연신 기침을 토해낸 이부키의 얼굴은 술을 처음 마신 아이와도 같았다. 눈가는 심하게 씰룩이고 있었고, 입가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입에 남아있는 쓴 주향을 지우기 위해 안주로 나온 고기조각을 맨손으로 집어 먹은 이부키는 입안에서 충분히 씹은 다음에야 한 마디 했다. 「이 쓰발아.. 존나 쓰잖아!」 이부키의 입에서 어떤 평가가 나올까하는 기대를 가졌던 켄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자신이 자랑하는 술이 쓰기만 하다니.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하는 의심에 켄은 얼른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른 뒤, 한 모금 마셔보았다. 「으음.」 자신이 잘 알던 술 맛이었다. 그렇담 문제는 없을 것이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면, 다름 아닌 그 술을 쓰게만 느낀 이부키의 혀가 잘못된 거겠지. 켄은 잔에 술을 마저 들이 키고 나서 말했다. 「이상하네? 맛있기만 한데.」 입을 쩝쩝 다시면서 이부키의 잔에 술을 비우는 켄의 얼굴은 아리송해하는 표정이었다. 잔을 넘치지 않을 정도로 따른 그가 이어 말했다. 「너 혹시, 술을 잘 못하지?」 바로 대답하지 못한 이부키가 고기 한 조각을 더 씹어먹으면서 딴청을 부렸다. 「묻잖아.」 「술을 잘 못하는 게 아니야.」 켄이 짜증을 부리며 대답을 촉구해오자, 고기조각을 꿀꺽 삼킨 이부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어 인상을 쓰며 불평 소리를 했다. 「이 술이 더럽게 쓴 거라고! 나 한테는 안 맞아.」 허허. 켄이 웃었다. 「술 못하는 거 맞네.」 그렇게 자신이 술 못한다고 확정을 짓는 켄이 얄 미운지, 이부키의 표정이 괴팍하게 일그러졌다. 이를 있는대로 드려내서 크르릉 거리는 사나운 숨소리까지 뱉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살기란 느껴지지 않았다. 켄은 그런 이부키를 쾌활한 어조로 달래고 어르듯 말했다. 「거. 너무 흥분하지 말고, 내 얘기를 천천히 들어 보라고.」 워워~ 성난 소를 진정 시키는 것처럼, 양 손바닥을 천천히 아래위로 놀린 켄은 잠시 후, 사나운 기세를 지우고 토라진 얼굴로 진정된 이부키를 보며 다행이라는 미소를 지었다. 「술을 못한다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 「내가 언제 창피하댔냐?」 「아니야? 미안.」 팔짱까지 끼며 툴툴거리는 이부키의 말에 장단을 맞춰준 켄은 그녀의 표정을 읽으며 얘기를 이어갔다. 「술의 참맛은 바로 이 쓴 맛에 존재하지. 이 쓴 게 인생이라는 것과 같아.」 「개소리 좀 작작해라.」 「그러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 흥. 하고 삐친 듯 보였으나 이부키는 켄의 하는 얘기를 무시하지 않고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그의 말한 대로 이부키는 술을 잘 못했다. 이부키산에 살적에도 국상사에 치고로 있을 적에도 몇 번인가 기회가 있어 술을 입에 댄 적이 있으나 그 특유의 알싸한 향과 쓰디 쓴 맛에 의해 몇 모금 마셔보지도 못하고 입을 떼야만 했었다. 그녀에게 술은 너무 일렀는지 모르나,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 술이란 그저 쓰고 알싸하기만 한 더럽게 맛없는 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저 켄이라는 오니가 입이 닳고 마르도록 칭찬하길래 단지, 호기심에 마셔보기로 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시나. 술은 너무나 썼고, 알싸한 주향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켄이 자신에게 무슨 얘기를 들려주려는 건지, 딱히 궁금하지 않은 이부키지만, 이 쓰기만 한 물을 맛있다며 칭송하는 이유 정도는 들어보고 싶었다. 술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분명, 그가 하려는 얘기 속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질겅질겅. 허기진 배를 안주로 나온 고기로 채운 이부키는 반쯤 감긴 눈으로 켄의 얼굴을 살폈다. 안주도 없이 술을 물처럼 들이키는 켄의 입에서 그 이유가 나오길 적잖이 바라며, 무심한척 턱을 괘면서. 술로 갈증을 달랜 켄이 입가에 흘려나온 술을 손으로 닦아내고, 이야기했다. 「너도 요괴니까 오랜 세월 살아왔을 거 아냐? 백년도 못 사는 인간도 인생의 쓴 맛을 술의 쓴 맛으로 달래는데 하물며, 몇백 년을 사는 요괴가 인생의 쓴 맛을 모를까? 그런 거 따윈 신경 쓰지 않는 녀석도 많지만, 나는 달라. 술이란 그 쓴맛 보다는 이후에 올라오는 취기가 본질이라고 하지만은.. 나는 술의 쓴 부분이 맘에 들어. 인생과 닮아있는 그 부분이 말이야.」 켄이 자신의 빈 잔을 술로 채우면서 살며시 웃었다. 그것은 쓴웃음이라기엔 산뜻했고, 해맑다고 보기엔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기이하기 짝이 없는 그런 미소였다. 「그러니까. 쓰다고 나쁜 게 아니야! 쓰니까 좋은 거다 이 말이야!」 언성을 높이고, 고함치듯 주절대는 말은 주정이었다. 잔이 큰 것도 아니건만 이제 두 번 들이킨 것 치고는 너무 빠른 취기였다. 다시 말해, 켄은 술을 좋아하는 것 치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주량을 지녔던 것이었다. 취했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듯이 그의 얼굴은 언제부턴가 홍당무처럼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술의 참맛은 바로 이 쓴맛에 존재하지. 이 쓴 게 인생과도 같아.」 잔에 담신 술을 바라다보며 중얼거린 소리는 아까 했었던 말이었다. 켄은 살짝 풀려진 눈으로 이부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주저 없이 잔을 들어 입안으로 술을 들이켰다. 「너 이 새끼.. 완전 취했네. 얼마 마시지도 않은 주제에 벌써 개가 되고 지랄이야.」 이부키의 입에서 핀잔 소리가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개소리를 찍찍 뱉어대던 그였으니 취하고 나면 얼마나 더 개소리를 내뱉을지 안봐도 뻔한 사실. 행여나 그의 입에서 술을 좋아할 만한 그럴싸한 얘기를 기대했던 이부키는 눈살을 찌푸리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취기에 의해 상대의 반응을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된 켄은 이부키가 어떤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돼먹지 않은 애주 철학을 나불거리며 저 혼자 떠들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주정 부리는 그의 혀가 점차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이젠 알아듣기도 힘든 목소리로 주정을 늘어놓던 그가 혼자 들떠서는 제풀에 못 이겨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아아.. 인생은 고달파라~, 이 검 한 자루에 모든 걸 건 외길 인생이여어어~~」 주정에 이어 가무까지 이어졌다. 이른바 음주가무란 것이겠지만, 그의 경우 음주검무란 표현이 적절했다. 자작으로 지어낸 노래를 차마 듣지 못할 목소리로 흥얼거린 그는 그 가락에 맞춰 검을 뽑아들고는 허공을 향해 사정없이 휘저어댔다. 그는 주량도 적을 뿐더러 그 버릇마저도 매우 고약했던 것이다. 망나니로 돌변해버린 켄을 한심하다 못해 딱하다는 눈으로 보던 이부키가 주인장에게 한숨 섞인 어조로 물었다. 「주인장, 저 녀석 맨날 저래?」 「... 네.」 하아. 한숨을 내쉰 이부키가 고개를 절레 흔들고는 잔에 따라져 있던 술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게 대체 뭐라고, 저리도 좋아하는 걸까? 납득이 안가는 얼굴로 들이킨다. 그리고─ 「크─, 젠장. 역시 더럽게 쓰네.」 쓴맛은 여전했다. 이게 정말 좋은 거라고? 웃기지도 않지만, 술에 취해 허공에 칼질을 하고 있는 켄은 지금도 쓴 게 좋은 거라며 인생까지 연관시켜 칭송중이다. 이부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가심을 위한 고기조각을 집어먹다가 잔을 따르고 또 한잔 마셔보았다. 「크아아─.」 역시나 이 쓴맛이 좋다는 쪽이 이상한 거다. 이부키는 코를 시큰거리게 만드는 주향에 재빨리 안주를 입에다 집어넣었다. 쩝쩝 소리 내며 씹으면서 저 혼자 발광하고 있는 켄을 노려보며 큰소리로 짜증을 냈다. 「야! 고만 좀 지랄해라!」 그 소리에 고주망태의 그가 아까 까지 덩실댔던 검무를 그만두었다. 동작을 멈추고, 이부키의 얼굴을 잘 못 들었다는 표정으로 뚱하게 쳐다본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검을 고쳐 잡고, 와아- 하는 외침과 함께 큰소리로 고함쳤다. 「내 인생을 욕되게 보지마라 ─ !」 정신을 놨는지. 완전히 실성을 해버린 켄의 검이 이부키의 머리를 향해 세로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취했다곤 하나 바위도 쪼개는 검의 극의에 달한 일격. 이부키는 그 일격을 가소롭다는 듯이 몸을 틀어 피하고는 그의 품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말귀를 못 알아 들은 거야?」 허리에 붙였던 주먹을 켄의 명치에 꽂아 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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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개됨.
사회에서 가끔 저런 인간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거 치곤 주량이 조루인 친구. 그리고 취하고 나서는 개가되는..
주말이라 그런지, 글을 못 쓰겠음. 이것도 눈치 보며 겨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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