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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에 퇴치해 버릴까?」 겨드랑이 무녀의 손에 들린 부적이 푸른 불꽃을 발산하고 있었다. 저것은 퇴마술로 발동된 영력인가 하는 힘일 것이다. 음양도나 선술 같은 류에 생소한 내가 봐도 보통의 힘이 아니다. 비교를 하자면 마리사에게 소환되기 직전에 만났던 이단 심문관 보다 아득히 격이 높아 보이는 기운을 품고 있다. 즉, 개기면 죽는다는 거겠지. 만약 저 무녀가 진심이라면 난 정말로 죽은 목숨이다. 그깟 겨드랑이가 얼마나 비싸 길래 나 같은 하급 악마는 가볍게 죽일 만한 힘을 부적에 담아대고 있는 것일까? 튜토리얼 npc인줄 알았는데 유저를 상대로 무적에 가까운 스텟을 자랑하는 경비병 npc였어! 저 부적에 맞으면 가볍게 끝나지 않을 거란 두려움에 나는 어느새 무녀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고 생존을 위한 구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퇴치할거면 살살해 주세요. 겨드랑이가 예뻐서 무심코 쳐다본 거뿐입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구경 중인 마리사의 ‘카하하’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여는 레이무. 시니컬한 표정이었다. 「알았어. 그만 일어나, 부담되니까.」 무녀의 허락에 나는 상체를 세우고 꿇었던 다리를 폈다. 굉장히 쿨 한 성격인 것 같은데? 아직 어려보이는 외향에 비해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가 감도는 무녀는 몸을 돌려 마리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능청스러운 얼굴로 웃고 있는 마리사에게 말을 건네는 레이무. 「뭔가 좀 음흉하고 이상한 녀석이야. 너도 취향이 참 특이해. 저런 녀석을 사역마로 데리고 있다니.」 「실은 다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서 데리고 있는 거야.」 「그럼 그냥 숲에다 방생해 버리는 건 어때?」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이보쇼~ 내가 포켓몬인 줄 아나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본인 앞에서 너무한 얘기를 한다. 나라고 해도 오덕 라이프를 못 하는 곳에 소환 되서 불만이 상당한데. 「아직 내 소개를 안 했지?」 마리사는 나를 무녀에게 소개를 했고 이어 무녀가 「하쿠레이 레이무야」하고 짧게 자신을 밝혔다. 무녀는 이 신사에 거주하며 요괴 퇴치를 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데 평소에도 인간과 요괴를 차별을 두지 않는 다고 마리사가 말했다. 그 탓일 까? 자신 이외에는 상당히 쌀쌀맞다는데. 그래도 손님이라고 차와 함께 전병을 대접해 주는 레이무. 별채의 툇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는 레이무를 보며 나도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좀 쓰지만 녹차의 향이 은은하게 펴진다. 마리사는 녹차가 별로인지 찻잔을 들지도 않고 전병만 집어 먹고 있었다. 「좀 적당히 집어먹어.」 레이무가 불만인지 마리사를 째릿 하고 노려봤지만 마리사는 전병을 집어먹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우걱 우걱.. 어차피 공양물이니 공짜잖아?」 「공양물이니 더 아껴 먹으라는 거야.」 공양물이라니? 이런 외진 곳에 공양물을 들고 오는 사람이 있긴 한 건가? 환상향의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날아다닌다는 이론이 진짜일지도. 그래서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공양물은 마을 사람이 들고 오는 거야?」 「음... 그게 말이야~」 마리사가 조금 뜸을 들였고 이어 말하려는 순간 공중에 검은 선이 그어져 틈새가 생기더니 순식간에 입을 벌리고 검은 공간이 생겨났다. 검은 공간 안에는 기분 나쁜 눈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불길한 요력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금발의 미인이 솟아났다. 미인이 미소를 짓더니 ─ 「그건 바깥세계의 하쿠레이 신사에 조공된 공물이 이곳의 하쿠레이 신사로 흘려들어온 거지.」 ─ 마리사의 말을 대신 설명했다. 나는 저 미인에게 누구세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사신의 낫이 내 목에 걸쳐져 있는 감각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라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레밀리아의 허세용 요력 방출이나 레이무의 영력 담긴 살인 부적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죽음이 저 미인에게서 풍겨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나에 비해 저 마법사와 무녀는 참으로 태평하기 짝이 없었다. 저 이상한 공간에서 상반신만 내밀고 있는 수상한 여자가 신경 안 쓰이는 거야? 저 여자에 대해서 나는, 슬레이어즈의 제로스를 방불케 하는 수상쩍음과 위험한 냄새를 풍기지만, 눈을 떼기 힘들 정도의 미인이란 감상이 들었다. 자색의 눈동자는 빨려들어 갈 것 같이 아름다웠고, 거기다 풍만한 가슴이라니. 눈동자와 같은 색의 드레스도 가슴골을 훤히 드려내고 있어 미치도록 고혹적이었다. 다만, 머리에 쓰고있는 리본달린 천 모자는 흡사 나이트캡을 연상 시킨다. 머리로는 죽기 싫으면 당장 달아나라고 명령을 보내고 있지만 수컷으로서 아래는 불끈해 지려는 이 오묘한 상황. 나는 저 기괴한 미인에게서 억지로 눈을 돌려 마리사들을 쳐다봤다. 마리사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 전혀 다른지 평소 같은 모습으로 저 미인에게 툴툴대며 말했다. 「내 말을 뺏지 말라구!」 「어머, 미안하게 되었네. 뜸 들이 길래 대신 설명해 준 건데.」 「대체 뭐하려 온 거야? 요괴.」 레이무가 마리사와 미인의 대화 도중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미인이 사이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무에게 대답한다. 「나는 환상향에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용무가 있어 온 거야.」 「그런 거라면 나한테 맡겨도 되잖아.」 「하지만 이번엔 나도 흥미가 있는 걸?」 「뭐, 단순한 변덕이겠지만.」 「변함없이 차가운 걸? 후훗, 그래서 좋아해.」 저 미인 씨. 방금 무녀에게 고백하지 않았나요? 으음.. GL이라니. 유루유리 같은 가벼운 백합애니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저 둘의 관계는 뭘까? 레이무는 츤츤 대는 쪽이고 저 미인이 데레하며 달라붙는 쪽인가? 그런데 차갑게 냉대하는 걸 좋아하다니 저런 기믹의 캐릭터는 마조 속성이 따라 붙는다고. 레이무가 발로 밟으면 저 미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아앙~ 좀 더~’이런단 말이야? 말이 안 되지만 의외로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네. 나는 저 둘을 보며 이런저런 망상을 하고 있는데 미인이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악마 씨, 안녕.」 「안녕하세요..」 미인의 인사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인사해 버렸다. 미인의 하반신을 삼키고 있던 공간이 점점 아래로 이동하자 보이지 않던 하반신이 모습을 드려냈고 거기서 한 발자국 디뎌서 나온 미인은 손에 든 부채를 펄 쳐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저는 환상향의 관리를 맡고 있는 야쿠모 유카리라고 합니다.」 미녀가 나온 검은 공간은 다시 선으로 돌아가더니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야쿠모 유카리라고 이름을 밝혔으니 나도 이름을 안 댈 수가 없지. 라기 보다는 존재 자체가 사신인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간 인생이 그대로 쫑나는 거지만. 「저는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라고 합니다. 애칭으로 루키라고 불려주시면 됩니다...」 「그래요? 그럼 저도 애칭으로 유카링~ 이라고 불려주세요.」 유카링이요? 혹시 그.. 영원한 17세라는 타무라 유카리 (성우)인 것도 아니고. 「영원한 17세....」 아차.. 머릿속의 내용이 제멋대로 입 밖으로 흘려 나오고 말았다. 수많은 성우 오타쿠들을 팬으로 사로잡아 유카리왕국을 만들었던 초 인기 성우의 말버릇이 나와 버린 것이다. 설마 저 미인이 이런 오타쿠 내공이 필요한 네타를 알아들을지는 몰라도 나의 직감으로는 그녀가 스스로를 유카링이라고 불려 달라 했으니 알고 있을지도... 「어머, 어떻게 제 나이가 17세인걸 아셨나요?」 우와... 자신의 나이가 17세라고 말했어! 풍겨오는 요력을 보면 어지간한 대요괴 버로우 시켜버리는 주제에 적어도 1000살은 훨씬 넘었을 것 같은 강대한 존재가 자신을 17세라고 말했다고! 혹시 유카리왕국 설정을 이용하고 계신거 아니에요? 혹시나 싶어서 한 번 떠보기로 했다. 「혹시, 오늘도 말해 줬으면 하는 건?」 「세계 제일로 귀엽다고 말해줘!」 오타쿠 내공이 있어야만 알만한 유카리왕국을 알고 있는 것도 거기다 그 설정을 자신에게 같다 붙이다니.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러니 어울려 줘야겠다. 「세..세계 제일로 귀여워!」 「좀 더 말해줘!!」 「세계 제일로 귀여워!!」 「유카링 기뻐~ 좀 더 말해줘!」 「세계 제일로...」 「그만해, 이 ㅁㅊㄴ들아!」 레이무에 의해 나와 유카리의 오타쿠 촌극이 중단 되 버렸다. 막상 들떠서 어울려 줬던 유카리왕국 놀이를 그만 두고 나니 레이무가 한 말처럼 내가 왜 이딴 미친 짓을 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창피함이 몰려왔지만 나와 같이 스스로 세계 제일로 귀엽다고 자뻑을 했던 유카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중한 얼굴로 부채를 접어서 자신의 손바닥에 쳤다. 민망함에 겸연쩍은 얼굴을 한 나와 진지하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이는 유카리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본 레이무가 두통이라도 느끼는지 손으로 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너희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고!」 「그건 그렇고 루키는 유카리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만난 적 있어?」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오는 마리사. 사실 저 유카링은 오늘 처음 만난 거지만 「다른 유카리라면 알고 있지. 설마 같은 설정을 하고 있을 줄이야... 이름이 같다는 건 성격도 같다는 건가?」 내가 한 말에 마리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있지만, 당연히 알 턱이 없지. 어디까지나 아키바계 오타쿠가 아니면 알만한 네타가 아니니까. 그래서 저 또 다른 유카리가 오타쿠 기질이 다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거지. 환상향에서 아키바계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여러모로 이상하지만 이걸로 환상향은 완전하게 단절된 게 아니라는 것 또한 증명되지 않았을까? 나는 기대감을 품고 유카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야쿠모 씨는 유카리왕국을 잘 알고 있다니. 어디서 정보를 얻고 계시나요?」 「야쿠모라니, 그렇게 딱딱한 호칭 말고 유카링-☆이라고 불려줘.」 젠장, 이상한 곳에서 깐깐하네. 그 호칭 부끄럽지도 않나? 부르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창피한데 말과는 다르게 놀랍도록 진지한 얼굴이다. 이런 마이 페이스는 상대하기란 여간 골 아픈 게 아니다. 어느 순간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 의도치 않은 대답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도 저 상대는 너무나 강대한 힘을 숨기고 있어 비위를 맞춰 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다소 오글거림을 참아가며 나는 「유카링-☆」이라는 애칭을 입에 담는다. 「우후훗, 좋아. 그럼 알려주도록 하지.」 수상한 웃음을 흘리는 유카리는 나를 향해 부채를 겨누었다. 나는 그 행동에 살짝 놀라서 ‘움찔’거렸는데 그 다음 일어난 일로 인해 살짝 에서 화들짝으로 움찔에서 소스라치는 몸부림으로 변했다. 등 뒤로부터 어두운 공간이 열려서 나를 그대로 집어 삼켜 버린 것이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 할 정도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내 주변의 풍경이 달라져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주변을 둘려보자 아주 익숙한 회색의 빌딩 숲이 눈에 들어왔고 ‘빵빵~’거리는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케케한 매연이 코를 타고 목안으로 들어왔다. 이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도시의 한 복판. 그것도 일본 최고의 전자상가 거리인 아키하바라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공기 좋은 곳에 있다가 도심지에 오니 엄청 매스껍네. 도시인들이 농촌에 대한 환상을 품는 게 이해가 가는군. 그건 그렇고 왜 갑자기 아키하바라에 오게 된 거야? 누가 설명 좀 해달라고! 「그래, 유카리가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게 틀림없어!」 「네, 저랍니다. 우후후...」 역시 그랬나? 도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순간이동을 시킨 것이지는 잘 몰라도 그것이 유카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악 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수수께끼가 많지만, 그 검은 공간은 거리를 무시하는 도라에몽의 어디론지 문과 같은 힘을 지녔을 거고, 그게 저 유카리란 요괴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저 요괴가 왜 환상향이란 단절된 지역에서 아키바 사정을 잘 알고 있는지 대해 저절로 설명이 된다. 나는 공간을 뛰어넘는 능력에 대해 이해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유카리는 그런 나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더니 입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지금 일어난 상황이나 저의 능력을 이해한 것 같네.」 「확실하지 않지만, 공간을 넘나드는 게 가능한 모양이군요.」 「그 뿐만이 아니랍니다. 제 능력은 정확히 경계를 조종하는 능력. 거리의 제약 없이 이동 가능한 스키마(틈새)는 그 능력에 의해 발현된 가장 기초적인 힘. 현실과 환상을 경계 짓는 환상향의 대결계도 저의 힘이 많이 작용해 있답니다.」 야쿠모 유카리는 환상향이라는 격리된 세계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말을 했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건 경계를 조작하는 그녀의 힘이다. 특별한 이능을 가진 존재야 여럿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것이다. 그게 뭐야!? 무서워... 이 무슨 치트 캐릭이야! 그냥 존재만으로도 대요괴도 설설 기는 강대한 특대요괴가 가지기엔 너무 지나치지 않아? 단적인 예로 생과 사의 경계를 조작해버리면 누구든지 손쉽게 죽일 수 있다는 얘기잖아! 최종 보스예요! 최종 보스가 내 앞에서 요사스럽게 웃고 있어요!! 밸런스 적으로 저런 능력은 내가 가져야 한다고. 아 부러워.. 아무런 이능이 없어도 강한 주제에 먼치킨 급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부조리한 세상이야. 만약 나에게 이능력이 주어진다면 누구에게나 최면을 걸 수 있는 능력이었으면 좋겠는데. 만약이지만 있다면 그걸로 후후후..... 「무슨 생각을 하길래 음흉하게 웃는 거죠?」 최면으로 이런저런 짓을 하는 나의 파렴치한 생각이 얼굴에 다 드려난 모양이다. 유카리는 그 예쁜 얼굴로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대요괴라 사실만으로도 섬뜩함을 느껴야했다. 「해답을 알려줬으니 다시 돌아가도록 하죠.」 유카리가 말을 마치자 나는 또 다시 검은 공간에 삼켜져 다시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공간에 삼켜지는 형식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건 두 번째라도 익숙해지지 않았기에 나는 멍한 얼굴로 먼 산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고 레이무와 마리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방금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에 대해 놀라기는커녕 ‘다녀왔냐?’라는 얼굴로 보고 있는 눈치였다. 이 능력을 체험한건 나만이 아니겠지. 그리고 나와 같이 이동을 해온 유카리가 날 보며 말해왔다. 「환상향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는 조금 뜸을 들인 후, 양 팔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며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는 잔혹한 이야기랍니다.」 나는 유카리가 저렇게 분위기를 잡아가며 하는 얘기를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의미심장한 얘기이겠지만 뭐랄까? 솔직한 감상으론 겉멋이 잔뜩 들여진 라노벨 대사처럼 들렸다. 모두를 받아들이건 잔혹한 얘기라는 둥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그래도 나름 폼 잡고 그럴싸한 대사를 읊었으니 박수라도 쳐줘야지. 짝짝짝 (머릿속으로만) 「어휴, 저 놈의 대사. 지겹지도 않나.」 유카리를 지겹다는 눈으로 보던 레이무의 핀잔이 들려왔다. 유카리는 거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멋진 대사라 아깝게 썩히긴 싫거든. 그래서 처음 본 누구에게나 팍팍 써주는 게 좋다고 보는데?」 「그래, 그만큼 레퍼토리가 부족하다는 증거겠지.」 「그렇게 까지 말하면 유카링 상처받아~」 「지랄마 요괴.」 「미안하지만 난 그 지랄을 관둘 수가 없는 걸~」 레이무의 핀잔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가 어느새 기운을 차리고 발랄하게 말하던 유카리는 틈새를 열고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 이 장소에서 퇴장해 버렸다. 공간이 사라지고 나자 신사는 평화를 되찾은 듯 조용해 졌다. 저 야쿠모 유카리는 행동 원리 알기 힘든 이상한 요괴다. 자기 어필을 저런 식으로 밖에 할 줄 모르나? 레밀리아와 다르게 진짜 카리스마를 보여주고도 남을 능력자지만, 일부로 푼수짓만 하다 간 느낌이다. 「저렇게 보여도 화나면 정말 무섭다구.」 마리사가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나에게 말했고 이어 레이무가 맞장구치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이상한 요괴일 뿐이야. 이해도 안 될뿐더러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 그 점은 나도 조금 동감할 지도. 유카리에 대한 감상을 마치고 난 뒤, 마리사는 입을 다시면서 전병이 남지 않은 사실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레이무에게 말했다. 「레이무, 전병 더 없는 거야?」 「얻어먹는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아.」 「더 없다면 하는 수 없지.」 자리에서 일어난 마리사는 엉덩이를 털고는 나에게 떠나자는 눈치를 주었다. 마리사 입장에서는 나를 소개 시켜 준데다 먹을 것도 떨어졌으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겠지만 나에겐 아직 있었다. 아직 물어 보지 못한 게 여러 가지란 말이지. 환상향의 법도라든지 스펠카드 말야. 나는 마리사의 명령을 무시하고 레이무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하쿠레이 무녀는 환상향에 처음 온 자들에게 이곳의 법도를 알려 준다고 하던데.」 「응? 누구한테 들었어?」 누구한테 들었냐니? 하쿠레이 무녀의 의무가 아니란 말이야? 「파츄리 노우렛지라고 하는 마법사에게 들었어.」 「그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저렇게 까지 뚱한 반응이아니. 얘기가 다르잖아요~ 파츄리 씨! 하쿠레이 무녀는 친절하지가 않아! 저것 봐 「흐응~」거리며 귀찮아하고 있어. 하는 수 없지 나중에 마리사에게 들어야지. 무녀가 저렇게 의욕 없이 귀찮아하는데 어쩌겠어? 「굳이 나한테 들을 필요도 없이 마리사에게 물어봐도 되잖아.」 안 그래도 그럴 참입니다. 무녀에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더 없겠구만, 마리사 가자! * 하쿠레이 신사를 떠나 다음 장소로 이동한 곳은 마리사의 집이 있는 마법의 숲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들리는 장소라는데 자신과 친한 동료 마법사가 산단다. 그 동료 마법사가 산다는 집은 아담하지만 고풍적인 저택이었다. 담쟁이덩굴이 벽에 붙어서 여기저기 얽혀 올라가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전체적으로 예쁜 인상의 집이었다. 그 집의 정문에 선 마리사가 문을 두 번 두드린 후 기다렸다. 잠시 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흐른 후 문이 열렸고 안에서 금발 벽안의 소녀가 모습을 드려냈다. 전형적인 서구형 미인 얼굴에 테두리가 레이스로 치장된 머리띠에 짧은 망토가 둘려진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마리사가 그 서양 소녀를 보자마자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걸 보니 그 친구 마법사란 저 소녀를 지칭하는 말이겠지. 그러나 친근 대는 마리사에 비해 서양 소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한 뒤 다시 문을 닫으려는데 그걸 막는 마리사. 여전히 얼굴에는 넘쳐나는 미소로 입을 열고 말했다. 「섭섭하게 이러기야? 마법사 동지 끼리 거리를 두는 건 아니지.」 「.. 난 널 동지라고 여긴 적이 없는데? 그리고 전에 내가 발견한 마법 재료를 훔쳐간 건 아직도 사과 안하고 있잖아.」 「그건 정말로 미안, 사실 조금만 쓰고 돌려준다는 게 다 써버렸거든. 그래서 사과 하는 대신 써버렸던 마법 재료를 찾던 중이였어.」 「거짓말. 네가 양심적인 행동을 할 리가 없지.」 마리사야 너 왜 이렇게 신용을 못 받는 거니? 얘기를 들어보니 내 주인은 답이 안 나오는 말썽쟁이인 모양이다. 파츄리도 그런 민폐라는 인상을 가졌었고 레이무도 친구라고 했던 것 치고는 살가운 느낌이 없었으니 말이다. 마리사를 상대로 차가운 태도로 대하던 서양 소녀가 내 쪽으로 시선을 주고는 마리사에게 물었다. 「저건 뭐야?」 「하하하, 소개 할게. 이쪽은 내 사역마인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야.」 서양 소녀가 나에 대해 물어오자 자연스럽게 내 소개로 화제를 바꾼 마리사. 나도 동참하여 타칭 마법사 동지에게 인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마리사에게 사역되는 악마다. 루키라고 불려줘.」 「그리고 여기 인형같이 예쁜 소녀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인형술사이자 나의 친구지.」 「누.. 누가 친구라는 거야.. 그리고 인형같이 예쁘다니... 에헤헤..」 마리사가 인형같이 예쁘다고 띄워주니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돌리는 서양 소녀. 정면에서 표정이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살짝 보인 옆 얼굴은 알기 쉬울 정도로 풀어져 있었다. 그리고 에헤헤 거리는 웃음소리. 실례가 안 된다면 실은 마리사를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물어보고 싶었다. 「크흠!」하는 헛기침 소리를 내뱉은 앨리스는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돌리고는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은 명백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고 살기까지 담겨져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 적개심을 표출 하고 있다는 거다. 왜? 내가 뭘 잘못 했기에? 마법사가 돼서 악마라는 이유로 색안경 끼고 볼 이유도 없을거고 설마 연적이라는 이유로?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마리사도 앨리스의 살기가 담긴 시선을 의식했는지 「왜 그래?」하고 묻자. 「아무것도 아니야.」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앨리스가 왜 저러는 거지?」 나도 알고 싶은 사실이다. 저 마법사년이 왜 나를 이리도 적대시하는지. 마지막 장소는 이렇게 찬바람 부는 느낌으로 끝났지만 오늘 하루, 임무를 무사히 마쳤으니 나쁘지는 않다. 나야 저 서양 미인 느낌의 마법사와 앞으로 마주칠 일도 적을 거고, 정 불편하면 홍마관의 파츄리 씨 사역마로 부려져도 문제없다. 마리사 입장으로는 중대한 실수지만, 그 덕에 사실상 자유나 마찬가지인 몸이니까. 마리사에겐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나 저런 쌀쌀 맞은 마법사에게 소환 되었더라면, 맘놓고 행동한다는 건 꿈도 못 꾸니까. * 마리사는 집에 와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내가 보기엔 앨리스는 초지일관으로 쌀쌀맞아 보였는데 오래 지내온 마법사의 눈에는 그게 상당히 다르게 보였던 모양. 하긴, 나를 보던 그 눈은 진짜 죽이고 싶다는 살벌한 눈이었지. 그녀가 왜 나를 그렇게 까지 적대하며 무언가 숨기는 기색으로 외면한 것인지는 나중 되면 알게 될 날이 오겠지. 그러니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마리사는 나와 다르게 꽤나 신경 쓰이는 모양이지만. 이로써 나는 성공적으로 사역마 데뷔를 한 셈이다. 사역마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사역마 시늉을 내는 악마란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그것도 뭐 어때서? 주인이 귀여운 소녀라 사역마 생활을 해보겠다는데. 누가 뭐래도 지금의 나는 마리사의 사역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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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