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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놈인지 대강 알겠어.」 「알았다면 다행이네.」 「상대 할 가치도 없는 등신이라 거 말야.」 더 상대해 봐야 뭐하겠나. 소녀는 남자가 계속 막아선다 해도 이젠 상관 않고 강행 돌파할 생각이었다. 저 따위 철 조각 가지고 자신을 막아선 그 용기는 칭찬 할 만 하나, 언제까지고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좋은 말 할 때, 얌전히 비켜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육안으로 확연히 보일 정도로 검붉은 요기가 소녀의 몸을 감싸며 넘실댔다. 소녀는 저 우매한 남자를 패죽일 심산으로 그에게 한 발작 천천히 걸어갔다. 이대로 비켜서지 않으면 죽는다. 남자는 소녀에게서 풍겨오는 짙은 요력과 살기에 압도 되어 공포에 침식되어 갔다. 본능이 어서 달아나라고 뇌에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것은 곧 예정된 죽음을 의미했고, 소녀가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주먹을 드는 순간. 「자아암! 잠깐만 ─ !」 남자가 기겁한 표정으로 손을 휘저었다.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소녀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기로 정했기 때문에 이대로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는 것만으로 남자의 존재를 지울 요량이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내지르지 않고 남자의 말대로 잠깐 멈춰 섰다. 「유언이라면 들어주지.」 「어차피 내가 죽어도 마을에 들어 갈 거잖아?」 「그래.」 이제 와서 목숨 구걸인가? 그렇다면 남자는 여태 자신을 상대로 허세를 부린 게 된다. 그 허세가 싫은 건 아니지만, 갑작스런 태도변화는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기만 한 것 같아서.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자, 남자는 긴장한 표정으로 소녀를 멈춰 서게 한 이유를 들었다. 겁을 잔득 먹은 게 분명하지만, 그 목소리는 처음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럴 거면, 그냥 들어가라고. 대신!」 「대신?」 「내가 동행하는 걸로.」 소녀는 멈췄던 주먹을 다시 쳐 들었다. 자신의 입장이 어떤 지도 모르고 조건까지 걸어오는 남자의 뻔뻔함에 기가차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소녀는 주제도 모르는 남자를 그대로 곤죽을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그랬는데, 무슨 변덕인지 요력을 가라앉히고 들었던 주먹을 내렸다. 「너 이 새끼.. 건방져서 죽여 버리려다 참는다.」 소녀는 남자를 죽이지 않기로 하는 말을 했지만,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자가 자신과 같은 오니라서 봐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일 가치도 없는 놈이라 판단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면. 남자가 굳었던 표정을 풀고 후우-. 안도감에 긴 숨을 내뱉었다. 「인간을 죽이는 거야 말리지는 않을 테니까. 딱 한 번만 나랑 같이 술을 마시자고. 이 마을의 술은 엄청 맛있어. 내가 보증하지!」 싱긋 웃으면서 술을 권해오는 남자는 이어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는 켄. 그쪽의 이름은 뭐야?」 「켄? 검(劍)을 말하는 거냐?」 「무척 검객다운 이름이지!」 남자는 켄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태어날 당시 부모가 지어줬는지 아니면 주변에서 붙여줬는지. 스스로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자, 켄은 그 이름에 담긴 뜻을 긍지로 여기며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검객이라 자청하는 오니가 되어있었다. 검(劍). 혹은 도(刀). 예리하게 제련된 날로 상대를 베어내는 용도로 만들어낸 인간의 무기는 오니에겐 인연이 없는 날붙이에 불과했다. 인간과 달리 요괴에겐 날카로운 이와 손톱이 있고, 그게 없더라도 사이한 힘이 있다. 하물며, 요력이 곧 금강력과 용력인 오니는 오죽할까. 검을 휘두를 바에야 그냥 맨 손인 편이 낫다. 잘 벼려진 날도 자신의 두 손 보다 못하다. 켄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음에도 검객이라 자처하며 검을 휘두르는 걸 고집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손가락질 하며 비웃는 자들을 켄은 용서치 않았다. 도리어 검의 위대함을 몸소 새겨주기 위해 자신만의 검술로 그들을 자비 없이 베어 넘겼고, 그럴수록 자신의 이름과 검에 대한 애증은 깊어져갔다. 켄은 검술에 대한 조예를 쌓기 위해 전국을 방랑 검객으로 떠돌다 어느 한 작은 마을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마을에서 제공되는 술이 맛있으니까. 그 술을 제공받는 대신 마을의 수호신 역을 자청하게 된 것이 지금의 켄이었다. 이 별난 오니에 대해 마을의 인간들과 주변에 살던 요괴들은 그에 대해 서로 입을 모아 말하길. 『미치광이 켄』 이해하기 힘든 행동원리를 가진 그에게 딱 들어맞는 별명이었다. 「내 오니로서의 긍지는 바로 켄이라는 내 이름과 이 한 자루의 검이지.」 켄은 자랑스런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소녀에게 고하는 걸로 각인 시키려했다. 그러나 소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짜증을 담아 욕을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거 순 ㅁㅁ 아냐?」 그것이 기폭제가 되었을까? 켄의 얼굴은 그대로 굳어졌다. 칼자루를 잡고 있는 손엔 힘이 들어갔고, 눈에는 핏발까지 섰다. 자신의 이름과 검을 비웃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긍지를 짓밟는 것. 소녀가 내뱉은 욕은 켄에게 있어 참을 수 없는 모독이었다. 상대는 아마도 최강급의 대요. 방금 느꼈던 요력을 보건데 덤비는 거 자체가 무리를 넘어 어리석은 행동일 것이다. 그 절대적 진실이 켄이라는 오니를 인내하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오니의 긍지는 목숨과도 같은 것. 짓밟힌 이상 그런 사실들은 켄에게 있어 한낱에 불과한 따위로 격하되었고, 소녀에 대한 두려움을 전부 잊게 만들었다. 스릉. 검집으로 부터 날카로운 은빛의 날이 그 이를 드려냈다. 겁을 상실한 오니가 순간적으로 땅을 박차고는 소녀의 몸을 양단하는 큰 일자를 그었다. 너무나도 깨끗한 발도. 흐르는 물조차도 베어낼 그 발도의 검이 소녀의 가슴에 일자로 된 선을 남겼다. 소녀는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붉은 선에 놀란 눈으로 내려다 봤다. 방심했다곤 하나 가슴의 상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거라 생각했던 날붙이에 의한 것이었다. 오니인 소녀의 몸은 아무리 예리한 병장기라 하더라도 인간이 제조한 이상 상처 입히기 어려운 것이었고, 켄의 검 또한 그래야 했다. 그런데도 상처를 입혔다. 켄의 검은 보통의 대장장이가 벼린 지극히 평범한 검으로, 그 길이가 일반적인 검에 비해 길다 뿐이지. 소녀의 몸에 상처를 남길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몸에 닿는 순간 단단한 금강에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졌어야 했다. 헌데도 일자로, 그것도 붉은 선혈이 흐르는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켄의 검술이 범인은 닿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는 반증이었다. 대요괴인 소녀에게 유효한 일격을 먹인 켄은 곧 바로 다음 이격 째를 준비했다. 자세를 고쳐 잡고,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소녀의 몸을 어깨에서 부터 허벅지 까지. 대각선을 그리는 베기를 행하였다. 그러나. 터억! 그 이격 째가 소녀의 손에 의해 허무하게 막혀버렸다. 소녀는 자신의 어깨를 노렸던 켄의 검날을 맨손으로 잡아채고는 그 상태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부키동자. 예전에는 그렇게 불리었어.」 만족스런 얼굴로 「이부키라고 불러라.」는 말을 덧붙였다. 소녀. 이부키는 이름을 대고 나서는 잡고 있던 검날에서 손을 뗐다. 해방된 검은 곧바로 켄의 검집에 안착했고, 그와 동시에 팽팽했던 둘 사이의 긴장감은 단칼로 잘라 낸 것처럼 빠르게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소녀의 의중을 파악한 켄이 적개심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저 이부키라는 오니가 자신을 시시한 녀석으로만 치부했다면 결코,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을 거다. 무엇보다 맘에 들어 하는 얼굴이 그걸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자신의 긍지를 모독하였다곤 하나 지금은 인정해주고 있는 눈치이니 더는 싸울 이유가 없었다. 전투태세를 해제한 켄에게 소녀가 물었다. 「재밌는 녀석이다. 설마, 그런 걸로 내 몸에 상처 입히다니. 어떻게 한 거냐?」 「내 인생을 전부 담아낸 일도는 바위조차 깨끗이 갈라내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검술의 경지라는 거다.」 「그 검술이란 거 얕잡아 보면 안 되겠군.」 이부키는 켄에게 베어진 가슴을 손으로 쓸었다. 이미 재생을 해서 상흔은 존재하지 않았으나 욱신거림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아픈 상처는 그녀에게 있어 처음이었다. 「네가 보증하는 그 술의 맛. 확인해 볼 가치가 있겠는데?」 「으하하. 분명 맘에 들 거야!」 마음이 변했다. 이부키는 켄이라는 남자가 워낙 똘추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여겼는데 그의 검을 직접 몸으로 받아내고 나니 그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었다. 국상사를 떠나 이곳에 당도하기 까지 수많은 인요를 만나왔지만, 그처럼 흥미로운 존재는 없었다. 오니이면서 검객을 자처하고 그 볼품없는 검으로 자신에게 상처까지 입혔다. 이런 재밌는 자 또 어딨겠나. 이부키는 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하고, 그와 같이 술잔을 나누기로 했다. 과연, 그가 대요인 자신으로 부터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지키려고 했던 가치가 있었는지 입으로 확인해 보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마을로 들어서는 이부키의 어깨엔 언제 올렸는지 모를 켄의 팔이 둘러져 있었다. * 마을의 인간들은 켄 뿐만 아니라 이부키의 모습도 보였음에도 경계를 해오지 않았다. 오히려 켄을 보증 삼아 이부키 역시 위해를 가할 요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눈치였다. 켄이 손을 흔들자, 사람들은 반갑다는 인사를 해왔다. 「출출하지? 내 당장 식당 주인에게 술상을 차리도록 전하겠네.」 「언제나 수고 많으시네. 옆에 그 여자는 또 누군가?」 「혹시, 애인? 뿔이 있는 걸 보니 그런 갑네!」 술을 공물로 마을을 지키는 관계라 해도 요괴와 인간 사이인 이상, 벽은 존재한다. 그런데 켄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선 그런 벽은 일체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요괴, 그것도 오니인 그에게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않는 것일까? 그 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자신에게 까지 겁을 안 먹다니. 이부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야. 저 인간들, 왜 날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거야?」 「그거야, 다 내 인덕 덕분이지.」 이부키의 의문에 켄이 들려준 대답은 썩 좋은 해답이라 보기 힘들었다. 오니가 인덕 운운하는 것도 웃기긴 하나, 그 인덕 있다는 오니와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의를 받는다는 건 더 웃긴 일이었으니까. 복잡한 심경이 되어가는 와중에 문득, 불순한 시선이 쏘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책망하는 어조로 켄을 쏘아붙였다. 「이것 봐, 네 때문에 내 찌찌가 훤하게 다 들어나 버렸잖아!」 「아.. 미안!」 좀 전에 자신의 발도에 의해 이부키의 옷은 그 앞부분이 일자로 도려내져 상당히 민망한 꼴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된 원흉은 자신을 도발한 거나 마찬가지인 이부키에게 있었으나, 켄은 그걸 자신의 경솔함으로 돌리고는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지금이라도 가릴 만한 걸 가져 올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 그 말을 남기고는 허겁지겁 이부키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 뒷모습을 이부키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응시하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가슴이 드려난 거 정도는 이부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겉모습은 사춘기의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부키는 보통의 처자들처럼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소녀의 모습을 한 오니일 뿐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요괴들이 아무리 자신의 맨가슴을 쳐다본다 한들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쩌면 오니란 종을 넘어 이부키란 소녀에게는 수치심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켄을 나무라듯이 책망한 것은 단순히, 그냥 해 본 소리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켄은 지금, 이부키의 앞을 가릴 만한 옷을 찾기 위해 아무 인간이나 붙잡아 서서 사정을 하고 있었다. 요괴가 저렇게 인간들에게 아무 옷이나 빌러 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다니. 이부키는 그 모습이 너무나 바보같이 보여 허심 없는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있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지금 미소를 짓고 있는 이부키 역시, 켄과 다를 바 없는 순박함을 지닌 오니라는 사실이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미안~ 미안. 내가 좀 요령이 없어서.」 약속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찾아온 친구에게 핀잔을 늘어놓는 여자처럼 차갑게 툴툴거린 이부키는 그가 들고 온 천 조각을 확인했다. 방금 켄의 눈앞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웃옷을 벗었던 남자의 것이었다. 「땀내 나서 싫은데.」 「그래서 안 입겠다는 거야?!」 「여자더러 아저씨가 입고 있던걸 입으라는 거야?」 이부키는 켄이 가져온 옷이 못 마땅해 하며 질색했다. 그래도 사정을 해가며 겨우 얻어온 것인데. 켄이 내심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자. 「크하핫. 뭘 그리 실망을 하고 그래?」 이부키가 시원하게 웃으며 농담이었다고 말해왔다. 그래도 내키지 않은 건 농담이 아닌지라, 그의 손에서 뺏어 든 옷을 입는 내내 떨떠름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정말 장난이 아니라 아저씨 땀 냄새가 풀풀 났다. 켄은 땀 냄새 때문인지, 역겨워하는 이부키의 인상을 보고, '그럼 입지 마!'라는 격한 외침이 목구멍으로 부터 턱까지 올라왔지만, 있는 힘껏 발설하기보다 간신히 집어 삼킴으로서 분을 삭였다. 자기 나름대로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얻어오긴 했으나, 이부키는 여자니까. 오니라도 여자는 여자니까. 옷을 다 입은 이부키가 눈빛으로 안내하라는 재촉을 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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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징 ─ 고!
생각없이 나온 드립입니다.
쓰다보니 저 오리캐를 미치광이 켄으로 만들어 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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