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까지는 예전에 올려 뒀으니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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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루키=
마리사가 외출하고 있는 동안, 나는 집안을 정리하기로 했다. 왜냐고?
집안 꼴이 도저히 못 봐줄 수준이니까. 대체 이게 뭐야.. 여자가 혼자 사는 집이라고는 생각 치 못 할 정도로 엉망이다. 아니 시커먼 남정네의 자취방도 이 정도로 어지러 져 있진 않을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심각하게 어질러져 있는 가 대충 묘사를 한다면.
원래 상당히 넓었을 거실 공간의 대부분이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는데 얼마나 많은가 하면 원래의 공간 중에 3분의 2를.. 아니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청소를 했는지 모르지만 하얀 먼지들이 쌓여져 있어 천장까지 쌓여있던 잡동사니들은 하얀 설산을 연상케 했다.
이것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손을 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이 많은 물건들은 어디서 공수해 온 걸까? 망가진 가전제품에 애들 장난감 까지 일관성 없이 쌓여져 있는 걸 보면 여긴 고물상도 뭣도 아니다. 그냥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맘 같았으면 구덩이를 파서 거기다 죄다 몰아넣고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지만 주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그러기엔 후폭풍이 무서워 될 수 있는 한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창문을 전부 활짝 열어두고는 하얗게 쌓여있는 먼지부터 털었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쌓여진 잡동사니들을 크기별, 소재별로 분류해서 따로 모아 둔다. 어느 정도 모였을 때 나는 장기로 하는 압축 마법을 이용해 최대한 형태를 망가뜨리지 않게 축소시킨다. 공기가 일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압축시킨 덩어리는 비슷한 소재 끼리 착실하게 쌓아놓는다.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길 반나절, 쉬지 않고 몰두한 덕분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분류를 압축시키고 난 뒤에 주변을 둘려보았다. 집 내부는 정리하기 전 보다 월등히 넓어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문도 생겨났다. 원래부터 존재 했겠지만 잡동사니들로 인해 가려져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린 방문이다.
이제 곧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려 보내질지도 모르는데 힘들여 집안을 정리한 것은 어쩌면 내가 편집증 증세가 있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오늘 따라 요상하게 기운이 넘쳐서 가만히 있기엔 몸이 근질거린 탓이 컸다.
어째서 몸이 이리도 가벼운 거지?
나는 그 의문을 이장소의 공기가 매우 농후한 마력을 함유하고 있는 탓에 그 영향으로 몸 상태가 최고조에 달해있는 걸로 판단했다.
그러니까. 아아~ 이곳의 공기는 마력이 가득해! 라는 느낌으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하이텐션이 되었다고 할까? 마계에서 조차 이런 마력의 농도는 드물다니까.
대체 여긴 어딘 거야?
정리는 거의 다 끝났으니 이제 집 주변을 둘려보고 마력이 충만한 이유에 대해 분석해 보자.
그런 생각을 하며 집 밖으로 나왔는데 주변이 온 통 녹음이 가득한 산림이었다. 바람을 타고 흘려오는 것은 짙은 풀잎 냄새와 버섯 포자 향. 치톤 피트의 놀라운 상쾌함이었다.
제대로 된 길 조차 나 있지 않은 걸 보니 소녀 혼자 살기엔 너무 외진 곳이 아닌가 싶은데. 나를 소환할 만큼의 별종이니까 그렇게 납득을 하자.
여긴.. 일본인 걸까? 나를 소환한 마리사란 소녀는 일본어를 쓰고 있었으니 이곳이 일본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만 이 녹림을 보고 있자니 확정 지을 순 없다.
좀 더 주변을 둘려보고 싶지만 반나절 동안 잡동사니들을 정리한다고 좀 지쳤기 때문에 얌전히 집안에서 주인이 올 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내가 주인이 오기를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마리사가 들어왔다. 보아하니 예상했던 조력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표정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밖에서 뭘 하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옷이 너덜 했다.
마리사는 오자마자 나를 보며 쓴 웃음을 지으면서 보자기를 내밀었다. 그게 뭔지 알 수 없으니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자 마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 팬티 차림이면 이쪽이 곤란하니까. 대충 옷이라도 입어두라고.」
그 말을 듣고 보자기를 받아 든 나는 그것을 바닥에 놓고 풀어헤치자 안에는 상의와 하의. 한 세트의 남성복이 들어 있었다.
돌려보낸다고 말한 주제에 이 배려는 도대체 뭐지?
내가 입을 옷 까지 구해준 이유가 궁금했기에 물어보기로 했다.
「헤어질 악마한테 이런 선물까지 주는 거야?」
「그게 말야. 하하하...」
나의 물음에 어색하게 웃는 마리사.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은데? 웃음을 멈춘 마리사가 주변을 둘려보기 시작했다.
마리사는 갑자기 넓어진 집안을 깨달았는지 '우와~'하는 감탄사를 내뱉은 후, 나에게 물어왔다.
「이거 네가 한 거야?」
「그래, 도저히 못 봐줄 정도로 엉망이라서 공을 들여 정리했지.」
「헤에.. 그렇구나. 버린 건 없지?」
「이정도로 쓸데없이 모아 둔 주인의 물건을 허락 없이 버리겠냐?」
나는 '어때? 잘했지'라고 말하는 듯 하는 얼굴로 마리사를 쳐다봤다. 네가 물건에 대해 얼 만큼 애착이 많을지는 집을 가득 매우고 있던 잡동사니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지. 이런 걸 수집증이라고 하는 정신적 증상으로 한마디로 정신질환이다. 이 정신병자야!
그런데 이곳에서 계속 머물러 있지 않을 내가 공들여 정리를 싹 해놓은 걸 보면 편집증이라는 정신질환이라고 볼 수 있으니 사돈 남 말 하는 게 되는구나.
마리사는 내가 한 행동이 맘에 든 건지 눈빛이 호의적으로 바꿔 있었다. 아마 자기도 좋아서 어지르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좋아, 널 돌려보내지 않고 계속 사역하기로 정했어.」
이를 드려내며 시원하게 웃으면서 정했다는 식으로 말한 마리사. 근데 내가 보기엔 방금 정한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원래 날 돌려보내겠다는 계획이 틀어져서 어쩔 수 없이 보류한다는 게 집안을 정리했던 걸 핑계 삼아 본인의 의지인양 위장한 거겠지. 안 그러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오지도 않았을 거고 나한테 남성복도 주지 않았을 거 아냐.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그래도 집안 정리에 대해 진심으로 맘에 들어 하고 있으니 따질 생각은 없다. 나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으니 좋지 아니한가?
그래도 한번 떠보기나 할까?
「조력자가 도와주지 않은 거구나.」
「....조력자라니? 무슨 소리야?? 아하하..」
질문에 대한 미묘한 시간 차 대답. 그리고 어색한 웃음. 정곡이구나. 그렇게도 본인의 힘만으로 날 소환했다고 우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저 얘 혼자서 소환술식을 짰다고는 보여 지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 금술을 익혀 겉보기 나이와는 다른 엄청 고령의 소녀이거나 할머니 이상의 나이 대라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계에서 그런 금술을 익혔다는 마법사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없다. 그리고 저 마리사라는 소녀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단 말이야. 혼자 힘으로 해낸 게 아니라는 게 방금 막 드려났고.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데
「금술이라는 사식.사충의 술 같은 걸 익힌 거냐?」
「아니.」
즉답이군. 그렇다면 진짜 젊은 애가 날 소환했다는 건데. 용감하다. 누군지 모를 조력자도 무슨 생각으로 도와준 건지 이해도 안 가고 말이야.
마리사는 내가 압축시켜 쌓아둔 잡동사니들을 만지면서 쳐다보더니 날 보며 물었다.
「이거, 마법으로 압축 해놓은 거야?」
「그래, 내 장기 마법이거든.」
「우와.. 그런데 물건들이 잘도 망가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 하는구나」
「그야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쌓아서 압축했거든.」
「그게 가능한 거야?」
우문이군. 가능 한거지!
내가 테트리스를 얼마나 잘 하는데! 아무리 복잡한 형태의 물건들도 아귀가 잘 들어맞게 맞추다 보면 틈새 란걸 최대한 없앨 수 있다고. 옛날 고성의 성벽들을 보면 따로 가공한 벽돌도 아닌 돌로 쌓았는데도 종이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아귀가 잘 맞춰진 걸 본적이 있지 않아? 나의 쌓기 레벨은 그보다 높다고 자신한다. 그러니 그 상태로 압축을 하더라도 부피만 줄어들 뿐 쉽사리 망가지지 않는 거야.
형태를 유지하는 마법도 걸어 두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빈공간이 존재한다면 압축된 힘에 의해 망가질 테니까 결과적으로 테트리스의 승리인 거다.
나는 마리사에게 「테트리스는 과학이다.」라고 설명을 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잘 못 알아먹었는지 고개만 갸웃 뚱 하고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게 뭐냐고 물어왔지만 설명하기 귀찮으므로 물건을 쌓는 연습을 말한 거라고 대충 설명해 줬다.
'아~'하고 작게 납득을 한 마리사는 소파에 걸어가 앉더니 나에게 옷 갈아입을 테니 밖에 나가 있어달라는 눈치를 줬다. 옷이 너덜 하니까 갈아입고 싶겠지. 그리고 나도 옷을 입어야 하니 마리사가 준 남성복을 갖고 현관문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마리사가 준 남성복은 센스 나쁜 기성복이었다. 복고풍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촌스럽지만 팬티바람 보다는 나으니 불만가지지 말자.
옷을 다 입은 나는 적당히 시간을 재면서 기다리려다 좋은 타이밍을 예상해서 현관문을 연다. 당연히 거실에는 마리사가 옷을 다 입지 못하고 속옷 바람..
「... 꺄아아악 ─ !!」
비명을 지른 마리사가 재떨이 같은걸 나에게 겨누더니 뜨거운 빛의 덩어리를 발사했다. 눈 앞이 빛으로 휩싸이더니
─ 콰쾅!
하는 폭음과 함께 나의 의식은 날아가 버렸다.
.........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머리가 폭탄을 맞은 것처럼 꼬불꼬불하네. 기껏 받은 새 옷인데 괜찮으려나?
다행히 거스름만 묻어있구나. 옷이 통 채로 타버려도 이상할 게 없는 마광선이 었는데 신기하네? 무사하면 다행이다.
옷에 묻어있는 거스름을 대충 털어내고는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기절해 있었으니 아직까지 옷을 갈아입고 있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야 ──── !!
왜 아직 속옷 차림 이냐구!! 음, 가슴은 좀 빈약하구나.. 팬티는 어떨까? 아니 왜 안 팬티요?? 호박 팬티 같은 건 인정한 기억이 없는데.
「너.. 또!」
역시 이번에도 광선이 나온 재떨이를 나에게 향한다.
데자뷰일까? 아까 전에 마광선에 맞고 기절했었는데 또 그거냐?
이번에는 순순히 맞아 주지 않는다! 나는 전력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아주 간발의 차로 거대한 빛의 줄기가 나의 허리를 스쳐지나간다.
흙바닥을 뒹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이게 어찌된 일인지에 대해 생각해봤고 처음 마광선에 맞아 기절했던 시간은 불과 수초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출해 냈다.
그 근소한 시간 동안 기절해 있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이것도 공기 중에 포함된 농후한 마력의 영향인 걸까?
아무튼 조심하자. 저 애는 일반적인 소녀가 아니라 엄청난 굵기의 마광선을 쏘아대는 마법사다. 음흉한 짓을 할 대상이 아니야.
*
오늘부터 정식으로 마리사의 사역마가 된 나는 그녀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차례로 물어봤다.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시작해 그녀의 연령이나 신체 사이즈... 는 물어봤다가 또 다시 마광선을 맞을 뻔 했다. 악마를 사역하려는 이유 등이었는데. 나는 낙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환상향이라는 격리된 세계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소에 대한 물음에 마법의 숲이라고 하길래 어디 현(県)이고 무슨 시(市)냐고 물어봤지만, 전혀 모르는 눈치라 기본적인 상식이 부족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환상향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내 표정은 엄청 썩창 이었으리라.
나이는 보이는 대로의 연령대였고. 쓰리사이즈는... 묻다가 팔각형의 재떨이로 위협하는 바람에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악마를 사역하려는 이유는 너무 시시해서 제정신인가 싶었다니까.
‘대단한 마법사로 보일 거니까’는 뭐냐? 진짜..
내가 생각하던 것 보다 더한 별종이네.
그 말대로 여기서 내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곤 집안 정리밖에 없어 보인다. 마법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면 나는 제대로 꽝이고 조수 노릇을 한다고 해도 글쎄? 여긴 그다지 마법사들의 공방으론 안보이니 마법 연구 보다는 아직 한참 마법을 배울 시기인 거겠지.
그나저나... 환상향이라.... 이거 정말 곤란해. 무슨 결계로 뒤 덥힌 갇혀진 지역에서 바깥의 전파를 수신 받을 수 없을 거고 당연하게도 러브 라이브를 시청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 그냥 사역마 안 할래요.’라고 하기 엔 마리사도 나를 돌려보낼 방법을 모르는 듯 하니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래도오오오오오 ─ !!!
나의 그 수많은 굿즈 상품들과 이번 분기의 애니메이션들. 플스 4와 그 외의 오타쿠 라이프들을 전부 포기해야만 한다니... 한마디로
「HEEEEYYYY 너어어무해애애애애애!」
이딴 운명 절대 인정 못한다고!! 뻐큐머겅 아니 두 번 머겅!
「너, 왜그래?」
마리사가 나를 이상한 놈으로 쳐다본다. 진정하자...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마리사 덕분에 그 이단 심문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으니 내 목숨에 비하면 덕질이야 싼 값이다. 그러나 결코 싼 게 아니야. 내 자취방에 나두고 온 굿즈들을 팔면 그게 얼마나 할 것 같아? 애지중지하던 다키마쿠라와 피규어만 하더라도 꽤 짭짭할 것이다. 그것 들을 구입하는 데엔 상당한 지출이 따랐으니까.
아까워, 정말 아깝다. 최근에 구입했던 초합금 마징카이저 만큼은 들고 왔으면... 크으으.. 겨울에 개봉 예정인 유루유리도 보고 싶었는데. 보이지 않는 공기 같은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다.
「앗카링- 다이스키♥」
「어디 아픈 거야?」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누운 채 천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더 이상 치태는 보이지 말자. 내 주인이 나를 아주 ㅁㅊㄴ으로 취급하기 전에.
「나 먼저 씻을 거니까. 엿 보면 죽일 거야!」
마리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사실 이런 빅 이벤트를 놓칠 내가 아니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맘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엿 본다고 해도 빈약한 몸이라 감흥이 없을지도.. 나는 로리콘은 아니니까.
근데 마광선을 뿜어대던 팔각형의 재떨이는 뭘까? 혹시, 지팡이나 마법봉 대신이냐? 해리포터가 저 나무 재떨이를 들고 ‘익스페토 패트로늄’이라고 주문을 외우는 상상을 하자 웃긴 이미지만 떠오른다. 그러니까 날 기절 시켰던 그 마광선은 ‘스튜페파이’라는 거군. 풉..
*
다음날, 나는 마리사와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버섯 샐러드라는 괴상한 음식이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마리사가 나에게 자신과 같이 오늘 하루 동안 여러 장소로 들리자고 권해왔다. 이유인 즉슨, 지인들에게 나를 소개 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악마를 사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거겠지.
마리사의 지인이라고 하니 같은 마법사들이겠지.
마법사들 하니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괴짜들이 많은 부류들인데 저 얘한테 악마를 사역하는 술식을 알려준 조력자도 만나 보겠구나. 틀림없이 괴짜일거다.
주방에서 그릇을 씻고 나자 마리사가 서두르자며 나를 재촉해 온다. 이미 집 밖에서 빗자루에 올라 타 있다.
이대로 나도 서둘려 따라 갈수도 있지만 내 뇌리에 한 가지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스쳐지나갔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확인해 봐야지.
「뭐해? 늦장 부리지 말고 어서 출발하지니까.」
성격도 급하다. 그쪽이 너무 서두르는 거겠지.
나는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 근데 난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무슨 말 하는 거야?」
「무슨 말이긴 반항하고 있는 거지.」
「뭐어? 반항이라고.」
마리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걸 상상도 못했겠지. 자, 그러면 말 안 듣는 사역마에게 복종을 시키는 주인의 특권을 발동 시킬 차례인 거다!
내 예측으로는 마리사는 나에게 강제력의 술식을 걸어놓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술식 자체를 잊어먹은 거겠지만 내가 왜 이런 기대를 걸고 있냐면 소환된 대상을 다시 돌려보낼 줄 모르는 마리사가 그 보다 훨씬 어려운 강제력의 술식에 대해 상세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으니까.
보통 소환된 직후 걸었어야 했을 술식인데 나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소환되고 나서 아무런 처치도 없이 나를 살펴보기에 급급했던 마리사니까 정말 중요한 강제력을 잊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렇게 대충대충인 마법사라니. 활기찬 것도 그렇고 난 저 얘가 영 마법사와는 거리가 먼 인간으로 보인다.
아직, 나에게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는 걸 보니 좀 더 부추겨 봐야지.
「뭘 그렇게 보고만 있냐? 지금 네 사역마가 말을 안 듣는데.」
「네 입이로 네 얘기를 하 지마!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
「그냥.」
「이유 없이 반항한다는 거네?」
「그래, 말을 듣게 하고 싶다면 벌을 줘보라지.」
이 제임스 딘 같은 악마에게 따끔하고 짜릿한 벌을 달라고! 하지만 불가능 할 거야. 넌 강제력을 구사할 수 없을 테니. 후후훗.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 강제력을 행사해 올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것에 대비해서 이를 악물고 있다.
컴온~ 예아~~, 말 안 듣는 못된 악마를 벌해보시라!
............ 거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이걸로 확실해 졌어. 마리사는 나에게 강제력의 술식을 걸어두는 걸 잊은 거야. 참, 바보 같게도.
지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리사를 보니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은 모양이지. 그럼 뭐해? 이미 물 건너간 일인데.
나는 얼빠진 마리사를 보며 입 꼬리를 올리며 히죽거렸다.
그런 내 모습에 약이 오르는지 인상을 쓰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마리사.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고 적당히 놀렸으니 마광선을 맞기 전에 꼬리 내리자.
「하하하.. 농담... 이에엣!」
나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발밑에 쇄도한 레이저를 보며 심장에 나쁠 만큼 놀랐다. 팔각 재떨이를 꺼내 든 마리사가 나를 향해 레이저를 쏘아 댄 것이다.
「야, 말로 하자.」
나는 대화를 시도했지만 마리사는 그걸 무시한 채 레이저와 함께 동글동글한 탄막을 날리기 시작했다.
내 등 뒤로는 집이 있는데 그렇게 마구 잡이고 탄막을 날리다니 그렇게도 분했던 거냐? 강제력을 쓸 수 없는 건 순전히 네 탓인데 말이야.
나는 쇄도하는 레이저와 탄막들을 피하기 위해 몸을 분주히 굴렸다. 내 자신이 이정도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니. 역시 목숨이 달린 일이 되면 평소 보다 배 이상의 에너지를 발휘하나 보다.
강제력을 못 쓰니 말 그대로 힘으로 나를 복종시키려 하는 마리사지만, 이건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이다. 다칠 수도 있는데 폭력이라니! 폭력은 결사반대!!
─ 피잉. 피이잉-.
헉헉.. 시벌... 이젠 피하는데 한계다.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마리사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요리조리 피하면 큰 거 한방 먹일 거야!」
마리사는 그런 말을 하며 경고하고 있지만 이미 손에 들린 재떨이로부터 강대한 마력이 밀집되고 있었다. 경고가 아니라 선고네.
이대로 전신을 뒤덮는 굵직한 레이저를 맞느니 확실한 항복의사를 밝혀야겠다.
「항복! 그만하라고. 난 이미 반항이고 뭐고 안할 거니까.」
양 손을 들고 항복의 자세를 취하면서 말하자 마리사는 재떨이에 모인 마력을 분산 시켰다. 말이 분산이지. 없었던 것처럼 마력이 공기 중에 흩어진 게 아니라 덩어리 진 마포로 나에게 쏘아졌다는 거다.
%^#^&@!&*$ !!!
─ 쿠콰콰콰콰 ─ !
「미안, 취소가 안 되더라.」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마리사의 미안하다는 말이 들려왔다. 레이저로 가공된 게 아니라서 데미지는 덜하지만 워낙 방대한 마력의 포라 상당한 충격이다. 출력을 보니 저 재떨이는 마법 지팡이 보다 좋은 마법 매개체구나.
땅바닥에 쓰려진 나는 손으로 머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흙 묻은 옷을 털어내고 있자 마리사가 나에게 날수 있냐고 물어왔다. 물론, 날수는 있지만
「날아본지 오래라 잘 비행 할지 모르겠어.」
잘 날아 다닐 자신은 없는 거다. 날개가 달린 악마라면 마력의 컨트롤에 신경 쓰지 않아도 자유롭게 활공하겠지만 나는 땅개라서 ㅋ
마리사는 자신의 빗자루 뒷부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뭣 하면 내 뒷자리에 타도 돼.」
「뒤에 타라니?」
내가 뒷자리에 타게 된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여자애와 몸을 밀착시켜야 할 거고 또 잡을 데라고는.. 으흠... 빈약한 가슴 밖에 없지 않은가? 괜히 아픈 꼴 당할 거 같으니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 했다.
마리사는 자신이 앞장서서 갈 테니 잘 따라오라고 말한 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나는 빗자루에 탄 채 날아오르는 마리사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심호흡 한 후에 마력을 집중시킨 후 몸을 공중으로 띄웠는데.
어라? 하늘을 나는 게 이렇게도 쉬웠나? 생각 보다 훨씬 쉽게 날아올랐다.
마법으로 공중을 활공한다는 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데 훨씬 수월하게 날게 된 것이다. 이건 환상향이라는 곳에 적용된 법칙으로 봐야하나?
별 어려움 없이 자유자재로 날게 된 기쁨도 잠시 기다려 주지 않고 거리를 벌리며 날아가는 마리사의 등을 쫒느라 진땀을 뺐다. 뭐가 저리도 급한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중간 중간에 아예 모습이 안 보일 정도로 놓쳤을 땐 다시 이쪽으로 와서 잘 따라오지 못하냐며 핀잔을 주는데 상대방 속도를 맞춰주지 않은 그쪽이 잘못이잖아!
그런 핀잔을 몇 번 듣고 나니 안개에 휩싸인 호수가 나타났고 빨갛게 칠해져 있는 서양식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저기로구나.
마리사는 붉은 저택의 대문을 지키고 있는 중국풍의 의상을 입은 붉은 머리 여성에게 인사를 나눈다.
「메이링, 나 왔다구!」
「마리사 씨군요. 어라? 뒤에 분은 누구신가요?」
「엣헴, 내가 사역하고 있는 악마야.」
마리사가 나를 소개를 하니 나도 인사를 하는 게 예의겠지.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라고 합니다만 루키라고 불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예.. 그러시군요. 저는 홍마관의 문지기. 홍 메이링이라고 합니다. 마리사의 사역마라면 손님이니 출입을 허가하겠습니다.」
중국풍의 긴 적발이 인상적인 여성. 홍 메이링은 나에게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대해줬다. 서비스 업종에서 보는 접객이 아니라 진짜 살가운 성격이라는 게 느껴지는 그녀는 특정 부위가 매우 바람직했다.
문지기로는 아까운 거 아니야? 아니면 이런 미인도 문지기로 쓰고 있다는 과시인가?
그녀가 상당한 실력자이기에 문지기로 적합할 수도 있겠지만 나라면 메이드 일을 시키면서 밤 시중을 들게 할 텐데.
메이링은 날카로운 눈으로 마리사를 쳐다보며 충고를 했다.
「마리사 씨, 홍마관 안에서 되도록 이면 소란 피우지 말아주세요. 요즘 제가 메이드 장으로부터 소란 피우는 녀석을 왜 막지 않느냐며 핀잔을 듣습니다. 이러다간 출입을 금지시키는 일이 생길 테니 주의해 주세요.」
말하는 도중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건지 날카롭던 눈매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축 쳐져있다.
음울해 보이는 메이링의 얼굴을 보며 「출입 금지를 시키면 힘으로도 돌파할 거야!」라는 대답으로 돌려준 마리사는 그대로 그녀의 옆을 지나쳐서 담벼락 안의 정원으로 날아갔다.
나도 정원으로 날아가기 전에 기운 없이 축 쳐진 문지기의 모습을 안쓰럽게 쳐다본 뒤 마리사의 뒤를 따랐다.
정원을 지나 저택의 정문 안으로 들어선 나와 마리사를 반겨주는 건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요정들이었다. 요정들이 메이드라니 별나다는 감상을 하고 있는데 저 요정메이드들은 우릴 침입자로 아는지 탄막을 뿌리며 요격해 온다.
우리들 손님이 아닌 거야?
「환영 인사가 너무 거친데?」
「단순히 학습능력이 없는 것뿐이야.」
과연, 요정은 머리가 나쁘니까 손님과 침입자도 구분 못 한다는 건가? 요정들의 탄막에 대비해 방어 마법을 시전하고 있자 그럴 필요도 없이 마리사의 탄막이 요정들의 탄막들을 시원하게 지워 나갔다. 워~ 클레스가 다르구만.
그리고 별모양의 탄막에 피탄 당해 하나 둘 씩 떨어져 나가는 요정메이드들. 아예 상대조차도 안 되네.
「요정들은 도움이 전혀 안 되는군.」
익숙하게 요정들을 쓰려뜨려 나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중 어디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 주변을 둘려보고 있는데 눈앞에서 한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흑백은 소란피우니까 출입시켜주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눈앞의 여성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은빛 머리의 차가운 인상의 외모. 늘씬한 슬렌더 몸매에 그 체형을 잘 살리고 있는 메이드 복이 특징인 미인이었다. 특히나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꿀꺽.
「나라고 소란만 피우는 게 아니야!」
마리사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눈앞의 여성에게 따지듯 말하자 차가운 얼굴로 ‘흥’하고 짧게 코웃음을 친 여성은 품에서 나이프를 한 자루 꺼내 들었다.
「해보자는 거야?」
「실력이라면 이쪽이 한 수 위일 건데?」
둘이 불이 붙은걸 보니 당장이라도 대판 싸움이 날 기세다. 나는 말려들지 않게 거리를 벌리고 있었는데 눈앞의 여성이 나를 향해 나이프를 던졌다.
내 뺨을 스쳐지나가는 나이프에 식겁을 하고 돌처럼 굳어진 나는 차가운 여성의 살기 넘치는 눈을 멍하니 쳐다봤다.
무서워.. 문지기는 그렇게나 살가웠는데 저 메이드는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살벌한 거야!? 아까 요격해 오던 요정들도 저 여자가 시킨 거였나?
와나.. 시벌.. 방금 나이프가 내 뺨을 스쳤을땐 정말 심장이 주저앉는거 같았어. 조금만 얼굴 쪽을 지나쳤다면 입꼬리가 다 찢어졌을거 아냐!?
이런 개같은!! 욕이 목을 타고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괜시리 지금 기분을 그대로 분출해봐야 이번에 노리는 건 뺨이 아니라 심장이나 인중이 될것 같으니까 말이야.
나에게 나이프를 투척했던 살벌한 여성이 나에게 차분한 어조로 인사를 해왔다.
「평범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데 무슨 용무로 찾아 오신겁니까?」
방금 전에 나이프를 투척해 놓고 손님 취급이라니. 이거 완전 정상이 아니잖아! 일단 나이프를 투척해 보고 인사를 하자는 주의야? 여기의 메이드들은 전부 선 공격 후 인사라는 메뉴얼 대로 행동하는 거야??
내가 어이없어 하고 있을 때 마리사가 눈을 부릅뜨고 메이드에게 따지듯 말했다.
「어이, 이쪽은 무시하는 거야?」
「그래, 상대하기 귀찮아 졌어. 」
그말에 분하다는 얼굴로 메이드를 노려보는 마리사. 하지만 메이드는 신경쓰지 않고 나에게 자기소개를 해왔다.
「저는 홍마관의 메이드장. 이자요이 사쿠야라고 합니다.」
「루키드 디드 레이시스라고 저 마법사 소녀의 사역마입니다.」
메이드는 나의 소개를 듣자 '흐응'거리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마리사를 쳐다봤다.
「파츄리님의 도움을 받았다곤 하나 제법이구나 흑백.」
「뭐야? 그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는?」
「이번에도 파츄리님에게 용무가 있는 거겠지. 책을 함부로 훔쳐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보내주겠어.」
「내가 매번 책을 훔치려 온다는 식의 말은 그만둬. 가끔 빌려가는 거 뿐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본인 뿐이지.」
그 말을 끝으로 메이드는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환영인 건가? 홀로그렘 같지도 않고 본체 같아 보였는데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 처럼 보인다.
메이드가 사라지고 나서 마리사 쪽을 쳐다봤는데 이를 으득 갈면서 분함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악마의 개가 뭐라는 거야.. 언제나 날 무시하는 태도만 취하고..」
하지만 이내 평소의 쾌할한 모습으로 회복한 마리사는 언제 그랬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나에게 재촉하는 말을 했다.
「자, 어서 지하 도서관에 있는 내 친구를 만나려 가자.」
기분전환 하나는 정말 빠르네.
어떻게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 처럼 감정이 반전하는거지? 그에 비해 나는 한번 삐치면 하루 종일 찌질대는데. 지금도 오타쿠 라이프에 대한 미련으로 불만이 많은데다 뺨을 스쳤던 나이프 때문에 심히 불쾌하단 말야.
나는 속으로 이런저런 투정을 부려가며 마리사를 따라 지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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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솔직히 야라레물임.
주인공이 주구장창 당하는 그런 소설이니
절대로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하지 마시길. (에피소드 3에서는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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