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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구해줘. 이 말 한마디가 소녀를 움직이게 했다. 마을의 아이들이야 자신의 심심풀이용 부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부하의 위기를 못 본 채 무시할 정도로 소녀는 냉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장난에 어울려 주던 동료다. 당연히 구하러 가지 않으면 의리가 아니다. 「어딘지 앞장서.」 소녀는 도움을 요청하며 질질 짜던 아이를 앞세워 친구가 잡혀있다던 집 앞 까지 걸었다. 어른을 상대로 치는 장난이란 으레 잡혀서 크게 혼 날 위험성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는 것이거늘. 오늘 따라 붙잡힌 친구가 죽는다며 울고불고 소란을 떠는 데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본디 못된 장난을 친 아이라 해도 보통의 어른들이라면 아이를 다치게 만들면서 까지 혼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앞장서던 아이의 반응을 본다면 장난을 칠 상대를 잘못 고른 게 확실했다. 적어도 이 아이가 장난 친 상대는 보통의 어른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 추측이 사실로 드려나듯, 도착한 집의 마당에는 얼굴이 부어있는 아이 하나와 인상이 나빠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뭐야? 너희들. 이 녀석 친구야?」 남자는 반쯤 풀린 눈으로 소녀들을 쳐다보며 시비조로 물었다. 「내 부하다.」 대답을 들려준 소녀는 남자 곁에 있던 아이의 모습을 훔쳤다. 붙잡혀서 죽을 위기에 쳐했다던 친구 녀석이 저 아이가 분명 할 것이다. 시퍼렇게 부어오른 눈에 이빨이 부러진 듯 피를 왈칵 쏟고 있는 입술. 마당을 얼마나 굴렸는지 온 몸이 흙투성이로 아무리 남자의 성격이 나쁘다고 한들 장난을 친 것 정도로 아이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건 누가 봐도 심해보였다. 으아앙. 앞장서던 아이가 엉망진창이 된 친구의 모습에 또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니들도 이렇게 되고 싶어? 앙!」 남자는 윽박을 지른 뒤. 소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자신이 겁을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 하나 끔뻑이지 않고 있는 소녀에게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멱살을 잡으려는 찰나─ 「어?」 남자의 눈앞이 반전되었다. 「으아아아아악 ─ !」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당에 머리를 찢은 남자는 약한 뇌진탕으로 인한 통증 보다, 이상한 각도로 휘어진 자신의 정강이 통증으로 고통스런 비명을 질려댔다. 멱살을 잡으려는 순간, 정강이를 차인 것 같은데. 어째서 큰 망치로 쌔게 맞은 것 같이 뼈가 두 동강이가 난 건지는 남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 뿌득. 남자의 팔이 간단히 으스러져 버렸고, 거기엔 소녀의 발이 위치해 있었다. 「으악..으아아악 !」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의해 눈이 까뒤집혀 버린 남자는 몸을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며,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이해하려 안감힘을 썼다. 왜 자신의 정강이가 소녀의 발길질 한 번에 부러진 것인지. 왜 팔이 밟힌 것만으로도 으스러진 것인가에 대해.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남자가 아는 한,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요.. 요괴!」 「그래. 너, 내 소식 못 들었어?」 「무..무슨 소리야! 요괴가 마을에서 활개 친다는 말은 못 들어...」 남자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맨날 방구석에서 술이나 쳐 마시며 기둥서방 노릇 하느라 바깥물정에 대해 문외한이 된지 꽤 되었지만, 가끔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얘기 정도는 안다. '그래 분명, 마누라가 얘기했었지.' 쿠가미산에 있는 절에 어떤 요괴가 들어와 살고 있다는 얘기. 한 달 전쯤에 마을에서 화제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요괴가 자주 마을에 들려 절의 심부름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게 설마 저 소녀였다니. 「이런, 제기랄..」 남자는 고통과 분함으로 이를 빠득 갈았다. 아무리 그 절의 훌륭한 스님이 보증한다지만, 너무 안일한 게 아닌가? 보라고, 지금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아울러 팔도 분질러 놓는 걸 말이야. 요괴는 어쩔 수 없이 흉악한 존재란 말이다. 고통과 치욕으로 인해 남자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진다. 신음을 흘리는 그는 소녀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고, 소녀는 그런 그의 옆구리를 발로 한 데 툭 찼다. 「끄아악!」 「이 시간에 집구석에 있었다는 것은 부모나 마누라 등쳐먹는 놈팡이 일 테고.」 퍼억. 옆구리를 또 한 대 차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 주제에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놔?」 퍽. 이번엔 명치를 밟았다. 「크어어...」 「네가 한 짓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줄까?」 소녀는 살벌한 소리를 읊조리며 차갑게 내려다 봤고, 남자는 아픔인지 아니면 서러움 때문인지, 입도 다물지 못한 상태로 구슬프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흐아아.. 흐아아아아...」 그런 남자의 얼굴을 한 대 차버리려다 문득, 자신을 향한 좋지 못한 시선을 느끼곤 주변을 돌아보았다. 소녀의 눈에 비쳐진 것은 자신의 등 뒤로 남자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과 여기로 같이 왔던 아이들로, 소녀가 익히 알고 있는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공포심에 물든, 자신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가지는 눈이었다. 모두가 말없이 쳐다 만 보다 슬쩍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끼아아!'하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금 그들에게 있어 소녀는 이제껏 알고 있던 절의 심부름꾼이 아니었다. 인간들을 해치고 그 살과 뼈를 탐하는 끔찍한 요괴 그 자체였다. 소녀는 혹시 하는 맘으로 자신을 따르던 아이들을 바라봤다. 자신과 마주치지 않으려 눈을 아래로 내리까는 그 모습은 역시나 소녀가 잘 아는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요괴임에도 거부감이나 스스럼없이 따라주던 아이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저녁이 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을 텐데, 하늘이 노랗게 물 드는 것을 느낀 소녀는 더 이상 쳐다보기도 싫은 남자에게서 떨어져 묵묵히 그 자리를 이탈했다. 사람들은 자신을 따라오지도, 도망치지도 않은 채 가만히 그곳에 서서 불쾌한 시선만 던지고 있었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녀는 하하. 허탈한 웃음을 내뱉고는 안타까운 얼굴로 쓰게 웃었다. 이래서야 이젠 심부름이란 명목으로 맘대로 마을로 드나드는 것도 어렵겠군. 이를 고승에게 무슨 얼굴로 고해야 할지 벌써 부터 앞서는 걱정에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는 발걸음은 쇳덩이를 달아 놓은 것처럼 느릿느릿, 또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딱히 아쉽다 거나 슬프진 않았다. 자신이 요괴인 이상 이렇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필연이었다. 절대적인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가슴의 통증은 대체 뭐란 말인가? 괜스레 짜증이 치솟고,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고함이라도 외치고 싶었다. 소녀가 절에 돌아온 시각은 해가 저문 컴컴한 밤중이었다. * 마을에서 벌어졌던 그 일은 머지않아 소녀가 머무는 국상사까지 펴졌고, 절의 모든 승려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의 요구는 소녀의 처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절에 바칠 공양은 없을 거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허나, 국상사의 승려들은 그 요구를 순순히 따르려하지 않았다. 절의 여론은 그래도 소녀가 요괴치고는 여태 잘 지내온 것을 이유로 마을의 오해를 풀고 진심이 담긴 사죄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고승과 더불어 유일하게 소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주지승의 눈초리는 심상치 않았다. 무심이 굳게 닫힌 입으로 인심 좋은 중들을 바라보던 주지승은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내린 눈치였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고승은 가까운 시일 내에 소녀를 몰래 절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으나 자신이 염려하던 일이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오고야 말았다. 고승의 의도를 눈치 챈 주지승이 그에게 소녀의 정체를 비밀로 붙인 죄를 물어 파문시키려 한 것이었다. 주지승은 명에 의해 고승은 포박 당했고, 마을로 나갈 기회도 없이 방안에 틀어박혀있던 소녀도 갑작스럽게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되었다. 소녀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대이지만, 중들에게는 부처의 가피를 입은 법력이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 나온 소녀의 몸에는 경전 글귀가 새겨진 빛의 띠가 둘려져 있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체 무슨 이유인지 영문이 알 수 없던 소녀는 법력으로 자신의 힘을 봉하고 있는 중들을 사납게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마을에서 실수를 저지른 자신에게 그래도 호의적인 태도로 다독여 주던 식구들이었는데, 지금의 그들은 자신을 퇴치하려 하던 퇴마사들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저께 부터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었지만, 이리도 갑작스레 돌변 할 줄은 소녀는 꿈에도 몰랐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진심이었다. 그렇게나 친근했던 노리야도 탄게도 아시라이도 전부 자신을 반드시 멸해야 할 요물을 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야마타노오로치의 여식. 그 재앙의 싹을 이 자리에서 잘라내겠다.」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한 늙은 주지승이 한 손에 육환장(六鐶杖)을 들고 소녀 앞에 모습을 드려냈다. 근엄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소녀는 이 일을 지시한 장본인인 그에게 이를 드려내며 소리쳤다. 「재앙의 싹이라고? 그럼, 그 동안 밥 주고 재워 준 건 대체 뭣 때문이야!」 「널 데려온 고승이 네가 그 저주 받은 피를 이은 요괴란 것을 숨겼기 때문이다.」 주지승은 일체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숨겼기 때문에. 어디서 들어 본적이 있는 소리다. 소녀는 순간, 예전의 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벌써 수십 년은 족히 지났을지 모르는 아주 예전의 일. 자신이 태어난 이부키산 인근에 있던 마을에서 처음으로 친하게 지냈었던 인간이었던 노부부. 소녀는 그 노부부가 결국, 자신을 숨겼다는 이유로 마을 한 복판에서 처형당하던 기억을 상기해냈다. 그리고... 「그 녀석.. 어떻게 했어!?」 그 녀석. 자신을 이리로 데려왔던 고승이 걱정되었다. 그때 그 노부부처럼 되어선 안 된다. 소녀는 만면에 초조한 기색을 내비치며 다급하게 고승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누구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저 ‘넌 여기서 죽을 거다.’라고 말하는 얼굴로 소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주지승이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웠다. 곧이어 그의 따라 다른 중들도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그 중들의 염불에 반응을 했는지 소녀를 옭아매고 있던 경전이 적힌 빛의 띠가 그 세를 불려가며 강하게 죄여갔다. 「크으읏.. 그 녀석을 어떻게 했냐고!」 소녀는 법력에 의해 내상을 입고 있었지만, 자신의 안위 보다는 고승의 안위를 걱정했다. 「너 같은 재앙을 숨기려 들었던 죄는 크다. 따라서 그 죄 값, 목숨으로 받게 되겠지.」 염불을 계속 외기만 했던 주지승이 요괴 주제에 인간을 걱정하는 것이 기특하게 여겨졌는지 마지막 자비로 알려준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그 때문인지 소녀의 안색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중들의 법력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주지승이 들려준 고승의 처우에 관한 말이 기점이었으니 정신의 피해 쪽이 더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점차 약해지고 있는 소녀의 상태에 주지승과 중들은 그 세를 더해 염불 외는 속도를 높여갔다. 그러자, 소녀의 몸에 하얗게 빛나는 전류가 튀어 올랐다. 이걸로 저 무서운 대요괴의 피를 이은 재앙의 싹은 여기서 잘려나갈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까까지 고통에 신음하던 소녀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어 침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저항할 힘을 잃은 채 법력의 고통에 신음하다 그만 정신을 잃은 것이라 판단한 주지승은 육환장을 양손에 잡고 머리 위로 높게 들어올렸다. 육환장의 끝은 뾰족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주지승은 그걸 소녀의 심장에 찔러 넣는 것으로 끝장을 낼 생각이었다. 육환장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대로 내려찍어서 마무리를 지으려는 순간이었다. 기절한 줄 알았던 소녀의 입에서 '크크크'하는 웃음소리가 흘려 나왔다. 그 웃음소리에 놀란 주지승은 마무리를 짓지 않은 채 멈칫 거렸고, 소녀의 웃음소리는 갈수록 커져갔다. 「크하하핫. 그래, 난 요괴였지!」 「뭐가 그리 우습다는 거냐? 이 요물놈이!」 죽음을 앞두고 실성이라도 했나? 주지승은 요괴가 미친 것처럼 웃어대며 뜬금없는 소리를 늘어놓자, 의아해 하면서도 미간을 찡그리며 불쾌감을 표출했다. 기분이 나쁘니 어서 육환장으로 찔러 숨통을 끊어놓고 싶으나 희한하게도 쉽사리 내려지지가 않는다. 요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아니야, 저 상태에서 손가락 까딱하는 것도 불가능 할 터. 주지승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며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고는 중얼거린다. 「말도 안 돼..」 자신이 저 다 죽어가는 요괴에게 두려움을 느낀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주지승은 자신이 저 무력한 요괴로 부터 공포를 느끼고 있음을 자각했다. 아니, 무력한 요괴가 아니다. 무력했다면 자신이 두려운 감정을 가질리는 없을 것이다. 주지승이 겁을 집어먹고, 이상행동을 보이니 그를 따르던 중들도 덩달아 겁을 먹어갔다. 그것은 곧 집중력을 흩어지게 만들었고, 법력을 약하게 했다. 소녀의 몸을 옥죄던 빛의 띠가 느슨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숙였던 고개를 쳐든 소녀가 괴이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요괴니까, 요괴다운 방식으로 하면 되는 거야.」 실로, 귀신이었다. 심장 까지 차갑게 얼어붙은 중들은 소녀가 방출하는 짙은 요기와 당장이라도 실신해 버릴 만큼의 공포로 모든 사고가 정지되어 딱 한 가지 단어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죽는다. 그리고 죽었다. 찢겨져 죽었다. 배에 구멍이 나 죽었다. 머리가 박살나 죽었다. 뜯겨져 죽었다. 꺾여져 죽었다. 그 죽음 앞에서는 저항이란 무의미 했다. 주지승은 죽어가는 중들을 보며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엉덩이를 찢고 앉았다. 저것은 애당초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요괴가 아니었다. 대요괴 야마타노오로치의 피를 이은 재앙으로 씨앗이 아니라 이미 개화까지 해버린 재앙 그 자체였다. 귀신은 절의 불제자들을 일말의 자비도 없이 학살했다. 그 얼굴과 몸은 온통 붉게 피칠갑을 했고 눈은 야수의 안광을 쏘아내고 있다. 붉은 선혈이 주지승의 머리에 튀는 것과 동시에 귀신의 안광이 그에게 향했다. 귀신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데도 너무나 극심한 공포로 인해 주지승은 살려달라는 말 한 마디조차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건 오로지 죽음. 자신의 제자들과 같이 처참한 몰골이 되는 상상을 하며 주지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스윽. 주지승 바로 앞까지 온 귀신이 그 끔찍한 얼굴과는 상반되게 비교적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게 물어왔다. 「그 녀석. 어디에 있는지 불어.」 왜? 자신을 이런 곳에 데려온 고승 까지 무참히 죽이려고? 지금의 소녀의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 하겠지만 실은 달랐다. 「난 그 녀석에게 내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리고 사과해야 한다고!」 귀신이 사과를 한다고? 「껄껄껄껄..」 주지승은 어처구니없는 나머지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정신은 공포로 이미 새하얗게 되어 버렸지만, 귀신이 한 말이 너무 걸작이라 넘겨 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악귀가 무얼 사과한다는 거냐!」 「......」 「그래, 알려주마. 그 놈은 창고에 묶여져 있다. 어차피 늦던 빠르던 죽을 목숨이니 맘대로 해라!」 그 말이 끝이었다. 주지승은 귀신이 휘두른 팔에 의해 목이 뜯겨져 머리만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 끼익. 창고 문이 열렸다. 열려진 문으로 부터 쏟아지는 빛이 어두컴컴한 창고 안을 밝게 비추었고, 양팔을 뒤로 묶여져 있는 고승의 모습이 드려났다. 이른 아침부터 갇혀 있었던 고승의 눈은 어둠에 적응해 있었기에 갑자기 비추어진 밝은 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문을 연 존재의 모습을 확인했다. 햇빛을 등지고 서 있는 그 존재의 정체는 소녀. 이젠 악귀가 되어있는 붉은 귀신이었다. 고승은 소녀가 뒤집어 쓴 피를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바로 알게 되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는가. 고승의 입안은 질끈 깨물린 입술로부터 흘러든 피로 비릿한 혈향이 감돌았다. 불과, 어제만 해도 보통 소녀와 다름없었던 소녀는 지금은 더 이상 소녀. 아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 되어있었다. 온 몸에 뒤집어 쓴 피 때문이 아니다. 저 관자놀이를 뚫고 올라온 기다란 나무줄기와 같은 뿔을 보라. 흡사 「야차(鬼).」 「아니, 오니(鬼)야.」 소녀가 고승의 말을 바로 정정했다. 「오니라.. 딱 들어맞는군. 그게 널 지칭하는 말이구나.」 오니. 그게 소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존재만으로도 경외심을 가지게 만드는 요괴. 어떤 요괴보다도 잔인하지만, 정이 깊고. 강하지만, 순수하다. 그것이 오니. 바로 소녀였다. 소녀는 고승에게 잘 보이게끔 한 손에 들고 있던 중의 팔을 들어 올렸고, 뜯겨져 나간 팔의 절단면으로 부터 시뻘건 핏물들이 뚝뚝 흘려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서 으득. 하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자신이 보는 앞에서 동고동락을 같이 하던 수행승이 먹혀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고승은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혔다. 요괴가 절의 동지를 잡아먹고 있는 끔찍한 광경일진데 무섭거나, 역겹기 보다는 소녀에 대한 측은지심이 앞선 것이었다. 고승은 자신이 이런 감정을 품은 이유에 대해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네가 나한테 말한 게 있었지?」 소녀가 입안에 우물우물 거리던 인육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말했다. 「나쁜 요괴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타악-. 소녀가 바닥에다 패대기를 친 팔로 난 소리가 창고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핏물이 흐르는 입가를 소매로 훔친 소녀는 입을 찢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틀렸어. 난 제멋대로인 오니야.」 「그래. 넌 확실히 제멋대로다.」 「나 같은 요괴를 절에 들이게 해서 미안하네.」 「아니...」 고승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소녀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상냥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처음에 봤던 대로의 요괴다.」 「어째서?」 「그야...」 그 물음에 그는 소녀에게 측은지심을 품게 되었던 이유를 담담하게 고했다. 『─인간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요괴는 흔치 않으니까.』 어라. 소녀는 고승의 말을 듣고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내가 울고 있다니? 그럴 리가!? 역시, 눈물 따위 흘리지 않았다. 촉촉하게 느껴지는 물기라곤 얼굴을 뒤덮은 피 뿐이다. 대체 어딜 봐서 울었다는 거야. 소녀는 무어라 항변을 하려고 했지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야!'라는 말이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토해내 지지가 않는다. 소녀는 답답함을 느끼고 이를 악 물었다. 그러다 문득 쳐다본 본 고승은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마치, 안심을 했다는 듯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 때문에 창고에 갇혀 지고, 절의 식구가 죄다 몰살당했는데 그런 잔혹한 짓을 저지른 자신을 보고 안심을 하다니. 말이 안 되었다. 절대 이상한 일이다. 「왜 안심해 하는 거야!」 소리를 빽 지른 소녀는 헉헉 거친 숨을 뱉어내며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고승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고승은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말을 해왔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는 네 모습이 예쁘게 보였거든.」 「울긴 누가 울어!」 소녀는 말을 마치고는 시선을 돌렸다. 항변을 하긴 했지만, 석연치 않아서였다. 뭔가 가슴이 막 죄여오는 것처럼 미칠 듯이 갑갑하고 먹먹하다. 속이 쓰려서 먹었던 것을 전부 게워 낼 것만 같다. 이런 게 운다는 것일까? 소녀는 잘 몰랐지만, 고승의 말을 짐작 삼아 어느 사이인가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인정하기 싫었던 소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오니야. 거짓말은 하지 않아. 안 운다면 안 울어!」 그것이 소녀가 가장 처음으로 했던 거짓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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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피로 속에서 이번 회 일단락 지었음.
다음 회는 새로운 국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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